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60화 (60/312)

〈 60화 〉 사모아­2

* * *

그녀의 성격을 보면 금방 유추할 수 있겠지만 이르엘 사모아는 굉장히 다혈질이다.

그래도 난세에서는 악영 영애 정도의 포지션을 유지 하고 있었는데 남녀역전 세계가 되면서 말 그대로 불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됐다.

'다혈질은 장점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단점이 더 많지.'

시간이 흐르고 아카데미를 졸업할 시점이 되면 사모아도 성장이라는 걸 해서 다혈질 적인 성격을 어느정도는 고쳐내지만 지금은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당장 자기가 영입하려 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밑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 만으로 화를 내고 있는 상황이니까.

'역시 아직 어리구나.'

그래도 나중엔 어엿히 한 세력을 이끌면서 성격적인 결함을 하나둘 씩 해결해 나가겠지만,

사모아가 짜증을 내고 화난 티를 내도 과제의 진행 속도는 더뎌지지 않았다. 사모아가 간간히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핬지만 레니아씨가 잘 조율해 가면서 과제를 진행하니 1시간만에 과제를 전부 끝낼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기지개를 쭈욱 하고 폈다.

"그래도 발표는 없어서 다행이네요."

"발표가 있기 힘들지 않을까요? 다 다른 반인데 어디서 발표를 해요."

그건 또 그래, 모든 사람이 전부 발표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플레아씨? 학기 초에 있던 일을 사과 할 겸, 제가 기숙사까지 데려다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과제를 위해 꺼내 놓은 짐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사모아가 말을 걸어왔다.

얼굴이 살짝 찡그려져 있는 것이 나에게 화풀이를 하겠다는 의지가 명확하게 보였지만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요즘 제도가 흉흉해서 혼자 다니기는 좀 무섭더라고요."

사모아가 씨익 웃었다.

사납고 불순한 의도가 다분히 들어나는 웃음이었지만 본판이 이쁜 얼굴이다보니 굉장히 예쁘기는 했다.

사모아가 프레스티아랑 비교해야 좀 딸리는 거지 일반적인 애들이랑 비교하면 얘도 압도적으로 예쁘고 능력있는 건 맞았다.

"저 플레아씨 잠깐 만요."

레니아씨가 나를 살짝 끌더니 내 귀에 입을 대고 속닥거렸다.

"사모아공녀가 무슨 짓을 할 지 몰라요. 아마 플레아씨한테 단단히 화가 나 있는 상태일 테니까요. 제도가 무서우시면 제가 데려다 드릴테니까 괜히 위험 부담을 늘리 시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아요."

내가 걱정돼서 이런 충고를 해주는 걸까? 하는 마음으로 레니아씨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나를 바라보는 레니아씨의 얼굴엔 진심 어린 걱정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자기 주군이랑 친한 사람에 대한 의무감인가?'

만약 사모아가 나에게 해꼬지 한다면 주변에 있었으면서도 왜 말리지 못 했냐고 플레아한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일을 사전에 차단하는 심정으로 나에게 충고를 해준거지.

"괜찮아요. 저도 다 생각이 있답니다."

그녀를 안심 시키기 위해 방긋하고 한 번 웃어보였다.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은 하관은 막아주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움찔 하는 게 대 놓고 보였다.

아무리 차가운 사람이라도 한 번에 녹일 수 있는 플레아의 미소였다.

"그러면 가볼까요?"

사모아의 근처로 가서 섰다.

사모아는 이 세계의 여자치고도 키가 큰 편이어서 까마득하게 올려다 봤는데 중간에 있는 거대한 살덩어리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프레스티아도 성인이 되면 이 정도까지 커지겠지?

"네 가보죠."

사모아의 미소가 짙어졌다. 자신의 의도를 저렇게 티 내고 있으니 앞으로 이 난세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아마 내가 자신의 의도를 숨길 가치도 없을 만큼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저렇게 당당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겠지.

카페에서 나가자마자 사모아는 작은 골목길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고 있는 지름길로 가는 것 뿐이니까요."

'어련 하시겠어.'

골목길로 들어와서 3분 정도 걸은 뒤에 사모아가 멈춰 섰다.

"멍청한 놈 아무런 의심 없이 나를 따라오다니, 프레스티아의 밑에서 나태하게 있다보니 뇌가 썪었나보지?"

사모아가 가식을 풀고 나를 내려다 봤다.

가식을 풀었다고 해도 프레스티아와는 그 격이 달랐다.

프레스티아가 본 모습을 들어내면 은연한 압박감과 멋짐이 있었지만 사모아의 본 모습은 성격 나쁜 쓰레기 정도에 불과했다.

'어떻게 할까?'

처음 부터 세게 나갈까?

'아냐, 고작 사모아따위에게 내 본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겁을 먹은 채로 덜덜 떨며 사모아에게 말했다. 아무리 육체가 이전보단 나아졌어도 사모아 정도 되는 여자애가 나를 노려보고 있으면 몸이 조금씩은 떨려 왔기 때문에 거짓된 공포를 연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모아가 나에게 성큼 성큼 다가왔다.

얼마나 보폭이 넓은 지 내가 뒷걸음 질 치기도 전에 나의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 봤는데 솔직히 가슴부분에 가려져서 그 사나운 눈빛을 볼 순 없었다.

"학기초에 있던 일을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학기초라면, 제가 사모아님의 에스코트를 거절한 걸 말씀 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걸 말하는 거야. 감히 평민 주제에 사모아님의 호의를 무시했으니 충분한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

벌은 무슨 그냥 화풀이 하는 거면서,

'언제봐도 열등감이 참 심한 년이란 말이지.'

난세에서도 프레스티아를 엄청 질투하면서 사사건건 프레스티아에게 간섭했던 년이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남녀역전 세계에서도 프레스티아에 대한 열등감은 어디 가지 않은 모양이다.

그 열등감 때문에 프레스티아를 이기지 못 하는 건데 말이야.

'아, 근본적인 능력이 딸려 못 이기는 건가?'

"벌 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말씀이긴 네 인생이 끝났다는 말씀이지."

벌이라, 감당 가능하겠어? 내가 친구 하나 없는 아싸도 아니고 몸에 상처가 나면 친구들이 걱정해 주고 결국 네가 나를 괴롭혔다는 걸 말할 텐데 훈장을 가진 사람을 괴롭혔다는 악평을 감수할 정도로 나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중요해?

사모아가 내 목으로 손을 뻗어오다가 멈칫했다.

이성이 좀 돌아온 걸까? 아무 생각 없이 괴롭혔다가는 후폭풍이 장난 아닐 거라는 생각이 이제야 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뇌에서 어떤 생각회로가 돌아갔는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사모아는 그대로 손을 거둬서 팔짱을 꼈다.

두개의 팔 사이에 끼인 흉부가 터질 듯이 그 위용을 들어냈다.

"도대체 무슨 벌을 주시려고요?"

계속 겁먹은 척 하고 있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비소가 새어나왔다.

다행인건 내가 사모아의 얼굴이 안 보이는 만큼 사모아도 내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내 얼굴에 무슨 표정이 박혀 있는지 확인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 함박웃음을 짓고 싶지만 잘 못하다가 웃음 소리가 새어나가면 갑분싸가 될 수도 있었다.

"일단 꿇어."

"제가 왜 꿇어야 해요?"

"닥치고 꿇으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험악하고 충분히 위엄이 있었지만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내 몸에 손을 대지 못하니 제발 꿇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귀엽기 까지 했다.

"싫은데요?"

그래 이 정도면 많이 참았지, 내 성격을 전부 들어낼 순 없지만 아주 순수하고 착한 남자애 입장에서 너의 모든 말을 쳐버려 주지.

"뭐?"

"제가 왜 사모아님께 무릎을 꿇어야 해요? 헬링님도 아니고."

최대한 순수한 말투를 유지하며 사모아에게 말했다.

"이게..."

굳이 얼굴을 확인 하지 않아도 사모아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 해보자.

뒤로 살짝 발을 빼고 위를 올려다 보니 사모아의 얼굴이 잔뜩 붉어져 있었다.

"이새끼가 죽고 싶나?"

"왜요? 저 죽이시게요? 죽이셔도 되겠어요? 이것저것 신경 쓸게 많으실텐데."

대놓고 비꼬는 어투였지만 상관 없었다. 어차피 나와 사모아의 관계는 이미 나쁜 상태였으니 더 나빠진다고 해서 그녀와의 관계가 의미있게 바뀌지는 않는다.

"훈장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머리가 좀 돌아가는 놈인가 싶었더만 뇌가 완전히 빠져버린 놈이었군 남자따위가 내 앞에서 그딴 망발을 지껄여 놓고 과연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처음에 만났을 때만해도 성격은 나빠도 머리는 좀 돌아가는 분인가 싶었는데 멍청하기 그지 없으신 분이셨군요. 그렇게 엄포를 늘여 놓으셔도 과연 저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느 거에요?"

사모의 말을 교모하게 비틀어 대꾸해 주자 사모아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듯 올라갔다.

'여기서 끝내면 아쉽지.'

나는 내가 아는 모든 문장 중에 상대의 화를 가장 잘 끌어 올릴 수 있는 문장을 선택해 입에 담았다.

"화났어요? 어쩌라구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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