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푸른 고아원4
* * *
"네, 행정반 소속입니다."
"전투 능력은 없다고 판단해도 되겠지?"
"최근에 서클 하나를 심장에 새기긴 했지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실 겁니다."
하지만 다른 정보를 다 알고 있지, 흑마법사들이 어떻게 공격해 오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디로 도망가는 지, 나는 전부 알고 있다.
"왜 조사임무에 지원했는지 알 수 있을까?"
그나저나 진짜 어색하네. 오늘 밤 불침번 같이 묶어 달라 그래서 확실하게 친해져야지.
저런 딱딱한 어투를 쓰는 샤카는 더 보고 싶지 않아. 몸이 오그라 든다고.
"제도의 안정을 지키기 위해서죠."
정론적인 대답을 내 놓았다. 제도를 위해, 더 나아가서는 제국을 위해, 내가 제대로 된 군주로 자리 잡기 이전에 가장 많은 명분으로 사용될 말이며, 군주가 되고 나서도, 제국에 충성을 받치는 것을 명분 삼아 움직일 일이 많겠지.
제도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일관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아카데미 학생으로서, 제도가 위험에 빠졌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요."
어차피 가면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연기했다.
단어 하나를 말하는 데도 가볍게 말하지 않았다, 최대한 진심으로 느껴지게끔, 목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했다.
혼신을 다한 연기가 의미가 있었는지 나를 바라보는 샤카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친구들이랑 놀러 나온 남자애, 잘 봐줘도 고아원에 봉사하러 온 남자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얘가 진심으로 흑마법사를 막기 위해 지원했구나, 라는 느낌으로 나를 바라봤다.
대부분의 기사단이 중앙파 귀족의 손길에 타락하거나 귀족들의 견제로 움직이기 힘들어 했지만 청기사단은 달랐다.
제국에 대한 충성이 뿌리깊히 박혀있는 기사단이니까. 거기에 다른 귀족들의 견제를 상대적으로 덜 받았기에 이번 조사임무를 주도 하게 된거고.
샤카가 아무리 껄렁하고 대충 산다고 해도, 청기사단 소속이니 만큼 제국에 대한 그녀의 충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제도를 위해서 봉사하러 왔다 말하는 나를 안 좋게 볼 순 없겠지.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 마음 절대 잊지 말도록."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 샤카를 보니 내 마음도 편안해 졌다.
일단 첫 인상은 좋게 잡은 것 같네.
가면을 살짝 들어서 남은 음식을 모두 먹었다.
플레아의 위는 가변성인지, 프레스티아와 함께 먹었을 때는 많이 들어가던 위가, 지금은 적당량을 먹었는데도 충분히 배불렀다.
설마 남녀역전 세계라고 내 위의 개수도 늘어난 걸까? 현실에서 여자의 위는 여러 개라고 하던데.
"점심은 아이들이랑 같이 드실 거죠?"
"그래야 겠지. 고아원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좋아, 아무리 근엄한 기사 행세를 하고 있지만 네가 애들이 달라붙으면 본 성격을 들어내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럼 저는 들어가 볼게요."
가면을 완벽하게 고쳐 쓴 뒤 안으로 들어갔다.
***
"오늘 하루는 다른 기사들한테 어떻게 조사 하는지 배우도록 해."
"알겠습니다!"
'대성당이라, 운이 좋군.'
흑마법사들의 간땡이가 얼마나 큰지 제국에서 황궁 다음 가는 건물인 대성당을 공격해온 것이 불과 5일 전의 일이다.
대성당을 지키는 신성기사들이 있었지만 큰 역할을 해내진 못 했다.
신성력을 잃어버린 제국에서 신성기사단이란 기사 중에서도 가장 못난 쭉정이들이나 들어가는 곳이니까.
정식기사단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은 되지 못하고, 주군도 구하지 못한 기사들이 최후에 가는 곳, 그곳이 신성기사단이었다.
따라서 신성기사들이 흑마법사를 막지 못한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워낙 건물이 넓어서 모든 곳을 전부 지키고 있을 수도 없던 일이고.
아무튼 대성당에 배정된 것은 운이 좋았다. 황궁을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건물인 대성당에 배치 됐기에 청기사단의 인원도 많았으니, 아마 흑마법사의 단서를 찾아낸 다면 이곳에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겠지.
그리고 나도 익스퍼트의 경지에 다다른 만큼 1인분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투자한 시간 대비 괜찮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 테지.
"아카데미에서 온 이들인가?"
'역시 이곳에 있을 줄 알았어.'
가장 중요한 곳이니 만큼, 기사단장까지 직접 배치 됐다.
"네, 크리스티님."
확실히 대단한 인재였다. 고작 27의 나이에 기사단장까지 오른 실력이 거짓된 것 이 아니라는 듯,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대단했다.
손에 넣고 싶다.
그녀 뿐만이 아니라 청기사단을 통째로 집어 삼키고 싶었다.
지금 당장은 내가 그녀보다 밑에 있지만 5년 정도의 시간만 있어도 이 관계는 역전 시킬 수 있었다.
미리 밑밥을 깔아 놓을까?
아니야. 다른 곳도 아니고 청기사단이잖아. 지금은 너무 일러.
제국을 향한 청기사단과 크리스티 가문의 충성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었다. 제국의 명이라면 불길 속으로도 뛰어들 수 있을 정도로 충성심이 높은 이들,
아직 제국이 건재한 지금으로서는 절대로 마음을 돌릴 수 없겠지.
"솔직히 이곳에 아카데미 학생들이 온다고 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배움외엔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네. 굳이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배움에 초점을 맞추려고 충고해 주려고 했지. 이곳은 가장 많은 전력이 집중된 곳이니 말이야."
셀레나의 시선이 우리를 쑥 훑고 지나갔다.
"그런데 자네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네, 너희들 정도라면 우리 기사단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재들이란 생각이 들었네."
당연하지, 내 세력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만 끌고 왔는데,
순수한 무력면으로 따지면 우리 조가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하다.
소드 익스퍼드 2 명, 익스퍼드를 목전에 둔 이가 2 명, 5서클 마법사가 한 명, 솔직히 신성기사 5명과 붙어도 할 만한 전력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일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도록, 모르는 것이 있다면 어떤 기사에게 물어도 상관 없다."
그 말을 끝으로 셀레나는 다시 청기사단을 지휘하러 갔다.
기사단장은 바쁜 위치니까, 우리한테 이렇게 격려를 하러 온 것도 어렵게 시간을 낸 것일지도 모르지.
"우리 인정 받은 모양인데?"
미레바가 옆에서 떠들었다.
다른 이들은 직접 기사들에게 배울 수 있다는 마음에 긴장돼서 입을 못 열고 있었는데, 미네바는 평소처럼 잘도 재잘 됐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조사단의 지도교사를 맡은이가 미네바의 스승이라고 했나?'
알짜배기 장소를 손에 넣은 이유가 미네바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을 세운 부하에겐 상을 줘야 하는 법.'
"미레바언니, 우리가 대성당에 배치된 거, 언니가 힘 쓴거지?"
"아니, 내가 한 거 아닌데?"
미레바가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무슨 일이 있긴 한 모양인데? 가볍게 기세를 풍기자 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교수님이 지도교사를 맡으신 건 플레아의 부탁 때문이야."
"그러면, 우리가 대성당에 배정받은 건 교수님이 가장 강한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미레바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우리 교수님은 귀차니즘이 심하셔서 절대 이런걸 하지 않으셔, 당연히 나한테 시키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무런 지시를 받은 게 없으니 아마 플레아가 배정한 거겠지."
기특한 일을 했군.
"그 놈은 어디에 배정됐지?"
"제도 외곽의 작은 고아원, 흑마법사가 나타났던 곳도 아니야."
나에게 대성당이라는 자리를 주기 위해 일부러 교수에게 지도교수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이 배치를 맡은 건가?
나에게 빠져있는 놈이긴 해도 머리는 좋은 놈이라고 판단했는데 굳이 제도 외곽의 고아원에 들어가기 위해 그런 수고를 감수할 필요는 없었겠지.
'상을 내려야 겠군.'
주인님께 애교를 부린 애완동물에겐 상을 줘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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