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사모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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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아 파벌과 헬링 파벌의 싸움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지만 아카데미의 시간은 아카데미 시간대로 흘러갔다.
과제도 다가왔고 시험공부도 해야하는 시험기간이, 나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의 모든 학생을 덮쳤다.
'과제 싫어.'
그래도 과제를 잘해야 교수님들께 눈도장을 찍으니까 아무리 싫어도 열심히 해서 고득점을 맞아야 겠지.
"야! 벨리아가 장갑 던졌데!"
"뭐?! 누구한테?"
'이제야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려는 모양이네.'
난세에도 결투라는 것이 존재했다.
다만 아무래도 게임이다 보니 우리가 아는 중세의 결투와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공식적인 싸움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애초에 흰색 장갑같은 걸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까."
굳이 흰색 장갑을 들고와서 던졌다는 건 나는 오늘 너랑 싸울 작정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지금까지 사모아파벌과 헬링 파벌의 모든 싸움은 비 공식적인 것이었다. 벨리아가 사모아 파벌 애들을 패고 다니든, 사모아 파벌의 기사반애가 헬링 파벌의 애들을 패고 다니든 이는 비 공식적인 일어었다.
아카데미 전체에 소문이 다 퍼지는 데 어떻게 비공식적인 일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비 공식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했다면 얘기가 다르지.'
결투는 굉장히 공식적인 일이다.
결투에서 패배한다는 건 상대가 나 보다 낫다는 걸 모두에게 인정하는 것과 같으며 결투의 승자가 패자를 보고 '넌 나보다 약해'를 시전해도 어떠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결투는 굉장히 신중이 진행하는 게 맞지.'
복도에서 만나서 그냥 주먹을 휘두르는 것 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준비를 요구한다.
자신이 절대 지지 않을 수 있도록 계획도 세워야 하고 이래저래 준비할 게 많아서 보통 장갑을 던지고 3일은 뒤에야 결투가 시작한다.
'아무리 벨리아가 멍청해도 주군의 명령 없이 결투를 신청할 애는 아니야. 아마 프레스티아가 슬슬 제대로 붙어 볼 필요성을 느꼈으니까 벨리아에게 명령한 거겠지.'
결투는 개인과 개인사이의 일이지만 헬링파벌과 사모아 파벌이 한참 싸우고 있는 중인 만큼 벨리아가 장갑을 던진 행위의 의미를 벨리아 개인의 일로 축소 시켜 바라보기엔 무리가 많았다.
벨리아가 장갑을 던진건 사실상 헬링 파벌이 사모아 파벌에게 정식적으로 결투 신청을 넣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앞으로 진행될 전투에서 패배한 자는 변명할 여지 없이 더 약자 될 것이고 승리한 자는 아카데미의 최강파벌이라는 명성을 손에 넣을 수 있겠지.
'이런 빅 이벤트를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워.'
과제도 과제지만 내 위치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게 정말 아쉬웠다.
원래 구경은 싸움구경이랑 불구경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싸움 구경도 보통 싸움 구경이 아니고 아카데미에서 가장 큰 세력 둘이 붙는 건데 당연히 재밌을 수 밖에 없겠지.
'얼굴에 철판 깔고 구경하러가?'
나 때문에 둘이 싸운 것처럼 되어 버렸으니 그게 걱정돼서 구경하러 갔다고 하면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텐데.
'아니야, 괜히 내 이미지에 흠집을 낼 필요는 없지.'
고상하고 완벽하고 착한 내 이미지를 괜한 호기심으로 흠집을 낼 필요가 없다.
그냥 들려오는 소문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도록 하자.
'그러면 아예 빈집 털이를 목표로 삼아야 겠네.'
기말고사를 앞에 두고 벌어진 빅 이벤트다.
중립쪽에서 잘 하는 애들은 호흡 조절을 잘 해가면서 구경도 하고 공부도 하겠지만, 두 파벌에 직간접적으로 소속된 애들은 그럴 수 없을거다.
자기 파벌에서 전쟁이 났는데 그쪽 싸움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겠지.
당연히 성적은 내려갈 것이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 하면 되는 일이었다.
'시에린도 성적이 떨어지려나?'
지금 시에린은 우리 아카데미에서 가장 바쁘다고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다.
내가 직접 영입 제안을 하면 너무 속이 보이기 때문에 시에린이 모든 영업활동을 책임지고 있는데 매일 만나는 사람의 수만 열 명이 넘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떨거지들을 돌려 보내는 데에도 굉장히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교양 마법도 못 나올 수준이니까.'
시에린에겐 나중에 상을 주도록 하자.
잡생각은 덜어 두고 다시 공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누가 내 어깨를 톡톡 치는 것이 느껴졌다.
몇몇 애들이 구경을 위해 밖으로 나간 걸 감안해도 너무 조용한걸 생각해 보면 아마 듀플이 온 모양이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오셨어요 선배?"
"야야, 너 그거 들었냐?"
"그거 라고 하면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저 멀리서 허겁지겁 뛰어 오는 헤르티아가 보였다.
저 선배도 고생이 많군.
"벨리아가 장갑 던졌다면서?"
소문이 정말 빠르긴 한가보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인데 3학년 가지 알고 있을 정도면 벌써 온 아카데미에 다 퍼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헬링 파벌애들이 사모아 파벌애들한테 선빵을 날린다는 건데, 이제야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다는 기분에 몸이 달아오르지 않니?"
"제가 싸우는 것도 아닌데요 뭘."
"그래도 싸움 구경은 할 수 있잖아. 애들 싸우는 거 구경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3일 뒤에 벨리아랑 프로틴이 결투한다고 하니까 그 때 꼭 나와라."
"네? 제가 왜요?"
"내가 구경하고 싶으니까 그러지, 그런데 너를 버려두고 구경만 할 수는 없잖아. 너를 안전한 내 옆에 두고 나는 편안하게 결투를 구경하겠다는 말이지."
반 내부를 쓱 훑었다.
장갑 던진 거 구경하러 나간 애들도 슬슬 들어와서 우리 쪽을 주시하고 있었고 원래 반에 있던 애들은 우리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지 오래였다.
'듀플 나이스!!'
덕분에 아무런 짐 없이 두 파벌간의 결투를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결투를 구경하러 가도 이제 애들은 '아, 듀플 선배가 끌고 왔구나,' 싶겠지.
아까도 말했든 소문은 정말 빠르니까.
듀플 정도 되는 대 선배가 결투를 구경하러 온다는 정보가 3일 내에 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눈치가 엄청 빠른 거 아니야? 내가 결투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고 굳이 지금 와서 이렇게 말 해준거지.'
만약 그렇다면 듀플이 내 생각보다 더 뛰어난 인재임이 틀림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걸 알고 자연스럽게 그를 이뤄주는 상황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올해 졸업하는 게 아쉽네.'
2학년과 3학년의 영입 난이도는 천지 차이다.
사실상 2학년은 1학년과 다를 바가 없는데 3학년은 샤카 같이 외부의 인력을 영입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듀플이 바로 손을 흔들며 우리를 떠나갔다.
헤르티아만 닭 쫒던 개 신세가 돼서 듀플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완전 제멋대로인 선배야 그치?"
"3학년 이니까요. 심지어 청기사단에 견습 기사로 입단할 게 확정되었다면서요? 그러면 더더욱 남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행동하겠죠."
"너도 고생이 많다."
헤르티아가 내 어깨를 톡톡 친 후 교실을 빠져나갔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서 그런지 몸의 기력이 쑥하고 빠져 나갔다.
그래도 공부를 멈출 순 없는 법 펜을 들어서 필기를 시작했다.
***
"플레아 학생은 성적이 아주 좋아요. 전반기엔 조금 부족했던 역사도 점점 괜찮아 지는 게 보이고, 수학은 우리 아카데미에서 가장 잘한다고 해도 부족 하지 않을 정도야."
'그야 공대 출신이니까요.'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이 중학생 나이의 애들한테 질 순 없지.
어느 학교에나 다 있는 성적 상담 시간이었다.
말이 상담 시간이지 잘하는 애한테는 이대로만 하면 돼, 하고 돌려보내고 못 하는 애한테는 너는 왜 그러니? 로 시작한 잔소리를 하는 시간이었지만 우리 교수님은 쓸데 없이 열의가 넘치셨다.
"훈장을 받고 조금 나태해 질 수도 있는데 집중력을 유지하고 성적을 올리는 너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 아카데미에서 대단한 위인이 날 지도 모르겠어."
긴긴 교과 상담이 끝나고 드디어 나를 보내 주나 싶었는데 이젠 칭찬 세례가 시작됐다.
어차피 대학원으로 끌려 갈일도 없기 때문에 교수님께 칭찬을 듣는 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문제는 내가 상당히 바쁘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첫 결투인데 제발 구경가게 해주세요 교수님!'
벨리아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조금만 늦게 가도 빨리 결판이 나있을 확률이 있었다.
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교수님은 나에게 끊임 없는 칭찬을 계속하실 뿐이였다.
"야! 왜 이렇게 늦게나와!"
"제가 늦게 나오고 싶어서 나왔어요? 교수님이 길게 얘기하시는 걸 어떡해요!"
장장 5분에 걸친 칭찬세례를 마치고 나오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듀플이 보였다.
"빨리 가자 벌써 결투가 시작됐을 수도 있어."
듀플이 나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고 내달렸다.
꽤 긴 복도였는데 순식간에 출구에 도착했다.
챙!!
운동장으로 나오자 마자 보인건 검을 부딪히는 두 여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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