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사모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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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라를 노린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루나라를 노려? 당연하지만 프레스티아가 음습한 이유로 루나라를 노리는 건 아닐테고 설마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무슨 소리긴, 헬링이 아주 욕심많은 사람이라는 소리지."
"설마 루나라를 영입하려 한다고?"
시에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헬링과 벨리아의 관계는 무척이나 끈끈하지만 사모아와 루나라의 관계는 전자 처럼 끈끈하지 못하거든, 헬링이 루나라를 영입하기 원하고, 그러기 위해 벨리아가 지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그쪽 참모진이 결론을 내렸으면 헬링 입장에서는 한 번 시도할 법해. 루나라를 영입할 수 있을 확률이 100%는 안되겠지만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이긴다는 확신이 있다면 한 번 시도해 보는 게 무조건 이득일테니까."
아, 그게 다르구나.
본래 사모아의 1검이었던 에른워커는 사모아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고아였던 에른워커를 단지 재능 하나만 보고 사모아가에서 주워다 키웠기 때문 헬링과 벨리아처럼 끈끈한 관계는 아니어도 에른워커가 사모아를 배신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 했다. 신뢰만큼 강력한 상하 관계가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루나라는? 그런 거 없다. 루나라는 평범한 평민이며, 사연이 많긴 하지만 그 사연이 사모아와 얽혀 있지 않다.
때문에 굳이 사모아의 밑에 머무르지 않고 프레스티아 밑으로 이동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주인을 바꾼 기사라는 오명은 어마어마 하게 크겠지만 헬링 파벌이 바보도 아니니 오명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 되겠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해?"
"사실 우리랑 크게 관련 있는 내용은 아니야. 헬링이 루나라를 노리든, 사모아의 다른 수하들을 노리든, 우리 입장에선 아무런 상관 없으니까. 그나마 생각해 볼 만한 게 루나라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건데, 루나라가 헬링 파벌을 두고 우리 파벌로 올 가능성 따위는 없지. 그리고 만약에 루나라를 가로채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문제야. 아무리 헬링이 플레아를 좋게 보고 있어도 자기가 양념 쳐놓은 인재를 가로채가는 건데 우리를 가만 둘리가 없으니까."
그냥, 강건너에 불구경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면 되는 건가?
"대신 헬링 파벌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해서 우리도 우리 나름 이득을 챙기면 되겠지. 사모아와 루나라 사이를 이간질 하는 동안 사모아의 평판이 많이 떨어질 테니까 지금까지 하고 있던 작업이 훨씬 더 수월해질거야."
"시에린이 있으니까 든든 하네."
역시 뛰어난 참모 하나정도는 마련해 두는 게 좋다니까.
"아까는 미안했어. 내가 예민해지면 주변이 안 보이는 성격이라서 아까는 너무 사나웠어."
"괜찮아."
시에린 정도의 인재를 굴리는 데 그 정도야 충분히 감수 할 수 있는 영역이지.
"그러면 오늘은 이쯤할까? 헬링파벌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이득을 극대화하는 건 나혼자서 고민해도 충분하고, 어차피 내가 해야 할일 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면 부탁할게."
"수고 많았어."
그렇게 모임을 쫑냈다.
***
어느덧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왔다. 나는 헬링 파벌과 사모아 파벌에 신경을 쓰면서도, 어차피 내가 움직이는 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사모아 파벌의 참모, 헬링 파벌의 참모는 성적이 뚝 떨어질 게 분명했다.
아니 굳이 두 세력의 참모가 아니더라도 아카데미가 혼란한 상황인 만큼 거의 모든 파벌의 참모의 성적이 떨어지겠지.
고작 기말고사에 집중할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니까.
'슬슬 프레스티아가 루나라에게 작업을 치는 것 같은데.'
라이넬이 말하길 벨리아가 루나라에게 말을 거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는 둘만 알고 있겠지만 라이넬이 보기에 루나라가 항상 화를 내는 상태라고 했다.
'아예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는 생각인가?'
아무리 프레스티아여도 루나라의 마음을 단시간에 돌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밍기적 거리면서 시간을 끌어서 최대한 루나라와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겠지.
'실제로 첫 번째 결투이후로 큰 싸움이 일어난 적이 없으니까.'
아카데미에선 헬링 파벌이 쫄아서 사실상 항복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수준이었다.
'아예 방학을 노릴 생각인가.'
상대가 에른 워커였다면 방학때 사모아 가문으로 갈 거라서 찔러 볼 틈도 없겠지만 루나라는 상대적으로 널널할 게 분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미 파벌에 들어간 사람을, 그것도 엄청 뛰어난 기사를 도대체 어떻게 빼내 올 생각인지 궁금했지만, 헬링 파벌의 참모들이 잘 생각했겠지.
'나는 중간에서 이득을 챙기면 될 일이야.'
겸사겸사 이번 기회에 아카데미 1등도 해보고.
"야, 꼬맹아."
"제가 꼬맹이라고 부르지 말랬죠!"
"꼬맹이를 꼬맹이라고 부르지 그러면 뭐라고 부르냐? 이상한 놈일세."
듀플은 자기 학년에서 할 게 없는지 심심할 때마다 우리 반으로 내려온다.
기말고사는 미리 공부를 충분히 해 놨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하는 정도로 성적이 크게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너, 속이 아주 새까만 놈이였더라?"
그걸 이제 알아챘어? 얘도 눈치가 느리네, 매일 내 옆에 붙어있으면서 어떻게 그걸 이제야 알아 챈거지?
반에 다른 애들도 많았지만, 이미 듀플에 익숙해 지기도 했고,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쪽에 집중한 애는 없었다.
"순진하기만 한 앤줄 알았는 데 달리 봤어."
"그래서, 실망했어요?"
"실망하긴,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데 마냥 순수하고 순진하게 살아갈 순 없으니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
"선배는 기말고사 공부 안해요?"
"청기사단 들어간다니까? 이미 입단이 확실시 됐는데 뭐하러 기말고사를 위해 따로 시간을 빼냐?"
그렇구나, 부럽네.
요즘 달리 자극 될 것도 없는 상황에서 매일 공부만 하다보니 기운 없이 축 늘어진다. 이럴 땐 단 걸 먹어주는 게 제격인데 시에린이 고생하고 라이넬도 수련에 전념하는 상황에서 같이 갈만한 애가 없다.
미네타랑 같이 갈 수는 있지만 친구 두 명 때놓고 가는 것도 마음에 걸렸으니까.
때문에 할 것 없이 공부나 하는 인생이 반복 되고 있었다.
'나도 시에린 처럼 영업이나 하러 갈까?'
근데 나는 아카데미에서 너무 유명해서 내가 움직였다가는 바로 아카데미 전체에 소문이 다 퍼져 버릴 거야.
"되게 심심한 표정을 하고 있네."
"실제로 심심해서 그래요. 어차피 상위권 애들이 다 바빠서 제가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1등은 가볍게 먹을 것 같은데, 달리 할 게 없어서 공부만 하는 제 인생에 지쳐버린 거죠."
잭스펠 남매한테 찾아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걔네는 이미 내가 준 골드를 다 털어서 첫번째 상행을 떠난 후였다.
찾아갈 수 없는 건 아니었는데 근처의 다른 도시까지 가야해서 너무 비효율 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심심하면 나랑 같이 운동이라도 해볼래?"
"운동이요?"
"머리가 복잡할 땐 몸을 움직이는 게 제일이거든, 어차피 심심한 김에 운동 조금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거 아냐."
"선배랑 저 둘이서만 운동해요?"
"글쎄? 아카데미 운동장을 쓸 것 같은데 다른 사람도 주변에 있을 수도 있겠지?"
각을 잘 보면 2학년 선배들이랑도 친분을 쌓을 수 있으려나?
기사반의 실기 평가가 다가오면서 방과 후의 운동장은 2학년 선배들의 차지가 됐으니까, 듀플 쯤 되는 선배면 후배들이랑 친분도 많을 테니까 같이 운동하고 있으면 선배들이 한 번쯤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었다.
"좋아요. 어차피 시험기간이기도 하고, 방과 후도 다 끝나가서 시간은 널널해요."
"그러면 방과후에 운동장으로 나와라. 안 나오면 큰 일 날 줄알아."
"꼭 갈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럼 나는 이제 올라가 본다. 수업 열심히 들어라."
"네, 안녕히 가세요."
듀플까지 가버리니 더 심심해졌다.
방학 때 무슨 일을 할지나 생각하고, 기말고사 준비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방과후가 됐다.
체육복이나 생활복을 입는 게 운동하기엔 더 편하겠지만 행정반 학생들에게 체육 시간따위는 없었기에 체육복은 존재하지 않았고 생활복 같은 경우는 기숙사에 있어서 가지러 갔다 오면 시간이 늦을 것 같다.
일단 운동장에서 듀플 을 만난 후 양해를 구한 후 가져오거나 그냥 제복을 입고 운동해야지.
하복은 동복과 다르게 움직이기 꽤 편한 편이니까.
"왔냐. 이리와."
운동장으로 나서자마자 듀플이 나를 보고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운동장에서 수련하고 있던 2학년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됐다.
이세계에 온지 첫날이었으면 이 시선만으로도 움찔 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2학년들의 시선을 뚫고 듀플에게 도착하니 듀플이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누나의 훈련은 상당히 힘드니까 각오 단단히 해라."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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