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사모아5
* * *
"주군! 큰일 났습니다!"
검술을 수련하고 있던 나에게 벨리아가 뛰어와 말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다른 심복들의 시선또한 이쪽으로 몰렸다.
"무슨일인데?"
"플레아씨가 사모아에게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모아년, 내가 훈장을 받은 이후로 배가 많이 아팠나 본데? 남의 장난감을 다 건드리고 말이야.
"무슨 협박인데?"
벨리아가 말한 사모아의 행동은 아무리 사모아가 머리가 안좋고 다혈질이라 하더라도 믿을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뭐? 플레아가 창남이야? 나중에 노예로 삼아?
아무리 화가 났어도 한 파벌을 이끄는 수장이 입에 담을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 말, 전부 진짜야?"
"네! 플레아씨가 울음을 꾸역꾸역 참으시면서 저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잘도 울었겠다. 요즘엔 내가 압박을 줘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데 고작 사모아 따위한테 협박을 당한 걸로 울겠어?
아예 주먹을 들고 협박을 했으면 또 모르지만 그 놈도 사모아가 자신을 때릴 수 없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을터였다.
은급의 훈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는 걸, 프레아 스스로가 모를리가 없으니까.
'앙큼한 자식.'
분명 벨리아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우는 척을 했던 것이겠지.
굳이 내가 그곳에 있지 않고 미레바 정도만 있었어도 속아 넘어가지 않았겠지만 벨리아는 워낙 순수한 아이니까, 그런 미남이 울고 있으면 속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자에 대한 면역도 없고 경험도 없는 년이니까.
'그래도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겠지.'
사모아는 기본적으로 멍청한 년이었지만 군주로서 최소한의 자질조차 없는 년은 아니었다. 플레아를 창남이라 불렀다거나, 노예로 삼겠다고 말했다는 건 아무리 그 년이라고 해도 부담감이 너무 심해서 거짓말일 확률이 높았지만, 사모아가 플레아에게 압박을 준 것은 분명했다.
그 이유가 나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서든, 아니면 플레아에게 악감정이 있었든 말이다.
'사모아 그 버터년이 내 장난감을 건드렸다 이 말이지?'
짜증이 치솟았다.
나도 아껴서 먹으려고 굳이 건들고 있지 않던 놈을 사모아 그 버터년이 건드렸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사모아 그년이 프레스티아님께 플레아 뒤에 숨지 말고 직접 찾아오라고 했답니다."
저건 플레아의 거짓말일까 아니면 사모아가 했던 말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었다. 내가 벨리아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사모아에게 시비를 걸러 가면 모든 것이 밝혀 질테고, 플레아가 거짓말을 한 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 책임은 내가 아니라 플레아가 지으면 되는 것이니.
'한 번 붙어봐?'
간당간당한 싸움이었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싸움은 우리가 훨씬 뛰어났지만 사모아 파벌은 수가 많았다.
중앙에서 가장 강한 가문이라는 말이 빈말은 아닌 듯 중앙의 귀족들은 사모아 파벌에 속해있지 않더라 하더라도 사모아의 말에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본래라면 사모아와 싸우는 것은 내가 이길 확률도 적고 이긴다 하더라도 큰 이득이 없는 행위였지만...
'지금은 다르지.'
훈장을 받은 이후 아카데미 내에서 우리 파벌의 위치가 상당히 올라갔다.
기존에 사모아 쪽에 붙을 년들이 우리쪽에 와서 붙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젠 마음 편하게 사모아에게 붙을 순 없겠지, 우리 파벌도 이름값이 생겼으니까.
이겼을 때 얻는 것도 늘어났다.
아카데미의 최강 파벌이라는 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고, 플레아에게 빚을 지어 둘 수 있는 것이니까.
그가 나와 사모아와의 싸움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이니 나중에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으리라.
'분명 나대지 말라고 했건만...'
훈장 수여식 이후 큰 사건이 벌써 두 번이나 터졌다.
지금까지는 관대하고 넓은 마음으로 그의 기행을 넘어가줬지만, 슬슬 목줄을 잡고 제어할 필요가 있겠지.
"그래, 우리보고 덤비라고 했단 말이지?"
오랜만의 싸움이라, 피가 들끓는 기분이었다.
***
아카데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헬링 파벌과 사모아 파벌의 안 좋아졌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머지않아 두 파벌간의 싸움이 있을 거란 이야기는 어디를 가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굳이 개입 안해도 되겠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헬링파벌에서 사모아 파벌에 대한 악담을 퍼뜨린 것 마냥 소문을 굴리려 했으나 프레스티아도 사모아 한테 악감정이 있었는지 대놓고 날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후속 조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요즘 아카데미가 많이 시끄럽더구나."
우리 교수님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을 거셨다.
"그렇죠. 가장 거대한 파벌 둘이서 싸우네 마네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래, 둘이서 싸우니까 좋든?"
교수님도 참, 누가 보면 제가 일부로 둘을 싸움 붙인 줄 알겠어요. 저는 피해자라고요.
"좋을리가 있나요. 헬링 파벌에는 나름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사모아 파벌이랑은 사이가 안 좋아서, 늘 걱정하면서 지내죠."
"나야 3학년들 교수니 1학년들 싸움에 뛰어들 생각은 없다만, 한 번 칼을 뽑았으면 잘 좀 썰어줬으면 좋겠다."
그리 말하시고 이불을 펴고 누우셨다.
'역시 교수님이셔, 금방 눈치채시네.'
지금까지 교양마법 수업을 하시면서 나의 진짜 모습에 대한 어느정도의 감을 잡아서 그러신 거겠지.
'하이네스도 눈치 챘을테고.'
프레스티아의 최측근으로서 내 소식을 전달 받지 못 했을리가 없다.
그런데 하이네스 역시 내 성격에 대해 어느정도 감을 잡고 있으니 두 세력을 싸움 붙이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못 알아차릴리가 없었다.
다행히 프레스티아도 사모아 파벌과의 전투를 피하지 않는 분위기라 다행이지 만약 내가 악의적으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기 시작했으면 하이네스와의 관계가 틀어질 뻔했다.
"플레아, 끝나고 잠깐 나 좀 볼까?"
그렇다고 지금 하이네스가 나한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마 프레스티아를 자극해서 괜한 전투를 불러 일으킨 만큼 결코 좋게 생각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하이네스와 관계를 개선할 시간은 아직 한 학기나 남아있었다.
다른 사람과 사이가 나빠지는 게 두렵다고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교양 마법이 모두 끝난 뒤, 시에린은 바쁜 일 때문에 가버리고 나와 하이네스 단 둘만이 강의실에 남아있었다.
묘한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긴장하지 마, 화내려고 부른 거 아니니까."
나를 안심시키려는 거짓말이라 생각했지만 하이네스의 얼굴엔 진심이 담긴 미소가 담겨 있었다.
"요즘 네가 보여주는 모습을 생각하면 네가 고작 사모아 따위한테 쫄아서 엉엉 울었을 것 같진 않거든? 그러니까 우리 벨리아한테 보여준 모습이 전부 거짓말이라는 건데, 그건 곳 네가 일부러 우리 파벌이랑 사모아 파벌을 싸움 붙였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아니에요. 사모아님은 진짜 무서우셨어요."
"퍽이나 무섭겠다."
진심인 것 같은데?
하이네스도 사모아 파벌과의 전투를 바라고 있던걸까?
'사모아 파벌에 사이 안 좋은 사람 하나 있었나보지 뭐.'
"근데, 사모아 파벌이랑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어요?"
"어, 이전에는 아무래도 덩치가 좀 밀렸었는데 프레스티아가 훈장을 받은 이후부터는 평범한 애들은 사모아 쪽에 못 붙을 테니까. 각 파벌의 주요 인물들 끼리 붙으면 우리가 우세해."
글쎄 원래 전투라는 게 그리 간단히 이길 수 있는 게 아닐텐데 말이지.
'되도록이면 오래오래 싸워주세요.'
그래야 밑작업을 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아무리 이길 자신이 있다고 해도 너무 기뻐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티 났냐?"
"네, 엄청 티났어요."
"원래 한 번 밟아주려고 했던 곳이거든, 사모아라는 이름 하나만 믿고 우리한테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년들이니까, 지금까지는 프레스티아가 말려서 가만히 있었는데, 덕분에 프레스티아도 화가난 것 같으니 잘됐지 뭐."
사모아 라는 이름이 워낙 대단하니까 그렇지.
프레스티아가 훈장을 얻기 이전이였다면 싸우기도 전에 져있다는 말이 무엇인지 톡톡히 알려 줄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프레스티아가 화가나?'
프레스티아 근처에서 오랜 시간 있어왔을 하이네스지만 아직 프레스티아의 진면목을 다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마 가식적으로 나를 걱정하는 척은 했겠지만 진정으로 화가 나진 않았을 텐데.
'프레스티아가 움직이는 건, 훈장도 있고, 명분도 있으니 이참에 밟아주려고 움직이는 거 뿐이라고.'
내가 사모아한테 공격 받았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도 명분이 생겼구나 하면서 기뻐했겠지 나를 위해서 화를 낼 만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도대체 언제 꼬시냐.'
아직 나한테 프레스티아는 너무나도 먼 존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