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꼬마 영웅2
* * *
"우리 꼬마 영웅님 오셨네."
교양 마법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오자마자 하이네스가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부르지 마요."
"온 제도가 너를 그렇게 부르고 있잖냐."
장난 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하이네스의 얼굴에 주먹 한 방을 박아 넣고 싶었지만, 왠지 얼굴을 맞고도 저렇게 웃고 있을 것 같아서 관뒀다.
"올해 16살 먹은 사람을 꼬마라고 부르는 게 말이 돼요?"
"키만 보면 꼬마 맞구만, 네가 구해 준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이니까, 너무 거부하지 마."
고아원에 흑마법사가 침입했던 날로 부터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그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청기사단의 주도로 본격적인 흑마법사 토벌이 있었다.
5서클 마법사 둘과 수십의 수습 흑마법사를 잡아들였다는 말은 들었지만, 모두 자결을 했기에 중요한 정보는 하나도 찾지 못 했다고 한다.
나도 참고인의 역할로 같이 움직일 수도 있었는데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토벌에 참여하진 않았다.
그리고 대략 4일간의 수습 과정을 지나서 이제야 아카데미에 다시 등교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꼬마는 너무하잖아요."
흑마법사에게 잡혀 있던 인원은 모두 207명, 그 중에서 내가 구한 이들이 50명쯤 됐는데, 이 사람들이 어디가서 소문을 내는 건지, 아니면 청기사단에서 선전용으로 소문을 흘리는 건지 나에 대한 소문이 과다할 정도로 퍼져있었다.
목숨을 걸고, 시민을 구한 영웅이라느니, 용기와 기지로 동료를 살려낸 위인이라느니, 각종 선성 루머들이 퍼져있었다.
"지금 제도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영웅으로 여기고 있는 거야, 고작 꼬마라는 단어 하나에 그렇게 삐져 있는 것 보단 네 업적에 자신감을 갖는 건 어때?"
"제가 아니라도 누구든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거에요."
입에 발린 말로 하이네스의 말을 회피하고 있을 때 강의실의 뒷문이 열렸다.
누군가 하고 뒤를 돌아 보니 마디안과 그녀의 친구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강의실로 들어왔다.
"무릎은 좀 괜찮아?"
"플하! 플레아 하이라는 뜻! 조금 걷기 불편하긴 한데,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시에린도 참, 아무리 적을 속이기 위해서라고 해도 너무 무식하게 행동한 거 아니야?"
"몸 좀 아끼라고."
"부족한 것 보다는 과한 게 낫지, 잘 못하면 무릎이 아니라 목숨이 날아가는 상황이었는데."
마디안과 친구들이 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라이넬은 안 왔어?"
"오늘 부터는 교양마법은 안 듣고 개인 수련에 집중한다고 하더라고,"
"걔도 꽤 자극 받았나 보네."
그렇겠지, 사실상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셈이니까.
어쩌면 1학년이 지나기 전에 벽을 넘을 지도 모르겠다.
드르륵
"교수님? 왠 일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평소에는 강의시작하고 30분은 지나야 오셨잖아요."
하이네스의 말처럼 우리 교수님은 굉장히 늦게 들어오신다.
강의의 구성이 복습기초설명실습, 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복습 정도는 하이네스한테 맡겨도 됐기에 교수실에서 느긋하게 쉬다가 오셨다.
"일하기 싫어서, 강의하러 간다니까 차마 말리지는 않더라."
교수님의 얼굴은 상당히 퀭했다.
아카데미 조사단의 지도교수셨기에, 지난 1주일간 굉장히 많은 일을 하셨다고 들었다. 청기사단엔 뛰어난 마법사가 없어서, 마법진 분석도 하이네스를 보조삼아 거의 전부 진행했고, 흑마법사를 토벌하는 과정에도 참여하셨다고 들었다.
학생들은 일단 아카데미로 돌려 보냈지만 간만에 뛰어난 마법사의 보조를 받아본 기사단의 간절한 요청에 근래까지 굉장히 바쁘시다고 듣긴 했는데, 저렇게 까지 퀭한 얼굴을 하실 줄은 몰랐다.
"누구 때문에 지도교사를 맡았다가, 고생만 줄창하네."
"하하... 죄송해요."
교수님의 어깨라도 주물러 드리려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님의 뒤로 이동해서 어깨에 손을 올리려던 순간 교수님이 내 머리 위에 손에 올리셨다.
"잘했다."
교수님의 부드러운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진짜 잘했어. 아마 네가 없었으면, 잡혀 갔던 사람 중에 절반은 죽었을 거야."
그랬겠지, 플레이어의 개입이 없으면 적어도 제물의 절반, 많으면 전부가 죽는 이벤트니까.
"제대로 가르쳐 준건 없지만, 그래도 네가 내 제자라서 기쁘다."
"교수님..."
"그런 의미로 일 하나만..."
짝!!
"교수님! 지금 우리 꼬마 영웅님한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제가 도와 드릴 테니까, 꼬마 영웅님한테는 일 시키지 마요."
크악! 시공간이 오그라 든다.
꼬마 영웅에 강하게 악센트를 넣어서 말하는 하이네스의 말에 온몸이 비틀리는 듯 했다.
"너는 그렇다고 교수를 때리냐..."
"우리 사이 잖아요?"
"제자를 잘 못 키웠어."
하이네스가 재빠르게 움직여 교수님의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제가 우리 교수님 많이 사랑하는 거 아시죠?"
"여자 년 사랑은 필요 없다."
"그러면 제 사랑은요?"
가볍게 웃어 보이며 올려다 봤더니 머리 위로 꿀밤이 떨어졌다.
"넌 너무 부담스러워, 과하게 예쁘고 잘생겼거든."
생각보다 아프게 때리셔서 머리를 살살 만졌다.
"아, 그리고 너 훈장 받을 날짜가 정해졌다."
"언젠데요?"
"내일 모래. 은급 청십자가 훈장을 받을 거야."
결국 은급으로 받는 구나...
나중이야 등급 높으면 장땡이지만 지금 당장은 동급이 훨씬 더 좋은데...
"제가 한 일이 은급 훈장까지 받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에요?"
"당연하지, 일단 최소 100명의 사람을 구한 거야. 그 사람들이 흑마법사들이 제물로 이용하려 했던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면 흑마법사들의 계획을 저지한 공도 있어, 몇몇 사람은 단순히 시선을 너에게 돌리기 위해서 높여서 주는 훈장이라 폄하하겠지만 나는 네가 은급 훈장을 받는 것에 대해 어떠한 이견도 없다."
이야, 우리 교수님 멋지시네, 늘 귀차니즘에 절여진 모습밖에 못 봤는데, 이렇게 멋지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교수가 되기 전엔 한가닥 하시던 분이 아니셨을까?
'성함도 모르고 있지만...'
"그리고, 너 말고 훈장을 받는 애가 한 명 더 있다."
"누구요?"
"프레스티아 헬링, 흑마법사 토벌 과정에서 보여준 위용이 장난 아니었거든, 아카데미도 졸업 못한 년인데, 전략을 짜는 것 부터 사람을 다루는 것 까지, 장난 아닌 애였어, 솔직히 훈장보다는 전공으로 치부되어야 맞을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아직 학생이라는 점 때문에 동급 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더라."
프레스티아도 훈장을 받는구나, 하긴 그녀 정도면 충분히 큰 공을 세웠겠지.
일반적인 플레이라면 대성당은 사모아가 차지했을 테고, 그쪽은 크게 활약을 못 했겠지만, 교수님의 빽을 이용해서 프레스티아를 대성당에 배치했으니, 아마 마음껏 활약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러면 프레스티아를 또 볼 수 있는 걸까?'
저번에 만났을 땐 꽤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 같은데, 과연 그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일단, 오늘은 휴식이다."
"네, 이불 펼까요?"
"뭔 이불을 펴, 내가 사줄 테니까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자. 다들 흑마법사 일 때문에 신경 많이 썼을 거 아니야. 오늘 하루 정도는 마음 놓고 놀자."
마디안의 친구들의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하긴 쟤네는 한 게 없긴하지.
"라이넬은 어디갔어?"
"개인 수련하러 갔다는 데요?"
"데려와, 이제 정신을 좀 차린 것 같은데, 그래도 노는 건 같이 놀아야 하지 않겠냐."
"넵!!"
카리스마 넘치는 교수님의 모습에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나름 재밌게 놀았던 것 같다.
교수님은 자기가 끌고 나와 놓고는 자기 서명이 들어간 종이 몇장만 하이네스한테 맡기고 떠나 셨고 하이네스의 손에 이끌려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는데 제도에 이렇게 놀 거리가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방탈출 비슷한 것도 있고, 오락실같은 곳도 있었다.
물론 전기가 아니라 마력으로 작동하는 거라서 엄청 비쌌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좋아.'
오랜만에 즐겁게 노니까 그동안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일 모래란 말이지...'
내일은 수여식때 입을 만한 옷이라도 사러 나가야 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