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꼬마 영웅5
* * *
'상황을 잘 이용할 줄 알아.'
훈장 수여식이라는 작은 이벤트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만 해도 수천 명이었으니, 고작 수십명의 입에서 전파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파급력을 가지고 있겠지.
녀석의 관한 평가를 세 단계 정도 올렸다.
이제는 단순히 남들과는 다른 남자 정도로 치부할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아주 작정하고 왔나 보군?"
언제 부터 준비했는지 모르겠지만, 칼을 갈고 나온 것이 틀림 없으리라, 아마 청기사단장에게도 미리 말을 해 놓았겠지.
아까 보여줬던 놈의 기세를 떠올리면 아직도 전율이 일었다.
천천히 그놈에게 다가갔다.
처음 내 본모습을 보였을 땐 무서워서 덜덜 떨면서도 환희의 감정이 엿보였는데 지금은 벌써 익숙해 진건지, 기쁜 감정만 꾹 눌러 담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번을 바라봐도 덜덜 떨기만 하는 내 오라비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것 부터, 너에 대한 인상을 각인 시키는 것 까지, 디테일한 면에서는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지만 그 정도는 사소하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놈이 씨익하고 웃어 보였다.
분명 귀여운 얼굴이었으나 녀석의 시꺼먼 속이 다 보이는 듯 했다.
물론 나라고 녀석의 속마음을 전부 읽어 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나에게 보여줬던 순수한 모습들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놈은 구렁이나 다름 없었다.
'이제 좀 컸다 이건가?'
아마 자기가 어느 정도 커졌다고 생각해서 본 모습을 들어내는 걸테지.
훈장도 얻었겠다. 제도에서 영웅으로 불리겠다. 이제는 나도 함부로 못 건드릴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주 귀여워.'
너 따위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망가뜨릴 수 있는데.
하지만 지금 건들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어부는 새끼 물고기를 낚지 않는 법.
조금 더 참을 필요가 있었다.
"인정해 주마, 너는 대단히 훌륭한 놈이야."
"그래서, 무슨 소리를 하고 싶으신 거에요?"
글쎄... 무슨 소리라. 놈의 목을 가볍게 쥐었다.
힘을 세게 주지도 않았것만 벌써 부터 켁켁 거리는 놈이 보였다.
"너무 나대지 말라는 거지."
던지듯 놈을 두고는 대기실을 떠났다.
***
목이 아팠다. 아주 잠깐 잡혀 있었을 뿐인데, 붉게 자국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마조히스트가 아니다. 아무리 프레스티아라고 해도 나를 괴롭히면 아프고 괴롭다.
내가 즐거운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나를 질투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네가 주인공이어야 했는데 못해서 아쉽지?'
아마 내가 동급 훈장을 받았다면, 오늘 내가 했던 일을 프레스티아가 그대로 했을 거다.
프레스티아도 한 카리스마 하는 인물이니 아마 노림수가 제대로 먹혀들었을 테고, 나 뿐만이 아니라 프레스티아 또한 영웅이라는 위명을 얻었을 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내가 은급 훈장을 받게 되면서, 그 전략은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애초에 급이 다르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나에게 쏠릴 수 밖에 없으니까.
결국 프레스티아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한채, 훈장 수여식의 들러리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물론 훈장을 받았으니,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겠지만, 나한테 질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을 거다.
'좋게 풀렸네.'
자리에서 일어난 뒤 옷 매무새를 다 잡았다. 빌려 입은 옷인데 상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옷에 묻은 먼지를 전부 쳐냈을 때쯤, 친구들이 대기실로 들이닥쳤다.
외부인의 출입은 건물에서 부터 막는 것이 FM이었지만 내 친구들이기도 하고 흑마법사를 막아내는 데 지대한 공헌을 끼친 애들인 만큼 들어가게 허락해준 모양이다.
"플레아, 너 엄청 멋지더라!"
"꼬마라고 불리는 거 그렇게 싫어하더니, 뭐? 너랑 정말 잘 어울리는 칭호라고?"
"훈장 받은 거 축하해!"
자기들도 열심히 했는데 나만 훈장을 받는 모습을 보고 질투와 시기심을 가질 법도 했는데, 애들의 눈에는 어떠한 악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너희도 열심히 했는데, 나만 받아서 미안하네..."
"아냐, 네가 없었다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라이넬의 말에 마디안과 미네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똑같은 상황이 찾아오면, 그 때는 절대로 네 뒤에 숨지 않을 거야."
미네타가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남성 공포증은 나았어도, 소심한 성격은 사라지지 않던 앤데, 이번 사건으로 뭔가를 깨달은 게 있는 걸까?
"나도, 열심히 수련해서, 꼭 너희들을 지켜낼 수 있게 노력할게."
"나는 솔직히 이번에도 잘한 거 같아, 다음번엔 이렇게 잘 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나는 애초에 전투인력이 아니니까 싸울 일 있으면 나를 빼놓고 가."
"야! 시에린, 분위기 깨지게 뭔 소리를 하는거야?!"
"내가 틀린 말했어? 나는 행정반이라고! 싸우는 걸 질색이야."
평소처럼 티격대는 둘을 바라보자 슬며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드디어 한 가지 이벤트를 마무리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모인 김에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갈래? 내가 사줄게."
"비싼 데 가도 되지?"
"당연하지, 감사금 들어온 것도 있어서 돈 많아."
그렇게 4명이 모여서 제도의 적당한 레스토랑에 찾아갔다.
***
나를 향해 꽂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흑마법사 일이 일어나기 전에도 서서히 약해져가는 사모아 공녀의 견제에 나를 향한 시선이 점점 늘어가는 걸 느꼈지만, 어제 훈장을 받은 이후부터는 나를 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예쁘고 잘생기고 귀엽지만, 사모아 공녀한테 찍힐까봐 못 다가가는 애 정도였다면 이제는 예쁘고 잘생기고 귀여운 대다가 은급 훈장까지 받을 정도로 대단한 애가 됐으니까.
사모아 공녀의 견제? 이미 훈장을 받은 이상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들 앞에서 대놓고 나를 괴롭혔다간 명예가 엄청 실추 될 테고 안 보이는 곳에서 나를 건드리려 해도, 소문 한 번에 이미지가 나락으로 갈테니까.
잘 난 거라곤 외모 하나뿐인 평민을 괴롭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저어, 아이데스?"
이걸 대답을 해? 말아?
한 번 대답하면 애들이 우르르 몰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이상한 소문이 퍼져나갈 지 몰랐다.
"왜? 무슨 볼일 있어?"
최대한 친절하고 사근사근 한 어투로 대답했다.
"아니, 그냥 궁금한 게 좀 있어서, 물어봐도 될까 하고."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이후부터는 수많은 질문들의 연속이었다.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내 근처로 모여들었고, 나는 교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수많은 질문들에 일일이 답해야만 했다.
"너희들 뭐하고 있냐. 다들 자리에 앉아."
교수님이 교탁을 쾅쾅 치시며 말씀하시자 애들이 아쉽다는 눈빛으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너희도 알다시피, 제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흑마법사 사건이 완전히 종결됐다. 논공행상까지 거의 끝난 상황이지."
그러면서 나를 슬쩍 훑어 보셨다.
"물론, 흑마법사들을 모두 뿌리 뽑은 것은 아니기에, 완전히 안심할 순 없지만, 아마 당분간 큰 위험은 없을 거다."
조금 시끌시끌한 반이었다면 무슨 대꾸라도 돌아왔겠지만, 우리 반은 꽤 엄숙한 반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교수님의 말에 대꾸하진 않았다.
"이상으로 전달사항 마칠태니 다들 1교시를 준비하도록, 그리고 플레아 아이데스는 1교시 끝나고 학장실로 가봐, 학장님이 너를 애타게 찾으시더라."
"네!"
학장이라... 어떤 사람이었지? 기존 플레이 방식에서는 학장이랑 마주칠 일이 없었다.
'생각 해보니까 학장도 다른 사람 아니야?'
원래 제도 아카데미의 학장은 남성이었는데 입학식 때의 기억을 찬찬히 떠올려 보면 이세계의 학장은 틀림없는 여자였다.
그것도 꽤나 젊은,
'몰라 1교시 끝나고 직접 만나면 되지 벌써 부터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다행히 1교시는 공통 수업이었기에 다른 강의실로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내 교재는 늘 젖어있거나, 찢어져 있거나, 망가져 있었는데, 오늘은 굉장히 멀쩡했다.
자연스럽게 교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리고 강의를 준비했다.
강의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정도, 간단하게 예습을 할 시간은 충분했다.
"아이데스씨?"
위쪽에서 들려 오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네, 왜 부르셨나요?"
익숙한 얼굴이었다. 사모아나 프레스티아 만큼은 아니지만, 아카데미 내부에선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세력을 이끌고 있는 여자였다.
'백작 가문이었지 아마?'
지방파 귀족인 걸로 기억하는 데 난세가 시작되면 시드빨을 기똥차게 탄 게 아니면 변방의 작은 세력 정도로 끝나는 가문이다.
물론, 플레아 따위보다는 훨씬 시작점이 좋지만.
"단도 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희 파벌에 들어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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