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꼬마 영웅3
* * *
'멋지네.'
하얀색 베이스에 군데 군데 파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청기사단의 제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은 굉장히 멋졌다.
키가 꽤 작은 편인데다가 얼굴도 귀염상인 나지만 역시 깔끔하게 제복을 차려 입으니, 멋있다는 말 밖에 안 나왔다.
'옷 살 돈 굳어서 다행이다.'
수십 실버 정도는 깨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이 청기사단에서 제복을 지원해 줘서 큰 돈을 아낄 수 있었다.
감사금을 따로 받긴 했지만, 그래도 옷에 수십 단위의 돈을 쓰는 건 아깝지.
'프레스티아도 이 옷을 입고 있으려나?'
아카데미 제복을 입고 있는 프레스티아만 해도 충분히 멋지고 이쁜데, 기사단의 제복을 입고 있는 얼마나 대단할까?
상상만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여기서 대기하고 계시면 됩니다."
"네."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건지 대기실엔 아무도 없었다.
'총 여섯 명이 받는 다고 했지?'
훈장 수여식도 나름 돈이 들어가는 행사라서, 적당한 인물들을 물색한 뒤 5명 단위로 훈장을 수여한다고 들었다.
4명이 미리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나와 프레스티아가 추가돼서 바로 시작 한 거겠지.
미리 들고 온 가면을 얼굴에 썼다. 예전에 쓰던 가면과는 다른 가면으로, 하관이 뚫려 있어서 어느 정도는 내 얼굴이 노출되지만, 쓰고 있기엔 훨씬 편하지.
'다행히 허락을 받았네.'
얼굴을 완벽히 가리진 못하지만, 이 정도면 나에게 오는 관심을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을거다.
영웅이라고 불리는 것도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천하제일미 같은 칭호가 붇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근데, 아무도 안 오네.'
수여식까지 30분이 남긴 했지만 이런 행사 같은데에 참여 하면 보통 일찍 오지 않나? 한 두 명 정도야 안 올 수 있어도 아무도 안 오는 건 이상한데...
똑똑
"플레아씨, 들어가도 될까요?'
"ㄴ... 네! 들어오셔도 돼요!"
프레스티아다!!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목소리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도 나와 같은 제복을 입고 있을까? 그렇다면 얼마나 멋질까?
짧은 순간에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끼익
프레스티아가 들어오자마자 무의식 적으로 그녀의 전신을 스캔했다.
푸른 제복을 몸에 두르고 있을 것을 기대했지만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타오를 듯한 붉은 색이었다.
'헬링가의 정복인가?'
헬링가의 인원이 외부 활동을 할 때 입는 옷인데, 하나 같이 붉은 색인 것이 특징이었다.
'아직 정복이 잘 어울리진 않네.'
아직 어리기도 하고,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상황이라서, 거친느낌의 헬링가의 정복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군주로서 자리 잡기 시작하면,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시너지로 정말 아름답고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2%로 정도 모자라다.
'그래도 충분히 예쁘지만.'
프레스티아니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이쁠 수 밖에 없지.
"ㅇ... 오랜 만이에요."
왜 프레스티아 앞에만 서면 이렇게 떨리는 걸까, 몇 번씩 마음을 다잡고 겨우 입을 연 것임에도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저번에 뵀을 땐, 진짜 멋지셨어요."
"과찬이세요.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 걸요."
"대단한 일이죠. 위험한 상황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구하셨잖아요. 꼬마 영웅님이시니까 더 자신감을 가지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이네스한테 들었을 때는 그저 오글거리기만 했던 단어 였는데 프레스티아의 입으로 들으니까 가슴이 콩닥콩닥 하고 뛰었다.
"헬링님의 업적도 들었어요. 그렇게 싸움을 잘 하셨다면서요?"
조금 떨리긴 했지만, 가벼운 도발을 섞어 말했다.
프레스티아의 가식을 벗겨내고 진심을 듣고 싶었다.
물론 프레스티아가 고작 이 정도 도발에 넘어 올 사람은 아니었지만,
"저번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공을 세워야 했으니까요.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이 정도 도발은 어림 없다는 듯 프레스티아가 생긋 하고 웃었다.
심장이 얼얼할 정도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바로 섰다.
"만약 다른 사람한테 알려지지 않을 상황이었다면, 흑마법사와 싸우지 않으셨으려나요?"
"당연하죠."
프레스티아가 웃는 표정을 계속 유지 한채 말했다.
분명 표정과 행동은 가식을 유지 하고 있는데, 말에는 서스럼이 없네, 나한테는 어느 정도 진심을 보인다고 해석해도 되겠지?
속으로 잔뜩 미소 지은 채 말을 돌렸다.
"그런데, 다른 분들이 안 오시네요."
나야 프레스티아와 둘이서만 있을 수 있어서 기뻤지만, 슬슬 시작할 때가 다가 오는데 너무 안 오는 거 아냐?
"이미 다 도착하셨어요. 플레아씨는 혼자서 은급 훈장을 받으시는 거라서 1인 대기실을 쓰고 계시는 거고요."
"아, 그렇군요."
프레스티아가 귀엽다는 듯 나를 내려다 봤다.
"플레아씨는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사뭇 진지해진 프레스티아의 표정이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
아마 지금 내 대답에 따라서 나에대한 평가가 달라질지도 모르지. 아마 막연하게 다른 사람의 밑으로 들어가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나에게 영입제안을 해올지도 몰랐다.
"헬링님은, 지금 제도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속 꿍꿍이가 더러운 놈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법,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프레스티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지러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앙파 귀족들이 권력을 전부 먹어 버리고, 패악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저는 어지러운 제국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습니다. 황제폐하가 모든이를 지배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여, 모두가 평안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태평성대를 꿈 꾸시는 군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아씨의 그 꿈, 이루어 졌으면 좋겠네요."
프레스티아가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합격인가?'
그나저나 프레스티아 손 부드럽다.
아무리 판타지라고 해도 검사인데 손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있나? 굳은 살이 군데 군데 느껴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러면 슬슬 나갈까요? 아무리 플레아씨가 주인공이어도, 너무 늦게 등장하시면 안 되니까요."
나를 향해 뻗은 프레스티아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오니 거대한 광장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들어 오기 전에도 봤지만 이건 너무 많잖아.'
어림잡아도 수천은 넘어 보이는 인파에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프레스티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았다면 덜컥, 하고 멈춰섰을지도 모르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될 거에요."
광장의 정중앙, 500미터쯤 걸어가면 황궁에 다다를 수 있는 곳에 섰다.
아직 수여식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수여식에 필요한 모든 인원은 다 모여있었다.
나를 포함한 6명의 사람이 황궁을 바라보고 섰고, 훈장을 수여해줄 청기사단장과, 보조 인원들이 우리 앞에 섰다.
솔직히, 어떻게 일이 진행됐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황궁을 바라보며 제국에 대한 충성을 다짐 하고, 선서를 비롯한 각종 행사만 20분을 했지만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내 차례였다.
청기사단장이 내 앞에 바로서고 보조인원이 들고 있는 상자에서 훈장을 꺼냈다.
'떨지 마.'
엄청난 부담감에 육체가 멋대로 떨기 시작했지만 강제로 잡아서 멈췄다.
데뷔식 과도 같은 곳에서 꼴 사나운 모습을 보여선 안되니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청기사단장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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