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46화 (46/312)

〈 46화 〉 파벌­1

* * *

'완전 노빠꾼데?'

어느 정도 간을 보고 말할 줄 알았는데, 내 생각보다 진도가 너무 빨랐다.

'어떻게 할까.'

일단 무조건 거절 할 거다.

프레스티아 외에는 그 누구의 밑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니 굳이 프레스티아를 데려오지 않더라도, 들어갈 가치가 없는 곳이었으니까.

엄청 작은 파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큰 파벌은 아니었다. 아마 헬링 파벌에 들어간 다고 하면 바로 받아줄 텐데, 거길 버리고 이쪽 파벌에 들어갈 이유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들어갈 생각은 하나도 없었지만 거절 하는 방법이 중요했다.

막말로 너희 세력 너무 하꼬라서 들어가기 싫어요. 이랬다가는 정적을 하나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어지니까.

그뿐만 아니라 이미지도 바닥으로 추락하겠지.

내가 조금 더 영향력이 있었다면 조금 더 과감해도 됐겠지만, 나는 아직 너무 약했다.

그리고 당장 내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게 해주는 꼬마 영웅이라는 칭호는 냉혹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 더 강인한 느낌의 칭호였다면, 너희 세력은 너무 작으니 들어가기 싫다를 돌려 말해도 괜찮았겠지.

"파벌이요?"

"네, 친하게 지내시는 헬링파벌보다는 작은 파벌이지만 제 파벌도 꽤 규모가 큽니다. 그리고 헬링 파벌은 여자들밖에 없는 곳이니까요. 아마 들어가시면 꽤 불편할 겁니다."

글쎄? 불편할까? 당장 나랑 같이 다니는 애들은 다 여자애들인데?

"왜 저를 영입하려고 하시는 거죠?"

내 말에 여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관심을 가지는 걸 보니 미끼를 물었다고 생각한 걸까?

"능력이 있으신 분이니까요. 어린 나이에 벌써 훈장을 받으신데다가, 성적도 좋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생각이 났다.

"당장은 대답해 드리기 힘들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생각 해 볼테니, 방과 후에 다시 만나는 건 어떠신가요?"

내 말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여자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아마 이 여자는 나를 진심으로 영입하기 위해 찾아온 걸 아닐 거다. 그럭저럭 쓸만한 인재니까 한 번 말이라도 해보기 위해 온 것이겠지.

그런데 내가 굳이 긍정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인해 설마? 라는 생각이 피어올랐겠지.

"그러면 방과후에 봽겠습니다."

처음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보다 확연하게 밝아진 목소리였다.

여자가 가자마자 주변의 애들이 웅성 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들어가는 거냐, 프레스티아랑 친하지 않았냐, 하는 등의 수많은 이야기들로 교실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그래, 마음껏 소문 내고 다녀라.'

나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백작파벌에게 받은 영입 제안을 '긍정적' 으로 생각해 본다?

아마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아카데미 전체에 소문이 쫙 퍼지겠지.

분명 프레스티아의 귀에도 들어갈 거다.

일종의 질투심 유발 작전이다.

내가 설마 저쪽 파벌에 들어갈까 걱정하는 프레스티아를 상상하면 그 귀여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새어 나왔으니까.

물론 내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프레스티아라면, 내가 지금 쇼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상 절대 들어갈리 없다는 걸 알지도 모르지. 내 성격을 제쳐두고서라도 헬링 파벌을 포기하고 다른 파벌에 들어간 다는 건 손해밖에 없는 멍청한 방법이니까.

아마 내 작전을 바로 알아차리고 별 지랄을 다한다고 콧방귀만 뀔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괜찮았다.

프레스티아야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녀 밑에 있는 수하들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행동하려나?'

아주 기대가 됐따.

***

"주군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나의 충실한 부하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일단 나를 주군으로 호칭하고 있지만 타고난 성정이 불같기 때문인지, 아니면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지, 그녀의 말투는 매우 날카로웠다.

진지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 느낌에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는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무슨 이야기?"

"플레아 그놈이, 카이넨 파벌 밑으로 들어간 답니다."

너무 말이 안되는 소리라서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생각하면, 나 외의 다른 사람의 밑으로 들어가는 그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스스로 파벌을 만들면 만들었지 절대로 다른 사람의 밑으로 들어갈 놈은 아니야.'

설령 들어간다고 해도 진심 어린 충성을 다하진 않을 거다.

심지어 카이넨 가문은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가문도 아니다.

플레아가 보여주는 제국에 대한 충성을 생각해 보면 카이넨 파벌에 들어갈 이유는 더더욱 없지.

"어디서 들은 헛소문이야?"

"헛소문 아닙니다. 카이넨의 영입 제안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한 걸 들은 사람이 수십 명이 넘습니다."

'내 질투심이라도 유발하려는 건가?'

귀엽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분명 나대지 말라고 주의를 준 것 같은데,

역시 미친놈은 제어하기 힘든 모양이다. 준 폭력까지 휘둘렀는데도 이 모양인 걸 보면, 아마 단순한 방법으로는 굴복 시킬 수 없겠지.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플레아가 카이넨 밑으로 들어가든 사모아 밑으로 들어가든, 나랑은 아무런 관련 없는 일 아닌가."

"주군이 호감을 느끼시는 사람 아닙니까?"

"뭐?"

어이가 없었다.

내가 남자한테 호감을 느껴? 지나가던 강아지가 갑자기 고양이로 변하는 것 보다 가능성이 낮은 일이었다.

남자는 연약하고 하찮은 생물이다.

나도 여자인지라 성욕을 느낀 적은 몇 번있지만, 남자한테는 호감은 커녕 흥미를 느낀 적 조차 없다.

'물론 플레아 그놈은 많이 다르긴하지.'

내 눈빛만 봐도 덜덜 떠는 시선을 피하는 다른 남자들이랑 달랐다.

처음엔 아무리 무서워도 내 눈을 보고 이야기 했으며, 어제는 떠는 기색조차 거의 없었으니까.

그것 뿐만이 아니다. 제도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 버릴 정도로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명확한 비전이 보였다.

만약 그가 여자였다면, 나의 라이벌로 인정하기 적당한 상대 였을지도 모른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에도 나와 같이 세력을 성장시키며 서로를 견제하는 관계가 되었을 수도 있다.

"보십쇼, 지금도 흐뭇한 표정을 짓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군이 아무리 부정하셔도, 이미 주군의 마음엔 플레아가 있는 겁니다."

"벨리아,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1교시나 준비하지 그래? 너는 기사반이 잖아."

"지금 강의가 중요합니까, 주군 연애가 더 중요하지."

쓸 데 없는 곳에서 뚝심을 발휘하는 벨리아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이마에 손이 갔다.

"도대체 내가 왜 그 놈한테 호감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유야 많죠. 일단 첫번째로, 저희끼리 다른 남자에 대해 이야기 할 땐 하찮다는 티를 팍팍 내시는 주군이 플레아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목소리가 좀 밝아 지십니다."

"내가 언제 그랬는데?"

"당장 어제만 해도, 플레아 정도면 인정해 줄만 하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괜히 쓸데 없는 소리를 해 가지고...

"그건 플레아가 그만큼 뛰어난 사람이라 한 말이다. 고작 그런 걸로 내 호감을 증명할 순 없어."

"그러면 저희 수련장에 플레아가 찾아오는 걸 허락한 건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그건 애완동물 길들인다는 느낌으로 한 번 밟아주려고 허락한 것 뿐이야."

"굳이 길들인다고 생각하신 다는 것 자체가 호감이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리고 그 이후에 점심도 같이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할 말이 없네.

"아무튼,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대로 그를 카이넨파벌에 뺏기실 겁니까?"

"대책을 세우긴 뭘 세워, 그놈은 카이넨 파벌에 들어갈 정도로 멍청한 놈이 아니야."

나를 버리고 그런 조그만 세력에 들어간다? 말이 안되지.

"이미 나와 플레아와의 친분은 아카데미에 어느 정도 소문이 퍼져 있어. 이런 상태에서 카이넨 파벌에 들어갔다간, 헬링을 버렸네 어쨌네, 소문이 엄청 날 텐데, 고작 카이넨 파벌에 들어가기 위해 그런 손해를 감수할 가치가 어디에 있어?"

"주군, 남자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긴 뭘 몰라, 눈만 보면 나한테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고 대문짝 만하게 적혀 있구만.

물론 이렇게 말하면 아마 추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 분명하기에 굳이 말하진 않았다.

나와 플레아와 만난 건 대부분 단 둘이 있을 때여서 벨리아는 그놈의 눈빛을 본 적이 없으니까.

"아무튼 무언가 수를 생각해 내야..."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따가 1교시 끝나고 오겠습니다."

"오지마, 나 1교시 끝나고 학장실 가야 해."

"일단 와서 2교시 시작하기 전까지만 기다리다가 가면되죠. 일단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계단을 내려 가는 시간도 아까웠는지 창문밖으로 훌쩍 뛰어 나갔다.

'그런데 훈장 때문에 부르는 거면 플레아도 오는 거 아니야?'

슬며시 불안해지는 심장박동을 억눌렀다.

그 놈이 오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내 할 일만 하면 되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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