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푸른 고아원1
* * *
카르멘이 손을 열자, 불투명한 색이었던 큐브가 연두색 빛을 발하며 빛나고 있었다.
"사용하면 어지간한 공격은 전부 막아줄 거야 설마 친구 이모가 몸 조심하라고 만들어준 것도 비싸다고 안 받지는 않겠지?"
당연히 받아야죠. 당신은 미네타랑 다르게 영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으니까.
바로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조금 과한 인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롱하게 빛나는 저 큐브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생각해보면 엎드려서 절을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저렇게 명확하게 색을 띄는 큐브는 적은 마나로도 높은 위력을 낼 수 있다. 공격 마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방어마법이라고 해도 이 정도 영롱함이면 골드 단위는 우습게 받을 수 있을 거다.
'물론 팔 생각은 없지만.'
선물로 받은 물건이기도 하고, 당장은 큰 돈이 그렇게 필요가 없다. 혹시 모를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서 들고 다니는 게 낫겠지.
"어지간하면 쓸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써야 한다?"
"아줌마! 제 건 없어요?"
"돈 주고 사렴."
카르멘에게 받은 큐브를 가방 깊숙한 곳에 넣었다.
의외의 소득에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근데 이제 슬슬 내려가야 하지 않겠니? 라이넬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넵!"
짧고 강하게 대답을 한 뒤 1층으로 내려갔다.
라이넬은 이미 계산까지 끝냈는지 못 보던 가방 하나를 멘 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이 아랫쪽으로 눌려있는 걸 보면 안에 물건도 꽤 많이 든 모양이었다.
'역시 기사반이 이래서 편하다니까?'
알아서 척척 준비하고 얼마나 좋아? 이래서 내가 라이넬을 애정하지.
"그러면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또 오렴!"
카르멘의 배웅을 뒤로 하고 잡화점을 떠났다.
그리고 뭐했냐고? 임무 전날의 휴식을 마음껏 즐겼지. 마디안이 계속 외쳐댔던 마카롱 가게에도 갔고, 제도를 돌아다니며 놀다가 저녁까지 같이 먹고 해산했다.
'알차게 보냈네.'
큐브에 마법하나를 저장해 놓고 가볍게 씼은 뒤 침대에 눕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나를 덮쳐오는 것이 수마가 아니라 프레스티아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
아카데미에서 흑마법사들의 흔적을 조사하는 팀은 총 28개 였다. 그 중에서 5개 조가 흑마법사가 나타난 구역을 담당하고 나머지 23개 조가 흑마법사가 나타날 위험이 있는 구역을 담당했다.
어떤 팀이 어느 장소를 전담할지는 지도교수인 우리 교수님의 몫이였다. 즉 내 마음대로 짤 수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공을 세울 확률이 가장 높은 건 흑마법사가 나타난 구역을 조사하는 팀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지원한 팀 뿐만아니라, 제도의 기사단 까지 나서서 같이 일을 하니까, 선배들한테 실무에 대해서 배울 수도있겠지. 그래서 프레스티아와 사모아 등, 고위 귀족들의 조를 그 쪽으로 배정했다.
솔직히 프레스티아의 조를 일부로 이상한 곳에 배치해서 그녀가 화를 내는 모습을 한 번쯤 보고 싶었지만, 자칫하면 내 목숨이 날아갈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일이어서 관뒀다.
'슬슬 나갈까?'
집합시간은 9시였고 미리 약속하기로 한 시간까지도 1시간이나 남았지만, 미리 나가도 상관은 없었다. 대신 아카데미 입구에서 애들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해서 그렇지.
사야 하는 물건도 어제 몰래 구매하는 것에 성공했으니 다른데 가지 않고 아카데미의 입구에서 서 있으면 된다.
방안에서 누워있어봤자 더 졸리기만 할 뿐이니까.
프레스티아의 수련장에 놀러갔을 때 썼던 가면을 쓴 채로 밖으로 나섰다.
아직 시간이 1시간이나 남았는데 조원들이 모두 정문 앞에 모여있었다.
"뭐야, 다 모였으면 나오라고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어."
"아직 1시간이나 남았는데, 다 모였다고 부를 순 없잖아."
"선배도 일찍 나오셨나요?"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게 꼴보기 좋았다.
"어떻게 한거야?"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요. 우연히 붙은 거지."
"100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너랑 내가 같은 조가 됐다는 게 말이 돼? 교수한테 따로 말한 거 아니야?"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교수님을 움직이겠어요."
힘이 없어서 강제로 조를 짜는 신세가 되어 버렸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헤르티아 였지만 그렇게 바라보면 뭐 할건데? 확증 없잖아!
"그러면, 슬슬 이동할까요?"
"우리가 가는 곳이 푸른 고아원이라고 했었나?"
"응, 빈민가 근처의 작은 고아원이야."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고 1주일도 지나지 않아 흑마법사들이 손을 뻗어오는 곳, 굳이 나 같은 고인물이 아니더라도, 왠만한 '난세'의 플레이어들은 다 아는 핫 플레이스였다.
다른 곳으로 조사를 가봤자 흑마법사가 나타날 확률은 낮고, 그렇다고 이미 흑마법사들이 나타난 곳으로 갈 경우 추적에 성공하더라도 청기사단이 공을 전부 먹어버린다. 물론 흑마법사들을 잡는 데 일조했으니 나름의 명성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역시 직접 흑마법사를 때려 잡는 것 만은 못 하다.
그에 반해 푸른 고아원은 어떤가? 1주일 안에 100%흑마법사가 등장하며, 청기사단이 개입하기 전에 공도 많이 세울 수 있다. 결국 최종적인 뒤처리는 청기사단이 하겠지만, 가장 크게 이득을 보는 건 우리다.
물론, 흑마법사들이 공격해 왔을 때 충분히 상대가 될만한 인력이 필요하긴 했지만 '난세'에서의 라이넬 한 명만으로도 어떻게든 커버가 됐는데, 지금은 헤르티아와 미네타까지 있는 상황이니 과하면 과했지 부족하진 않을 거다.
"그러면 출발합시다!"
걸어서 가면 20분은 족히 걸리는 곳이니까 부지런히 걸어가야 한다.
고아원으로 걸어가는 도중에는 의도적으로 헤르티아와 말을 섞지 않았다. 내가 그녀를 필요로 해서 말을 건다는 인상을 심어주긴 싫었으니까.
아쉬운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은 여기든 현실이든 똑같은 일이었다.
한참을 걸어서 고아원에 도착한 시간이 8시, 아직 1시간이나 남은 만큼 기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넓지 않은 마당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것은 잘 보였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경계하면서 멀찍히 떨어지는 게 상당히 귀여웠다.
"얘들아, 여기 어른 안 계시니?"
"선생님은 잠시 장 보러 가셨어요."
아직 8시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장을 보러가? 굉장히 부지런하군.
"나간지 꽤 되셨으니까 금방 오실거에요."
애들사이에서 대장역할을 하는 아이가 가장 앞에 서서 우리에게 말했다.
이런 세세한 곳에서도 남녀역전세상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게 난세에서는 분명 남자아이가 대장이었는데 지금은 여자아이가 대장역할을 맡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오신 분들이신가요?"
그렇게 기다리길 5분, 머리가 새햐얗게 센 할머니 한 분이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고아원을 향해 걸어왔다.
인상도 날카로운 편이고, 말투도 조금 음습한 것이 사실 흑막인 고아원 할머니 같은 인상이었지만, 가진 자산을 다 정리하고 고아원을 차리신 정말로 착하신 분이었다.
"할머니!"
애들이 저렇게 밝은 얼굴로 할머니를 반기는 모습만 봐도 이 할머니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는 쉽게 알 수 있지.
"흑마법사들의 공격을 막기위해서 파견된 거긴 하지만, 실제로 이 고아원이 공격당할 확률은 굉장히 낮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저희의 손이 필요하면 언제든 시켜만 주세요."
친구들의 표정이 조금 떨떠름 해지긴 했지만, 뭐 어때, 좋은 일 하는 건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