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내 사람부터 꼬시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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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부른 사람은 세 보이는 인상의 여성이었다.
아니 세 보인다는 것 만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키가 2미터를 훌쩍 넘는 장신인데다가 풍채도 컸다. 그 와중에 얼굴은 예쁘고 커다란 풍채에도 어색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역시 이 세계의 원작이 게임이긴 한가보다 싶었다.
제복외투의 단추를 잠그지 않은 채 어깨에만 걸치고 있었는데, 가슴이 부각되어 나야 좋지만 일단 모범생적인 옷차림은 아니었다.
"누구신가요?"
우리들 보고 떨거지라고 하는 걸 보니 아마 사모아 파벌 소속이려나?
어쩌면 권위의식이 강한 귀족일 수도 있다. 나랑 라이넬은 둘 다 평민이니까, 다짜고짜 떨거지란 소리를 들어서 기분은 나쁘지만,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기도했다.
"선배가 말을 걸었으면 일단 대가리부터 박아야 하지 않겠냐? 어디서 고개를 빳빳히 들고있어?!"
인상은 되게 무서운데 성격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완전 국어책 읽기잖아?
얼마나 안 무서웠냐면 육체조차 저건 아닌데? 라고 느꼈는지 전혀 떨고 있지 않았다.
일단 권위의식이 강한 귀족이라는 두번 째 가능성은 배재했다. 국어책 읽기인 말투를 보면 틀림없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거겠지.
"사모아님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요?"
슬쩍 떠보자 선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반응이 빠르군,
'벌써 선배들한테 까지 손을 뻗은 건가?'
아카데미의 파벌은 대부분 같은 학년 내에서만 한정되기 마련이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간섭하는 경우는 있어도 2학년이나 3학년이 1학년 파벌에 속해 있는 경우는 보통없지.
아예 가문대대로 다른 가문을 섬기는 사람이 거나 하이네스처럼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부터 일면식이 있던 게 아니라면 1학년 밑으로 들어오는 선배들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지.'
지금 2학년과 3학년엔 커다란 파벌이 달리 없다. 그나마 큰 파벌이 하이네스파벌이었는데 그마저 프레스티아 밑으로 들어갈 조짐이 보이니 덩치 큰 세력은 전무하다고 말하기 부족함이 없다.
그에 반해 1학년은 어떤가? 나와 라이넬에게 패악질을 부리는 사모아 파벌은 물론이고 헬링 파벌도 있다. 사모아와 헬링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파벌의 수도 꽤 된다.
대단한 귀족이 없어서 3~4명씩 소규모로 파벌을 이루고 있는 선배들과는 비교가 불가하다.
'그래도 너무 빠른데?'
사모아가 아카데미 전체로 손길을 확장하는 건 적어도 한 번의 이벤트가 지나간 뒤의 일, 적어도 2주는 있어야 벌어질 일인데 벌써 부터 선배가 찾아오다니,이상했다.
'내가 무슨 일을 했나?'
사모아 공녀에게 찍히고 프레스티아와 친하게 지낸 것 '난세'를 하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흐름이니, 문제가 있다면 이쪽에 있는 거겠지.
나비효과라는 말도 있으니까.
'그런데 키 하나는 무지막지하게 크네.'
까치발을 들어도 그녀의 턱은 커녕 가슴에도 안 닿을 것 같았다.
사모아가 나한테 보낸 사람이니 그렇게 대단한 인재는 아니겠지.
상태창을 열어봤다.
헤르티아
나이:17
무력:42/96
통솔:2/5
마력:8/23
지력:10/12
매력:12/23
정치:5/21
'심봤다!!'
산속에서 삼을 찾아낸 심마니 처럼 크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무력 잠재력이 96이라니, 라이넬보다 높은 수치였다.
그런데 밑으로 내려가면 내려갈 수록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통솔이 부족한 것? 괜찮다. 기사단장직이 아닌 돌격대장역할을 부여하거나 따로 머리 쓸 사람을 붙여주면 되니까. 지력이 부족한 것? 기사한테 내정을 맡길 생각은 없다. 이간계에 당하지 않게 지속적으로 케어할 필요가 있지만 무력 96의 패널티로는 미약한 수준이다.
매력 23? 기사한테 매력이 왜 필요해? 정치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마력 23은 너무하잖아.
기사한테 가장 중요한 능력치는 누가 뭐라해도 무력이지만 마력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익스퍼트의 경우 마력이 최소 30은 되어야 자기실력을 제대로 발휘 할 수 있고 마스터의 경우 최소 마력이 60은 되어야 실력발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마력이 23?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봤자 조루 마스터같은 별명이나 얻겠지.
'그래도 탐이나.'
마력이 적어도 괜찮다. 무력 잠재력은 확실히 높으니까,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자가 마나를 쓰지 않는다고 무섭지 않은 건 아니니까.
그리고 '난세'를 수 없이 플레이 해온 나에게 적은 마력을 해결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민이지.'
만만하다 이 말이다.
"선배, 그냥 제 밑으로 들어오시죠?"
"뭐?"
상대가 반항할 틈도 주지 않고 기세를 방출 시켰다.
매력 97의 위력이 대단하긴 한가보다. 자신의 가슴깨에도 머리가 닿지 않는 작은 꼬맹이한테 쫄아서 뒷걸음질이나 치고 말이야.
"들어가 봤자 제대로 대우도 안 해줄 사모아한테 가지 말고 제 밑으로 들어오시라고요."
사모아에겐 인재가 많다. 사모아 공작가가 어딘가? 중앙파귀족 중 가장 거대한 세력이다. 매번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왔던 나이기에 그녀의 정확한 세력은 알 수 없었지만 제도에 한바탕 혼란이 찾아 왔을 때 최종 승자가 될 정도로 저력이 있는 가문이었으니까.
소드 마스터가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고 해도, 10년 안에 수십, 수백명의 소드마스터가 등장하게 되는 난세였다. 과연 사모아가 그녀를 얼마나 중히 쓸까? 끽해야 작은 병단 하나를 운영할 권리를 주고 돌격대장 정도로 삼겠지.
나는 어떻게 다룰 거냐고? 당연히 칼 하나 쥐어주고 돌격대장 시켜야지, 짧은 시간동안 전열을 무너뜨리고 마나가 다 떨어져도 높은 무력으로 1인분을 하게 하는 게 그녀를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차피 어딜 가든 똑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면작은 세력의 창립멤버가 되는 게 좋잖아? 그리고 나는 결국 제국을 다시 통일 할테니까, 아카데미 시절 부터 따라온 인재라면 백작 정도는 받을 수 이겠지. 사모아 한테 가봤자 백작은 커녕 남작위도 겨우 받을까 말까할 걸 생각하면 무조건 내밑으로 들어오는 게 이득이다.
그리고 사모아 세력은 최종적으로는 무너져 버리는 세력이기도 하고,
심지어 이쪽엔 매력 102짜리 미소년도 있다.
"그러면 들어오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선배."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아니, 대답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기세를 강하게 내뿜으며 그녀를 스쳐서 지나갔다. 그녀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 까지 다다를 때까지 기세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이쯤이면 됐나.'
기세를 갈무리 했다. 그리 오래 기세를 방출한 것도 아닌데 진이 다 빠졌다.
역시 운동을 할 필요가 있나? 나중에 군주들이랑 대화할 땐 대화하는 내내 이 상태로 있어야 할텐데 몸이 버틸 수는 있어야 했으니까.
강한 기세로 한 번 눌러놨지만 헤르티아가 내 밑으로 들어올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마 사모아한테 엄청 깨지겠지. 그리고 한 번은 다시 나를 찾아올 거야.'
그 때 완전히 마음을 얻으면 되겠지. 완전한 충성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라이넬 처럼, 그리고 미네타처럼, 내 곁에 둘 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내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는 차고 넘치도록 많으니까.
뻣뻣 하게 굳어서 나를 따라 걸어 온 라이넬을 바라봤다.
"라이넬? 훈련장은 반대방향 아니었어?"
"아, 죄송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반말하기로 했잖아?"
"ㅇ... 어어..."
그래 그렇게 있으니까 좀 여자 같네.
"그럼 나는 먼저 가볼게. 훈련 열심히 해."
과제가 많이 쌓였다. 미리미리 해놔야지. 앞으로 할 일이 많으니까.
라이넬을 쳐다보지도 않고 반으로 향했다. 왠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