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야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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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히히히히힝
내 얼굴을 확인한 유니콘은 편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기대왔다.
적당히 앉을 만한 곳을 찾아서 앉으니 유니콘이 대 무릎에 얼굴을 댄 채 천천히 잠에 들기 시작했다.
유니콘이 확실하게 잠이 든 것 같자 고개를 들었는데 교수님과 하이네스, 그리고 남아있는 몇몇 학생들이 굉장히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90퍼 센트 정도는 걱정에 찬 표정이었지만 나머지 10퍼센트에 어이없음, 안도감, 등등이 섞여서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입장에선 꽤 볼만했다.
"야, 괜찮냐?"
"조금 무겁긴 한데, 괜찮아요."
교수님들은 아직 얼어계시고 그나마 나와 친한 하이네스가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으로 유니콘한테 접근 한 거야?"
유니콘이 깰까봐 걱정이 들었는지 아주 작은 소리로 소근소근 말을 걸었다.
"제가 생각하는 유니콘이 맞다면, 선배랑 교수님들 모두 죽을 위기에 처해 있던 거니까요. 유니콘이 동정의 미남의 무릎에 머리를 배고 자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한번 도박수를 던져본 거죠. 솔직히 제가 그렇게 미남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제 눈에는 수가 그것 밖에 안 보였으니까요."
나는 잘생긴 게 맞다 당장 교수님도 진짜 경의롭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고 계시니까.
'요놈 뿔 못 뜯어 가나.'
무릎 위에 바로 유니콘의 머리가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놈의 튼실한 뿔이 참으로 탐났다.
'유니콘의 뿔이면 후반에 가서도 꽤 귀중한 물건인데.'
사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뜯었다가는 괜히 목숨만 잃을 테니 일단 생각만으로 남겨두도록 하자.
잠시 동안 유니콘의 뿔에 한 눈을 판 사이 친구들은 이미 내쪽까지 올라와서 나를 사나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얘들아? 왜 그렇게 보고 있어?"
"일단, 유니콘 푹 자고 간 다음에 이야기 하자."
시에린이 이렇게 낮은 어투로 무섭게 이야기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허리를 숙이고 눈을 바라보면서 이야기 하니까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방금 막 잠들었으니까 아마 금세 일어나진 않을 텐데 그 긴시간동안 가시방석에 앉게 돼버렸다.
'무릎이 아픈 게 문제가 아닌데?'
거대한 말의 머리가 무릎 위에 있으니 이것또한 상당히 불편했지만 친구들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 만큼 불편하진 않았다.
"얘들아... 좀 앉아 있어. 다리 아프겠다."
교수님들은 이미 다른 애들을 통솔하러 내려가셨고 당장은 우리 일행만이 이곳에 남아있었다.
"얘들아? 무슨 대답이라도 해줄래?"
푸르르르
나는 냉막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 보고 있는데 유니콘은 기쁜지 짧게 말소리를 냈다.
'얘네가 대체 왜 화난 거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내가 유니콘에게 다가간 행위가 위험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이었고 아무 생각없이 유니콘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라 나름 생각을 하고 접근한 건데도 불구하고 애들이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색한 정적 속에서 시간은 흘러갔다.
그 동안 교수님도 다시 올라오시고, 먼저 내려간 애들도 몇번 왔다 갔다하고 나 춥지 말라고 담요 같은 것도 덮어주고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석양이 지네.'
어느새 하늘이 붉은 색이 될 지경까지 왔는데 유니콘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작 자연마법은 안 일어났네.'
하긴 유니콘도 생각이 있는 아이인데 모처럼의 휴식을 방해 받고 싶지 않다면 자연 마법이 일어나는 것 정도는 미리 막아뒀겠지.
꼬르르륵
별로 한 것 도 없는데 배가 고파왔다.
내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친구들과 하이네스가 이런저런 상의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저 악마 같은 것들!!'
나랑 꽤 거리를 두고 미리 사온 고기와 불판을 꺼내더니 나무에 불을 집혀서 고기를 굽는 게 보였다.
'어떻게 식고문을 할 수가 있지?'
친구들이 나를 두고 고기를 맛있게 먹는 다는 생각에 입에 침이 고였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가 내 눈앞에 있는 듯 아른 거렸다.
"안 먹을 거야?"
'어? 진짜 앞에 있는 거였네.'
어느새 다가온 라이넬이 내 앞에 고기를 들이밀고 있었다.
"가까이서 구우면 냄새때문에 유니콘 깰까봐."
푹 자고 있는 걸 보면 흔들어도 안 일어날 것 같은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집게에 앙하고 물려있는 고기 끝을 입으로 물어서 호로록 마셨다.
'배고파서 그런지 더 맛있네.'
간도 잘 된 고기를 우물우물 하고 있으니 이번엔 미네타가 고기를 가져다 줬다.
이역시 우물우물 하고 있으니 이번엔 시에린이 쌈까지 싸서 줬다.
'역시 시에린이 눈치가 빠르다니까.'
그렇게 배부르게 저녁을 처리하니 하늘이 거뭇거뭇하게 변해갔다.
'그래도 모기향이 있어서 다행이네.'
안 피워놨으면 온몸이 모기에 물렸을 거야.
유니콘이 무릎을 배고 누워있는 상태라서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애들도 나 기다려 준다고 앞에서 모닥불 피워 놓고 아무런 얘기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오늘 하루 종일 받은 시선이라 그런지 슬슬 익숙해 져서 괜찮았다.
푸흐르르르
그렇게 달이 하늘 가운데에 떴을 무렵 유니콘의 머리가 움직이더니 천천히 유니콘의 눈이 떠졌다.
"잘 잤어?"
푸르르르르르!!
내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일어난 유니콘은 나를 한 번 바라보고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살짝 비비더니 아무런 미련 없이 뒤돌아서 날아가 버렸다.
"끄으으으으!! 드디어 끝났다!!"
해방감에 기쁨을 느끼던 것도 잠시, 아까보다 더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을 마주해야 했다.
"ㅇ... 얘들아? 왜 그렇게 봐?"
"솔직히 할 말 진짜 많은데, 밤도 늦었고 너도 피곤할 것 같으니까 선택권을 줄게, 지금 잤다가 내일 아침에 들을래 아니면 지금 들을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그냥 지금 듣는 것이 낫겠지.
"지금 들을게."
"우리도 알아, 플레아 너 대단한 거, 분명 유니콘 한테 다가간 것도 머릿속에서 충분히 가능성을 확인한 다음에 움직인 거겠지."
아니, 알면서 왜...
"다 좋은데 왜, 우리한테 말도 안하고 움직이냐고."
시에린의 눈에 불이 붙었다.
"급박한 상황인 건 맞았어, 어쩌면 살짝만 늦었어도 하이네스조교님이랑 교수님들이 다치실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인 것 맞았는데 왜 가면서 언질 정도는 줄 수 있잖아. 왜 아무 말도 없이 움직이는데!"
"미... 미안..."
"급하게 움직이느라 말 못 했다는 핑계는 대지마, 내가 아는 플레아는 계산 없이 몸 부터 움직이는 애가 아니거든."
시에린의 무호흡 딜링에 어깨가 점점 좁아졌다.
"저번의 흑마법사 사건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너는 너무 너 혼자서 일을 진행하려는 거 같아. 물론 둘 다 너만 할 수 있는 일이긴 했어. 굳이 우리랑 상의할 필요도 없지, 네 계산 속에서는 너만 움직여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말야, 나는 무서워 우리가 같이 힘을 써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닥쳐와도 괜히 너 혼자 생각하고 너 혼자 움직이려다가 진짜 크게 다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시에린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앞으론 우리랑 상의를 하고 움직여 줬으면 좋겠어. 친구잖아."
"알았어. 앞으로는 너희랑 꼭 얘기 하고 움직일게."
'역시 현실은 현실이구나.'
난세를 플레이할 땐 이런 게 없었다.
내 마음대로 움직여도 수하들은 알아서 따라왔고 AI 자체가 수준 높게 구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였다.
상대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생각 같은 건 일절 밝히지 않고 내 마음대로만 움직인 걸 생각하면 확실히 애들이 서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모든 계획을 전부 밝혀 줄 순 없어.'
하지만 단기적인 목표나 계획은 말해줘도 문제 없겠지.
"라이넬이랑 미네타도 나 걱정해 준거야?"
"당연하지!! 갑자기 유니콘을 향해 걸어갈 때 얼마나 놀랐는데!"
"맞아! 앞으론 다신 그러지 마."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걱정해 줘서."
이야 역시 외모가 좋긴 좋아. 한 번 미소지으면서 사과하니까 애들 표정이 확풀어지네.
"선배도 제가 걱정돼서 여기에 남으신 거에요?"
"그것도 있고, 감사 인사도 해야 해서."
하이네스가 가까이 다가와서 나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야영 온 사람들 다 죽을 뻔 했어."
"그렇게 고마우면 나중에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그래, 생명의 은인이니까. 너무 심한 부탁이라도 하나쯤은 들어줄게."
눈빛 진지한 거 보소.
저건 진짜로 들어주겠다는 눈빛이었다.
'얘도 슬슬 내 검은 속내를 알텐데...'
뭐, 나중에 잘 써먹으면 되겠지.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갔어요?"
"학생들은 다 귀가 했고, 교수님들은 밑에서 대기하고 계신데, 괜히 유니콘 신경을 건드릴 위험이 있으니까."
"그러면 저희도 내려가요. 교수님들도 퇴근하셔야 할테니까요."
"교수님들 퇴근 못하실걸? 아마 지금 학장님이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고 계실텐데, 이것저것 서류 작성하다보면 아침이 와있겠지."
"유감이네요."
물건들을 정리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조금 어색해진 우리 사이였지만, 그래도 내가 적극적으로 말을 거니까 분위기가 풀리긴 하더라.
'이 정도면 썩 나쁘지 않은 성과였어.'
하이네스와 시에린을 살렸고, 부하들과 관계개선도 했다. 심지어 야영이 일찍 끝나서 실질적으로 소요한 시간은 하루 밖에 되지 않았기에 더더욱 이득이라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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