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19화 (19/312)

〈 19화 〉 내 사람부터 꼬시자­3

* * *

'프레스티아 보고 싶다.'

미소녀 세 명이랑 같이 밥을 먹으면서 할 생각은 아니지만 진짜 보고 싶은 걸 어떻게,

지금이라도 얘네 버리고 프레스티아 보러 가고 싶은 걸 꾸욱 참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라이넬? 왜 이렇게 축처져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마 엄청 불안하겠지. 아침에 실망한 티를 팍팍 내면서 헤어졌으니까.

지금도 일부러 라이넬과의 대화는 최대한 피하고 있고,

"펠리아 교수님은 과제를 너무 많이 내주시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교수님 강의만 듣는 게 아니란 걸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는데."

마디안과는 대화 주제가 잘 통했다. 피차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과가 같다 보니 공유할 수 있는 내용도 많았다.

그렇기에 평소의 대화는 나와 마디안이 주도하는 편이긴 했다.

"그러고보니까 제도에 마카롱 가게가 새로 오픈했다던데 나중에 한 번 가보지 않을래요?"

미네타가 호심탐탐 기회를 노리더니 잠시 동안의 정적을 틈타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카롱이라, 아마 여자애들이 마카롱 같을 걸 좋아할리는 없을 테니 나한테 잘 보이려고 말하는 거겠지?

이제는 남녀역전세상에 익숙해진건지 자연스럽게 여자애들이 단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버렸다. 이러다가 나중에 수컷타락인가 뭔가 까지 하는 거 아니야?

"마카롱 가게요? 저는 돈 없어서 못 가요. 그렇게 비싼 건 못 사 먹는다고요."

"설마 플레아한테 돈을 내라고 하겠어요? 당연히 제가 사드려야죠."

대화의 흐름이 미네바에게로 넘어갔다. 마디안은 아무래도 낮은 귀족이다 보니, 미네바가 한 번 말하기 시작하면 잘 끼어들지 못 하더라.

'그리고 라이넬도.'

슬쩍 시선을 돌려 라이넬을 바라보니 묵묵히 밥만 먹고있었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라이넬에게도 말을 한 번 걸어줬겠지만, 오늘은 그냥 미네바와 얘기하기로 했다.

일단 지금 나는 삐진 상태였으니까.

"아니에요. 친구 사이에 얻어먹기만 할 순 없죠,"

굳이 친구사이라는 단어를 강조하진 않았다. 밥만 먹고 있는 것 같아도 우리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을 태니까.

실제로 친구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몸을 움찔 거리기도 했고.

"친구는 부족한 걸 채워주는 관계잖아요? 플레아는 돈이 부족하니까 내가 그걸 채워주는 것 뿐이에요."

"그러면 저는 뭘 채워드릴 수 있는데요?"

"저는 플레아랑 만나는 것 만으로도 너무 기뻐요. 굳이 뭘 해주실 필요는 없어요."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끼었군, 나쁜 남자 만나면 영혼까지 탈탈 털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문제는 내가 나쁜 남자라는 거지. 그것도 아주아주 나쁜.

대화가 진행될 수록 라이넬은 더더욱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마디안이나 미네바가 관심을 가져줄 만도 했는 데 둘의 시선은 나한테만 고정되어있었다.

'이 부분은 개선을 해야겠네.'

수하끼리는 사이가 좋아야 하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관심도 가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 중요한 상황에서 분명히 발목을 잡을 거다.

"다 먹었으면 슬슬 일어날까요?"

미네바는 밥이 맛없다고 조금만 가져왔고 라이넬은 많이 먹지만 그만큼 빠르게 먹기 때문에 마디안과 나보다 뒤쳐지진 않았다.

"조금만 더 앉아있다가 가면 안돼요?"

"제가 일이 있어서요."

접시를 들고 일어나자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들 일어섰다.

"그러면 내일 봬요."

가볍게 손을 흔들고 행정반 건물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플레아씨! 잠시만요."

라이넬이 나를 막아섰다.

진지한 눈빛이었다. 생각 정리는 끝낸 모양이지?

"네? 라이넬씨? 무슨일이세요?"

의도적으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너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의사의 표시, 아마 라이넬 입장에선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피하는 모습처럼 비춰졌겠지.

"아침의 일에 대해서 할 말이 있습니다."

우리 라이넬 그런 눈빛도 할 줄 알아?

확실히 '난세'의 라이넬과는 달랐다.

아마 '난세'의 라이넬이었다면 나한테 아무런 얘기도 못 하고 가슴만 퍽퍽 치면서 불안해 하다가 우는 모습을 나한테 들키면서 속마음을 털어놨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나를 직시하고 먼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려 하고 있다.

우는 모습을 나한테 들킨 다는 걸 어떻게 확실할 수 있냐고? 아무리 게임 원작이지만 현실이 게임처럼 흘러갈리 없지 않냐고? 울 때까지 미행할 거니까 상관 없다.

"아침의 일이라면 저는 괜찮아요. 라이넬씨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아닙니다. 제가 잘 못 생각했습니다. 주군과 신하 사이에 우정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플레아씨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라이넬은 라이넬인 걸까? 말에 두서가 없다. 눈도 불안한 마음에 계속 떨리고 있었다. 아마 여기서 내가 '아니에요, 그냥 이런 사이로 지네요.' 라고 말하면 울음을 터뜨리려나? 그래도 여자니까 참아내려나.

"좋아요. 그러면 앞으로는 당당하게 친구라고 불러도 괜찮겠죠?"

진심으로 궁금했지만 굳이 실험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울렸다간 수습하기도 힘드니까.

"넵 괜찮습니다!"

긴장이 풀렸는지 울먹울먹이는 게 명확하게 보였다. 역시 많이 강인해졌다. 진작에 울고도 남았을 앤데.

"그러면 이제 편하게 불러도 괜찮을까요? 이제 친구 사이니까요."

"마음대로 하십쇼."

"그러면 라이넬도 편하게 말해봐."

얼마만의 반말일까. 플레아에 빙의 한 이후 처음 내뱉는 반말에 알 수 없는 해방감 마저 들었다.

높으신 귀족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아카데미에서 내가 반말을 할 만한 대상은 아예 없었으니까.

게다가 아카데미에서 사귀는 친구라고 해도 서로 존대하며 하하호호 대화하는 사교적인 관계가 대부분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마 미소녀 3인방을 제외하면 내가 앞으로 반말을 할 수 있는 대상도 거의 없겠지.

"네? 제가 어떻게..."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당당하게 말하긴 했는데 지금 상태에서 보면 라이넬이 나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걸? 위대한 기사인 데안느님의 제자잖아."

평민출신이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소드마스터에 도달한 여인, 그녀의 밑에서 빡세게 구르며 검을 배운 라이넬은 분명 대단한 기사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소녀였다.

지금이야 사모아 파벌의 압박에 그녀에게 다가오는 귀족들이 없지만 졸업과 동시에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 그녀를 덮치리라.

그전에 그녀를 확실히 사로잡아놔야지.

"훨씬 높은 곳에 있다뇨.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편하게 대하라는 거지. 내가 꼭 네 주군이 되라는 법은 없잖아?"

"그러면... 알았어."

어색한 말투였다. 차차 익숙해지다보면 내가 알던 라이넬의 말투와 같아지겠지.

"어색하면 그냥 여자라고 생각해. 데안느님 밑에서 배울 때 친구도 많이 사귀어 봤을 거 아니야."

"남자를 어떻게 여자처럼 대해ㅇ.. 읍"

"내가 우리 고향에서는 남자답지 않단 소리를 맨날 들으면서 살아왔거든? 절대 화 내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편하게 대해."

라이넬이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 저 표정 본적 있어. 우리팀에 배정된 신입한테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라고 말했을 때가 딱 저 표정이었는데.

그 때 신입과 라이넬이 다른 점은 신입은 이를 악물고 아닙니다! 하며 선배라고 꼬박꼬박 불렀지만 라이넬은 체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는 거?

"알았어. 대신 기분 나쁘면 바로 말해 줘야한다."

"그럴 일 없거든요?"

그렇지 이거지, 드디어 사람이랑 대화하는 기분이다. 프레스티아와 대화할 때도 나의 감정을 숨긴 채 연기를 해왔고 미소녀 3인방이랑 대화 할 때도 남자처럼 얘기하려니 답답해 뒤질 뻔 했는데 오랜만에 내 성격대로 말 하니까 가슴이 뻥 뚫렸다.

"근데 다른애들 한테는 반말하자고 말 한 적 없잖아?"

"일단 귀족이니까 내가 먼저 편하게 대하자고 하기엔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아서."

아마 내가 부탁하면 좋아라 하면서 금방 말을 놓겠지만, 평민이 귀족한테 우리 편하게 지네요. 라고 말하기엔 아무리 나라도 부담이 좀 있었다.

그리고 라이넬과 말을 놓으면 둘이 대화하는 걸 듣고 먼저 제안해 올 테니 굳이 부담을 질 필요는 없었다.

혹시 알아? 그렇게 착해 보였던 애들이 내가 반말해도 돼요? 하자마자 귀족 능멸이니 뭐니 하면서 정색하고 연을 끊어버릴지?

연을 끊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친해지고 싶은 사이라고 해도 나이가 같은 회사 후배가 야라고 불러도 되지? 동갑이잖아? 라고 말하면 일단 허락은 하면서도 뭔가 불편할테니까.

"그럼 나는 이제 슬슬 들어갈게. 끝나고 보자."

홀가분 한 마음으로 반으로 돌아가려던 그 때 허스키한 목소리가 귀를 때려왔다.

"이야, 처리 하기 쉽게 한 곳에 모여 있네 떨거지들이 눈치도 좋아."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