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35화 (35/312)

〈 35화 〉 푸른 고아원­7

* * *

"아, 맥주 땡긴다..."

"아서라, 임무 중에 무슨 술이야, 심지어 애들도 있는데..."

"그렇겠지? 마시면 안 되겠지?"

먹을 만큼 먹었는지 먹는 속도가 느려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먹다 보니, 크게 배부르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정신 차리니 고기 3kg이 증발해 있었다. 내가 먹은 건 200 g이 안됐을 테니 전부 여자들 뱃속으로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조금 더 꺼낼까?"

"됐어. 슬슬 밤인데 이제 정리하고 잘 준비해야지. 애들은 이미 다 자러 들어갔다."

안 자고 더 논다는 애들을 재우느라고 고생 좀 했지.

"그런데, 잠은 어떻게 잘 거야?"

"원장님이 창고로 쓰던 방을 정리해 두셨다고 하셨어, 아까 한 번 보니까 6명 다 같이 잘 만한 크기는 되더라."

"무슨 소리야, 플레아 너는 다른 데 가서 자야지, 설마 우리랑 같이 잘 생각이야?"

방이 생각보다는 꽤 넓었지만, 건장한 여성들 5명이 들어가고도 여유가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살과 살이 부딪힐 정도로 좁진 않았지만, 조금 뒤척거리면, 옆의 있는 사람이 그 움직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나야 괜찮지만, 여자애들은 불편할 수도 있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써야하고.

"그거라면 걱정 하지 마, 텐트 사왔으니까, 플레아만 실내에서 자고 여자들은 밖에서 자면 돼."

"그러면 됐네."

내가 밖에서 자는 게 낫지 않나? 여자는 5명이고 남자는 나 혼자인데 나 하나 불편하게 자는 게 낫지.

"그냥 내가 밖에서 잘게, 나 하나 편하자고 5명이 불편해 하는 건 싫어."

"너 같이 약한 애가 어떻게 밖에서 잔다고 그래."

"맞아, 그냥 안에서 자."

"완전 밖에서 자는 것도 아니고, 텐트에서 자는 거잖아."

내가 강하게 의지를 표명하자 여자애들, 심지어 샤카랑 헤르티아까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가 불편해서 그래. 어떻게 여자가 돼서 남자애를 밖에서 재우냐? 너를 밖에서 재웠다간 걱정돼서 하나도 못 잘 것 같으니까. 그냥 안에서 자."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있는 라이넬의 말에 결국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먹은 걸치우고 접시를 설거지 하고, 장비를 모두 걷어내니 어느새 12시가 가까워왔다.

"그러면 지금부터 불침번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두 번 말 안 하니까 잘 들어라."

밥을 먹으면서 많이 친해져서 그런지 샤카의 어투가 내가 아는 샤카의 어투와 완전히 같아졌다.

"2인1조로 각 조당 2시간 40분씩 불침번을 서면 돼. 오늘 중간에 깬 조는 내일 첫 번째에 배치해 줄테니까, 불평하지마."

"샤카언니! 저는 플레아와 같은 조를 하고 싶습니다!"

"가장 약한 2명이 같은 조가 돼서 어쩌자는 거야. 너는 라이넬과 같은 조야."

나는 샤카랑 같은 조겠지? 이 팀에서 최강자랑 최약자니까, 당연스러운 일일거다.

"플레아는 누구랑 같은 조인가요?"

"나."

"우우!! 권력 남용이다!!!"

"입 다물어!"

"켁!!"

샤카의 주먹이 마디안의 정수리에 꽃혔다.

벌써 저렇게 장난을 칠 정도로 칠 정도로 친해졌나? 하긴, 샤카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것도 오히려 늦은 거지.

"불침번이라고 해도 할 것이 그렇게 많진 않아. 고아원에 누군가가 직접 침입하면 내가 못 알아차릴리가 없으니, 20분 간격으로 고아원을 돌면서 수상한 인물이 고아원을 주시하고 있지는 않은 지 확인하면 돼."

"만약 수상한 자를 발견하면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나한테 보고해야지. 절대로 너희끼리 접촉하려 하지 마, 잘 못하다간 큰일 난다."

아직은 햇병아리 취급이네.

"그러면, 오늘 첫 불침번은 헤르티아 조..."

샤카가 말을 하다말고 나를 흘끔 쳐다봤다.

"아니다. 그냥 나랑 플레아가 먼저 불침번을 서겠다. 다들 불만 없지?"

"네!"

첫 순번을 양보하고도 다들 불만하나 가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는 남녀역전 세상이라고 해도, 크게 신경 안쓰고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남자로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살리면서 살아볼까?

"그러면, 이제 잘 준비 하도록."

"넵!!"

애들은 텐트를 치러 가고 샤카는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깨어있을 땐, 네가 굳이 경계할 필요 없어. 그냥 편하게 앉아있어."

"그러면, 대화나 할까요? 모처럼 한 임무를 같이 하게 됐는데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자.

"그렇게 치는 거 아니야!"

"몰라 대충 해!"

애들끼리 텐트를 친다고 난리를 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나?"

"더 알아야 할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친해지고 싶긴해요. 아까 마디안 때리시는 거 보니까 마디안과는 이미 친해지신 것 같던대요?"

내가 지긋이 바라보자 샤카가 내 눈빛을 피했다.

우리샤카 아주 귀여워? '난세'였으면 뭘 꼴아보냐고 일갈했을 텐데.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맨 얼굴 까고 있었으면 기절했겠네.

"남자랑 여자의 차이가 있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다른 애들이랑은 친하게 지내시면서 저랑은 거리를 두고 계시면 조금 마음 상해요."

문장 사이에 적절한 공백과 낮은 어투만 있으면 없는 서러움을 창조해 낼 수 있다.

"내가 어떻게 대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냥 다른애들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아서라, 금방 울게 뻔한데, 어떻게 그러냐."

"저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요."

아주 가볍게 기세를 일으켰다. 나의 진면목을 아직은 파악하지 못하게. 잠깐의 위화감 선에서 멈출 수 있도록, 아주 짧은 시간동안.

"하아, 그래 알겠다. 그러면, 일단 누나라고 불러봐. 마디안 같은 경우는 가끔 나를 언니라고 부르거든? 그만큼 친해지고 싶으면 호칭도 가까워져야지."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샤카의 볼이 붉으스름하게 변해있는 모습이 상상 같다.

'누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줄 알아?'

"알았어요. 언니."

"어?"

"그냥 저도 언니라고 부를게요."

현실에서 연상의 남성을 형이라고 부르는 여성들이 은근히 많다. 아주 많다고는 못하지만 살다 보면 한 두 번은 꼭 마주칠 수 있는데, 이를 남녀역전 세계에 대입하면 내가 연상의 여성을 언니라고 불러도 아주 이상하진 않다는 소리지.

물론 내 입에서 언니라는 소리가 나온다는 것 부터가 약간 혐오스럽긴 했지만,

"언니도 그냥 저를 여자애 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저도 그게 편해요."

"어... 그래."

"아니면 아예 말까지 놀까요? 마디안이랑 둘이 있으면 그냥 편하게 말하잖아요."

적극적으로 다가가면서 몰아 붙이자 정신이 없었는지, 샤카는 지성 없이 응, 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면, 앞으로는 나도 편하게 말한다."

"너... 이런 애였냐?"

"응, 원래 이런애야. 남자 같지 않고, 활달하고, 말이 굉장히 많지. 그냥 여자 동생이라고 생각해도 아무런 문제 없어."

진짜로 여자처럼 대해주는 걸 기대하진 않는다. 같이 다니는 친구들 조차, 아직 나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니까.

나보고 실내에서 자라고 밀어 넣는 건 신체적인 차이에 대한 배려라고 쳐도, 아직은 나한테 조심스러운게 미소녀 3인방들이었다.

아마 한 학기는 같이 지내야 애들도 내 모습에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길어야 1주일 같이 지낼 샤카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는 건 옳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앞으론 진짜 편하게 대한다?"

'오, 눈빛이 진심인데?'

그래, 이래야 샤카지.

"너는 왜 가면을 쓰고 다니냐? 그런 외모라면 그냥 뽐내고 다녀도 상관 없잖아."

"제도에서 가면 벗고 다니다가 납치 당할 뻔 한적이 있거든."

거짓말은 아니다. 아무렴.

"뭐? 납치?! 청기사단이 있는데 제도에서 남자를 납치하려 하는 멍청이가 있다고?"

"귀족이었어. 청기사단 정도는 무섭지 않다는 걸지도 모르지."

샤카가 이를 까득하고 가는 소리가 들렸다.

"개 같은 귀족새끼들, 제도가 자기 껀줄 아나."

흥분해서, 험한 말을 내뱉는 샤카를 보는 내 눈이 좁아졌다.

'확실히 많이 달라졌어. 원래는 세상일엔 관심도 없던 여자였는데.'

"후우, 미안하다. 우리 오빠도 제도에서 좀 나쁜 일을 당해서, 괜히 이입해 버렸네."

'그것 때문이구나?'

샤카가 '난세'에서와는 다르게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며, 귀족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이유가 그곳에 있을지도 몰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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