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중간고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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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나 시험이 다가오면 학생들의 활동성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법이다.
그건 제국 아카데미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원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애들이 많았던 우리반은 더욱 그 특징이 두드러졌다.
다 같이 책상 위에 교재를 올려놓고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이젠 관심도 어느정도 사그라 든 것 같고.'
나에게 말을 거는 모든 사람에게 형식적인 태도로 벽을 치니, 나에 대한 관심은 천천히 식어갔다.
복도에서 다른 반애들을 마주칠 때는 가끔 놀라는 애들이 있는데, 적어도 우리 반에선 그런 일이 없다.
"플레아, 이거 어떻게 풀어?"
"아, 그건..."
그렇다고 훈장을 받기 전과 완전히 똑 같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다.
사모아의 견제가 완전히 사라졌기에 아카데미의 유명인한테 말을 걸 정도의 용기가 있는 애들은 나에게 다가올 수 있었으니까.
매일 혼자서 앉아 있던 과거의 모습과는 꽤 달라졌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수학은 공부를 좀 덜 해도 돼서 편하네.'
이래봬도 공대를 나온 사람이니까. 모든 공식을 완벽히 기억하진 못해도, 이미 한 번 배워 본적이 있거나, 상당히 쉽게 느껴졌기에, 수학만큼은 쉽게 풀 수 있었다.
'회계도 할 만하고, 역시 문제는 역사인가.'
날 때 부터 이 세상에서 살아온 다른 애들과 달리 나는 이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자주 나온 역사들에 대해 서는 알고 있지만, 세세하게 들어가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공감이 되게 설명해보자.
어릴 때 이순신 장군에 대해 듣지 못한 채로 임진왜란을 배운 것이고, 대한민국 이전에 존재했던 나라에 대한 어떠한 정보, 전설을 들어 보지 못한 채, 국사를 배우는 느낌이었다.
아예 배울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중간 중간 막히는 부분이 있다고 해야 할까? 진도 나가기 바빠서 그런지,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역사 교수님의 특징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다.
이미 진도가 다 나간 과목들에서 주어지는 자습 시간 대부분을 역사 공부에 썼다.
판타지 소설을 읽는 느낌이라 나름의 재미가 느껴져서 다행이지, 평범한 세계의 역사였다면, 아마 중간에 때려 쳤을지도 몰랐다.
"야, 플레아!!"
"응? 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마디안이 앞에 서 있었다.
"몇 번을 불렀는지 알아?"
"한 번?"
"5번 불렀어."
"많이도 불렀네."
마디안을 바라보는 몇몇 애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자기들 우상을 편하게 부르는 마디안의 모습에 기분이 나빠진 걸까?
'너희들 얼굴 기억해 뒀다. 나중에 내 밑으로 들어온다고 빌어도 한직에다가 박아버릴 줄 알아.'
차마 안 받는 다는 말은 못하겠다. 인재는 귀중하니까.
"점심 먹으러 거자, 애들 기다리겠다."
"점심? 딱히 먹을 생각 없는데?"
"너 어제 점심도 안 먹었잖아."
"괜찮아, 저녁은 먹었거든."
마디안의 눈매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왜? 하루 한 끼 정도면 충분히 살만한데.
"시험 공부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데, 그러다가 몸 상해, 밥은 잘 먹고 다녀야지."
"괜찮아. 나는 몸이 작아서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충분해."
"... 뭐? 한 끼? 아침도 안 먹고 다녀?"
"어, 왜?"
마디안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되겠다. 따라와, 아무리 시험이 중요해도 그렇지 밥을 굶고 다니냐."
마디안이 내 손목을 잡고 일으켰다.
반항할 생각도 없긴 했지만, 아무리 행정반이라고 해도 마디안도 여자라서 나보다는 힘이 훨씬 셌다.
교재를 챙길 틈도 없이 복도로 끌려갔다.
"알았어, 알아서 갈테니까 손목 놔."
마디안의 옆에 서서, 천천히 걸으니,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디안을 보고 네가 왜 거기 붙어있어? 하는 시선들도 없진 않았지만, 내가 애들이 나한테 질문하고 칭찬할 때마다, 공을 다른 친구들 쪽으로 많이 돌려서 그런지, 대부분은 평범한 상태의 관심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플레아 얘가 공부에 푹 빠져서 건져내 오느라고 늦었다."
급식실로 들어가서 음식을 펐다.
어차피 같이 온 이상 애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최대한 많이 퍼서 저녁까지 퉁치자.
나 치고는 많은 양을 접시에 담아 자리에 앉았다.
"플레아 너, 저녁 안 먹으려고 그렇게 많이 담은 거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저녁을 안 먹는다니?"
"얘 요즘에 한 끼만 먹고 다닌데."
'일났네...'
아니나 다를까 폭풍 잔소리가 시작됐다.
"뭐? 하루 한끼? 그게 무슨 소리야?!식사는 하루 3번 해야 하는 거야 몰아 먹거나 그러면 안돼."
"맞아, 몸 상해.."
"알았어, 앞으론 하루 세끼 다 먹을 테니까 잔소리 좀 그만해."
"거짓말 하는 거 아니지?"
"내가 너희들한테 거짓말을 왜 해?"
거짓말은 아니다. 가볍게 때우면서 공부를 같이 할 거니까.
먹기는 먹는 거잖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모범생이 됐지?'
이게 다 흑마법사들 때문이야, 흑마법사 때문에 소모한 시간이 대략 2주쯤 되는 데 그 시간 동안 수업을 열심히 들었으면,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할 정도로 열심히 할 필요는 없었겠지.
'그래도 얘네랑 같이 밥 먹는 시간은 안 아깝다.'
미소녀 3인방이라는 별명은 괜히 지어준 게 아니니까.
그녀들을 바라보면서 밥을 먹고 있노라면, 공부로 지친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교재를 들고 왔으면 조금이라도 보면서 먹었을 것 같다는 후회감은 조금 드는 정도?
"아, 맞다, 하이네스."
"응? 왜 불러?"
미네타가 입으로 다가가던 포크를 내려놓고는 대꾸했다.
"너희 이모한테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아마 그 분이 만들어주신 큐브가 없었으면, 진짜 답이 없었을 거야."
큐브가 없어도 머리를 한계까지 굴렸으면 나만 죽는 선에서 피해를 줄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죽는다는 전제가 있는 이상아무런 의미 없는 가정이겠지.
"알았어."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미네타는 너무 소심하단 말이지?
처음 만났을 때는 당당하게 내 손등에 입을 맞췄던 애였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단답으로 대답할 정도로 소심해졌다.
'물론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이 비정상 적인 거긴 하지.'
대부분의 사람은 처음 마주하는 감정 앞에서 평소의 성격을 유지하기 힘들어 하니까.
지금은 익숙해져서 원래의 성격으로 돌아온 거고.
"그러고 보니, 시험 끝나면 야영간다는 데 너희는 갈거야?"
"야영? 나는 별로, 스승님 밑에 있을 때는 항상 하던거라서."
"나도 안 갈 것 같은데?"
야영은 중간 고사 직후에 벌어지는 작은 이벤트다. 제작자들이 아카데미에서 추억이라도 쌓으라고 만들어 둔 것 같은 이벤트인데, 플레아로 시작하면 참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일단 아영을 한다는 정보가 플레아한테 들어와야 하는데, 그 정보가 일반 적인 플레이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지지도 않을 뿐더러,시간 소모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너무 나도 작기에 나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통해 야영이 있다는 정보만 들어왔지 한 번도 참여 한 적이 없다.
'커뮤니티 사람들 말로는 별거 없는 이벤트 라던데.'
읽던 도중에 하지만 프레스티아로 시작했으면 이라는 문장이 나와서 재빨리 꺼버렸기에, 자세한 건 알지 못했다.
프레스티아를 상대하기 위한 정보는 모두 게임에서 얻을 거라는 쓸데 없는 아집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프레스티아로 플레이 했을 때의 정보 같은 걸 보여주면 모조리 다 스킵 해버렸거든.
"아쉽다... 그러면 나 혼자라도 가야지 뭐."
"시에린은 야영 좋아해?"
"어렸을 때부터, 밖에서 자 보는 게 소원이었거든."
"밖에서 자봤자 비 맞고, 벌레한테 쏘이고, 난리도 아냐, 그냥 실내에서 자는 게 나아."
"그런가? 미네타는 어때?"
"나는 별로 안 좋아하는 데, 우리 언니가 아주 환장을 하지."
"그냥 외박을 좋아하는 거 아니야?"
"아냐, 산 같은 데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자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데."
뒷목이 콕콕 하고 쑤셨다.
불길한 예감이 섞인 희열이 척추를 타고 온몸에 흐르는 것만 같았다.
잊고 있던 퍼즐 조각 하나를 찾은 느낌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마디안 혼자 보낼 순 없지. 마디안이 간다고 하면 나도 같이 갈게."
"어?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걸 보니, 역시 같이 가는 게 좋긴 한 모양이다.
"그러면 나도 같이 갈까? 혼자 가는 건 질색이지만, 친구끼리 다같이 가면 추억도 쌓고 좋겠지."
"그러면 나도 갈래."
자연스럽게 다 같이 가는 걸로 결정됐다.
"그런데 플레아, 너는 언제까지 우리를 성으로 부를 거야? 나름 목숨까지 같이 건 친구 사인데, 너무 한 거 아니야?"
"맞아, 라이넬은 편하게 부른 단 말이야."
마디안과 미네타가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이걸 어떻게 한담?'
고작 이름 부르는 것 가지고 뭘 그리 유난을 떠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 세계에서 이름을 부른 다는 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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