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흑마법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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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푸른 고아원에 온지도 벌써 3일이 지났다. 매우 평화로운 나날이었고, 아이들과 놀아주며 추억도 많이 쌓았다.
이대로 조사가 끝난다면 아주 즐겁고, 좋은 기억만을 남긴 채 아카데미로 돌아갈 수 있겠지.
"대성당에서 흑마법사의 흔적을 찾아 냈데, 그쪽에서 인원을 모아서 본거지를 칠 거라고 연락이 왔어."
"그쪽 일이 마무리 되면 조사 임무는 끝나는 건가요?"
"일이 어떻게 흘러가냐에 다르겠지만 아마도 임무는 끝날 거야."
"아쉽네요. 애들을 더 보고 싶었는데."
"너희도 이제 아카데미에 돌아가야지, 각자 목표가 있어서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거 아니야. 벌써 3일을 쉬었으니까, 다른애들 따라잡으려면 부지런 해ㅇ..."
샤카의 얼굴이 우뚝하고 굳었다.
무언가를 탐색하듯 집중하는 표정을 지어보인 샤카는 빠르게 신호탄을 꺼내 들어 하늘에 쐈다.
색깔은 검은색, 지원을 요청하는 신호탄이었다.
굳은 샤카의 얼굴, 하늘로 날아가는 신호탄,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면 병신이지.
"얘들아!! 다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나와 마디안이 아이들을 데리고 건물 내부로 향했다.
평소라면 우리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을 아이들이었지만 상황이었지만 어린 아이들이어도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했는지 빠르게 건물내부로 이동했다.
이틀 전에 대피 연습을 한 번 해서 그런지 낙오되는 사람 없이 모두 대피하는 것에 성공했다.
애들이 모두 들어온 걸 파악하자 마자 문을 닫았다. 흑마법사를 상대하는 건 우리 일이 아니니까.
***
긴장감이 고아원 마당에 감돌았다.
마디안은 마법을 영창하고 있었고 라이넬과 헤르티아는 검을 꼭 잡은 채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늦게 나와라.'
샤카 기감에 잡히는 흑마법사의 수준을 유추해 보면 샤카 혼자서 잡는 것도 어렵지 않는 수준의 흑마법사였다.
아마 둘이 제대로 붙으면 5분내에 제압할 수 있겠지만 이곳엔 샤카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흑마법사가 고아원을 집중적으로 노린다면 변수가 많아진다.
지원을 요청하는 신호탄을 터뜨리긴 했지만, 지원인력이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선 아무리 빨라도 10분의 시간은 필요하다.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늦게 나와주기를 빌었는데, 흑마법사는 샤카의 생각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작은 고아원까지 기사가 배치되다니... 참 귀찮네."
검은 색 로브를 깊게 눌러 쓴 여성이었다. 겉으로 풍기는 마나를 읽어 봤을 때 수준은 5서클, 샤카 혼자 상대해도 충분했다.
"너희들은 절대 공격하지 말고 방어에 집중해."
"네!"
검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흐릿한 검기가 검에 깃들었다.
"나 싸우러 온 거 아니거든? 그냥 제물 좀 구하러 온 거니까 비켜주지?"
"여기를 지키는 게 우리 임무다!!!"
"꼬마야, 어른들 대화하는 데 끼어들면 안 된단다."
흑마법사의 손에서 검은 불길이 치솟더니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샤카를 향한 공격은 아니었다. 청기사단에 정식으로 소속되어 있는 기사라면, 흑마법사가 처리 할 수 없는 수준의 강자일 테니까.
그녀가 노린 것은, 샤카의 주변에 있는 아카데미의 학생들, 아직 햇병아리일테니, 적당히 4서클 정도의 마법만 써도 충분히 리타이어 될 거란 생각으로 미리 저장해 뒀던 마법을 날렸다.
아마 이곳에 있던 학생들이 평범한 학생들이었다면 그녀의 노림수는 먹혀 들었을 것이고 혼자 남은 샤카를 따돌리고 미끼로 쓸 아이 몇 명을 납치한 채 달아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곳에 있는 3명의 여학생은 평범한 학생들이 아니었다.
라이넬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은 불길을 가볍게 베어냈다. 검기라고 불리기엔 아직 조금 모자라지만 푸른 마나가 깃들어있는 그녀의 검격에 흑마법사의 불길은 손쉽게 사그라 졌다.
헤르티아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은 불길에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라이넬 처럼 마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달리 할 수 있는 행동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력은 약해도 육체적 능력은 뛰어났다. 분명 4서클의 마법에 직격했음에도 그녀는 멀쩡히 서 있었다.
미네타는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 흑마법사의 마법을 없애 버렸다. 미네타는 마법의 명가인 하이네스가의 차녀였다. 어릴 때 마법을 배운 이후, 오랜만에 다시 배운 마법이었지만 이미 그녀의 경지는 일반적인 4서클을 넘어서 있었다.
'뭐 하는 새끼들이야?'
당연히 쓰러질 걸로 생각하고 날린 일격인데, 세 사람 모두 멀쩡히 서 있었다. 덩치 큰 년은 타격을 입은 듯 조금 비틀거리는 게 보이긴 했지만 다른 두 명은 멀쩡해 보였다.
물론 라이넬과 미네타 모두 짧은 시간 동안 집중력을 끌어올려 흑마법사의 마법을 막아낸 것이기에, 긴장감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엔 아주 멀쩡했다.
'계획을 바꿔야 겠는데?'
학생들을 모두 쓰러뜨린 후, 청기사와 조금 투닥거리다가 적당히 3명 정도의 미끼를 데리고 도망가려 했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저장 되어 있는 마법을 사용해 눈 앞에 보이는 건물 안으로 이동했다.
마력의 흐름을 읽어보면 흑마법사가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손쉽게 알 수 있겠지만, 상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은밀함이 아니라 신속성이었으니까.
'어떤 놈이 가장 저항이 적으려나?'
갑자기 나타난 흑마법사의 모습에 울려퍼지는 비명 속에서 빠르게 내부를 스캔했다.
아무나 한 명 집어서 도망치면 되지만, 되도록이면 저항이 적은 애가 옮기기도 편할 테니까.
건물 내부를 한 번 훑은 흑마법사의 눈에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기묘한 남자였다. 분명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음에도 그 아름다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았다. 몸만 봐도, 그가 엄청난 미남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손을 뻗다가 곧바로 멈췄다.
그의 심장에서 마나로 이루어진 링이 회전하는 것이 느껴졌다.
단 하나 뿐인 링이었지만,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고 도주해야 하는 데, 괜히 마법사를 납치해서 변수를 늘릴 필요는 없었다.
쾅!!!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여자애 하나를 들었다.
숨겨 놓은 자루를 꺼내서 아이를 그 안에 담은 뒤 가지고 온 마석을 바닥에 떨궜다.
워낙 작고 어두운 색이어서 그런지, 자세히 보지 않는 한 큰 티가 안 났다.
다시 마당으로 순간이동했다.
"제물은 잘 받아가겠다."
혹시라도 안 따라오면 큰일이니까, 도발을 한 번 날린 후 제도의 밖을 향해 뛰었다.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고, 청기사단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어."
당장 흑마법사를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지난 3일간 고아원에 많은 정을 쌓았으니까. 고아원의 아이가 흑마법사한테 잡혀서 제물로 이용된다는 생각을 하니까 참을 수 가 없었다.
그리고 기사단에서 내린 명령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흑마법사의 습격이 있을 경우 흑마법사의 제압을 최우선으로 하고, 혹시 흑마법사가 도주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기사 혼자서 추적할 것,
유인일지 아닐지, 위험한 상황일지 아닐지는 기사가 판단해야 할 몫이었다.
라이넬에게 붉은 신호탄을 던지고 뛰었다.
마법사 주제에 왜 이렇게 잘 뛰는 지 아슬아슬한 거리가 계속 유지 됐다.
속으로는 유인이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 느껴지는 다른 흑마법사의 기척은 없었으니까. 기감을 최대한으로 전개하고 따라 가다가 다른 흑마법사가 느껴지면 그 때가서 멈춰도 늦지 않겠지.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5분? 10분? 빈민가와 연결된 제도의 성벽에 다다라서야, 흑마법사는 멈춰 섰다.
"여기 까지 따라오느라 고생 많았다."
흑마법사는 웃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작전이라는 듯, 아이를 넣은 자루를 털썩 하고 내려놨다.
"얘는 놔 줄게. 제물을 20명 가까히 구했는데 한 명 정도는 양보해 줄 수 있지."
흑마법사는 스크롤 하나를 꺼내 들고 찢었다.
비싸고 만들기 어렵다고 소문난 텔레포트 스크롤을 흑마법사가 어떻게 가지고 있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흑마법사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설마 진짜일까? 거짓말이겠지? 거짓말이 아니어도, 기사단이 출동해서 막아 냈을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불안감에 떨고 있는 심장 박동을 억지로 눌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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