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54화 (54/312)

〈 54화 〉 야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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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서 자연 마법이란, 시드빨을 가장 많이 타는 개념이다.

스토리 진행상 필요한 자연 마법은 무슨 짓을 하든 반드시 일어나지만 그 외의 모든 자연 마법은 대부분 시드에 의해서 정해져 무작위로 일어난다.

'가끔 자연 마법 덕분에 말도 안되는 역전이 일어나기도 하지.'

적진 한 복판에 자연 마법으로 생선된 벼락이 떨어지기도 하고, 골렘 같은 몬스터가 상대에서 전장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그래도 아예 대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대부분의 자연 마법은 전조가 들어 나기 때문이다.

'보통은 마나가 밀집되거나 흐름이 뒤틀린 경우가 대부분이지.'

이세계에서 마나는 공기처럼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흐르고 있는데 이 흐름을 막거나 압력을 가하면 마나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면서 자연 마법이 생길 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고위 마법사는 자연의 마나가 뒤틀려 있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음으로, 자연 마법이 발생할 확률 자체를 알아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래봤자 확률이지만.'

자연 마법은 살면서 한 번 보기도 힘들 다는 게 게임 내 공식 설명이었지만, 플레이어의 경우 고위마법사와 마법병단을 이끌고 다니며, 마법으로 대규모 회전을 벌이는 일도 잦았기에 한 판을 플레이하면 자연 마법이 5번도 넘게 튀어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반대로 말하면 자연 상태에선 자연 마법이 극히 적은 확률로 발현 된다는 건데, 아마 아카데미에서 야영을 온 이 산에서 자연 마법이 발생하는 건 시드와 관계없이 항상 일어나는 일 같으니 이런 세세한 것에서 쓸 데 없이 개연성을 챙기는 난세의 특성상, 분명 마나를 밀집 하게 된 근본 적인 원인이 있을 거다.

"다들 짐 챙겨라.'

펴 놓은 텐트를 걷고, 챙겨 온 물건들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마나가 모여든 거래요?"

"교수님들이 말씀하시길 근처에 환수가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더라. 위험한 환수일지도 모르니까 자연 마법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일단 피신하는 게 좋지."

"환수라..."

환수는 일반적인 생명체와는 궤를 달리하는 생명체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안 되나 애초에 환수는 생명체가 아니니까.

'사람의 믿음이 만들어낸 일종의 허상이지.'

이 세계엔 믿음에 힘이 존재해서 엄청난 수의 믿음이 모여 들면 마나로 이루어진 무언가를 탄생시키도 한다는 데, 환수가 그 예다.

애초에 믿음으로 태어난 존재니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없다고 믿으면 천천히 힘을 잃고 약해지긴 하지만 한 번 탄생한 환수는 계속해서 세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없다고 믿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내 예상 안에 있어서 다행이네.'

환수에 대한 대비책 정도는 충분히 준비해 뒀다.

존재만으로 작은 산에 마나를 집약 시킬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면 환수 중에서도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난세에서 환수라는 개념 안에 포함되는 존재들은 상당히 많은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환수들은 물론이고 판타지에선 생명체로 등장하는 드래곤 부터, 정령, 유령, 심지어 천사나 악마까지 환수라는 개념 안에 포함된다.

NPC들은 부정하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 보면 과거에 연결이 끊겼다던 신 조차 환수에 범위 안에 포함되니까.

'드래곤이나 천사같이 강력한 존재라면 진작에 적기사단이 출동했을 테고, 정령은 정령밥을 준비해 놨으니까 괜찮아. 유령 정도면 지금 전력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테고,'

아마 페가수스 같은 네임드 환수인 모양인데 난세를 하염없이 플레이 하면서 값싼 코스트로 환수를 몰아내는 방법은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하산한다!"

교수의 지도에 따라서 산을 타고 내려갔다.

올라올 때는 조별로 나누어져서 자유롭게 올라왔지만, 내려갈 때는 교수 둘이 가장 앞과 뒤에 각각 배치되고 중간 중간 조교들을 배치하면서 최대한 안전에 신경을 쓴 모습을 보여줬다.

­히히이이이이잉!!!

그렇게 절반 정도 내려 왔을 때 산의 정상 부근에서 커다란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납기 그지 없는 소리에 모두가 우뚝 하고 멈춰섰다.

"... 유니콘인가..."

근처에서 걸어가던 하이네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대인들이 유니콘이라는 말을 들으면 단순히 뿔이 달린 말,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설에 따르면 아주 흉포하고 힘이 센 말이다.

내가 난세를 플레이 해보면서 느껴본 유니콘의 무력은 대략 93~95 정도, 어지간한 소드마스터가 작은 벽 하나를 넘어야 겨우 상대가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환수였다.

그리고 밸런스 패치의 일환인지, 전설에선 순결한 젊은 처녀 한 명이면 어느 정도 온순해지지만 난세에선 훨씬 더 어려운 조건을 요구한다.

매력이 95가 넘는 처녀.

매력이 95가 넘는 캐릭터도 많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여자여야 하며, 처녀여야한다.

조건을 만족하는 처녀를 구하는 것 보다 무력이 95가 넘는 캐릭터를 준비하는 게 더 쉽기 때문에 유니콘에게서 도망칠 땐 강한 수하가 내쫓게 하거나, 몇 명을 제물로 바치고 다른 사람은 도망가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더 쉽게 제압할 수 있지.'

다그닥 하는 말 발굽 소리가 몇 번 들리지도 않았는데, 유니콘은 어느새 우리의 앞에 모습을 들어냈다.

체고만 2미터는 넘어갈 듯한 우람한 체격, 몸을 덮은 새하얀 털과 대비되는 하늘색의 갈기, 그리고 이마에 박혀 있는 창과 같이 긴 뿔까지.

전설 속의 동물을 직접보게 되다니, 왠지 모를 흥분감에 가슴이 쿵쿵 뛰었지만 상황이 썩 여유롭지는 못했다.

유니콘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후미에 있던 교수님이 검을 뽑아 들고 유니콘과 대치하고 있었으니까.

'안타깝게도 교수님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8서클을 넘어선 교수님도 종종 있는 마법반과는 달리 기사반의 교수님은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신 분이 한 분도 없다.

뛰어난 마법사는 연구를 위해 아카데미에 고용될 수 있지만 뛰어난 기사는 다른 군주가 먼저 채가니까.

"너흰 빨리 도망가."

하이네스가 굳은 표정과 낮은 어투로 우리에게 읍조린 후 교수님 쪽으로 달려갔다.

다른 조교 둘은 우물쭈물하면서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는데, 하이네스는 바로 움직인 걸 보면, 역시 고위 가문은 고위 가문인가 싶었다.

'중앙파가 아니라 나름 지방파라 그런가? 희생할 땐 희생할 줄 아네.'

당장 미네타도 옆에서 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걸 보면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해도 시에린까지 죽은 걸로 추정되는 걸 보면, 오래 막지는 못 하겠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위쪽으로 올라갔다.

위쪽에 있던 애들이 내려 오면서 내 쪽을 스쳐 지나갔다.

대치하고 있는 교수님들과 하이네스까지 지나쳐오자 유니콘의 강렬한 시선이 오직 나를 향했다.

'플레아 많이 컸네, 처음엔 사모아 따위 눈빛도 못 버티던 놈이 이젠 환수 눈빛도 견디고.'

"야! 플레아 뭐해!? 도망가라니까?"

하이네스가 뒤쪽에서 내 어깨를 잡아왔다.

톡쳐서 떨어... 뜨리진 못 하고 하이네스의 얼굴을 마주 본 채 지긋이 바라봤다.

나름 아우라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하이네스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다시 유니콘에서 시선을 맞춘 뒤 천천히 걸어가자 유니콘의 사나운 표정이 점점 순해졌다.

그래도 완전히 긴장을 풀지는 않는 걸 보아 가면이 내 매력을 감소 시키는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플레아 너 동정이었구나!'

하긴 아직 16살 먹은 어린애니까, 마을 지주의 아들로 애지중지 키워졌을 텐데 동정을 땠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바로 가면을 벗어도 되겠지만 쇼를 조금 더 하고 벗어도 괜찮겠지.

당연한 소리지만 난세에도 유니콘이 어여쁜 처녀를 좋아한다는 전설이 있다. 다만 이 어여쁜의 기준이 너무나 높아서, 처녀에 대한 환상도 같이 올라가 있었는데, 아마 내가 한 번에 유니콘을 얌전히 만들면 내 미모에 대한 소문이 온 제국을 강타할 수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 힘 조절을 할 필요가 있었다.

유니콘의 바로 앞에 선 채 손을 뻗어 유니콘의 코를 살짝 만졌다.

분명 생명체가 아닐텐데 내 손에 닿는 따뜻한 감촉은 생명체와 다름 없었다.

유니콘은 긴가 민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가면을 벗기려는 듯 얼굴을 향해 혀를 뻗어왔다.

가볍게 뒤로 고개를 젖혀 피하자 유니콘이 나에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우리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해."

환수는 똑똑하니까 내 말 정도는 충분히 알아듣겠지.

­푸르르르

유니콘이 고개를 저었지만 내가 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유니콘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얘 입장에선 오랜만에 만나 본 미남일테니까, 가면으로 가리고 있어서 확신은 없겠지만, 오랜만에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의 무릎을 배고 잘 수 있는 기회인데, 이걸 헛되이 날리지 않겠지.

어느새 얌전해진 유니콘을 바라보며 가면을 벗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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