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푸른 고아원6
* * *
"우리왔어."
"오늘 저녁은 바비큐 파티다!!!"
태양을 보니 4시쯤 된 것 같군. 하는 마음으로 시계를 보니 5시 21분이었다.
젠장.
'생각보다 늦게 왔네?'
분명 장만 보고 왔을텐데 왜 이렇게 오래걸렸을까? 쟤네들만 보냈으면 몰라도 원장님도 같이 가셨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애들은 낮잠 시간 이라길래 건물 안에서 곤히 재워놔서 애들의 방해 없이 장을 보고 온 두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살 게 좀 많아서 늦었지."
슬쩍 쳐다보니까 마디안과 미네타의 양손 가득 짐이 들려있었다.
'뭐지? 어지간한 조리기구는 다 있으니까 숯이랑 꼬치, 고기랑 야채 정도만 사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뭘 그렇게 많이 사왔어?"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니야."
당당하게 말하는 마디안을 지나쳐서 원장님을 바라보니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고 있었다.
"원장님이 말리시지 않든?"
"원장님이 우리 돈 쓴다고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같아서 걱정하지 말라고 잔뜩 사왔지."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됐다, 어차피 지들 돈이니까 내가 신경쓸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얘들한테 회계 업무를 맡길 것도 아니니까 이런 사치에 굳이 간섭하지 말자.
"얼마나 사왔는데?"
"고기만 따지면 10킬로 그램?"
1인분을 보통 200그램으로 잡긴 하지만, 미소녀 3인방은 한참 클 때니까 4~500그램씩은 먹을 것이고... 샤카나 헤르티아 선배도 그쯤 먹겠지? 애들은 200그램은 먹을 수 있으려나?
애들이 18명이고...
간단하게 계산해보니 5키로 에서 넉넉하게 사봤자 6키로 정도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진짜 미친년들인가.'
아니 채소도 같이 먹을 건데 고기만 10키로그램을 사 온다고?
10키로그램이라고 말하니 감이 잘 안 잡히는 이들을 위해 부연 설명을 하면 600그램이 한 근이다. 그러니까 16근 하고도 400그램을 사 온 거지.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마디안이 자신의 가슴을 땅땅 두드렸다.
"다 먹을 수 있어!"
미간을 부여잡았다.
"라이넬 너도 뭐라고 한 마디 해줘."
"응? 무슨 말을 해?"
무슨 문제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라이넬을 보니 머리가 한 층 더 아파오는 것 같았다.
"... 너무 많이 사온 것 같지 않아?"
"플레아는 남자라서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한 번 먹으려 하면 진짜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어. 내가 아카데미로 오기 전에 스승님이 고기 파티를 열어 주셨는데, 그 때 20명이서 고기 30근을 먹었거든."
거긴 기사 지망생들이 있는 곳이잖아. 너희들이랑 여기 있는 애들이랑 같냐?
믿었던 라이넬 마저 저런 반응을 보이니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아 졌다.
'그래, 남으면 내일 아침에 국이라도 끓이면 되겠지.'
"일단 고기는 반만 꺼내,"
"왜? 괜히 번거롭지 않게 한 번에 다 꺼내는 게 낫지 않아?"
"부족 하면 더 꺼내면 되니까 반만 꺼내!"
되도록이면 애들이 일어나기 전에 저녁준비를 완료하고 싶었기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꼬치를 구울 작은 모닥불을 설치하고 그냥 불판에 구워 먹을 장소도 만들었다.
힘 쓰는 일은 여자들이 맡아서 하려 했기에 나는 원장님과 같이 꼬치들을 꽂았다.
고기와 채소에 밸런스를 맞춰 꼬치를 만들고 있다 보니 원장님이 나에게 말을 거셨다.
"고마워요. 흑마법사들의 위협에서 저희를 도와주러 오신 분들인데,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음식도 준비해주시고..."
"아니에요. 저희도 즐겁운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좋은 걸요. 그리고, 감사인사는 쟤네들한테 하세요. 결국 이 재료들을 구매한 건 쟤네들이니까요."
"제가 산다고 해도 얼마나 극성을 부리면서 말리시던지..."
"저희 맘대로 한 건데 부담을 드릴 수는 없죠."
어느새 다가온 마디안이 활기차게 말했다.
마디안의 뒤쪽을 슬쩍 바라보니불판에는 이미 고기가 올라가고 있었고모닥불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꽂아 놓은 거 가져가서 굽고 있어."
쟁반에 쌓아 놓은 꼬치를 눈으로 흘기며 말했다.
들어서 건네 주고 싶었는데 살짝 들어 보니까 팔이 후들거리더라.
"애들 깨울까?"
"글쌔? 안 깨워도 될 것 같은데?"
고기 냄새를 맡은 건지 아니면 깰 때가 된 건지 애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맛있는 냄새!"
"이거 뭐에요?!"
불판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샤카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애들은 정말로 귀여웠다.
내가 짜 놓은 전략을 수정하고 싶은 욕망이 잠시 차올랐지만, 금방 가라앉혔다.
어차피 죽는 것도 아니니까.
"오늘 저녁이지, 많이 사왔으니까, 눈치 보지 말고 맘껏 먹어라."
즐거운 파티였다. 고기가 구워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터라 애들끼리 다투는 경우도 간혹 있었지만 애들끼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중재를 하니, 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애들을 다 먹이기 전에는 고기를 먹을 만한 여유가 없어서 한 시간 정도 다같이 굶은 건 조금 고역이었다.
눈앞에 맛있는 음식이 있는데도 먹지 못 하다니...
"언니 아 해!"
"아아,"
다른 애들은 아이들이 주는 고기라도 받아 먹었지만 나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것 조차 여의치 않았다.
'다음 부터는 입이 뚫린 가면을 사야지.'
그래도 한 시간쯤 지난 후 부터는 애들도 배가 찼는지 더 고기를 찾는 아이들이 없어서 우리한테도 시간이 났다.
잘 익은 꼬치 하나를 골라 들었다. 가면의 아래쪽을 살짝 들어 꼬치를 입안에 넣으니 고기와 채소들이 동시에 입에 들어오며 나에게 행복감을 선사해줬다.
"맛있다."
"그러게."
한 5분? 정도는 다들 말 없이 먹기만 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배 고픈 상태에서 아이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고만 있었으니까.
귀여운 아이들이 행복하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있으면 나는 너희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육체는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질러댔으니까.
"마디안이랑 하이네스한테만 너무 부담을 준 것 같네. 이거 다 너희가 산 거잖아."
"괜찮아. 그렇게 부담 되는 가격도 아니고."
"그래도, 라이넬이랑 샤카 선배님한테는 돈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디안이 딱딱해 보이는 어투로 말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 딱딱하게 말하고 있어요. 라고 티내는 어투로,
실제로 진지하진 않지만 진지해 보이게 말하는 어투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되게 신기한 말투였다.
"플레아랑 헤르티아 선배야 평민이니까, 이런 지출이 위험할 수 있지만 샤카 선배랑 라이넬은 아니 잖아?"
"야, 나도 평민이거든?!"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지만, 풀어진 분위기 때문일까? 평소라면 딴지 걸지 않고 돈을 줬을 라이넬이 볼멘 소리를 냈다.
"말만 평민이지 위대한 기사인 데안느님 밑에서 수학한 기사잖아? 당장 쓸 수 있는 돈만 따져도 나랑 비슷할 거아니야."
틀린 말이 아닌지 라이넬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마디안 쟤는 말싸움을 꽤 잘 한단 말이지.
"얼마나 주면 되냐?"
"총 80실버 나왔으니까 20실버만 주시면 돼요."
"콜록!! 콜록!!"
"괜찮아?!"
뭐? 80실버? 왠지 고기 맛이 돼지가 아닌 것 같더라니, 소고기를 이만큼 사 온거야?
등을 두들겨주는 미네타의 손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솔직히 즐거운 추억이었고 재밌었다. 솔직히 내 주머니에서 20실버가 빠져나간다고 해도 엄청나게 아깝진 않았다.
단지 80실버라는 엄청난 금액에 놀라서 기침을 한 것 뿐이지.
이렇게 비싼 고기를 사올 줄 알았으면 나도 돈을 냈지.
"선배님? 이건 금화인데요?"
"당연히 내가 사야지, 어떻게 후배한테 얻어 먹냐."
"아니에요. 그냥 20실버만 주세요."
물 한잔 꼴깍 삼키고 오니, 자기가 전부 내겠다는 샤카와 마디안 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 저거 본 적 있어. 회식자리에서 자기가 계산하려고 하는 아저씨들이잖아.'
보통 계산하는 분이 어떤 카드를 집냐에 따라 결정 나는 승부인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계산을 진행해 줄 사람이 없다.
"받으라니까!"
결국 샤카가 마디안의 손을 강제로 열고 금화를 올려 놓으면서 이 실랑이는 마무리됐다.
"남은 20실버는 너희들 노는 데 써라."
"하지만..."
"내 월급이 12골드야 임마! 1골드 정도는 하나도 안 아까우니까, 그냥 받아."
"알았어요..."
마디안이 묘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은건 기분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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