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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21화 (21/312)

〈 21화 〉 첫 번째 이벤트­1

* * *

"선배, 일은 잘 하고 오셨습니까?"

할 말이 없었다. 내 가슴에도 닿지 않는 작은 남자아이에게 쫄아서 그냥 왔다고 할 순 없잖아.

그래도 무언가 말은 해야 했다. 사모아는 자신의 명령을 제대로 듣지 않은 자한테는 자비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플레아라고 했었나? 그 남학생이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남자라고는 밑을 수 없는 강력한 기세였다. 그의 주황색 눈동자를 떠올리고 있노라면 그에게 충성을 바치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하지만 그럴 순 없지.'

아무리 싹수가 보인다고 해도 그는 평민이고, 남자다. 고위 귀족인 사모아의 파벌에 들어오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이 기회를 차버리고 그에게 갈 수는 없다.

여자로 태어났다면, 하다 못해 남작으로 태어났다면...

"주변에 기사반 학생이 붙어 있어서 말이에요. 내일 제대로 손 봐주려고 합니다."

"기사반 학생이라면 라이넬인가? 하긴 그년이 붙어있었다면 선배 정도로는 어림도 없긴 했겠네요."

좋아 무사히 넘긴 것 같아.

"굳이 내일 손 보실 필요 없어요. 나중에 제 밑에 애들 시킬 테니까. 그럼 이제 꺼지세요.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인사는 안 할게요."

"네?"

"선배 같은 사람은 저희한테 필요 없다고요. 불량품 평민 따위 한 번 쓰고 말 생각으로 시켜본거에요. 그런데 일도 제대로 못했네? 체면이 있으면 그냥 말 없이 꺼지시는 건 어떠세요?"

버터 처럼 능글한 표정이었다.

처음 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내가 어떤 생각으로 너의 밑으로 왔는지 알고서 하는 말이야?

나름 강하다고 자부했다. 진짜 재능이 넘치는 애들에 비해선 밀려도 기사반에선 항상 상위권 이었다. 마나가 없다고 무시하는 이들의 말을 억지로 삼키고 수련 했다.

마나의 부족함 때문인지 그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에게 빛이 찾아올거라는 믿음 하나로 버텨냈다.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애써 무시했다.

1년을 꾸역꾸역 버텼다. 이번에 입학한 사모아 후작가의 영애가 자기 일을 해줄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장 달려갔다.

그녀의 눈에만 들면 출세는 따놓은 당상이었으니까. 평민 남자애를 단단히 밟아주고 오라는 말에 가슴이 찔리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의 아픔보다는 나의 성공이 더 중요했으니까.

더 심한 일을 시켜도 할 자신이 있었다. 그녀의 더러운 일을 계속 처리하게 된 다하더라도 그녀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 뭐? 한 번 쓰고 버린 다고?

주먹을 꽉 쥐었다. 한 대 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귀족을 쳤다간 아카데미에서 잘리는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목숨이 끊겨 버릴 테니까.

"안 갈거야?"

입에서 까득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 뒤돌아서 도망치듯 나왔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벌꿀같은 금발과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는 주황색 눈동자.

밑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나에게 영입 제안을 했으니 한 번 들어나 볼까?

정말 마음에 들면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면 되잖아.

***

라이넬과 말을 놓게 된 다음날, 점심을 먹으로 가기 전에 어제 봤던 선배가 나를 불러냈다.

사모아 공녀에겐 완전히 버려진 상태였다.

적당히 밟히거나 한 소리들으면서 깨질 줄 알았는 데 완전히 버려지다니,

"그래서 사모아 공녀님께는 완전 까여버렸다고요?"

헤르티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의외였다. 헤르티아 정도면 한 번 실패한 것 가지고 내칠 정도의 인재가 아니다. 중히 쓰면 좋게 쓸 수 있는 나름 고급 인재다.

어제는 돌격대장 정도로 밖에 못 써먹는 인재라 말하긴 했지만, 그게 어딘가? 칼 하나 쥐여 줘도 병사 조차 되지 못 하는 인간들이 태반인데.

'하긴, 상태창으로 재능까지 확인 한 나와는 정보가 다르겠지.'

현재의 무력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아주 특출나지도 않고 마력이 후달리니 결국 높은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 한다는 계산이겠지.

어찌 됐든 인재를 꽁으로 얻은 셈이니 나야 고마웠다.

"그래서, 제 밑으로 들어오시려고 온 거에요?"

"그건 아니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라, 그리고 기반도 없잖아."

"제 능력이 어떤지 모르시다고요?"

가볍게 기세를 끌어 올렸다. 오래 유지하면 힘드니까 짧은 시간 동안 잠깐.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는 건 인정할게.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귀족도 아니고 모아둔 세력도 없고, 돈도 없을 거 아니야."

"그건 이제 부터 모아가면 되는 거죠."

"세상 참 편하게 사는 구나?"

"편하게 산다니요. 제가 얼마나 많은 계산과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는 데요."

절대로 편하게 덤벼들 수 없는 목표가 있으니까.

"아무튼, 너를 더 알기 전에는 네 밑으로는 안 들어갈거야."

능력을 증명하라는 건가?

"그런데 오늘은 왜 오셨어요? 이쁘고 귀여운 후배 보러?"

"네 제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걸 알아 두라는 의미로 찾아 온 거야. 영입 실패했다고 상심하고 있을까봐."

선배가 거짓말을 못 하시네 귀가 아주 새빨게 지셨어.

"아무튼, 제 능력을 증명하면 제 밑으로 들어오신다는 거죠?"

"그래. 내가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죠. 제도에 제 이름을 퍼트리는 건 어때요? 물론 긍정적인 의미로요."

"제도의 사람들이 알 정도로 큰 업적을 세울 수 있겠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난세'의 지식을 적극 이용하면 못 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약속부터해요. 제가 제도 사람들한테 이름을 날리고 인정 받으면 제 밑으로 들어오시는 거죠?"

"그래, 진짜 가능하다면 네 밑으로 들어가 줄게."

절대 안 된다는 표정인다. 하긴 제도는 중앙파 귀족들이 꽉 잡고 있는 곳이니 나 같은 평민이 이름을 날릴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녀는 곧 다가올 커다란 이벤트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 했으니까.

제도의 입장에서 보면 끔찍하기 그지 없는 일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하나의 무대에 불과했다.

"그래요 그 말 절대 잊으시면 안돼요."

슬슬 움직여 볼까?

***

빛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어둠이 따르는 것처럼, 제도 근처엔 커다랗게 형성된 빈민가가 있었다.

빛과 어둠의 관계와 다른 점은 어둠이 빛이 약하면 그 깊이를 잃어가지만 제도의 빛이 사그러 들어간다고 해서 빈민가의 어둠이 사라지지 않는 다는 점일까? 오히려 통제력이 약해짐에 따라 커다란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하루가 멀다 하고 빈민들이 사라져갔다.

"꺄아아아아아악!!"

밤이면 밤마다 인적이 드문 건물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빈민들이 불안에 떨며 제도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누구도 빈민의 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부패한 귀족들은 더 이상 빈민가를 돌보지 않았다.

수많은 기사단이 중앙파 귀족들의 견제, 혹은 회유에 의해 움직이지 못 했기에 빈민가까지 순찰을 돌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았다.

중앙파 귀족이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군비를 횡령했기에 경비병 또한 빈민가로 눈길을 돌릴 수 없었다.

현제 제도에 존재하는 경비 병력으로는 제도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처리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돈도 되지 않는 빈민가의 사정 따위는 귀족들이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었다.

황권이 약했기 때문에, 중앙파 귀족들이 탐욕스러웠기 때문에, 제도가 하나로 통일 되지 못 했기 때문에,

제도에서 가장 가까히 존재하는 곳에서 어두운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이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이 제도를 향해 눈을 돌리고 나서야, 부랴부랴 막아내려고 하겠지.

제도에 그들을 막아낼 만한 힘이 있을까? 막아 낼 힘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로 통일 되어 그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이미 무너져 가고 있는 제도였다. 막아내든 막아내지 못 하든 그들의 공격이 제도를 망가뜨리는 신호탄이 되겠지.

그들에 의해 제도가 무너진다면, 제도를 무너뜨린 건 귀족인가 그들인가?

난세의 서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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