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푸른 고아원2
* * *
"언니!! 나도 비행기 태워줘요!"
"나도나도!!"
"오빠! 안아줘!"
"으아아아아앙!! 나 먼저야!"
'어질어질 하네.'
이곳은 혼돈의 도가니다.
푸른 고아원에 도착한지 30분밖에 안 지났는데 애들이랑 노느라 진이 다 빠졌다.
처음에는 애들 즐거우라고 같이 뛰기도 하고, 지금 라이넬이랑 헤르티아가 하는 것 처럼 비행기도 태워줬지만 금방 힘이 빠져서 가만히 서서 안아 달라는 애들이나 안아주는 상황이 돼버렸다.
'근데 왜 나한테만 오니?'
저기 마디안도 있고 미네타도 있는데 왜 나한테만 붙는 거야...
'라이넬이랑 헤르티아 안 데려왔으면 큰일 날뻔했네.'
기사반이라 그런지 애들을 그렇게 놀아주고도 멀쩡해 보였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흘끔흘끔 입구쪽을 바라보니 꽤 먼 거리에서 다가오고 있는 기사 한명이 보였다.
청기사단 자체가 전장에 나서는 기사단이 아니라 제도의 치안을 지키는 기사단이니 만큼, 무거운 중갑이 아닌 군데 군데 철갑으로 보호가 되어있는 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응? 다른 사람이 오나?'
'난세'의 조사 임무에서 푸른 고아원을 담당하는 기사는 늘 한 명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소아 샤카, 제국 북부 태생으로서 제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청기사단에 예비기사로 입단한 여자.
그래, 예비기사다. 정식적으로 기사로 받은 자가 아니면 제복 같은 공식 복장을 입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제복을 입고 푸른 고아원으로 다가오는 저 기사가 소아 샤카일리는 없겠지.
"다들 일찍오셨네요."
'소아 샤카 맞는데?'
라이넬 만큼 자주 보진 않았지만, 라이넬 다음으로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이면서, 아카데미에서 졸업하자마자 청기사단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인재다 보니, 어쩌다 호감도작이 잘되면 한 번씩 영입해 봤기에 그녀의 얼굴은 익히 알고 있었다.
세상 귀찮다는 듯, 반쯤 감겨 있는 눈동자. 칠흑이라는 수식어 까지는 어울리지 않지만 어두컴컴한 색의 머리카락, 회색의 눈동자까지, 그냥 소아 샤카 그 자체였다.
"오늘부터 여러분을 인솔하게 될 청기사, 소아 샤카라고 합니다."
'이것도 남녀역전의 영향인가?'
무력이 상승해서 정식기사로 입단하게 된건가?
순간적으로 욕심이 일었지만 관뒀다. 예비기사면 몰라도 정식기사를 꼬셔서 빼내는 건 불가능 하니까. 어쩌다 영입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큰 지탄을 받겠지.
"제도 아카데미 출신이면 내 후배들일텐데 그냥 편하게 불러도 되지?"
"네!!"
헤르티아가 가장 먼저 소리쳤다.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하듯 흐려진 눈빛이 땡글땡글하게 변해 있는 걸 보니, 샤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는 모양인 듯 했다.
하긴 샤카가 3학년때 헤르티아가 1학년이었을 테니, 잘 아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소문 정도는 들었겠지. 졸업하자마자 청기사단에 입단할 정도의 천재니까.
"목소리 마음에 드네, 지금부터 너희들이 할 일을 알려줄게. 두 번 안 말할거니까 한 번에 잘 들어라."
샤카가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 누나는 진지한 표정보다는 껄렁한 표정을 짓는 게 훨씬 잘 어울리는 데 말이지.
"우린 지금부터 조사가 종료 될 때까지 이곳을 지킨다. 되도록이면 6명 전부 있어야 하겠지만, 음식 조달이나 생필품 구매 같은 걸로 이동할 때도 최소 4명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해."
진지한 표정의 샤카.. 어색해!
"당연히 불침번도 있어야 한다. 2인 1조로 편성할 건데, 불침번에 대한 자세한 사안은 이따가 다시 고지하도록 하지."
자주쓰지 않는 말투라 어색했는지, 굉장히 딱딱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별다른 지시가 없으면 흑마법사가 나타나기까지 최소한의 경계만 하면서 애들이랑 놀아주면 돼, 이 고아원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라서 내 기감으로 전부 커버가 되거든, 경계한다고 긴장하고 있을 필요는 없어."
"역시 샤카 선배님, 대단하세요!"
"근처 구역에서 흑마법사가 나타나면 지원하러 갈거야. 이 때 주의할 점은 너희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거야. 흑마법사들의 전투력이 그렇게 높진 않을 거란 보고가 있긴했지만, 너희 같은 고급인력이 다치면 국가적인 손실이니까. 위험한 일은 청기사들한테 맡기고 너희는 보조에 집중하도록"
'싫은데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공을 세울 생각을 해야지.
"그리고 만에 하나, 이곳에 흑마법사들이 나타난다면, 온 힘을 다해서 저지하도록, 제도의 외곽이라서 신호탄을 쏜다고해도 금방 지원이 오진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싸워, 어차피 내가 곁에 있으니 너희가 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애들이 다치지 않게, 혹시 흑마법사들한테 납치 당하지 않도록 지키도록."
"흑마법사들이 공격해 왔다가 도망가면 추적하나요?"
내 질문에 샤카가 잠시의 틈도 없이 즉답했다.
'난세'에선 잘 못 외워서 한참을 생각하던데 정식기사가 됐다고 책임감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 추적하지 않는다. 너희는 이곳에 남겨두고 나만 따로 이동할 거야."
다행이 청기사단의 대작전에는 크게 변한 부분이 없는 모양이다.
"혹시 선배님이 흑마법사를 추적하러 가신 사이에 다른 흑마법사들이 이곳을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나요?"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지만, 다른 구역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최대한 버티도록,"
"지원이 오기 전에 흑마법사가 도망치면, 추적할까요?"
샤카가 잠시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더니, 설마 그런 일이 있겠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대신 표식을 남기면서 추적을 이동하도록 해, 어떻게 하는 지는 알지?"
라이넬과 헤르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기사반애랑 같이 다니는 게 편하다니까.
"근데 너, 왜 가면을 쓰고 있지?"
샤카가 의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설마 친구끼리 안 붙었다고 다른 조에 합류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플레아 아이데스 맞습니다."
"큰 문제가 없다면 가면을 한 번 벗어봐. 조사가 계속 되는 동안은 내 부하일텐데, 얼굴도 모를 순 없잖아."
샤카가 충전해 놓은 진지가 점점 사라져 가는지 말투가 점점 편해졌다.
애들한테는 안 보이는 각도를 찾아서 몸을 비틀었다. 지금은 샤카가 기사로서 기세를 뿜고 있어서 가까이 안 다가올 뿐 설명이 다 끝나기만 하면 바로 앵겨붙어 올 애들인데, 어린애들인 만큼 예쁜 오빠를 보면 엄청 난리가 날 것 같았으니까.
가면을 벗고 샤카를 바라봤다.
"헙!"
그렇게 놀랍나? 샤카 볼에 미묘한 홍조까지 새겨졌다.
침을 한 번 꼴깍 삼키는 모습까지 그대로 보였다.
다시 가면을 쓰니, '아' 하는 탄성이 명확하게 들렸다.
내가 좀 예쁘긴 하지.
솔직히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 번에 반해서 고백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실제로 사모아 파벌의 압박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는 근래에는 신발장에서 러브레터가 한 두개씩 나오고 있었으니까.
고이 접어서 안 사귄다는 말을 최대한 순화하고 돌려서 길게 답장을 쓴 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줬다.
프레스티아가 사귀자고 하는 게 아니면 나는 누구랑도 사귈 수 없다.
"크흠.. 왜 가면을 쓰는 지 알 것 같네. 앞으로도 되도록이면 벗지 말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개인적으로 수련을 할테니, 애들과 놀아주도록."
'수련은 개뿔 잠이나 자겠지.'
빠른 걸음으로 마당의 구석으로 가서 들어눕는 샤카를 상상했는데, 이게 왠 걸 진짜로 검을 들고 휘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책임감이라는 건가? 그렇게 껄렁하고 모든 걸 귀찮아 하던 샤카가 저렇게 변하다니, 정식기사라는 위치가 가져오는 부담감이라는 게 있긴 한가 보다.
달라진 샤카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을 때 내 다리를 톡톡치는 감각에 뒤를 돌아봤다.
내 뒤에는 6명쯤 되는 여자애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우리도 얼굴보여줘!!"
"보여줘어어!!!!
이걸 어떻게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