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62화 (62/312)

〈 62화 〉 사모아­4

* * *

세력간의 싸움을 붙이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사이가 나쁜 두 사람을 싸움 붙이는 것도 어려운 데 이것저것 따질 게 많은 세력을 싸움 붙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명분도 필요하고 싸움에서 이겼을 때의 큰 보상이 주어진다거나, 싸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큰 손해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정말 다행인 건 사모아 파벌은 대가리가 굉장히 다혈질이라서 전투의 이득이 적다고 하더라도 전면전을 벌일 의지가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공략해야 할 건 헬링 파벌이야."

어제 하루동안 충분히 고민을 했던 걸까? 시에린의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대가리인 프레스티아 헬링을 공략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크지. 사모아 처럼 멍청한 사람이 아니니까. 우리의 의도를 쉽게 간파할 게 분명해."

글쎄 그런 이유라면 그 누구도 공략하지 못하는 거 아니야? 프레스티아라면 주변에 부하한테 작업을 걸어도 금방 눈치 챌텐데.

"우리가 공략할 상대는 헬링의 최측근인 벨리아야."

벨리아,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프레스티아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다짐한 기사로서 마스터의 경지 정도는 가볍게 찍어 버리는 위인이었기에 늘 최종 수문장 정도로 내 앞에 모습을 들어냈다.

'스펙을 조금만 낮게 맞춰가도 벨리아 하나 한테 다 썰리는 일도 많았지.'

그만큼 대단한 여자다.

그런 여자가 남녀역전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강할지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어떻게 공략할 건데? 설마 그 사람을 힘으로 공략한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하진 않겠지?"

"우리가 라이넬도 아니고 힘을 왜 써, 우리 전문 분야는 여기랑 여기잖아?"

시에린이 자신의 머리와 입을 톡톡 치면서 웃었다.

"조사를 좀 해보니까 벨리아가 너랑 헬링의 커플링을 엄청 지지하고 있더라고?"

'벨리아 그년이?'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프레스티아의 최측근인만큼 그녀가 나에게 보이는 관심도 가장 근처에서 볼 수 있었을 테고, 프레스티아에 대한 나의 사랑 역시 프레스티아의 입으로 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했으니까.

그런데 벨리아는 프레스티아를 애지중지 아끼는 인물이었다. 어지간한 남자는 벨리아 선에서 잘라냈기에 프레스티아가 절벽위의 꽃이라는 말도 들었으니까.

'하긴 남녀역전 세계니까.'

영애와 여기사랑 군주와 호위기사 의 분위기는 천지 차이니까.

자신이 모시는 영애가 사랑에 빠진 것처럼 보이면 여기사 입장에서 충분히 걱정되겠지만 자기 주군이 사랑에 빠진 것 처럼 보이면 보통은 응원할 테니까.

"그래서? 벨리아가 나랑 헬링님의 커플링을 지지 하는게 지금 상황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건데?"

"벨리아한테 작업을 치자는 거지. 네가 겪은 일을 말해 주면 헬링 다음으로 화 낼 사람이 벨리아일 테니까."

글쎄? 프레스티아가 나를 위해 화내 주긴 할까? 아마 사모아를 칠 명분을 얻기 위해 걱정해 주는 척이나 하겠지.

"고작 그 정도로 헬링파벌이 사모아 파벌에게 싸움을 걸까? 벨리아가 아무리 헬링님의 최측근이라고 해도 그녀는 기사야, 헬링 파벌에 머리 쓰는 사람도 많을 텐데 벨리아 한 명의 말을 듣고 헬링 파벌이 움직일 것 같진 않은데?"

"벨리아는 그저 명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뿐이야. 벨리아의 말을 들은 헬링 파벌의 참모단이 이를 빌미로 사모아 파벌과의 전투를 머릿속에 상정에 두겠지."

"양념 치는 거구나?"

"그렇지, 사모아파벌이 먼저 싸움을 걸어왔을 때 헬링파벌이 피하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야."

"사모아 파벌이 어떻게 헬링 파벌을 공격하게 할건데?"

"그건 쉽지. 헬링 파벌이 퍼뜨린 것처럼 사모아를 욕하는 소문을 아카데미에 굴리면 돼."

그걸로 되나? 쉽게 계산이 되지 않았다.

'시에린이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걸 보니 다 생각이 있나보지.'

어차피 실패 한다고 해도 나한테 손해는 없다.

헬링파벌과 사모아 파벌의 전투를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겠지.

"다 좋은데 벨리아한테는 어떻게 작업을 칠건데? 내가 호에엥 하면서 벨리아한테 달려가서 사모아가 저 때렸어요! 하고 다 일러 바쳐?"

"푸하하하하! 그게 뭐야."

내 말투가 웃겼는지 시에린이 크게 웃어댔다.

"이따가 벨리아가 운동장을 지나갈 거거든? 그 때 내가 하란 대로만 움직이면 돼."

시에린이 알아서 잘 하겠지?

***

이전에 프레스티아가 운동하는 걸 구경했던 자리에 앉아 멍 때리며 하늘만 바라본지도 벌써 10분이 지났다.

'진짜 나오는 거 맞아? 이미 간거 아니야?'

시에린의 말로는 벨리아가 오늘 방과후를 듣고 지금 시간대에 나온다고 했는데 벨리아는 커녕 아무도 운동장을 지나가지 않았다.

어느덧 저물어 가는 노을을 보고 있자니 잠이 솔솔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축 처질 때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이걸 말을 거네.'

가만히 앉아있으면 벨리아가 먼저 말을 걸어 올거라는 시에린의 예측이 정확했다.

'지금 부터 연기를 잘해야 한단 말이지?'

상처가 있지만 밝히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시에린의 말에 따르면 벨리아는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임으로 내가 몇 번 튕겨도 계속 질문해 올거라고 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리를 떠나려는 듯 몸을 털고 일어났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게..."

사람을 빡치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을 끝까지 하다 마는 것이고...

"아니에요."

말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며 고개를 돌렸다.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오지랍도 넓어라. 아무리 자기 주군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고 해도 초면에 너무 적극적인 거 아니야?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연기에 충실했다.

말할 듯 말듯 입을 우물 거리면서도 시선으로는 네가 누군데? 라는 의지를 가득 담아 보냈다.

눈은 제대로 보이는 가면이었기에 벨리아도 내 마음을 알 수 있겠지.

"저는 프레스티아 헬링님의 부하입니다."

그러니까 마음 놓고 이야기해라 라는 식의 말이 더 붙을 줄 알았는데 저러고 끝났다.

그래서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다행이 참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요?"

아, 못참아 냈네.

벨리아도 방금 전 까지 우수에 차있던 사람이 이런 변화구를 던질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 아예 남도 아니니까 조금 더 편하게 말하셔도 된다고요."

여기서 남 맞는데요. 하면 답이 없겠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벨리아를 올려다 봤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다 발육이 잘 됐는지 나보다 다 키가 컸다.

"아카데미를 계속 다녀야 하는 의문이 생겨서요."

생각보다 더 큰 문제라고 느꼈는지 벨리아의 눈빛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그게..."

주변을 훑어 봤다.

아무도 없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들으면 큰 일 난다는 불안감을 벨리아에게 전달했어야 하니까.

"어제 조별 과제를 했는데..."

억지 울음을 조성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진짜로 울 수 는 없었지만 오히려 울음을 참으며 말하는 느낌이 들었기에 내가 원하던 감정을 더 잘 전달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말했다.

애초에 맞은 적이 없기에 맞았다는 구라는 칠 수 없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모든 부분에서 사기를 칠 수 있었다.

사모아가 나를 보고 '몸 팔아서 훈장을 받은 창남' 이라고 말 했다던지.

아카데미에서 졸업하고 내가 모두에게 잊혀질 때가 되면 나를 노예로 삼겠다고 말 했다던지.

그 잘난 훈장만 없었으면 이곳에서 내 손에 죽었을 거라던지.

내 머릿속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사모아가 했다고 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들이었다.

실제로 벨리아는 내말을 전부 믿었는지 분노에 가득차서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이 얼마나 진실성 있어 보였는지 아마 첫날의 나라면 바닥에 꿇어앉아 덜덜 떨고 있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헬링님께 저 같은 창남 뒤에 숨어서 일을 꾸미지 말고 직접 오라고 하셨어요."

이건 진실이다. 어감이 좀 세긴 하지만, 맥락은 맞잖아?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죠?"

벨리아는 천생기사다.

기사도엔 군주한테 충성하는 내용만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약자를 핍박하지 않아야 하며 어쩌구저쩌구가 담겨있는 내용이었다.

사모아가 했던 행동은 기사도에 전면적으로 위배되는 내용이었기에 그 대상이 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화를 냈었겠지.

'근데 하필 내가 당했네? 자기 주군이 관심을 보이는 남자인데.'

"플레아님은 같이 다니시는 친구분들이 계신걸로 압니다. 당분간은 어디를 가든 그분들과 함께 움직이십쇼."

당분간에 강하게 악센트를 넣는 걸 보니 벨리아는 사모아 파벌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뿜뿜한 듯 보였다.

'그래, 이 정도면 됐지.'

마음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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