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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58화 (58/312)

〈 58화 〉 돈을 벌어보자­3

* * *

여느때와 다름 없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오빠랑 같이 주변 노인정에서 얻어온 팔찌를 팔러 나갔다.

양심에 조금 찔리긴 했지만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노점에 앉아 손님이 오길 기다렸지만 워낙 구석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아마 오빠의 호객행위가 없었더라면 팔찌를 하나도 팔지 못 했겠지.

그 때였다.

그가 다가온 것은

"어서옵쇼!"

그는 첫인상 부터 다른 사람과는 달랐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가면 밑으로 들어난 하관이나 몸의 선만 봐도 엄청난 미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으며 가슴에 박혀있는 훈장은 우리로 하여금 동경심을 가지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건을 좀 봐도 될까요?"

"저희 물건은 싸고 품질이 좋아요. 분명 만족하실 거에요."

오빠의 말이 맞았다. 할머니들은 팔찌를 굉장히 잘 만드셨으니까. 꽤 많이 구해와서 낮은 가격에도 팔 수 있었다.

"이 팔찌들, 두 분이서 직접 만든 거에요?"

"네!"

오빠가 정말 당당하게 거짓말을 쳤다.

매일 하는 거짓말이었지만 왠지 가슴이 답답해 졌다.

우리가 저 사람을 상대로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런 데 그 훈장, 진짜 훈장이에요?"

"네, 과분하게도요."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은급 훈장을 받다니... 이게 재능의 차이인가?

"여러분이랑 계약 하나를 진행하고 싶은데요."

"네? 계약이요?"

그가 계약이라는 말을 꺼내자 나는 뛸 뜻이 기뻤다.

아마 그의 잘난 얼굴을 꾸준하게 볼 수 있어서 내 가슴이 멋대로 좋아 한 거겠지.

"팔찌가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그가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아주 무겁지는 않아 보이는 것이 은화로 50개 정도 들어있는 것으로 보였다.

팔찌를 사는 것 치고는 많은 돈이었지만 긴 호흡으로 다량의 팔찌를 구매한다고 생각하면 마냥 많다고 볼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확인해 보세요."

오빠가 주머니 안쪽을 보자마자 덜컥하고 굳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도 주머니 안쪽을 보니 나도 모르게 내 몸이 굳었다.

'금화?'

주머니에는 금화 수십 개가 가득차있었다.

팔찌를 사기 위해 쓰는 금액이라기엔 과하게 큰 돈이었다.

"이... 이걸 왜..."

"여러분과 계약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노예 계약이라도 하시려는 건가요?"

그래 노예 계약이라면 말이 됐다.

한번 거금을 들여서 앞으로 계속 우리를 부려먹으려는거지.

"노예 계약이라뇨. 저는 여러분께 투자하고 싶은거에요."

"투자요?"

"그 돈과 꼬마 영웅이 지지하고 있다는 영향력을 드릴게요. 능력이 되는 선에서 마음껏 그 돈을 굴려보세요."

꼬마 영웅?

들어본 적이 있다. 최근 나타났던 흑마법사들을 상대로 영웅적인 활약을 한 꼬마라고 했는데, 그게 이사람이구나.

아카데미의 제복을 입고 있어서 고위 귀족의 자식인가 싶었는데 영웅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한 번더 달라 보였다.

"너무 저희한테만 유리한 계약 아닌가요? 영웅님은 뭘 얻으시는데요?"

"여러분이 제공해 주실 건 아주 간단해요."

순간 그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친절하고 부드러웠던 그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압도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한 명의 군주만이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저한테 충성을 바치시면 됩니다. 제 밑에서 상단을 운영하고 제 세력을 굴릴 돈을 벌어주시면 돼요. 저도 여러분을 최대한 지원해 드릴게요."

도대체 우리가 뭘 할 줄 안다고 이렇게 큰 돈을 쥐여 줘서까지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걸까?

우리는 흔한 몰락 귀족일 뿐인데, 도대체 왜?

"어떠세요? 평생 만지기 힘들만한 돈을 지원해 드리는 건데, 한 번 해볼만 하지 않아요?"

그의 눈을 바라 보고 있으니 그에게 홀린듯 마음이 그의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충성을 바치는 게 고민이 되는 거라면..."

"아니에요!! 할게요!!"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렇게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과 더불어 이 남자와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고, 아직 타인의 시선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바로 오빠의 뒤에 숨었다.

"그... 이미 영웅이시고, 훈장도 있으시니까, 충분히 충성을 바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저희가 영웅님의 기대에 부합할 수 있을지..."

"저는 여러분들을 믿어요."

그의 미소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아마 그 어떤 예술품을 가져와도 그의 미소만 못하겠지.

"그러면 하시는 걸로 알게요?"

"일단 금화는 다시 가져가 주실 수 있나요? 이런 큰 돈을 그냥 들고 있다간 큰일 날 것 같아서 어떻게 돈을 굴릴지 결정한 다음에 다시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거지로 보이는 꼬마들이 큰 돈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이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면 일주일 후에 다시 올게요."

"네! 영웅님, 그 때 다시 봬요."

일주일 동안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

노점을 접는 건 당연한 것이었고 80골드나 되는 돈을 어떻게 굴릴지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 했다.

오빠는 얼굴마담이니까 이런 세부적인 계획은 모두 내가 세웠다.

'엄청 유명하신 분이시구나.'

영웅님에 대한 정보도 조사했다.

워낙 구석에서 장사해서 못들었을 뿐이지 시장에 있는 사람 중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오셨군요."

"일단 저희 집으로 안내해도 될까요? 이렇게 개방된 곳에서 얘기 할만한 사안은 아니어서요."

내가 설명하려고 했는데 몸이 굳어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오빠가 말해 줬고 삐걱 거리며 그를 안내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녔지만 우리집은 꽤 커다란 저택이었다.

지금까진 처리도 못 했는데 아이데스님 덕분에 처리할 수 있었다.

먼지가 쌓은 입구를 지나 엣 선조가 공부를 하기 위해 사용했던 공부방으로 이동했다.

"이... 일단 저희 소개를 하겠습니다!"

이제 부터는 내가 말해야 한다.

오빠한테는 이미 계획을 말했고 오빠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지만 무조건 내가 말해야 했다.

아이데스님이 내가 한 일을 오빠가 한 일이라고 착각하면, 정말 엄청난 질투가 났을 것 같으니까.

"이미 알고 찾아오신 건지도 모르지만 저희는 잭스펠이라는 몰락 귀족의 단 둘만 남은 핏줄입니다. 오빠의 이름은 에이스 잭스펠이고 제 이름은 안나 잭스펠입니다. 편하게 불러 주셔도 상관없습니다."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지금 부터 사업 계획을 설명하겠습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칠판에 글자를 적어갔다.

[아이데스 상단]

"왜 아이데스 상단이야? 잭스펠 상단이어도 되잖아."

"투자자가 아이데스 님이시니까요."

이건 당연한 거다. 우리는 아이데스님께 충성하는 입장이니까. 절대로 우리 이름을 내 걸어선 안된다.

실리적으로도 이미 망한 가문인 잭스펠을 쓰는 것보다 한참 뜨고 있는 아이데스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좋았다.

"어떻게 활동할 예정이냐면..."

지난 일주일간 수도 없이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말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잘했나? 너무 떤 거아닌가? 내 계획이 마음에 드셨을까?

"이상입니다!"

"좋네 괜찮은 거 같아."

"그리고 이건 자금 사용 계획서입니다."

열심히 적는 다고 적어 놓은 건데 아마 실무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금액이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눈치 못 채시겠지?'

마지막에 적어 놨던 옷 구매 비용이 마음에 걸렸다.

머리는 분명 필요하다고 주장해서 적어 놨는 데 괜한 걸 구매한다고 혼나는 건 아닐까?

대충보고 넘기실 줄 알았는 데 내 생각보다 훨씬 꼼꼼하게 읽고 계셨다.

"저택을 팔 생각이구나?"

"네, 지금까지는 손해 볼까봐 못 팔고 있었지만 아이데스님에 소속되어 있는 지금은 어지간하면 손해 볼일이 없겠죠. 저희 오빠는 유능하신 분이시니까요."

"너희 지분을 좀 늘려야 겠는데?"

"아니에요. 아이데스님이 없었다면 처분하지도 못할 재산이었습니다. 저희는 지분이 필요없습니다. 그냥 아이데스님의 밑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시는 것만으로도 과분해요."

그가 나에게 충성을 요구했을 때 나는 이미 그에게 홀려 버렸다.

그가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얼마나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도 몰랐지만 나는 이미 그에게 평생 충성을 바치기로 마음 먹었다.

시종주제에 주인이 하는 사업의 지분을 요구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

"일꾼 고용 측면에선 일단 정규직을 뽑을 생각이 없는 거지?"

"네, 일단 용병을 고용해서 몇 번 상행을 진행해봐서 경험을 쌓은 후에 직원을 고용해서 실력을 키우는 식으로 갈 것 같아요."

"내가 아는 용병단이 있으니까 나중에 같이 가보자."

"네."

"괜찮은 것 같네."

아이데스님이 오빠에게 노트를 다시 건냈다.

못 보셨구나 안심하던 찰나 아이데스님이 노트를 다시 가져가셨다.

"얘는 왜 글씨가 흐릿해?"

아이데스님이 가리키고 있던 건 옷: 20실버라는 글씨였다.

"그... 그게요."

역시 혼나는 걸까?

"아무래도 상행을 가는 거다 보니 상단주 대리인 저희의 복장이 나름 중요해서... 예산을 그렇게 잡아 놨어요."

그의 부드러운 손길이 내 머리를 쓸어갔다.

지금까지 느껴본적 없던 만존감과 쾌감에 나도 모르게 다리가 풀릴 뻔했다.

"이런걸로 눈치 안 봐도 돼. 너희가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정한 예산이잖아? 내 돈이라고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그냥 마음대로 굴려도 상관없어."

"아이데스님..."

"그러면 당장 전달사항은 이게 끝이야?"

"네 추후에 말씀 드릴게 있으면 아카데미로 연락드릴게요."

"좋아, 그러면 옷 사러 가자."

"네? 지금 당장이요?"

아이데스님의 행동력은 정말로 빨랐다.

곧바로 우리를 데리고 옷 집으로 이동했고 나와 오빠에게 옷을 하나씩 사주셨다.

"둘 다 잘 어울리는데?"

내가 생각해도 옷은 참 잘 산 것 같다.

아이데스님이 같이 상행을 다니시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상대에게 꿇리지 않게 세 보이는 옷을 골랐다.

"그러면 같이 밥 먹으러 갈까? 내가 사줄게."

이번에도 옷을 사러갔던 처럼 무력하게 끌려갔다.

그를 따라 간 곳은 국밥집이었는데 오랜만에 든든하게 먹을 수 있어서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마구 퍼먹었떤 것 같다.

"그렇게 배고팠어?"

"네! 지난 한 달 정도는 제대로 뭘 먹은 적이 없거든요."

이 오빠는 쓸데 없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퍽!

"꾸엑!"

옆구리를 가볍게 쳐줬다.

그렇게 세게 때린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아픈지 옆구리를 부여잡는 오빠가 한심해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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