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흑마법사2
* * *
한 바탕 난리가 지나가자 고아원은 놀랍도록 고요해 졌다.
아이가 한 명이 납치된 상황이었기에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이 정적이 풀리려면, 샤카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거나, 지원인원이 오면서 시끌해져야 겠지.
'물론 흑마법사들이 먼저 도착하겠지만.'
아까 나타났던 흑마법사 만큼 강하진 않지만 대신 수가 많다.
미리 설치해둔 마법진을 발동시켜서 모든 아이들을 납치해 가는 데,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그들을 막을 방법은 없다.
'어차피 막을 생각도 없지만.'
흑마법사들을 추적하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납치 된 것 이상의 명분은 필요 없지.
어차피 계획대로 일이 흘러간다면 아무도 죽지 않고 다치지 않는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허공이 고아원 내부의 허공이 검은 색으로 일렁였다.
차마 반응할 틈도 없이 검은 로브를 쓴 인원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많이도 투자했어.'
이런 대규모 이동마법을 두 번이나 사용하려면 그만큼 자원도 많이 필요할텐데, 어린 아이들을 제물로 사용하는 게 그 이상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는 건가?
흑마법의 세계는 알 수가 없다.
"뭐야?!"
"흑마법사들?"
모습을 들어낸 흑마법사는 총 6명이었다.
정확히는 견습 흑마법사 정도 되는 애들인데, 경지 자체가 높진 않지만 계획적으로 습격을 해온 것이다 보니 막기가 쉽진 않았다.
흑마법사들은 나타나자마자 둘로 갈라져서 3명은 우리 앞을 막아섰고 나머지 세 명은 아까 다른 흑마법사가 서있던 곳으로 다가가 주문을 외웠다.
"이것들이!!"
잔뜩 열을 끌어올린 일갈했다.
어차피 못 막는다. 흑마법사들이 고아원에 나타나고 아이들을 납치해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초가 채 안 걸리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니까.
미리 사 온 스크롤을 뜯어 마법을 시전 했다.
저장되어 있는 마법은 단순히 빛을 내뿜는 단순한 마법이었다. 때문에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싼 값에 구매할 수 있었다.
스크롤을 뜯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흑마법사들은 우리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고아원에 있던 17명의 아이와 원장님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다른 애들이 마법을 막기 위해 달려 들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 3명의 흑마법사를 뚫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이제부턴 연기를 잘해야 해.'
흑마법사들을 추적하자고 설득해야 하니까.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씹새끼들!"
가면을 던져서 바닥에 내 던졌다.
늘 평온했던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일 지는 몰랐는지 움찔 하고 떠는 여자들이 보였다.
쿵!
벽에 머리를 박았다. 연기라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진심으로 박았더니 진짜 아팠다.
골이 띵하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참아야 했다.
"ㅍ... 플레아, 진정 좀 해봐."
"진정? 지금 진정이 되게 생겼어?! 애들이 눈 앞에서 사라졌는데?"
지금 흑마법사들을 추적하러 가는 것은 굉장히 비 이성적인 행위다. 조금만 있으면 지원인력이 올 것이고 그들과 함께 가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아이들을 구출할 수 있을 확률도 높으니까.
이런 비 이성적인 행위를 합리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분노다.
원래 분노에 사로 잡힌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니까.
항상 합리적이었던 내가 갑자기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다고 해도, 어색하다고 느끼진 않겠지.
"찾으러 가자. 내가 추적 마법 걸어놨거든? 어디로 끌려 갔는지 알 수 있어."
목소리에 광기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너희가 싫으면 안 가도 돼. 그냥 나 혼자 갈테니까."
긴 말없이 고아원 밖으로 나왔다.
추적 마법을 걸어놨다는 건 거짓말이다. 공간이동을 뚫고 상대를 추적할 수 있는 마법이 담긴 스크롤은 엄청나게 비쌌고, 나한테 그런 스크롤을 살 돈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한테는 '난세'의 지식이 있었다. 놈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훤하게 알 수 있었다.
빛을 발하는 스크롤을 뜯은 이유는 단순히 애들을 설득시키기 위함일 뿐이고.
"같이가!!"
나 못지 않게 화가 난 듯 해 보이는 라이넬이 내 옆에 따라 붙었다. 헤르티아도, 미네타도, 마디안도, 차례차례 나를 따랐다.
전투능력이 없는 마디안 정도는 남아 있을 것 같았는데, 같이 움직이는 걸 보면, 얘도 많이 화가 나있구나 싶었다.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지만 신경은 라이넬과 헤르티아에게 집중했다.
많이 긴장하고 흥분한 상태라서 그런지, 표식 같은 건 전혀 남기지 않고 이동하고 있었다. 혹시 남기고 있었으면 몰래 없앴어야 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물론 우리를 지원해 오는 인력들은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어서 표식이 없어도 우리를 따라올 수 있겠지만, 샤카는 틀림없이 표식을 남기며 이동했을 것이다. 고아원에 아무도 없는 걸 보면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샤카가 남긴 표식을 따라가겠지.
'지금까지는 완벽해.'
"애들은... 어디 있어?"
"제도 외곽에서 신호가 느껴져, 제도 내에서 흑마법을 진행하진 않을 테니까, 아마 1차로 집합하는 장소인가봐."
"당장 위험하진 않은 거지?"
"아마도..."
"그래도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빨리 이동하자."
지금까지 납치한 사람들을 다 모으면 충분한 인원이 모였을 테니까. 곧 제도 바깥으로 이동할 거다.
개발자의 의도인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흑마법사들이 공간 마법으로 아이들을 납치하자 마자 바로 이동하면 딱 출발하기 전에 도착한다.
정말 극적으로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었기에, 처음 플레이 해보면 온몸에 전율이 돋을 정도였다.
정말 아무 말도 없이 움직였다.
평소의 부드러운 분위기는 버려 버린 채 냉막한 분위기 속에서 그저 걸었다.
그렇게 걷기를 5분, 흑마법사가 숨어있는 골목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오래전엔 암흑가로 이용되던 곳이었지만, 수 백년전 이루어졌던 암흑가 토벌로 텅텅 빈 거리였다.
납치한 사람을 데리고 있기에 이 곳보다 적합한 곳은 없겠지.
"거의 다 왔어."
"생각 없이 막 들어가도 되는 거야? 작전 같은 걸 짜야 하는 거 아니야?"
"정보가 너무 없어. 적의 전력도 알 수 없고, 어떻게 배치 된 건지도 몰라. 일단 들어가자마자 흑마법사들 부터 제압하자. 아까 샤카언니랑 싸우던 흑마법사 수준의 적이 있다고 해도 이 정도 전력이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위험하니까 안 들어가면 안되냐는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다들 다혈질이었고, 이런 흥분을 가라앉힐 사람은 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가장 화나 있는 상태였으니까.
'어차피 6명밖에 없어.'
게다가 경지가 모자란 흑마법사들이 힘을 모아서 공간이동 마법을 시전한다고 집중 중이라서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다.
기존 플레이 때는 쓸만한 전투인력이 라이넬과 플레이어 밖에 없어서 굉장히 긴박한 상황이 연출되지만, 지금은 헤르티아도 있고, 미네타도 있다.
고작 3서클에서 4서클 사이의 마법사 6명을 잡는 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전력이다.
"이 건물이야."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건물이었다. 크기가 꽤 크긴 했지만 오래 사용되지 않아서 외부는 굉장히 초라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면 열고 들어간다."
"그래."
쾅!!!!
분명 연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낡은 나무문이 가볍게 박살 났다.
문이 날아가자 보이는 장면은 거대한 로비에서 입과 손발을 묶인채 쓰러져 있는 사람들과 7명의 흑마법사였다.
"너희들은 누구니?"
다른 흑마법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여성이었다.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여유로웠고, 강했다.
정확한 경지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못 해도 6서클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다른 흑마법사처럼, 로브를 눌러 쓰고 있지 않았다.
당당하게 얼굴을 들어내고 있는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흠, 너는 내가 가지고 싶은데?"
탐욕이 강하게 담겨 있는 그녀의 눈빛에 내가 좆됐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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