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첫 번째 이벤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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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돌아다니실 때 일부러 우리반 부터 오신 건지 강당에는 학생들이 없었다.
대신 기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단상 근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남녀역전 세계니 만큼 모두 여성이었다.
'난세'에는 여기사들이 꽤 있었는데 이쪽 세계엔 남기사가 하나도 안 보이는 걸 보면, 역시 대충 만든 모드구나 싶었다.
기사들은 내가 강당으로 들어오자 잠시 관심을 가지려다가 내 미모를 보고 눈을 때지 못 했다.
웅성웅성 거리는 걸 보니 나 같은 남자애가 무슨 생각으로 수사에 지원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 하고 있는 거겠지.
구석에 박혀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보니, 사람이 한 두 명씩 들어왔다.사모아와 프레스티아를 비롯한 귀족들이 먼저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마행정반 부터 도는 것인 듯 싶었다.
의식적으로 프레스티아를 무시하고 서 있었지만 저쪽에서 나를 알아봤는지, 프레스티아의 수하 몇 명이 나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어줬다.
사모아 파벌이 주변에 있었지만 프레스티아의 눈치를 봐서인지 나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디안이 들어와서 두리번 거리면서 얼타고 있길래 데려와서 옆에 세워 놓고 이후에 들어온 라이넬과 미네타와도 합류했다.
"한 명 더 구했다면서?"
그 사람은 어딨어? 라는 말이 묵음 처리됐지만 마디안의 눈빛만 봐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따라와 봐."
사모아나 프레스티아처럼 큰 파벌은 열 몇명 씩 뭉쳐 있었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여도 최소 4~5명 씩은 뭉쳐있었다. 단순히 친한 친구들끼리 뭉쳐있는 거일 수도있고, 어떻게 보면 소규모의 파벌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
당장 나만해도 친구 겸 수하 3명과 같이 있었으니까.
다만 모든 이들이 그런 건 아니었다.
파벌이 없든, 친구가 없든, 혼자서 서 있는 사람이 왕왕보였다.
대부분은 어딘가에 하자가 있어서 남들이 데려가지 않아 홀로 서있는 것이겠지만, 단지 중요파벌에 찍혔거나,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에 혼자 서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이번 임무는 나름의 기회가 될 수 있겠지.
"선배, 친구 없죠?"
홀로 서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내 말이 찔리는 듯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 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친구 없으면 저희 조에 껴드릴게요."
"꺼져, 너 같이 연약한 남자애를 지키는 부담을 굳이 감수하고 싶진 않거든?"
"저도 마냥 약하지는 않아요."
손에서 약한 불을 피워올렸다가 금세 꺼뜨렸다.
본격적으로 이벤트가 시작되기 전 까지 최소한의 무력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느낀 나는새벽 늦게까지 깨어있는 한이 있더라도 열심히 마법을 갈고 닦았다.
덕분에 지금 내 심장엔 마나로 이루어진 작은 링 하나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됐어. 저번에도 말했지만, 네 능력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네 밑으로 들어갈 생각 없어. 가서 네 친구들이랑 소꿉놀이나 계속하지 그래?"
"알았어요. 나중에 봬요."
미소녀 3인방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뭐야, 네가 구해온 다더니, 실패한 거야?"
"괜찮아, 어차피 임무는 같이 진행할 거거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 조사단의 담당교수는 우리 교수님이다. 이미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 드려놨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단상 위에서 강력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시끌시끌 했던 강당에 고요가 찾아왔다.
"일단, 황실의 임무를 전달하기에 앞서서, 제도의 위험을 뿌리 뽑기 위해 자원해 주신 아카데미의 학생 여러분께, 감사의 의지를 전하겠습니다."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이었다. 현실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게임이라서 허용되는 푸르른 머릿결, 당장이라도 심장을 잡아 뜯을 듯 사나운 붉은 눈동자, 누가 봐도, '아, 저 사람한테는 함부로 깝치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인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셀레나 크리스티, 고작 27살에 청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을 역임할 정도로 뛰어난 여자였다.
"지금 부터 여러분이 할 일을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여러분은 5인1조로 편성되어 제도의 각 구역을 전담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흑마법사들이 나타난 적이 있는 구역에선 그들의 흔적을 토대로 흑마법사들을 찾아내는 것이 주목적이 될 것이고, 아직 흑마법사들이 나타난 적이 없는 곳에 배치된 학생들은 혹시 모를 흑마법사들의 습격을 방어하는 것이 주목적이 될 것입니다."
무조건 방어하는 쪽으로 가야지, 고작 우리 수준에서 흑마법사의 흔적만 보고, 그들을 추적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그리고 각 조당 한 명씩, 저희 청기사단의 기사가 배치될 것입니다. 학생 여러분의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직 어린 여러분들의 판단을 완벽하게 믿을 수 없기에 내린 조치이기도 합니다.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저희 기사의 명령에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조 편성이 완료된 후, 담당기사가 배정되면 안내해 드릴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셀레나 크리스티님, 되게 멋지신 분이지?"
"그러니까 말이야, 아직 어린 나이신데 벌써 청기사단의 기사단장이시잖아."
응? 마디안? 지금 뭐라고 했니?
"기사단장... 이라니?"
"플레아는 몰랐어? 하긴 지방 출신이니까, 방금 앞에서 말하셨던 분, 청기사단의 기사단장님이셔."
"... 그럼 부기사단장은 누군데?"
"크리스티님의 오라비이신 드리안 님이시지."
그래, 남녀역전 세계니까, 여동생이 기사단장이고 오빠쪽이 부기사단장이어도 안 이상하지,
부기시단장이라도 한 게 어디야.
"자자, 다들 주목 해. 아직 안 끝났어."
교수님, 벌써 귀찮음이 도지신 건가요? 아까의 근엄함은 어디 가고, 껄렁껄렁한 말투로 돌아 오셨나요.
내가 필사적으로 바라보며 입을 톡톡 하고 치자, 아!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시며 가볍게 헛기침을 하셨다.
"큼큼, 같이 조원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5명 이하로 묶어서 오늘 안에 나한테 제출하면 된다. 신청한다고 모두 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같이 갈 수 있도록 해주지, 팀의 밸런스가 너무 깨지지 않는 선에선 최대한 너희들의 의사를 존중하마, 이런 임무에선, 얼마나 편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지도 중요하니까."
크으, 역시 우리 교수님, 한 번 분위기 잡으시니 저렇게 멋질 수가 없어.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기인데 나한테 직접 찾아와서 제출할 생각은 하지 말도록, 그냥 시계를 쓰면 되는 데 멍청하게 직접 말하는 사람들이 몇 명씩은 꼭 나와서 하는 이야기다."
"이상으로 안내를 마치도록 하겠다. 내일 12시에 조를 정해서 공지할거고, 내일 모래부터 지정된 위치에서 담당 기사의 지도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그리고, 오늘 부터 여러분의 출석은 모두 인정되니,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충분히 준비를 하도록, 이와 관련해선, 무슨 질문을 하든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도록 하겠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바로 단상 아래로 내려오셨다.
근데 교수님, 아무리 귀찮으셔도 그렇지 이렇게 끝내버리시면 학생들 사이에 혼란이 온다고요.
"교수님! 이제 해산해도 되는 건가요?!"
"그래 해산하도록,"
다행히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하이네스의 외침으로 사람들은 하나둘 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출석까지 인정해 줄 준 몰랐는데.'
갑자기 생겨버린 이틀이라는 휴식에 기분이 들떴다.
준비하라고 준 시간 아니냐고? 내가 기사반이나 마법반도 아니고 준비할 게 뭐있어? 머리나 잘 굴러가게 준비하면 되지, 정작 기사반이나 마법반인 라이넬과 미네바는 스스로 뭘 준비 할 지도 모르는 바보가 아니라서 알아서 잘 할 거다.
'그럼 이제 꿀 맛같은 휴식을 즐기면 되는 건가.'
라고 잔뜩 들떠있을 그 때 교수님이 나에게 다가왔다.
"야, 애들 조짜는 거 좀 도와줘라."
이틀 간의 휴일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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