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흑마법사4
* * *
"아무도 없군."
분명 검은색의 신호탄이 터진 걸 확인하고 이동했다. 붉은 신호탄이 터진지도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고아원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도 없고, 학생들도 없고, 청기사단의 일원인 샤카 또한 없었다.
"단장님, 표식을 찾았습니다. 따라서 추적할까요?"
"나와 학생들은 이곳에 남는다. 너희들끼리 따라 가도록."
나를 따라 고아원으로 온 5명의 단원이 표식을 따라 이동했다.
지원 인력치고는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대성당에서 흑마법사의 흔적을 찾아낸 이후 총 공격을 준비 중에 있었기에 인력이 널널했다.
"흑마법사들의 습격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을 제물로 쓰기 위해서 이곳을 습격한 듯 보인다."
"저희도 다른 기사들을 따라 이동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붉은 신호탄이 터지고 얼마 되지 않아서 도착했는데도 아무도 없어. 정말 급박한 상황에서 신호탄을 터뜨렸다는 건데 과연 표식을 남길 여유가 있었을까?"
프레스티아라고 했던가? 그녀의 말이 맞다.
단순히 표식을 따라간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이네스, 흑마법의 흔적을 찾아줄 수 있겠나?"
"넵! 단장님."
하이네스는 정말 뛰어난 인재였다. 그녀의 수준은 청기사단에 소속된 그 어떤 마법사보다 높았으니까, 아무리 중앙파 귀족들의 견제 때문에 청기사단에 제대로 된 마법사가 입단할 수 없었다는 걸 감안해도 고작 18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하필 헬링가의 차녀의 밑으로 들어갔다는 게 정말 아쉬워.'
헬링가가 어디인가, 세력을 넓히기 위해선 제국의 안위따위는 생각하지도 않는 파렴치한 가문이다.
지금이야 표면적으로는 황실을 지지하고 있지만 황실의 힘이 약해지는 순간 이빨을 들어낼 늑대 같은 가문이다.
프레스티아도 그 헬링가의 자식이 아니랄까봐 벌써부터 눈에 야욕이 가득했다.
"대규모 공간이동 마법이 발현된 것 같습니다."
헬링가에 대한 걱정은 일단 제쳐두자, 미래에 위협적인 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긴 했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어디로 향한 마법인지 추적할 수 있겠나?"
"가능은 할 것 같습니다만,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요."
"헬링과 하비스는 주변에 다른 흔적이 없는지 살펴보도록, 아무래도 흑마법사들이 양동작전을 쓴 것 같다."
아마 흑마법사 한 명이 샤카를 다른 곳으로 떼어내고 다른 흑마법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아이들을 통째로 전이 시킨 거겠지.
놈들이 청기사단의 기본 전략을 알아내서 실행한 작전인지, 아니면 단순한 양동작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괜히 입맛이 쓸쓸했다.
'우리 기사단에도 첩자가 있는 것인가.'
"별다른 흔적은 안 보입니다. 흙길이 아니라서, 발자국 같은 것도 안 남아 있고요."
"쯧, 어쩔 수 없군, 일단 하이네스가 마법을 분석할 때까지 대기한다."
아마 하이네스가 분석을 마칠 때 쯤이면 흑마법사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이렇게 허술하게 정보를 남길 놈들이 아니니까.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과 제도의 안정을 위해 조사에 지원한 학생들이 납치 당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제대로된 마법사 한 명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카데미에서 조사단의 지도교수로 임명된 마법사라도 데려왔었어야 했나 후회가 들었다.
'아냐, 어차피 못 데려왔어...'
그 사람은 지금 흑마법사들의 본거지를 찾아내느라 바쁘니까.
지금이라도 뛰어가서 데려오는 것과 하이네스가 위치를 추적하는 것 중 어느것이 더 빠를까 고민하고 있을 때500 미터쯤 떨어진 상공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저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인데,'
"헬링만 나를 따라오도록,"
땅을 박차고 빛이 반짝인 곳을 향해 뛰었다.
순간적으로 흑마법사의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를 상대할 수 있는 흑마법사가 그렇게 흔히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흑마법사의 함정이라기 보다는 학생들이 구조 요청을 보낸 거라는 생각으로 빠르게 뛰었다.
나름 전력으로 뛰었는데 헬링도 잘 따라왔다.
1km정도는 1분도 안돼서 돌파 할 수 있는 나에게 500미터 정도는 그렇게 긴 거리가 아니었다.
"여기요!!! 여기에요!!"
빛이 번쩍 였던 곳으로 이동하니아카데미의 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팔을 벌리고 손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무릎은 깨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표정도 엄청 다급해 보이는 것이, 근처에 흑마법사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쟤는..."
헬링의 얼굴이 팍하고 굳었다.
사이가 안 좋은가?
일단 아카데미의 학생인 건 확실한 듯 싶었다.
"저기! 저기 제 친구들이 있어요!!! 일단 전 내버려 두고 저기로 가요!!"
경박한 어투와는 다르게 표정은 그 누구보다도 진지했기에 바로 방향을 꺾어서 그녀가 가르킨 건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진해지는 흑마력에 더더욱 속도를 높였다.
문도 달려있지 않은 건물로 들어가자 보인 것은 바닥에 묶여있는 수십 명의 사람과 흑마법사에게 목을 잡혀 있는, 소년이었다.
"멈춰라!!"
일단 소년을 구해야 겠다는 마음에 검을 집어던졌다.
"하필 크리스티년이..."
흑마법사가 간신히 내 검을 피해내긴 했지만 소년까지 챙길 겨를은 없었는지, 소년을 놓친 채 바닥을 뒹굴었다.
"꼴 좋다, 개 같은 년."
방금 전까지 흑마법사한테 목숨을 위협 받아 놓고는 무섭지도 않은 걸까?
얼굴에 미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 놀라며 흑마법사에게 다가갔다.
겉으로 보이는 마력으로 미루어 보아 저 년은 나보다 한 수 아래,흑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들이니까, 빠르게 제압해둘 필요가 있었다.
"내가 너는 꼭 죽인다."
악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본 흑마법사는 스크롤을 하나 꺼내서 바로 찢어 버렸다.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검은 마력에 감싸진 흑마법사는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놓쳤군..."
생포했으면 많은 정보를 뜯어낼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 되었다.
"괜찮아요. 흑마법사라면 저쪽에도 있어요."
3~4서클 내외로 보이는 흑마법사들이었는데 제물들을 옮기는 데 사용하려고 했던 대규모 이동 마법진 위에 서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근데 이 소년은 어떻게 이렇게 밝지?'
방금 전까지 흑마법사한테 위협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눈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없었다. 흑마법사를 몰아냈다는 것에 대한 기쁨? 흥분 정도만이 그의 눈에 차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당에 처음으로 들어왔던 소년이군.'
압도적인 미모에 부하들이 음담패설을 들어 놓는 걸 들었었지, 일단 징계하긴 했었지만, 작고 연약해 보이는 소년이 조사단에 지원한 걸 보고 속으로 무시했던 것도 사실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도 되겠나?"
"일단 묶여 있는 사람들부터 풀어주고 말 해드릴게요."
빠르게 움직여 묶여있는 사람들을 풀어주는 그의 눈빛에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담겨있었다.
'그래, 저런 아이도 있어야 제국에 미래가 있는 거겠지.'
나도 그를 따라서 묶여있는 사람들을 풀어줬다.
사람들을 풀어준 후 그와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다.
절대 상대할 수 없는 적을 상대로 단순히 기지만을 발휘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본인은 별거 아니라는 듯 웃고 있지만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흑마법사의 마법에 뛰어 든거지?"
"그야,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한테 시선을 돌려야 제 동료들이랑 사람들 모두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의 눈빛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그의 눈빛에, 영웅, 이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