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사모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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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루나라인가?
암묵적인 협상이 있던 건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모두 평민이었다.
난세에서 평민출신으로 이름을 날린 기사가 참 많았는데 이는 행정계나 마법계 같은 경우 고유한 특성 탓에 평민들이 높은 경지에 다르르기 쉽기 않기 때문에 개발사에서 매력적인 평민 캐릭터들을 기사쪽에 많이 배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루나라도 참 사연이 많은 애지.'
당장 싸움 구경을 하는 데에는 중요하지 않으니 조용히 지켜보도록 하자.
원래 사모아의 제1검이라 불렸던 에른워커가 남녀역전이라는 이유로 탈락을 했을 듯 보이는 시점에서 루나라는 사모아 파벌에서 가장 강한 기사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벨리아는 난세에서도 헬링 파벌에서 두 번째로 강했던 여자라는 걸 생각하면 미세하게 나마 벨리아의 승리를 점칠 수 있겠지.
헬링 파벌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냐고? 말해 뭐해 남녀역전 없이도 무력 잠재력 99를 찍은 우리 프레스티아 님이시지.
챙!!
마음 속으로는 벨리아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둘의 승부는 그렇게 쉽게 점쳐 지지 않았다.
치열한 검격이 마구 오갔고 승부가 날듯 하면서도 나지 않는 아찔한 상황이 계속됐다.
"안돼겠다. 가까이 가서 보자."
듀플이 나를 내려놓고 앞으로 움직였다.
그녀가 사람을 헤치고 걸어갈때마다 험악한 시선이 우리를 향했지만 대부분은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선배들도 많이 보이네.'
하긴 이런 대규모 파벌의 싸움은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심지어 수업시간도 아니니까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몰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그런데 루나라가 생각보다 잘 버티는데?'
남녀역전 세상으로 변한 능력치가 두 사람 모두 동일하다면 루나라가 딱히 벨리아에 비해 이점을 가지는 건 없을 터였다.
분명 루나라는 벨리아 보다 잠재력이 낮았고, 지금 시점에서 벨리아가 루나라보다 훨씬 강했어야 정상이었다.
'성장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한 건가?'
청기사단의 단장을 오빠가 아니라 여동생 쪽이 맞고, 원래 3학년 최강자가 그저그런 기사가 되는 등 남녀역전이 발생하면서 이루어지는 변화는 상당히 많았다.
그렇다면 한 개인으로 시선을 좁혀도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까? 원래 사모아 파벌의 최강자가 없어지면서, 자신이 자기 파벌의 최강자라는 부담감이 루나라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준 건 아닐까?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한 건 둘이서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듀플 덕분에 가장 앞자리에 도착한 상태에서 바라보는 둘의 대결은 상당히 역동적이었다.
서로 검을 겨누고 한참을 경계하다가도 갑자기 한 순간에 붙어서 검을 마주 댄다던가, 서로 칼을 마주 덴채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보면 그녀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싸움을 하고 있는 피부로 느껴질 만큼의 박진감이 있었다.
'이래서 옛날 사람들이 콜로세움 같은 걸 만들었던 거구나.'
잠시 결투에서 눈을 때고 시선을 돌려보니 바로 반대편에 헬링이 있는 게보였다.
팔짱을 낀 채 진지한 눈빛으로 대결을 바라보는 늠름한 모습에 심장이 두근 거렸다.
'역시 멋지다니까?'
사모아는 어딨으려나 하고 고개를 돌리려던 그 때 감각적으로 짧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헬링이 우리의 반대편에 있다면 사모아는 당연히 이 근처에 있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사모아가 불과3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결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가 좀 딸리고 성격이 나빠서 그렇지 사모아도 미모는 출충했기 때문에 진지하게 결투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꽤 아름다웠다.
물론 프레스티아랑 비교하면 바로 먼지가 되어버리겠지만.
'먼지가 돼도 날아갈 수는 없네.'
일단 듀플의 왼쪽에 서서 최대한 그녀의 눈에 띄지 않게했다.
아마 듀플을 보면 나도 근처에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겠지만, 듀플은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평범한 3학년 선배처럼 보일 수 있는데 나는 스쳐지나가다가 한번 보기만 해도 나인게 너무 티난다.
'기사반의 최강자들이라 그런가? 겁나 잘 싸우네.'
싸운지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데 호흡 정도만 거칠어 친 채 처음과 거의 다름 없는 모습으로 싸움을 이어나갔다.
누구 한 명이 집중력이 흐뜨러 져서 공격을 허용할만 한데도 서로가 서로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피해냈다.
'되도록이면 무승부로 결착이 나서 싸움이 늘어지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건 말도 안되지.
만에 하나 둘이 동시에 쓰러진다고 해도 더 먼저 무릎이 땅에 닿은 사람이 지게 될테니까.
응원을 한다고 하면 벨리아를 응원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프레스티아의 부하라서 응원을 하고 싶은 건 아니고 헬링 파벌이 초반 승기를 잡아야 사모아 파벌 근처에서 간보던 애들이 떨어져 나올테고 그래야 작업을 치는 게 더 편해질테니까.
"선배, 결착이 날려면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아요?"
"둘 다 많이 지친 것 같은데, 눈빛이 엄청 또렸해, 아마 제대로 결착이 나려면 한참은 걸릴 거다."
"선배가 싸우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듀플이 코웃음 쳤다.
"나랑 붙었으면 3분도 안돼서 끝나지, 그런데 1학년 때의 나랑 저년들이랑 싸운다고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자기가 진다는 뜻이다.
여자들은 자신의 실력을 자신하는 경향이 강해서 진짜로 비슷했더라면 내가 무조건 이겼을 것 이라고 했을 테니까.
많이 지쳤다는 듀플의 분석이 틀리지 않았는지 둘의 싸움은 점점 느려졌다.
검을 맞대고 힘을 겨루는 시간을 줄어들었으며 서로의 눈치를 보며 검만 들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 갔다.
멀리서 봤으면 못 느꼈을 지도 모르겠지만, 앞에 다른 관객 하나 없이 지근 거리에서 구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여성의 호흡이 얼마나 거칠어져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호적수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네.'
라이넬을 저들이랑 붙여 놓으면 어떻게 될까?
최근들어 각성이라도 한 듯 빠르게 성장하는 라이넬이었지만 아직 익스퍼드의 벽도 넘지 못한 상태로서는 저 둘과 검을 맞대기란 힘들 것이다.
다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라이넬이 약한 게 아니라 저 둘이 미친듯이 강하다는 것이다. 평범한 1티어급 기사들도 16살이라는 나이에 익스퍼드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저 둘은 그냥 남녀역전이 만들어낸 있어서는 안 될 괴물이라고 봐도 되겠지.
'그래도 조금 아쉽단 말이지, 라이넬도 조금 더 강해졌으면 좋겠는데.'
최근에 자극을 받아서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으니 올해 안에는 익스퍼드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와아아아!!!!"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함성이 터져나왔다.
화들짝 놀라서 앞을 바라보니 벨리아의 목에 루나라의 검이 대여 있었다.
'루나라가 이겼어?'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아무리 둘이서 팽팽히 맞붙는 다고 해도 결국 승리는 벨리아가 가져갈거라고 생각했다.
난세에서 둘의 무력차이는 엄청났으니까. 남녀역전의 효과로 루나라가 익스퍼드의 경지에 다다른 것 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둘 사이에 존재했다.
왜지? 왜 벨리아가 진거지?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프레스티아에게 옮겼다.
'아,'
프레스티아는 웃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땐 무표정을 짓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것은 거짓된 무표정이다.
내가 벨리아의 승리를 확신 한 것 처럼 프레스티아 역시 벨리아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예상이 깨지고 벨리아가 패배했다.
아무리 프레스티아라도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까지 완벽한 무표정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루나라의 실력을 미리 알고 있었나? 아니면 벨리아가 결투에서 지더라도 파벌간의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전략이 존재하나?'
어쩌면 벨리아가 패배한 것 조차 프레스티아의 노림수일지도 몰랐다.
'벨리아는 프레스티아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니까.'
벨리아가 루나라에게 패배하는 순간 벨리아의 명예는 큰 폭으로 떨어진다.
최후에 헬링 파벌이 사모아 파벌에게 승리를 거머쥔다고 해도 1학년 중 가장 강한 사람은 루나라로 정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벨리아 정도 되는 충심이 있는 기사라면, 일부러 지게 하느 것 또한 충분히 가능한 전략이었다.
'자기 기사의 명예를 깎아서 까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지?'
떨어지는 건 벨리아의 명예뿐만이 아니다. 헬링 파벌 자체의 명예도 떨어지게 될 것이고, 무엇 보다 양보다는 질로 승부한다는 헬링 파벌의 근복적인 위엄이 사라질 게 분명했다.
도대체 프레스티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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