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꼬마 영웅1
* * *
가슴이 두근두근 하고 뛰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일이 잘못 돌아갔다면 분명 죽어버렸겠지, 다행히 상대가 멍청한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조금 아슬아슬 하긴 했지만, 오히려 좋아.'
일단 흑마법사를 쫒아낸 이상, 모든 것이 내 계획보다 좋았다.
마법 하나 세게 맞은 것 외에는 사실상 손해가 없는데 이득은 엄청났다.
내 계획대로라면 흑마법사를 쓰러뜨리는 것은 다른 동료들이었다.
우리 파티 전체가 공을 세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단순히 견습 흑마법사 6명을 쓰러뜨리는 데 도움을 주는 선에서 끝났을 상황이 흑마법사가 나타나면서 용기와 기지로 기사가 올 때까지 버틴 셈이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있던 일을 설명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청기사단장의 얼굴에 경외감이 살짝 엿보였을 정도니까,
'그리고 프레스티아의 표정도 볼만 했지.'
놀랍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표정, 무심코 웃음이 새어 나올뻔한 걸 겨우 참아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빠! 나 무서웠어."
애들이 나한테 안겨왔다. 수많은 사람이 고마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니 마음 속 어딘가가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득을 얻으려고 구한 건데 이런 감사를 받아도 되나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의도가 어찌 됐든 이 사람들을 구해낸 건 나니까.
"사람들을 구해낸 너의 기지와 용기는 충분히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너무 무모했어. 네 친구가 무사히 도망쳐서 신호를 보내주지 못했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다면 너는 분명 죽었을거다."
"때론 목숨을 걸면서라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걸요. 결국 제가 행동하지 않았다면, 여기 계신 분들 모두 흑마법사들에게 끌려 갔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제가 살 자신이 충분히 있었어요."
눈을 또렷하게 뜨고 청기사단장을 바라봤다. 이 정도면 첫 인상은 제대로 심어줬겠지.
'이제 좀 쉬어야지.'
픽하고 고꾸라 졌다.
바로 의식을 잃을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지만 한 번 쓰러져서 눈을 감으니 금방 잠이 왔다.
***
'낯선 천장이다.'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은 대사를 읇고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흑마법사의 공격에 직격한 데미지가 아직도 남아있었는지 몸이 욱씬 거리며 아파왔다.
"일어났냐?"
"아 언니야? 오랜만."
"뭐가 오랜만이야 너 쓰러 진지 한 나절도 안됐어."
그것 밖에 안됐어? 하루는 쓰러져 있을 줄 알았는데.
"미안하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어."
샤카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언니는 전략대로 행동했을 뿐이잖아.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어."
"그래도..."
"됐어, 더 얘기 하지마, 괜히 머리만 아파오니까."
주변을 훑어보니 이곳은 병원인 모양이었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도 병상이었고, 2인실인지 근처에 다른 사람도 한 명 보였다.
나보다 먼저 깨어나서 그런지 친구들도 다 저쪽에 모여 있었다.
"일어났어?"
"무릎 괜찮냐? 아까 보니까 겁나 세게 찍더만."
"괜찮아. 3주 정도만 깁스하고 있으면 된대."
"굳이 그렇게 세게 박을 필요 있었어?"
"적당히 속였다가는 절대 안 속을 것 같았거든, 무릎이 박살나서 멀리 못 도망간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안 쫓아 오지."
"그래도, 네가 내 의도를 알아줘서 다행이야."
마디안의 주변에 서 있었던 라이넬이 움찔하고 떨었다.
"아, 나 할 말 많아. 이 개 같은 년들이 내가 진짜 친구들 버리고 도망간 쓰레기로 알더라?"
"우리가 언제 그랬어?!"
"일어나지도 못하고 쓰러져 있던 나를 경멸스럽게 쳐다 보는 너희의 표정을 나는 잊을 수 없어."
"아니 진짜 그런 적 없다니까? 나는 널 믿고 있었어!"
마디안의 말은 장난이겠지, 마디안이 도망 갈 당시에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어도, 청기사단장이 마디안이 구조 신호를 보냈다고 언급했으니까.
그래도 다들 미안한 기색이 가득한 걸 보니, 의심은 하고 있었나보다?
"아무튼 진짜 위험했지? 언니가 떠나자마자 고아원 내부에 흑마법사들이 튀어나오더니 우리까지 한 번에 이동시켰잖아."
마디안이 나를 은근하게 바라봤다. 다른 애들의 얼굴이 평온한 걸 보니 미리 말을 맞춰둔 모양이다.
하긴 분노에 사로잡혀서 표식도 안 남기고 움직인 것 보다는 같이 이동한 게 더 깔끔하긴 하지.
"겨우겨우 시간을 끌어서 청기사단장님이 올 때까지 버텨서 산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야."
"그러고 보니, 슬슬 흑마법사의 본거지를 친다고 했었지?"
"아직 정확한 위치를 특정해 내진 못했지만, 너희 덕분에 흑마법사들도 생포하고, 공간이동 마법진도 분석하면 명확한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거야. 빠르면 내일 당장 공격해 갈 수도 있어."
일단 1차 공세는 수월하게 막아낸 건가?
어차피 흑마법사의 본 세력은 지방쪽에 퍼져 있지만 단단히 깨졌으니 한 동안은 제도를 노리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제물은 지방에서도 충분히 모을 수 있으니까.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일이 끝나고 나면 플레아가 훈장을 받을 것 같아."
"... 뭐? 내가 훈장을?"
"충분히 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
다른 애들도 이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건 너무 빠른데요?'
내가 이번 이벤트를 해결하면서 얻으려고 했던 것은 적당한 정도의 명성 정도였다.
제도에서 온 학생들이 흑마법사들의 손에서 사람들을 구해냈다더라 정도의 소문 정도가 퍼지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데 훈장을 받는다고?
고작 소문 정도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아무리 제국이 부패했다고 해도 훈장이 가지는 이름값이 떨어지진 않는다.
가장 낮은 등급은 동급 훈장만 받아도 제도 전체에 내 이름이 한 번 정도는 퍼져 나갈 것이고 몇몇 귀족들은 나에게 과한 관심을 가지겠지.
고작 16살 짜리 평민 남자애가 훈장을 따냈으니까, 뭔 일인가 궁금해서라도 나를 조사할 귀족들은 차고 넘치도록 많다.
"... 훈장 거부권은 없어요?"
"그런게 어딨어, 그냥 주면 주는대로 받아. 단장님이 너를 극찬하시는 걸 보니까, 다른 귀족들이 아무리 견제해도 동급 훈장 정도는 받을 것 같더라."
"내가 보기엔 은급을 받을 것 같아. 목숨을 걸고 흑마법사들의 손에서 사람들을 구해낸 소년, 그것도 엄청난 미소년이니까, 흑마법사들이 침입을 막지 못 했다는 비난을 정통으로 받고 있을 중앙파 귀족들 사이에서 너라는 존재는 관심을 돌리기에 정말 적당한 존재니까."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불안해지잖아.
'쯧... 그래, 받아도 상관 없어. 어차피 몇 달 정도 조용히 있으면 모두 관심을 끊을 테니까.'
"언니, 훈장 받을 때 가면 써도 돼?"
"안 되지. 국가에서 주는 건데."
'얼굴에 칼이라도 몇 번 박고 가야 하나...'
말이 되나, 그냥 얼굴 까고 받자. 어차피 훈장을 받는 공간엔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있지 않을 테니까, 그냥 이번에 훈장을 받은 꼬맹이가 겁나 예쁘다더라, 하는 소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할 얘기도 다 했으니까, 할 거 해야지."
애들이 내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한 쪽 무릎을 다친 마디안 까지 한 발로 콩콩 뛰어서 나에게 다가왔다.
"왜 그래 갑자기?"
"고마워 너 없으면 우리 다 죽었을 거야."
애들이 단체로 허리를 숙였다. 심지어 헤르티아까지,
'애초에 죽을 위기를 가져온 게 나잖아.'
"고마워 할 거 없어."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괜히 울먹임이 새어 나왔다.
개 같은 육체, 왜 이런거에 감동 받는 거야.
살려줘서 고맙다고 하는 건 당연한 거 잖아? 울지 마 개 같은 것아.
한 번 시작된 흐느낌은 멈출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이것도 이용하자.'
"다 살아서, 진짜 다행이야... 진짜... 한 명이라도 죽었으면, 나 진짜 못 살았을 것 같아."
작정하고 연기를 시작하니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소매로 눈물을 닦고 있으니 손수건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내 눈에 닿았다.
"ㄱ... 괜찮아. 다 살았잖아."
"고마워 미네타."
억지로 웃듯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일단, 영입을 위한 밑 준비는 다 끝난 것 같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