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31화 (31/312)

〈 31화 〉 푸른 고아원­3

* * *

한 두 명도 아니고 고아원의 총 인원의 3분의 1은 되는 애들이 나한테 얼굴을 보여 달라고 하고 있으니, 온 고아원의 관심이 나한테 집중됐다.

'안 된다고 한다고 쉽게 물러날 애들이 아닌데...'

말을 안 듣는 것은 저 나이 또래는 모두 가지고 있는 공통된 사항이었기에,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쉽게 감을 잡지 못 했다.

안 된다고 해도 애들이 들을까?

"얘들아 오빠 괴롭히면 안 되지. 오빠가 싫어 하잖아."

"왜요? 얼굴도 보여주면 안돼요?"

"오빠가 크게 다쳐서 얼굴에 상처가 많아서 그래."

마디안의 말 한 마디에 애들이 눈물기 어린 얼굴로 나를 올려다 봤다.

내가 한 거짓말은 아니지만 애들의 순진한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괜히 가슴이 찔렸다.

"미안해요. 오빠."

"미안해요..."

대장아이가 나한테 사과하자. 다른 애들도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괜찮다면서 애들을 달래주고 마디안을 바라보니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들고 있었다.

마디안이 생각외로 애들을 잘 다루는 모양이다. 말투도 애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부드러웠고, 내 얼굴이 맛탱이가 갔다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부드러운 말투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으니까.

집안에 나이 어린 동생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지.

당장 아까 애들 놀아줄 때는 30분도 못 버티고 뻗어버렸으니까.

"아침은 드시고 오셨나요?"

애들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원장 할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7시 반부터 기숙사에서 나온 상황이라 아침을 먹을 겨를이 없던 우리는 입을 모아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아이들이랑 같이 식사라도 하는 건 어떠신가요?"

"좋아요!!"

어른의 제안엔 한 번은 거절하는 게 예의라고 했지만, 내가 한 번 거절하기도 전에 마디안이 크게 대답해 버렸다.

"괜히 부담을 드리는 건 아닐지..."

"괜찮습니다."

라이넬의 우려에 푸근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시는 원장님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 졌다.

역시 한 번 정도는 거절하고 걱정을 해야, 마음이 편해.

"그러면, 안으로 들어오시죠."

고아원의 내부는 상당히 깨끗했다. 할머니가 과거에 꽤 잘 나가시던 분이셨는지 제도 외곽의 고아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

바닥도 푹신한 재질로 깔려 있어서 애들이 다치지도 않을 것 같았고, 장난감 같은 것도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고아원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돈이 상당히 깨졌을 거라는 건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식탁이 아니라 커다란 상 하나에 음식들이 많이 올려져 있었는데 혼자서 저 많은 걸 다 하신 걸 보니, 왜 지금까지 애들을 우리에게 맡기고 고아원에서 나오지 않으셨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

"여러분들이 아이들을 봐주셔서, 오늘은 빨리 음식을 내올 수 있었네요."

"우와.... 이걸 다 하신 거에요? 진짜 대단하세요. 할머니!!"

근데 뭔가를 잊은 것 같은데...

'아, 가면을 쓰고는 밥을 못 먹는 구나.'

어쩔 수 없지 뭐, 나가서 따로 먹어야 겠다.

"제가 남들 앞에선 가면을 못 벗어서 그러는데 따로 먹어도 될까요?"

"네, 상 하나 차려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굳이 번거롭게 안 그러셔도 돼요."

밥과 반찬이 주식인 한국이라면 몰라도 빵이 주식인 이곳에선 한 사람 정도는 굳이 상을 차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샌드 위치 같은 거 먹는 데 굳이 상이 있을 필요는 없잖아?

빵 하나에 반찬 몇 가지를 올린 후 밖으로 나갔다.

애들이 아쉬워하면서 따라오려고 했지만, 이젠 애들이 익숙해진 친구들이 잘 막아줬다.

특히 라이넬이랑 헤르티아 선배는 애들이랑 몸을 부대끼며 놀아서 그런지 몸으로 막는 것도 거림낌 없이 하더라.

아프게 막는 것도 아니고, 단순이 몸을 잡는 것 뿐이라서, 애들도 꺄르르 웃고 있는데, 괜히 가면을 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같이 먹을까 고민하다가, 다시 돌아가서 앉는 것도 어색할 것 같아서 밖으로 나갔다.

마당 한 켠에 앉아서 가면을 벗으려고 할 때 묵묵히 검을 휘두르고 있는 샤카의 모습이 보였다.

'보면 볼수록 적응 안 된단 말이지.'

내가 아는 샤카라면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땅바닥에 드러눕고 쿨쿨 자고 있어야 하는 데 말이지.

'난세'의 샤카는 자기가 해야할 일 정도는 다 하는 사람이었지만, 딱 그것만 하는 사람이었다. 저렇게 자다가도 흑마법사들이 공격해 오면 귀신 같이 일어나서 재빠르게 상황 파악을 끝냈고, 불침번 같은 걸 할 때에는 자기는 커녕 졸지도 않던 사람이긴 했지만, 굳이 해야 할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제복이 더럽혀 지면 안 되니까 안 자는 게 아닐까?"

충분히 합리적인 가정인걸? '난세'에선 예비기사라 제복이 없어서 맘편하게 누워서 잤던거지.

"기사님은 같이 안 드실 거에요?"

"어, 나는 아침을 먹고 나왔다."

딱딱한 어투 겁나 어색해!

몰라, 불침번 때 계속 얘기하고 있으면 다시 내가 알던 샤카의 모습으로 돌아오겠지.

가면을 살짝 들고 빵을 앙 하고 베어물었다. 제빵점에서 사온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아서 인지 푹신푹신하고 맛있었다.

빵 위에 올려진 고기 조각까지 한 번에 입에 베어무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맛있네.'

입에 들어온 음식을 씹는 동안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니 샤카가 흘끔흘끔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갭이 엄청나네.'

남녀역전 세계인 만큼 지금까지 내가 만나 온 인물들의 성격이 달라진 건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여리기만 했던 라이넬이 나름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프레스티아의 경우도 지금은 대놓고 군주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가식으로 보여주는 모습 또한 쾌활하고 멋진 숙녀를 연기하고 있지만 '난세'에서 프레스티아는 누가봐도 아가씨, 를 떠올리게 되는 모습을 연기하며, 실제 성격도 살짝 거리가 있다.

군주라는 기본틀은 동일하지만, 당당함이 아주 살짝 사라지고, 음습함이 추가 된다고 할까? 아무튼 존나 예뻤다.

프레스티아는 어떤 모습이어도 이쁘니까.

프레스티아 주접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샤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면라이넬과 프레스티아와 비교했을 때 '난세'와의 차이가 많이 컸다.

일단 샤카의 기본 성격인 껄렁함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고, 남자한테는 관심도 없던 인간이 누가봐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행동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자를 남자로 안 본다고 할까? 여자든 남자든 친근하게 대하던 샤카가 저렇게 나를 흘끔거리는 걸 보면 어색함이 엄청났다.

물론 남녀역전 세계니까 그런 걸 수도 있다. 현대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남자가 여자한테 관심을 갖는 것이 여자가 남자한테 관심을 갖는 것 보다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런데 샤카라는 여자의 성격이 조금이라도 유지가 됐다면 그녀가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말이 안됐다.

'난세'에서도 같은 기사반이고, 재능이 보이는 라이넬과 먼저 친해진 뒤, 플레이어랑 친해지니까.

매력이 높아져서 관심을 가지는 거 아니냐고? '난세' 에서의 플레아도 충분히 미남이었다.

그런 미남한테도 껄껄 웃으면서 장난식으로 때리기도 많이 했던 인간이 저렇게 수줍어 한다고?

'뭔가 있어.'

수많은 플레이와 스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샤카에 대한 정보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단 밥부터 먹자.'

급식보다는 맛이 떨어지긴 했지만, 집밥 느낌나서 그런지 속은 더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후배는 행정반 소속인가?"

머리 바로 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언제 다가왔는지 샤카가 바로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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