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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22화 (22/312)

〈 22화 〉 첫 번째 이벤트­2

* * *

"그거 들었어? 제도 외곽에서 흑마법사들의 흔적이 발견됐대."

들 뜬 표정으로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하는 이는 마디안이었다.

마디안과, 미네타 모두 나와 라이넬이 서로 반대를 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말을 편하자고 했고, 그 이후로 일주일이 지금, 이전보다 훨씬 친해진 상태로 지내는 중이다.

"나도 들었어. 근데 진짜로 나타난 거 맞아? 제국에서 흑마법사가 사라진지 얼마나 됐는데 지금 갑자기 나타나?"

"진짜가 맞을 거야. 황실기사단은 그렇게 무능한 집단이 아니니까."

"플레아가 맞다고 하면 맞는 거겠지? 가뜩이나 분위기도 안 좋은 데 흑마법사까지 나타나다니...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마디안한테는 안타까운 이야기였지만 흑마법사의 중동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난세의 서막을 울리는 기념비 적인 첫 사건 인만큼 어떻게 플레이해도 사전에 방지하거나 작은 피해로 막을 수는 없다.

물론 지금은 흑마법사가 준동하기 시작하는 극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당장 큰 일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끽해야 마을 한 두 개가 제물로 바쳐지는 선에서 끝나겠지.

'애초에 흑마법사들은 그렇게 무서운 존재들이 아니야."

흑마법사들은 말하자면 맥거핀 같은 존재들이었다.

알아 듣기 쉽게 설명하자면, 삼국지의 황건적 같은 애들이랄까? 장차 영웅이 될 사람들의 경험치원이 되어주고, 제국에 혼란을 가져다오는 역할, 단지 그 뿐이었다.

게임 처음 접해본 초보가 아닌이상에야 흑마법사한테 당해서 게임오버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 같은 고인물들은 모든 흐름과 동선을 다 알고 있기에, 맛 좋은 먹잇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도에서 발생한 사건이면... 아카데미에도 공고가 내려오려나? 하이네스는 어떻게 생각해?"

"응..? 아무래도 내려오지 않을까... 인력도 부족하다고 들었고, 슬슬 실습도 필요할 때니까..."

"아마 신청자만 모집해서 사건을 조사하겠지."

흑마법사가 나타났는 데 아카데미의 학생을 왜 데려다가 쓰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도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 정도면 상당히 고급인재다. 행정반에 다니는 애들한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지만 기사반이나 마법반의 경우, 순수 강함만 따지만 당장 전장에 나가도 1인분 할 수 있는 애들이 많으니까.

그리고 1학년엔 별로 없지만 2학년만 되도 익스퍼드급 에 다다른 선배들이 많다는 걸 생각해 보면 실습을 명목으로 무료로 부릴 수 있는 굉장히 고급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 선배들이 알아서 처리해 주시겠지?"

"그러지 않을까? 아직 1학년들은 이런 실무를 바로 뛰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우리도 가야 할 것 같은데?"

라이넬이 눈치가 빠르네.

"응? 왜? 굳이 갈 필요 없잖아. 위험하기도 하고 큰 도움도 못 될텐데?!"

라이넬은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티가 났나?

"플레아? 너 설마..."

"당연히 도우러 가야지, 제도가 위험에 처했잖아? 아카데미의 학생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맛있는 떡이 예쁘게 포장되어있는데 굳이 보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하이네스나 라이넬이면 몰라도 너랑 나는 행정반이야, 가봤자 도움도 못 될게 분명하다고."

"꼭 잘 싸워야만 수사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애초에 전투 인력이 부족해서 아카데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수사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는 거니까."

"나는 가도 상관 없는데..."

"나는 싫어! 절대 안 갈거야!"

"마디안, 너도 꼭 참여 해줬으면 좋겠어."

왜냐면 5명을 모아가야 원하는 인원으로 한 조를 꾸릴 수 있거든.

내가 지긋이 바라보자 마디안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내 부탁, 안 들어줄거야?"

간절히 올려다 보며 말하자, 마디안이 빽하고 소리질렀다.

"알았어! 들어 줄게."

"고마워."

역시 잘 생겨서 손해 볼 거 하나도 없다니까.

"라이넬, 부탁해도 될까?"

"나는 네가 안 간다고 해도 가려고 했어."

"하이네스도 괜찮다고 했지?"

"응, 괜찮아."

고분고분하게 말을 따르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오늘 점심은 같이 못 먹는다고?"

마디안이 뚱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응, 일주일 전부터 미뤄왔던 약속이 있어서,"

"그래,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랑 같이 먹을지는 모르겠는데, 가서 맛난 거 많이 먹고오셔."

오늘은 드디어 프레스티아와 함께 점심을 먹는 날이다!!

중요하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 프레스티아랑 점심을 먹는날이다!!

잠시 중요한 이야기를 하느라 잊고 있었는데 앞으로 10분 쯤 뒤면 찾아올 즐거울 미래에 광대가 승천하는 듯했다.

"도대체 누구랑 먹으러 가기에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비밀, 그럼 나는 슬슬 가볼게.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애들 세 명을 버리고 아카데미의 입구쪽으로 걸어갔다. 평소에는 미소녀 3인방으로 지칭하지만 내가 지금 찾아가는 사람이랑 비교하면 절대로 미소녀라는 말을 달아주기 힘드니까.

입구쪽으로 걸어가자 나를 기다리는 듯 바로 서 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옷은 잘 정돈했는지 이상한 게 묻어있지는 않은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천천히 다가갔다.

"늦어서 죄송해요, 헬링님."

"아닙니다. 제가 빠르게 나왔을 뿐, 플레아님이 늦게 오신 게 아니신걸요. 그리고 제가 사죄의 의미로 대접해드리는 것이니, 그렇게 저자세로 있으실 필요 없으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프레스티아를 볼 때마다 계속 주접을 떠는 것 같지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미모였다.

아카데미의 제복을 깔끔하게 입고 있는 프레스티아의 모습은 오랜만에 봤기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지는 듯 했다.

"제가 아는 곳으로 모셔도 될까요?"

"네!!"

길게 말하기도 힘들었다. 짧은 대답 한 번 하기 위해 입을 여는 것도 설레서 미치겠는데 어떻게 일일히 계산해가면서 말할 수 있겠어?

"따라오시죠."

프레스티아가 나의 오른 손을 잡고 부드럽게끌었다.

부드러우면서 거친 손의 감촉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프레스티아가 나를 안내한 곳은 꽤 큰 마차였다. 워낙 경황이 없어서 말의 갯수를 세기는 힘들었지만 못해도 4마리는 넘어보였다.

"자리에 앉으시죠."

내부도 꽤 넓었다. 둘이서 마주 보고 앉아도 숨결이 닿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는 것은 꽤 아쉬운 일이었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이렇게 설레는 데 그렇게 가까이 붙어있었다면 심장이 터져버렸을 거라는 걸 생각한다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겠지.

마차가 출발하고 기분 좋은 덜컹거림이 마차를 울렸다.

'이렇게 설레고 있을 수 만은 없지.'

지난 일주일간 그냥 오늘 같이 먹을까? 하고 고민한 게 수십번이다.

매일 나를 덮쳐오는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고 점심약속을 일주일씩이나 늦춘 건 오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도에 흑마법사가 나타났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제대로 말했다!!'

긴장에 잔뜩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해상력을 가진 목소리였다.

"네, 들었습니다. 흑마법의 흔적이 발견 됐다는 건, 결국 그들이 제도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의미니까요."

프레스티아가 한 마디 입을 열 때마다 기분 좋은 공기가 마차를 채우는 느낌이 들었다.

"아카데미에도 공문이 내려올 것 같은데 헬링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내 질문에 프레스티아가 이것 좀 봐라?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여느때 처럼 잠깐 가식을 풀고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프레스티아의 눈빛은 바뀌지 않았다.

"그걸 네가 알아서 무엇하려 그러지?"

­쿵!쿵!쿵!쿵!!

그녀의 귀에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크게 울리는 심장소리.

군주로서의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과 육체가 느끼는 공포가 합쳐져 좌심방과 우심실이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것만 같았다.

"너무 기어오른다고 생각해서 가볍게 벌을 줘봤는데 아직 부족한 것 같군."

프레스티아가 내 볼에 손을 올리고 만지작 댔다.

탄력있고 부드러운 볼이 그녀의 손안에서 마구 변형됐다.

"이대로 볼을 뜯어줄 수도 있다만?"

눈에서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항거 할 수 없는 공포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용서를 빌고 그녀에게 복종을 맹세하겠다고 생각한 순간, 일주일 전의 다짐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죽던, 네가 꼬셔지던,'

어디에도 내가 복종한다는 내용은 없다.

허벅지를 비틀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ㄸ...뜯어... 보시든가요."

대사 자체는 패기가 넘쳤지만 말투는 영 아니었다. 이미 울음기가 목소리를 완벽하게 먹어버렸고, 마구 떨리는 목소리는 해상력마저 약했으니까.

이대로 죽는 걸까? 싶었을 때 프레스티아의 기세가 사라졌다.

"푸하하하하하!! 이거 완전 미친놈이군."

프레스티아가 크게 웃었다. 방금 전까지 내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던 상대였지만, 그 모습을 보고 드는 생각은 '아름답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만한 미소를 짓고 크게 웃는 프레스티아는 정말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그 용기 하나만큼은 높이 사주지, 나한테 반항하는 남자가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

그녀가 뭐가 재밌는지 한참을 웃었다가, 갑자기 정색했다.

아직 16살밖에 되지 않은 그녀였지만, 고작 나이가 어린 걸로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프래셔가 나를 눌렀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마, 다음은 없어."

거짓말, 다음에도 용서해줄 거잖아?

의식이 툭, 하고 끊겨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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