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28화 (28/312)

〈 28화 〉 쇼핑을 하자­3

* * *

"죄송합니다!"

"아니야, 실수 좀 할 수도 있지."

마디안이 엎어버린 물건은 다행이도 엄청나게 중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격자체는 그렇게 싼 편이 아니지만, 어지간하면 손상이 잘 안되는 물건이라서 그냥 다시 쌓으면 되는 정도?

마디안이 엎은 것이다 보니, 종업원이랑 같이 쌓기 시작했는데, 나는 잘못이 없으므로 마디안 따위 버려버리고 나 살 것을 찾아 떠났다.

'근데 뭘 사야 하냐...'

반드시 사야하는 물건이 있긴 했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오기도 했고, 괜히 미리 정보가 있었냐는 의심을 사기는 싫었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정체를 숨긴 채 따로 구매하고 싶었다.

그러면 남은 건 마법을 보조해주는 마법 물품 정도인데플레아는 기본적으로 행정캐이기 때문에 이런 마법물품을 사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군주로서 가신들에게 하사품을 내릴 때는 완전 고급물품 위주로 사다 보니 가성비가 좋은 마법물품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여기가 현대였으면 손가락 몇번만 움직여도 가지고 있는 금액별 최고의 성능을 금방 뽑아낼 수 있었겠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냥 적당한 지팡이나 하나살까?'

마법사용 지팡이는 가격이 비싼 게 정석이지만, 여기가 마탑도 아니니 아마 싸구려 지팡이 밖에 없겠지.

지팡이들이 모여있는 구역으로 걸어갔다.

역시 지팡이는 지팡이인건지, 아무리 싸구려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있었다.

"지팡이 사려고?"

"네, 이번에 마법에 막 발을 들여서요."

마디안이 물건을 쏟는 바람에 3층으로 올라온 카르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 아줌마한테 물어볼까?'

원래 가게 주인한테 물건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건, 호구 당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설마 조카 친구한테까지 사기를 치진 않겠지.

"혹시 쓸만한 지팡이를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잠시만 기다려 보렴."

카르멘이 전시되어 있는 지팡이를 쭉 훑어보더니, 적당한 길이의 나무 지팡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 어떻니? 그렇게 고급품은 아니지만, 초심자가 사용하기에 적당할 거야. 마나 저항이 작아서, 마력은 약한 편이지만, 그만큼 마법을 쉽게 쓸 수 있지."

"얼마에요?"

"얼마 안 해. 50골드 정도?"

'난세'의 1골드는 현대의 백만원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 여느 판타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화폐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지.

50골드, 한화로 5천만원이나 되는 큰 돈이다. 내가 만약 귀족이고, 장래에 유망한 마법사를 꿈꾸며 수련을 해 나가는 상황이라면 50골드라는 돈을 투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비싼 건 비싼 값을 하니까, 아마 아카데미 내내 써도 부족함을 느끼진 못 하겠지.

근데 나는 마법사가 꿈이 아니다. 아무리 잘 성장해도 5서클도 도달하지 못 할텐데 비싼 지팡이를 쓸 이유가 어딨어?

애초에 수중에 있는 돈이 40실버도 안된다.

아니 애초에 50골드나 하는 지팡이가 왜 있는 건데? 아무리 규모가 크다고 해도 여긴 잡화점이잖아.

"그, 혹시 더 싼 건 없나요?"

"으음, 잠시만 기다려 봐."

카르멘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다시 올려놓고 구석에 있던 지팡이를 하나 꺼내들었다.

"우리 가게에 있는 가장 싼 지팡이야 가격은 20골드."

뭐야 왜 이렇게 비싸? 원래 지팡이라는게 아무리 싸구려라도 저렇게 비싼 가격인건가? 아닌데, 분명 게임에서 잡화점에 10실버로 파는 지팡이를 본 적이 있는데?

"혹시 하나에 10실버 정도 하는 싸구려 지팡이 같은 건 없나요?"

"없지, 내가 아무리 언니랑 사이가 안 좋아도, 하이네스라는 성이 있는데 어떻게 내 가게에 그런 싸구려를 가져다 놓겠니?"

아 맞다, 이 사람도 하이네스 였지, 하긴, 마법의 명가의 일원이 운영하는 곳인데 아무리 잡화점이라도 질이 떨어지는 물건을 들여놓진 않겠지.

'내일 다른 데 가서 사야겠다.'

"혹시라도 다른 곳에서 살 생각이면 그런 생각은 접어두렴."

카르멘이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값싼 지팡이는 당장 쓸 땐 마법의 위력이 강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결국 마나가 잘 못 길들여져서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야, 그런 물건은 용병들이나 쓰는 거란다."

"저는 마법사가 될 생각이 없는데요."

"그래도 안 돼, 마법사가 될 생각이 없다고 해도 일단 마법을 배웠다면 계속 배워나갈 거잖아?"

"그건 그렇죠."

"괜히 마나가 상하면, 잘 배우지도 못 하게 될 수도 있어."

쩝... 저렇게 까지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지팡이에 대한 미련을 버려내고 있을 때 쯤, 카르멘이 자신을 따라 3층에 올라온 미네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말하면서도 몇 번씩 눈치 주더니 왜 저러는 거지?

"우리 조카는 잠깐 나 좀 볼까? 친구는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렴, 물건 구경도 좀 하고."

그러더니 미네타를 끌고 다른데로 사라져버렸다.

할 것도 없어서 지팡이나 구경하기를 잠시, 카르멘과 미네타가 다시 돌아왔다.

"내가 지팡이 사줄까?"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히고 있는 미네타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카르멘,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충분히 유추가 되는 상황이었다.

'점수 좀 따보라고 시켰나?'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받을 생각이 없는데.

나는 최종적으로 미네타를 내 밑에 두고 싶은 사람이다. 내가 미네타한테 선물을 주진 못할 망정 내가 선물을 받아? 그건 말이 안되지.

내가 살 수 있을 정도로 값싼 물건을 선물 받는 거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엄두도 못 내는 비싼 물건을 선물 받는다?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사준거라고 하더라도, 우리 둘 사이의 관계의 우위가 어디로 넘어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니, 안 사줘도 돼."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돼, 그렇게 큰 돈도 아니고."

큰 돈이 아니긴 개뿔, 아무리 하이네스가의 일원이라고 해도 해도 너 같이 어린 애의 지갑에서 갑자기 50골드가 빠져나가는건데 부담이 안 되겠냐?

"됐어. 내가 마법사가 될 것도 아니고 이렇게 비싼 지팡이 같은 건 필요 없어."

미네타가 더 말하기 전에 대화주제를 바꿨다.

"아줌마, 혹시 10실버 내외로 살 수 있는 1회용마법 물품 같은 것도 없어요?"

약간의 기세를 담아서 카르멘을 바라봤다.

만약 카르멘이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면 머리 위에 나 지금 궁서체야, 라고 궁서체로 써 있는 글씨를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 있긴 하지, 완전히 1회 용품은 아니고 몇 번 정도는 쓸 수 있는 거지만,"

"그러면, 그런거나 추천해 줘요. 위기 상황에서 쓸만한 걸로요."

내 진지한 얼굴 때문인지, 아니면 미네타의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미네타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괜히 속으로 끙끙 앓다가 상처 입을 것 같으니까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한 번 풀어줘야지.

말없이 카르멘을 따라 이동하니, 드디어 정리를 다 끝냈는지 기지개를 쭉 피고 있는 마디안이 보였다.

"나 끝난 거 알고 보러 온 거야?"

"아니, 물건 보러 왔는데? 원래 사려던 물건은 못 사게 되서, 아줌마한테 추천 받으려고."

카르멘이 진열대에서 정육면체 모양으로 포장되어있는 물건을 꺼냈다.

"혹시 큐브라고 들어봤니?"

"네, 들어본 적 있어요."

찢으면 바로 발동되는 스크롤의 하위호환, 마나를 흘려 넣어야 하고, 저장되어 있는 마법에 따라서 다르지만 발현자의 실력도 필요한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 편리함 때문에라도 한 두개씩 있으면 나쁠 건 없는 물건이었다.

"고위 마법을 저장해 놓은 큐브는 가격이 꽤 나가지만, 여기서 파는 큐브는 전부 빈 큐브들이야. 하나에 1실버 정도면 충분히 살 수 있어. 위기 상황에서 사용하는 게 목적이라면, 미리 큐브에 마법을 저장해서 사용하는 것도 괜찮지. 고위 마법사들한테는 직접 발현하는 마법이랑 큐브로 사용되는 마법의 편차가 너무 커서 의미가 없지만, 너 같은 초보 마법사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약한 마법이라면 여러 번 담을 수도 있으니까 가성비도 그렇게 나쁘지 않지."

"좋네요. 5개만 주세요."

당장 내일 일이 벌어지진 않을 테니까. 하루에 하나씩 전력으로 마법을 저장시켜 놔야지.

"다해서 5실버다. 큐브를 보관하는 가방은 서비스로 줄게."

허리에 맬 수 있는 작은 가방을 보너스로 받았다. 안을 슬쩍 살펴보니 작게 홈이 파져 있어서, 다량의 큐브를 정리해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돈을 내고 큐브를 받은 후 바로 포장을 뜯었다.

폭이 1센티 정도 되는 정육면체가 모습을 들어냈다.

"사용하는 방법은 알고 있니?"

"네, 알고 있어요."

"요것도 서비스."

카르멘이 방금 내가 포장을 뜯은 큐브 하나를 손에 쥐었다.

마법을 저장시켜 놓는 듯 잠시 집중하더니 손안 에 있던 큐브가 연두색으로 빛났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