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파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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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가 끝난 후, 학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2교시가 이동 수업이라서 시간이 꽤 빠듯했다.
학장님만 봽고 바로 이동할 생각으로 교재까지 들고 나왔으니까.
"아, 아이데스 학생?"
"네,학장님이 불렀다고 하셔서 왔어요."
"들어가시면 돼요. 학장님이 얼마나 보고 싶어하시는지, 1교시 중에도 찾아간다고 하시는 걸 말리느라 얼마나 고생했다고요."
"넵."
커다란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나름 커다란 집무실이 보였다.
전체적인 가구들은 전부 고풍스러웠고,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 보다는 목재로 만들어진 물건이 훨씬 많았다.
학장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일을 보는 테이블이 아니라 소파의 상석에 앉아있었다.
"아이데스 학생?"
"네, 플레아 아이데스입니다."
"말로만 들어봤는데, 역시 소문처럼 귀엽게 생기셨네요. 흑마법사가 죽이기 아까워 할 만 해요."
대외적으로는 카르멘이 만들어준 큐브 덕에 살아남은 걸로 알려졌다. 너무 예뻐서 흑마법사가 죽이기 아까워, 마법의 위력을 줄였다는 건 영웅담에는 전혀 필요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어디서 들었을까?'
사실 들을 구석은 많다. 학장인 만큼 나름 인맥도 짱짱 할테니 청기사단에게 직접 들었을 수도 있고, 우리 교수님께 들었을 수도 있다.
"올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니까, 편하게 앉아서 기다리세요. 차 타줄까요?"
"괜찮습니다."
"부담스러워 할 거 없어요. 칭찬하려고 부른 거니까요."
"그러면, 녹차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학장이 차를 우려내기 시작할 때쯤, 학장실의 문이 열렸다.
"헬링 학생도 왔네요. 차를 우려내던 참인데 한 잔드릴까요?"
"부탁드립니다."
'역시 프레스티아도 왔네.'
프레스티아가 소파 반대 편에 앉았다.
소파의 사이즈가 꽤 컸기에, 프레스티아와의 접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모르는 척 하고 소파 중앙에 앉을 걸 그랬나?'
학장이 동양풍 다기에 차를 담아 나와 프레스티아의 앞에 내려 놨다.
"제가 여러분들을 왜 부른 것 같나요?"
"칭찬하시려고요."
약간의 장난기를 담아 말했다.
지금까지 프레스티아에겐 진지한 모습이나 찌질한 모습 밖에 보여준 적 없으니까.
평범한 상황에서의 내 모습도 천천히 밝혀갈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맞는 셈이지만 조금 달라요."
내 앞자리에 놓인 찻잔을 들어서 입에 가져다 댔다. 조금 뜨겁긴 했지만 천천히 먹으니 처음 느껴보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제국에서 훈장까지 받은 여러분이니까, 아카데미에서도 따로 상을 주려고 해요. 아마 가산점도 따로 들어갈 것 같고요."
입안의 차를 모두 삼키고 찻잔을 내려놨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나와 프레스티아가 동시에 말했다.
어른의 제안은 세 번까지는 거절해야 한다는 꼰대같은 발상으로 거절을 한 건 아니다.
아카데미에서 주는 상? 가산점? 그 까짓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성적이란건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는 상황에서나 쓸모가 있는 것이다.
나나 프레스티아나 둘 다 자기 세력을 세울 인물들인데 아카데미에서 얼마나 잘 나갔냐는 건 의미가 없지.
심지어 둘 다 이미 훈장까지 받은 몸이니까.
상을 어떻게 줄지는 모르지만 나한테는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기본적으로 재력이 부족하니까. 적은 상금이라도 꼬박꼬박 모으는 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이 역시 사소해.'
"저희만 흑마법사를 무찌르는 데 힘을 쓴 게 아니잖아요? 다 같이 받는 것도 아니고 저희만 이득을 받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요."
학장의 대답을 덮썩 받아드리느니, 차라리 착한 이미지를 심어두는 게 훨씬 낫다.
"둘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월등히 뛰어난 성과를 이뤘어요. 그래서, 아카데미에서 따로 상을 주고 싶은 건데, 그래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나요?"
학장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프레스티아의 입이 열리기 전에 재빠르게 답했다.
"저희는 이미 훈장을 받으면서 공에 대한 상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아카데미에서 또 상을 받으면 불만을 가지는 학생이 분명 나올거에요."
사모아라던가, 사모아라던가, 사모아라던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공에 대한 상은 이미 과분할 정도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프레스티아 모두 진지한 눈빛으로 학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학장이 한숨을 푸욱 하고 내쉬었다.
"솔직히 둘 다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어, 역시 둘한테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 제안이었지?"
학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가볍게 턱을 괸 채 우리를 바라보는 학장의 눈에는 이전까지 느껴졌던 친절함은 없었다.
날카로우면서도 장난기가 차 있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학장의 모습에, 이제야 좀 학장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해가는 제도에서 살아가려면, 저 정도 눈빛은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그래, 아카데미에서 주는 상이 너희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아카데미에서 얻을 수 있는 성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미 훈장을 수여 받았는데, 아이데스는 어딜 가든 환영받는 인재가 될 거고, 헬링은 자기 세력을 세울 텐데 말이야."
맞는 말이다. 사실 순수한 배움과 인맥을 제외하면 더 이상 아카데미에 남아있을 이유조차 없다.
나와 프레스티아가 오늘 당장 자퇴서를 내지 않은 이유는 단지 배울 것이 남아있고, 해야할 것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배울만큼 배웠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자퇴서를 내겟지.
"그래도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 하는 법 아니겠어? 너희 덕분에 우리 아카데미의 이미지가 얼마나 좋아졌는데, 아무것도 안 해 주고 넘어가기엔 너무 미안하잖아?"
학장이 자신의 몫의 찻잔을 잡고 한 번에 들이켰다.
"너희로 인해 이득 본 학장 개인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번엔 거절 하지 마."
"저는..."
"어허! 어른이 준다고 하면 고맙습니다 하고 받는 거야!"
적당한 추임새였다.
"... 무슨 선물인가요?"
좋아, 적당한 어투였어. 선물을 밝힌다는 느낌도 안 느껴지고 순수하게 무슨 선물인지 궁금하다는 어투, 이 정도면 아주 괜찮지.
"그건 너희가 골라야지."
"네?"
"아카데미의 학장으로서, 자신의 아카데미에 대한 평가를 올려준 두 명의 학생한테 무슨 선물까지 줄 수 있는지 너희가 생각해 봐."
학장이 씨익 하고 웃었다.
"내가 생각한 선 이상으로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면 안 줄 거고, 그렇지 않다면 원하는 것 그대로 이뤄줄게."
어색한 적막이 학장실을 가득채웠다.
고민이 많이 되는 지 프레스티아의 얼굴이 엄청 진지해졌다.
'예쁘다.'
"꼭 지금 말해야 합니까?"
"그런건 아니지만, 내가 너희에게 느끼는 감사함의 정도는 지금이 최고 아니겠니? 시간이 갈 수록 떨어질테니까, 지금 말하는 게 제일 이득이지."
프레스티아의 얼굴이 한 층 더 고민에 잠겼다. 어떤 게 자신한테 가장 이득일지 계산을 하고 있는 거겠지.
"정했습니다."
"그래, 말해봐."
"학장님의 인맥이 꽤 넓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친구들과 함께 적기사단에 가서, 기사들의 훈련을 같이 받아보길 원합니다."
"흐음... 몇 번?"
"한 번 이면 충분합니다."
적기사단은 주로 제도의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아내는 기사단이다.
성벽을 감시하는 성벽 경비병들도 공식적으로는 적기사단의 산하에 존재하는 병사들인데, 때문에 중앙세력의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는다.
성벽은 굉장한 요충지니까, 밀수 부터 시작해서, 잠입은 물론이고 적대 세력의 이동까지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중앙세력이 늘 눈길을 들이던 곳이다.
차라리 단장이 어디 하나로 굽히고 들어갔으면 모르겠는데, 괜히 뚝심만 강한 사람이라서 견제만 잔뜩 받은 채 어디 구석에 박혀 있는 걸로 기억한다.
'일단 연결점만 만들어 놓을 생각이구나?'
한 번 만나면, 그 이후부터는 다음 약속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겠지.
정작 학장한테 하는 부탁은, 단 한 번의 공동 훈련이 끝이니까. 나름 효율적인 부탁이라고 할 수 있겠지.
"적기사단장이랑은 내가 친분이 좀 있지. 오랜 친구인데 틈만 나면 술 처먹고 와서 제도가 망해가네, 어쩌네 하면서 신새한탄을 하거든."
프레스티아는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걸까? '난세' 의 학장이 적기사단장과 친구 사이라는 정보는 없었다.
'애초에 그 양반은 중앙파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아무리 진한 우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 친구가, 자신을 견제 하는 집단 중 한 명이라는 걸 알면 마음 놓고 우정을 유지 할 수 있을까?
아마 이쪽 학장은 반 중앙파인 모양이다.
"좋아, 한 번 정도라면 내가 그 친구한테 부탁을 해 볼 수 있어. 이후에 관계를 이어가는 건 너의 몫이지."
프레스티아가 단순히 훈련을 같이 하기 위해 적기사단과의 공동 훈련을 부탁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
작게는 기사 몇 명을 빼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을 테고, 크게는 적기사단 전체를 먹어버릴 목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
"헬링의 선물은 이 정도면 됐고, 아이데스는 무슨 선물을 받고 싶어?"
나는 미리 생각해 놨다.
처음 선물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마자 바로 떠오른 선물이 하나 있었으니까.
"80골드만 주세요."
머니머니해도 머니가 제일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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