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사모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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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플레의 목소리는 정말 좋은 편에 속한다.
자뻑 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귀엽고 사랑스럽고 남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내가 내 자랑을 이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플레아가 원래 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타인의 목소리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깨달았다 이 목소리는 단순히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사람을 빡치게 하려면 한 없이 빡치게 할 수 있을정도로 얄미운 목소리로도 변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단순히 말로만 도발한 사모아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아무리 대사가 사람을 빡치게 하는 데 뛰어난 효율을 발휘해도 목소리가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는 법이다.
약올리는 문장과 목소리가 합쳐져서 단순히 말 몇마디로 사모아를 화나게 만들 수 있게 된 거겠지.
'네가 화나면 어쩔 건데?'
때릴 거야? 훈장까지 받은 남자를?
때려주면 나야 땡큐지, 프레스티아는 매일 같이 훈련을 받아서 한 대 맞으면 죽을 가능성이 높지만 너는 전력으로 때려도 짜피 안 죽잖아.
얼굴 잔뜩 부운 채로 학교로 돌아가서 네가 나한테 무슨짓을 했는지 딱 3배만 부풀려서 소문 내줄까?
사모아도 나를 때리면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를 알았는지 손만 높게 들어 올리고 차마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 더 약올려볼까?'
어지간하면 적을 많이 만들지 않는 것이 좋지만 이미 사모아와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나빠져 있었다.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내가 먼저 숙이고 들어가야 할텐데 나도 사람인지라 별 이유도 없이 나를 괴롭힌 사모아에게 내가 먼저 숙이고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적으로 만날 것이 확실시 된 인물이라면 몸이 조금 아프더라도 가벼운 견제 정도는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때리고 싶어요? 때려봐요."
이걸 참아? 고작 평민 남자따위가 훈장 하나 믿고 네 앞에서 깝치고 있는 데 참을 수 있어?
사모아가 내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내 손보다 1.5배는 더 커 보이는 손에 멱살이 잡히는 정말 손쉽게 허공에 떠버렸다.
'이왕 때릴 거면 잘 보이는 쪽을 때려줬으면 좋겠는데.'
슬슬 여름이 다가와서 반팔로 이루어진 하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팔 같은데 맞으면 바로 티가 날 것이 분명했다.
사모아가 주먹을 쥐고 몇 번 부들부들 떨더니 나를 던지듯 툭 내려놨다.
"야, 내가 병신으로 보이냐?"
'응, 병신으로 보이는데? 너 병신 맞잖아.'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말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누가 듣고 있다면 내가 너무 불리해질 테니까.
"병신이라뇨?"
"나를 도발해서 몸에 상처 남기고 그걸 가지고 정치질을 하려는 속셈인 것 같은데, 내가 네 마음대로 움직여 줄줄 알아?"
알아차리셨어요? 오구오구 잘 했어요. 우리 사모아.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말한 게 아닌..."
"네가 그런 생각이 있든, 없든, 내가 너를 때리는 건 너무 손해가 커."
쯧, 화가 식고 머리가 돌기 시작했나 보네.
아쉽다. 여기서 한 대 맞았으면 사모아를 상대하기 한결 편했을 텐데.
"프레스티아 그 쌍년한테 전해, 시비를 걸고 싶으면 직접 오라고, 남자 뒤에 숨어서 부끄럽지도 않아?"
'흐음?'
충분히 착각할 만하지, 사모아의 입장에서 나는 겁 많고 여린 평범한 남자애의 불과할테니까.
분명 약하고 여릴 것이 분명한 내가 갑자기 자신을 도발한다? 내 의지가 아니라 배후에 누가 있으리라고 예측하는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었다.
안 그래도 프레스티아와는 꽤 친하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으니 사모아의 입장에선 그 배후가 프레스티아라고 확신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꺼져."
"네."
놀리던 어투, 비웃는 표정을 모두 정리하고 다소곳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대답해야 내 뒤에 프레스티아가 있다는 사모아의 오해가 한층 더 깊어질 테니까.
'지금 시점에서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기려나?'
사모아와 프레스티아가 제대로 붙는 건 꽤 미래의 일이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큰 두 세력이었지만 서로 견제만 할 뿐 제대로된 전면전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아카데미는 학생들의 배움의 장 아니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 우리 선배들도 파벌별로 대판 싸우는 일이 많았다. 거대한 파벌이 존재 하지 않았던 선배들도 자주 싸웠는데 역대 가장 큰 파벌로 평가 받고 있는 헬링 파벌과 사모아 파벌이 싸운 적이 없다는 건 상당히 신기한 일이었다.
'정정 당당하게 1대1 결투로 싸우면 프레스티아 쪽이 이길 확률이 훨씬 높겠지.'
사모아 파벌은 덩치는 큰데 1티어급 인재의 수가 많이 부족했다.
단체로 이루어지는 패싸움이면 모를까 1대1 결투에서는 프레스티아쪽이 무조건 이긴다고 볼 수있다.
'일단 사모아가 프레스티아를 이길 수 없다는 게 너무 크지.'
각 파벌을 대표하는 둘의 승부에서 패배한다면 아무리 세력이 더 크다고 해도 은연히 무시 당하기 마련이다.
난세에선 프레스티아가 익스퍼드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에 사모아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존재했지만 지금 세상에선 이미 프레스티아가 익스퍼드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사모아는 절대로 프레스티아를 이길 수 없었다.
'어떻게 잘 조절하면 크게 한 판 붙을 법도 한데.'
프레스티아와 사모아가 본격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면 나야 좋았다.
일단 관심이 두 세력에 집중되고 서로가 서로를 신경써야 할테니 조용히 내 세력을 가꾸기도 좋았고 적으로 돌려버린 사모아 파벌을 약화 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훈장이 진짜 큰 역할을 하고 있네.'
은급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로 그 누구도 나를 건들 수 없게 됐다.
서로에 대한 견제가 넘치고 기어오르면 밟아줘야 하는 정치판에서 그 누구도 나를 밟을 수 없다는 건 정말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프레스티아와 사모아 사이를 이간질하는 걸 들켜도 너무 대놓고 일을 진행하지 않았다면 나에게 보복조차 할 수 없다는 거니까.
누가 봐도 완벽한 증거가 없다면 나를 모함할 수 없다.
영웅이라는 칭호는 그런 것이었다.
'시에린이랑 한 번 말해볼까?'
순수하게 머리 굴리는 능력은 나보다 뛰어날 게 분명하니까.
나의 어두운 면을 가장 잘 아는 친구기도 하니 같이 이야기 하면 좋은 계획이 나올 것 같다.
바로 시계를 켜서 시에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지금 시간돼?
시에린:어 되는데? 무슨 일 있어?
문자를 보내고 10초도 안돼서 답장이 왔다. 이렇게 까지 답장을 빨리 보낸다는 건 꽤 여유로운 상태였다고 해석할 수 있겠지.
나: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예전에 만났던 마카롱 가게에서 만나자.
시에린:알았어 금방 준비하고 나갈게.
마카롱 가게로 이동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과제를 하기 위해 이미 제도의 중심까지 나와있었기에 걸어서 5분도 되지 않아 마카롱 가게에 도착했다.
시에린의 집도 가게랑 꽤 가까운 편이라서 내가 도착하고 5분만에 내 앞에 모습을 들어냈다.
"무슨 일로 불렀어?"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말이 마카롱 집이지 카페랑 큰 차이가 없었는데 오픈된 공간이 아니라 폐쇠된 룸이 존재해서 남들이 들으면 안되는 이야기를 할 때 꽤 괜찮은 곳이었다.
시에린을 데리고 룸으로 들어오자마자 지금까지 있던 일과 헬링 파벌과 사모아 파벌을 충돌 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시에린에게 전했다.
"우리 플레아 속이 아주 시꺼매?"
"눈치채고 있던 거 아니었어?"
"당연히 눈치채고 있었지."
시에린이 씩 하고 웃었다.
"그래도 나한테 얘기해줘서 정말 고마워,"
"야영 가서 느낀 게 많았거든,"
"잘 생각했어."
시에린이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이거 은근히 기분 좋은데?
"이쪽 일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헬링 파벌이랑 사모아 파벌간의 싸움을 유도하는 건 그렇게 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야."
"당연하지. 이미 사모아쪽은 싸울 마음이 가득한 것 같으니까."
"헬링파벌도 명분이 없어서 그렇지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진 않을걸? 싸움이 장기전으로 흐르면 모를까 한 두 번 싸우고 끝나면 자기들이 무조건 이길 걸 아니까."
"어떻게든 장기전으로 흐르게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어?"
"당장 대답은 못 줘.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으니까. 그래도 가능할 확률이 더 높을 것 같긴 해."
"어지간하면 이번 주 안에는 해답을 찾아야 해."
헬링 파벌을 자극시키려면 내가 사모아에게 압박한 걸 꼰지르는 식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늦으면 늦어질 수록 약발이 떨어질테니까.
"일단 각자 생각했다가 내일 다시 모여서 서로의 계획을 공유해보자. 머릿속을 간질이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이런 거 잡으려면 나 혼자서 생각해야 하거든."
일종의 징크스인가? 자기가 그렇다는 데 내가 더 할 말은 없었다.
"그러면 내일 다시보자."
"그래 조심히 들어가."
헬링 파벌과 사모아 파벌간의 싸움이라. 아주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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