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26화 (26/312)

〈 26화 〉 쇼핑을 하자­1

* * *

"아우... 졸려라..."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졸림을 이겨내고 눈을 뜨니, 애들이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뭐지? 단체로 병이라도 걸린건가?

아니면 자고 있는 내가 너무 귀여워서 심쿵 해버린건가?

'그럴리가 있나... 급하게 온다고 뛰어와서 심장을 잡고 있는 거겠지, 라이넬이면 몰라도, 미네타나 마디안은 육체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니까.'

"미안, 어제 잠을 못 자서."

잠깐 잔 것 뿐인데 몸이 축 늘어졌다.

어떻게든 일어나긴 했는데 몸이 비틀비틀 거렸다.

'괜히 잤나, 더 졸리네...'

"괜찮아?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차라리 기숙사 들어가서 잘래?"

"아냐, 너희들 불러내고 나 혼자 도망쳐서 자는 것도 미안하고, 괜히 지금 잤다가, 내일 이 시간에 졸리면 큰일이잖아? 밤까지 버텼다가 그 때 자려고."

팔 다리를 쭉 뻗고 기지개를 펴니, 잠이 좀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야! 너 뭐해?!"

마디안 달려들어서 내 팔을 잡아 내렸다.

"왜? 그냥 기지개 편건데?"

"너 지금 배 보였다고, 아무리 우리가 편해도 외간 여자한테 맨살 함부로 보여주는 거 아니야."

아, 나 지금 사복입고 있지? 제복 입고 있으면 와이셔츠를 바지에 넣고 있는 만큼 아무리 움직여도 맨살이 보일 일은 없어서 방심하고 있었다.

"미안, 사복 입고 있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 너 진짜 큰일 나."

"알았어,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 배고파."

천천히 걸어서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다른 애들 수업 할 시간에 이렇게 아카데미 밖으로 나오는 거 기분 째지지 않냐."

"오히려 안 좋은 거 아냐? 남들은 강해지고 있을 때 나는 제 자리 걸음이라는 의미니까."

"가끔 쉬는 건 오히려 배움에 도움이 되거든?"

"그 가끔이 주말..."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마."

마디안이 검지손가락을 양쪽 귀에 넣은 후 에베베 거렸다.

처음 만났을 때는 분명 점잖고 부끄러움 많은 애였는데 애가 점점 미쳐가는 것 같았다.

라이넬과 마디안의 만담을 내버려 두고 하이네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이네스는 아침 이미 먹었지?"

"어? 으응..."

그치, 안 먹었을리가 없지. 내가 아는 미네타, 그러니까 '난세'에서 미레바 하이네스로 등장하는 여자는 다른 건 몰라도 하루 3끼는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챙겨 먹는 여자였으니까.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두 자매의 사이가 나쁘지는 않은 걸 보니, 미네타가 미레바를 강제로 계승한 건 아닌 것 같고, 언니쪽에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확률이 높은데, 슬슬 대비를 해야겠다.

괜히 미레바가 죽거나 사라져서, 미네타가 미레바를 대신 산다면서 프레스티아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

"근데 뭐 먹을거야?"

"저번에 얘기했던 데 갈래?"

"어디?"

"마카롱가게 새로 오픈 했다고 했잖아. 거기 가자."

라이넬의 표정이 썩은 나뭇가지라도 씹은 듯 굳었다. 미네타의 표정도 그건좀... 이라는 듯 굳었고 아마 내 표정도 굳었겠지.

"어떤 미친 인간이 마카롱을 아침으로 먹어?"

"울 오빠."

"그건 너희 오빠가 이상한거야."

역시 라이넬, 탈룰라 정도는 통하지 않는 다는 건가?

"마카롱은 점심까지 먹은 다음에 후식으로 먹으러 가자. 아침부터 단 걸로 배를 채우는 건 내 위가 용납을 못 한데."

"아침으로 먹는 마카롱이 얼마나 맛있는데..."

마디안의 말은 가볍게 묵살 됐다. 나도 라이넬도 미네타도, 아침으로 마카롱을 먹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러면 뭐 먹을 건데?"

"글쌔... 가볍게 국밥이나 먹을래?"

그렇다. 이 세계는 판타지 세계인데 무려 국밥이 존재하는 놀라운 세계였다!

역시 K­게임, 아무리 드립성이라도 서양 배경에 국밥을 집어 넣다니, 놀랍기 그지 없다.

'국밥? 좋은데?'

제대로 된 한식을 안 먹은지도 너무 오래됐다. 아무리 물가가 비싼 제도라고 해도, 국밥까지 비싼 가격은 아닐테고, 뜨끈한 국물로 배를 채울 생각을 하니 벌써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야..."

"그... 남자애도 있는데,"

"아,"

애들이 갑자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왜? 나는 국밥 좋은데?

"역시 다른데 가는 게 낫겠지?"

"왜? 나는 국밥 좋은데?"

나를 바라보는 애들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돼. 라는 표정이라고 할까? 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진짜라니까? 왜 그렇게 보는데?"

"아니, 남자애가 국밥을 좋아한다고 하는 게 좀 의외여서..."

"남자애들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아? 레스토랑 같은 데 가는 게 훨씬 낫잖아."

너희가 어디를 데려가도 프레스티아가 데려가준 곳 보다 안 좋을텐데 뭘,

조금씩 흐릿해지는 현실의 기억에서 하나의 드립을 꺼내 올렸다.

"레스토랑 같은 데를 왜 가냐? 그 돈이면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을 몇그릇이나 사 먹을 수 있는데?"

애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 마디안은 엄청 크게 벌어져서, 주먹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 메뉴는 국밥으로 결정! 안내는 라이넬이 해, 나는 제도에 무슨 음식점이 있는지 잘 모르거든."

"어어, 알았어."

라이넬이 안내해준 국밥집은 맛이 꽤 괜찮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음에도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미네타는 진짜 안 먹어도 괜찮아?"

"응, 집에서 먹고 나왔거든."

"이 기집애, 그냥 플레아 보러 나온 거구나?"

미네타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마 미네타가 밥을 안 먹고 나왔으면 국밥집이 아니라 레스토랑에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남작밖에 안되는 마디안과, 평민인 라이넬, 나와는 다르게 미네타는 무려 하이네스가의 차녀였으니까, 아마 국밥 같은 건 한 번도 먹어본 적 없겠지.

"그러면,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해 볼까?"

"일단 잡화점 부터 가자, 거기서 사야할 게 많아."

오, 라이넬, 늠름해! 멋져! 믿음직스러워!

"아는 가게 있어?"

"스승님의 친구 분이 운영하시는 잡화점이 있어, 아마 간단한 무기류 정도는 거기서 팔 거야."

"그래? 그러면 거기로 가자."

라이넬을 따라 이동했다. 잡화점이라고 해서 제도의 구석 부분이나 민가 근처에 있을줄 알았는데 어찌된 게 계속 제도의 중심을 향해 가는 것 같다.

설마 아예 제도 반대편에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때쯤, 라이넬이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야."

라이넬, 여긴 잡화점이 아니라 백화점인 거 같은데?

밖에서 봐도 6층은 넘어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었다.

외관도 깔끔하고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내부도 깨끗하고 깔끔했다.

"라이넬... 혹시 스승님 친구분 성함이 어떻게 되셔?"

"카르멘님이라고 하시던데? 성은 못 들었어, 늘 이름으로만 부르셔서,"

"아아,"

미네타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미네타가 아는 사람이야?!"

"우리 이모야, 카르멘 하이네스."

아, 맞다. 얘네 금수저들이었지.

왠지 느껴지는 거리감에 그나마 동수저 정도 되는 마디안의 옆으로 붙었다.

정작 마디안은 하이텐션으로 올라가서 미네타에게 붙었지만.

"진짜? 이모가 이렇게 큰 상점을 운영하신다니, 이거 완전 금수저였잖아?"

이름만 봐도 금수저잖아 하이네스 백작가라고 하면 어디를 가든 다 알아주는데...

"근데, 우리 엄마랑 이모랑 사이가 별로 안 좋아서..."

"아아..."

"응? 왜?"

역시 우리 마디안, 가족사는 함부로 물어 보는 게 아닌데, 노빠꾸로 가는 구나.

"이모가 어렸을 때 어차피 가주는 언니가 될 거라면서 엄청 놀러다니셨데, 마법수련도 게을리 하고, 친구들이나 술이나 처마신다고 욕 엄청 많이 하셨어."

"아..."

"요즘엔 정신이 드셨는지, 가족 사업도 도와주시고, 술도 줄이셨는데, 아직도 어머니랑은 서먹하신가봐."

원래 하이네스가에 이런 설정이 있었나? 나랑 관련없는 가문이다 보니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었지만, 아마 '난세'의 설정은 하이네스가 설명한 것과 다르겠지.

애초에 '난세'에서 하이네스가의 가주는 미네타의 아버지니까.

"그러면 어떡하지 그냥 다른 데로 갈까?"

"그래, 거창한 걸 사려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다른 곳으로 가자."

그렇게 다른 곳으로 가는 걸로 의견이 종합되려는 찰나, 여성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정확히는 미네타에게 꽃혔다.

"미네타 아니야? 이모 가게엔 무슨 일이야? 살 거라도 있어? 아니면 이모 보려고 왔니?"

말이 굉장히 많을 것 같은 30대의 미녀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