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사모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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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을 막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절대로 사그라 들 것 같지 않던 내 인기가 천천히 식어갔다.
물론 그렇다고 이전처럼 애들이 다 무시하고 다니고 길가다가 물 맞는 정도까지 인기가 식었다는 건 아니고, 예전처럼 애들이 나에게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유니콘 사태 이후로 환상의 동물 취급 받는 것 같긴 해.'
친구나 동급생 보다는 다가갈 수 없는 우상 취급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어디를 가든 애들이 조용해 지고 나에게 직접 말을 걸기 보다는 자기들끼리 수근 거리며 소문을 키우는 일이 훨씬 많다.
'그래도 유니콘 덕분에 얼마 없던 비난까지 전부 사라졌으니 그건 고맙네.'
사모아 공녀쪽에서 내가 몸을 팔아서 훈장을 따냈다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기색이 보였지만 유니콘이 내 무릎에서 잤다는 걸 확인한 20여명의 학생들이 이를 동네 방네 소문내고 다니자 헛소문은 쏙 사라졌다.
이 세상에서 유니콘은 아주 완벽한 동정 판독기였으니까.
몸을 팔았는데 동정일 순 없겠지.
아카데미에서 점차 우상화 되고 있는 나 였지만 사실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오늘부터 1주일간 조별 과제가 있을 예정입니다."
일단 조별 과제를 싫어 한다는 것은 나나 다른 학생이나 똑같았다.
솔직히 프레스티아를 데려와도 조별 과제는 싫어 하지 않을까?
"여러분들이 어떤 조에 속하게 될지는 지금 시계로 보낼테니 확인하세요."
'제발 잘하는 애랑 붙어라.'
우리 교실 가장 앞자리에 앉아있는 미나나 유성이 걸리면 버스 타면서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시계를 확인해 보니 어색한 이름 3개와 익숙한 이름 2개가 교수님의 전송되어 있었다.
왜 이름이 어색하냐고? 설마 중간고사도 다 끝났는데 애들이름을 아직도 못 외운거냐고? 아니다. 나는 기본적인 평판을 위해 우리 반 애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으며 가벼운 신상 정보도 알고 있었다.
내가 이 이름들을 어색하게 받아들인 이유는 적혀 있는 이름들이 전부다 다른 반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님 이건 아니잖아요! 같은 반 애들이랑 해도 개판이 나는 게 조별과제인데 어떻게 다른 반 애들이랑 조별과제를 해요?'
같은 반이면 등교했을 때 일하라고 닥달 할 수 있는 데 다른반이면 서로 만날 시간을 내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다른 애들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는지 모두 입을 모아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교수님! 다른 반이랑 조별과제를 진행하는 건 굉장히 효율이 낮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제발 저희 반 애들끼리 하게 해주세요."
"사회에 나가면 언제든 효율 좋은 방법으로 일할 수가 없어요. 때로는 불리한 환경에서 일을 해봐야 경험이 쌓이는 겁니다. 난이도가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 서로 합만 잘 맞출 수 있다면 금방 과제를 마칠 수 있을 겁니다."
교수님이 좀 말랑하신 분이라면 더 찌를 각이 보였을 텐데, 늘 날카롭고 차가운 분이시라서 더 이상의 불만은 제기되지 않았다.
'쯧, 그래도 우리조는 조별 과제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은 없겠네.'
내가 받은 5명의 이름엔 이르엘 사모아라는 이름이 명확하게 적혀있었다.
입학식날 자기 파벌을 시켜 평민을 압박한 쓰레기고 그 이후로도 꾸준하게 괴롭혀온 속 좁은 인간이었지만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아와서 그럭저럭 능력도 뛰어난 데다가 사모아가 조별 과제를 주도하기 시작하면 감히 버스를 타려는 녀석이 있을 리 없으니 과제 자체는 편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다는 거지.'
사모아는 정말정말 속이 좁은 여자다. 내가 그녀의 에스코트를 거절 한 일을 아직도 마음 속에 잡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프레스티아와 친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괴롭힘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다가 훈장을 받은 이후로는 괴롭힘이 완전히 끊기긴 했지만 그만큼 칼을 갈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예 졸업할 때까지 나를 건드리지 못하다가 먼 훗날에 다시 만나면 모를까 고작 한 두 달 정도로 자신이 당한 것을 잊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설마 당당하게 나를 괴롭히진 않겠지.'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으니까. 아마 단 둘이 남게 되더라도 내 몸에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진 못 할 것이다.
아마 은근히 압박을 주면서 겁을 주거나 협박을 하는 식으로 괴롭힘이 진행 될 것 같은데.
입꼬리가 씨익 하고 올라갔다.
'지금의 나는 첫날의 나랑은 천지 차이라고 고작 그 정도에 쫄 정도로 약하지 않아.'
동물원에 갖혀 있는 사자를 보고 두려워 하는 사람은 없다.
철창만 사라져도 언제든 자신을 찢어 버릴 수있는 것이 사자였지만 그 철창 하나를 뚫지 못한 채 나를 보며 으르렁 거릴 수 밖에 없는 신세니까.
사모아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나에게 위협을 가할 지언정 진정으로 위험이 될 수 없다.
'기대되는데?'
조별 과제가 기대된다니, 난세는 난세인 모양이었다.
***
나는 당장 닥친 과제가 있으면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는 타입이다. 특히 조별과제 같은 경우는 변수가 많아서 아슬아슬하게 해결하려고 했다간 시간이 초과되기 일수이니 재빠르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난세의 남녀역전 모드를 보자마자 바로 플레이 하려 해서 이꼴이 났지.
아무튼 조별 과제 공지를 들은 당일 점심 시간에 시계로 전송된 이름들을 모아서 단체 채팅방을 하나 팠다.
언제 만나서 조별 과제를 하는 것이 좋을 지 얘기 해 보니 다들 수요일 방과후에는 시간이 난다고 해서 그 때 모여서 조별 과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게 지금이지.'
방과후에는 빈 강의실이 많아서 적당히 강의실 하나 잡아서 과제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사모아 같은 고위 영애의 눈에는 강의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카페에서 만나서 조별과제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평범한 애 2명은 사모아의 위세에 눌려서 무지성 알겠습니다를 쳐버렸고 나도 굳이 강의실에서 조별과제를 할 필요를 느끼진 못 했기 때문에 알겠습니다. 라는 굉장히 형식적인 대답을 보낸지 55시간 뒤. 지금 우리는 카페에 모여있다.
'그래도 튄 놈은 하나도 없어서 다행이네.'
한 명이 끝까지 채팅방에 대답을 남기지 않길래 안 오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이 5명 전부 카페에 모였다.
'사모아는... 여전하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흉부가 장난이 아니었다. 성장기라서 그런지 전에 봤을 때보다도 더 커져있는 느낌이었다.
아마 사모아가 프레스티아 보다 뛰어난 거의 유일한 부분이 아닐까?
'그마저도 성인이 되면 추월당하는 걸로 알고 있지만...'
"다들 모인 것 같으니까 슬슬 시작할까요?"
목소리는 여전히 느끼했다. 솔직히 얼굴이 예뻐서 망정이지 생긴 것 까지 느끼하게 생겼으면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조별과제는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당장 나랑 사모아도 굉장히 능력이있는 사람이었고 채팅방에 나타나지 않았던 다른 사람의 능력도 상당했기 때문에 2시간을 잡아 놨던 조별 과제가 30분만에 절반을 돌파했다.
'그나저나, 시비 걸 생각이 아예 없는 건가?'
최소한 노려보는 정도의 행동은 할 줄알았는데 사모아는 나에게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조별과제에 열중하고 있었다.
먼저 덤벼 들면 가볍게 흘려내려고 했는데 아쉽게 되었다.
"이쪽은 이렇게 처리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근데 저 여자, 능력이 대단한데?'
자연스럽게 조별 과제를 주도하고 있다. 자신이 맡은 일은 막힘 없이 처리해 내고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부분 까지 건드려 가면서 과제의 퀄리티를 높이고 있다.
아마 이렇게 까지 과제가 빨리 끝날 각이 보이게 된건 전적으로 저 여자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
'영입 하고 싶긴 한데...'
이름을 보아하니 꽤 고위 귀족 가문인 모양이었다. 마디안가 정도만 됐어도 바로 들이댔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참 아쉬웠다.
"레니아 씨는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요."
'아, 선수 뺏겼다.'
쩝, 그래 사모아는 나랑 다르게 집안이 빵빵하니까, 탐나는 인재가 있으면 바로 작업을 걸어도 되겠지.
"이 정도는 기본이에요. 저희 가문이 굉장히 엄격하고 타인의 시선에 굉장히 민감해서 어릴 때 부터 미리 교육을 받아왔는데 이 정도도 못하면 집안의 수치죠."
"혹시 달리 들어가 있는 곳이 없다면..."
"죄송합니다. 이미 헬링님의 휘하에 있어서 말이에요."
'아, 프레스티아 산하였구나.'
어쩐지 행정반 치고는 몸이 튼튼하더라.
사모아가 이를 까득 하고 깨무는 것이 보였다.
만약 여자가 헬링 파벌이 아니라 다른 약소 파벌의 밑에 있었다면 이미 폭발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사모아가 분노에 찬 눈으로 주변을 훑다가 나와 눈이 마주 쳤다.
씨익 하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아하니 나에게 화풀이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그래 한 번 덤벼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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