〈 71화 〉 사모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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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들은 무섭게 사네, 아직 어린데도 다들 날카로운 거 같아 우리는 파벌이고 뭐고 없어서 그냥 다들 친하게 지냈는데."
"어쩔 수 없죠. 이게 아카데미니까요."
루나라가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면서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마 사모아 파벌과 헬링 파벌의 전투가 없었으면, 저희도 선배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경쟁이야 파벌 없이도 진행되는 거라곤 하지만 벌써부터 이렇게 심화된 전투를 진행할리는 없으니까요."
"그러게 말이야. 왜 사모아 파벌이랑 헬링 파벌은 굳이 전투를 해서 여러 사람 머리를 아프게 만드냐."
아주 조금 찔리네.
두 세력이 싸우는 건 내 의지가 굉장히 많이 반영되어 있으니까. 사실상 나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다고 해도 해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아카데미를 양분하는 거대한 세력들이니까요.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붙었을 거 에요. 차라리 일찍 싸워서 둘 간의 서열이 미리 정해지만 오히려 더 편할지도 모르죠. 한쪽이 확실히 우위에 있으면 싸움은 덜 일어날 테니까."
"너는 누가 이길 것 같은데?"
"딩연히 저희 세력이 이긴다고 해야겠죠? 첫 결투도 승리로 시작했고 파벌 내부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요."
"파벌 싸움 승리하면 네 입지도 단단해 지겠다? 누가 뭐래도 최고 공로자잖아."
루나라가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씁쓸하게 웃었디.
듀플이 눈치 없는 척을 하면서도 중요한 건 다 물어 보고 있다.
덕분에 쓸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나는 좋았지만.
'확실히 파벌 내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 것 같긴 하네.'
사모아는 착한 놈도 아니고 마음이 넓지도 못하니까. 고작 평민출신, 그리고 고아라는 배경 때문에 루나라를 소중이 여기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에 짓눌려서 굳이 다른 상을 주지 않아도 루나라가 계속 남아있을 거란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고.
'역시 싸움 구경이 재밌어.'
특히 이번 전투는 두세력, 정확히는 헬링파벌의 머릿싸움이 제대로 들어나고 있어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런 자극이 있었다.
"루나라씨는 정말 강하신 거 같아요."
슬슬 작업 좀 쳐볼까?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뇨. 적어도 1학년 중에선 가장 강하신 분이시잖아요. 또래 중 가장 강하신 건데 당연한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딱딱해 보였던 루나라도 여자는 여자였는지, 내가 말을 걸자 표정이 풀어졌다.
역시 잘생긴게 최고야.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걸요."
"루나라씨만 부족하신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또래 들 중엔 가장 가장 부족한 게 적으신 분이시잖아요."
루나라같은 사람과 친구가 되겠다고 덤벼들면 안된다.
내가 아무리 잘생기고 귀여워도 고작 외모 하나따위로 루나라가 나에게 마음을 열게 만드는 건 쉽지 않을 뿐더러 루나라의 인생에서 친구라는 존재는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던 것이어서 서로 어색해지기만 할 뿐이다.
적당히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아는 사람 정도의 친분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마음을 열어 가는 식으로 진행해야 루나와 친해질 수 있다.
저녁을 먹는 내내 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다는 스탠스를 취했다.
이성대 이성으로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같은 학년의 학생으로서, 우리 학년의 최강자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계속 루나라를 몰아붙였다.
'누구든 마찬가지야.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싫어하기란 쉽지가 않지.'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그 사람이 굉장히 못 생겼거나. 다른 의도가 뻔히 보이지 않는 이상 사람은 먼저 다가오는 사람을 쳐내기가 힘들다.
실제로 루나라의 어투가 계속해서 부드러워 지고 있기도 했고.
"그러면, 슬슬 들어갈까? 밥도 다 먹었고 너무 늦게 헤어지면 플레아가 가다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으니까."
"선배가 데려다 주실 거 아니에요?"
"내가 일이 있어서 말이지."
뻔한 거짓말이었다.
일이 있었으면 우리랑 같이 밥을 안 먹었겠지.
그냥 나랑 루나라를 같이 보내기 위한 수작질에 불과했다.
"그러면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남자분을 혼자서 제도의 밤길을 걷게 하는 건 아무래도 불안해서 말이에요."
사실 크게 불안해 할 건 없다. 예전에야 다른 사람이 주변에 없었으면 언제 납치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가슴에 박힌 은색 훈장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됐으니까.
'하지만 굳이 데려다 준다는 걸 거절할 필요는 없지.'
듀플이 계산을 마치고 먼저 떠나 버렸다.
천천히 아카데미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니 루나라가 나를 따라왔다.
"루나라씨는 언제 처음 검을 배우셨어요?"
"7살 때 배웠을 겁니다. 제 몸하나 지키겠다고 주변 용변단에 달려가서 제발 뭐라도 가르쳐 달라고 했죠. 운이 굉장히 좋아서 아카데미에 입학하긴 했지만 근본 없는 검술이라고 사모아님이 싫어하십니다."
근본이 없다니, 무슨 망언이야.
사모아가 검술을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지, 루나라를 꼽주려고 그런말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루나라의 검술은 굉장히 정석이었다.
벨리아를 상대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던 시점에서 이미 루나라의 검술은 근본이 없다고 비하하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많았지.
'들어갔던 용병단이 제대로 된 곳이었나 보네.'
어줍짢은 용병단에 들어갔다면 루나라의 말처럼 근본없는 검술을 가지게 되었을 테니 아카데미에 사모아 파벌의 1검은 커녕 아카데미에 입학조차 하지 못했었겠지.
"대단해요. 7살 때부터 검술을 배우시다니..."
"저는 제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래에 비해 강한건 사실이지만 언제 따라잡힐지 알 수 없는 거니까요. 저는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곤 있지만 저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아요."
"자신에 대해서 너무 엄격한 거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자신을 느슨하게 풀어 주는 것 보다 엄격하게 구는 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해요."
일부러 걸음 속도를 늦췄다. 너무 빨리 도착해 버리면 루나라랑 얘기할 시간이 줄어 들잖아.
"벨리아씨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에, 사모아님이 루나라씨에게 준 상이있나요?"
"상이라뇨. 그런 과분한 걸 받을 정도로 잘한 건 아니에요. 이겼다고 해도 압도적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정말 한 끝 차이로 이겼으니까요. 고작 이 정도 일에 보상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사모아님이 준다고 했는데 루나라씨가 거절하신 거에요?"
루나라가 살짝 굳은 표정을 지었다.
반응을 보니 줄 생각도 없었나 보군.
'역시 사모아는 사람을 다루는 게 너무 거칠어.'
권위로 사람을 짓누르고 자신에게 복속시킨다.
나름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사모아에게는 좋은 방법일 수 있으나 루나라 정도 되는 고급인력에게, 단지 평민이라는 이유로 똑같은 방식을 적용한 다는 건 정말 멍청하기 그지 없는 행동이었다.
에른워커처럼 사실상 노예와도 같은 존재라면 몰라도 루나라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인이었으니까.
'그래서 네가 프레스티아한테 지는 거야.'
한번 크게 대여봐야 자기가 뭘 잘 못했는지 알겠지.
"만약 헬링님이었다면 루나라씨가 받기 싫다고 하셔도 억지로 손에 쥐어줬을 텐데 말이에요."
"지금 저랑 사모아님의 사이를 이간질 하시는 겁니까?"
루나라가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압박을 가해왔다.
솔직히 이제는 몸도 적응돼서 별로 무섭지도 않았지만 평범한 남자애가 기사급 되는 애의 기세를 받고 멀쩡한 것도 이상했기에 살짝씩 몸을 떨며 멈춰섰다.
"죄송해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저와 플레아씨는 적입니다. 지금이야 개인적인 시간이고, 사모아님이 개인적인 관계까지 건드리시지는 않으셔서 편하게 대화한 것이지 자꾸 예민한 부분을 건드려 오신다면 저도 계속 편하게 대해드릴 수만은 없습니다."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루나라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는 조심해 주십쇼."
그래도 모처럼 친해진 사람이랑 바로 거리를 두기는 싫어나봐? 반응이 생각보다 약한데? 나는 당장 꺼지라는 말 까지 들을 걸 각오했는데 말이야.
그 이후부터는 어색한 동행이 계속 됐다.
서로 말 한 마디 하나 하지 않고 기숙사로 계속 걸어갔고, 결국 정적 만을 유지한 채 기숙사에 도착했다.
"데려다 주셔서 고마워요. 저한테 화도 많이 나셨을 텐데..."
"반성하신 것 같으니 됐습니다. 그리고 플레아씨 혼자 보네기엔 불안한 점이 많아서요. 괜히 혼자 보냈다가 내일 플레아씨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들으면 심장이 철렁 할 것 같았거든요."
"하하.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밤이 엄청 늦은 것도 아니고 저도 저를 방어하는 최소한의 장치는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늘 조심하셔야 합니다. 사건이라는 건 원래 아무도 모르게 다가와서 터지는 거니까요."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루나라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그러면 가보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친해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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