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운동을 해보자2
* * *
구름 위를 걷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분명 흙으로 된 땅을 걷고 있었음에도 몸이 점점 뜨는 기분이 들었다.
"플레아씨는 운동은 처음이신가요."
"네..."
이 정도 걸어왔으면 됐다는 듯이 프레스티아가 나를 놓았다.
너무나 아쉬워서 무심코 손을 다시 잡을 뻔했지만 꾹 참았다.
어차피 같이 운동하다 보면 신체적인 접촉은 필연적일 터, 손을 놓게 됐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건강이나 미용 목적으로 저희를 찾아오신 건가요?"
아니요, 프레스티아님 보러 찾아왔는데요.
라고 말하면 아마 어색한 분위기가 우리 사이를 지배하겠지,
아니, 나는 어색하더라도 프레스티아는 잘 넘길 수 있으려나?
"호신의 목적으로 운동을 배우고 싶습니다."
순간적으로 프레스티아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네 까짓게? 라는 표정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부드럽게 돌아왔다.
프레스티아 급의 인물이 표정관리를 못 한 것은 아닐 테니 일부로 저런 표정을 지은 거겠지.
몸이 살짝 떨려왔다. 도대체 프레스티아라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 걸까? 나를 폄하하는 표정조차 아름답다니.
"호신이라, 확실히 남성분들도 자신 몸을 지킬 최소한의 무력을 가꿀 필요가 있죠. 하지만 운동보다는 마법을 배워보는 쪽이 어떠신가요? 아무래도 근골이 약한 남성분들은 마법을 배우는 편이 더 쉬울 겁니다."
"마법도 배우고 있습니다. 연약한 남자의 몸으로 살아가려면 마법이든 무력이든 전부 올려놔야 할 것 같아서요."
"평범한 남성이라면 마법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평범한 남성의 인생을 살려 하지 않는다는 건 당신도 잘 알잖아?
"플레아씨가 그렇게 말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대신 저는 굉장히 엄해서, 남성분이라고 봐 드리지 않습니다.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면 조금 쉬엄쉬엄 할 수 있지만, 무력을 갈고 닦길 원하신다면 그만한 고통을 감수하셔야 할 겁니다."
"감수할 수 있습니다."
프레스티아가 나를 훈련시키기 위해 가하는 고통이다. 얼마나 심한 고통이든 참아낼 자신이 있다.
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
"플레아씨 자세 흐트러집니다."
"ㅈ…. 죄송합니다."
다리를 적당히 벌린 채 양쪽 무릎을 굽히고 양팔을 내민 자세, 줄여서 기마자세를 시작한 1분 만에 땀이 뻘뻘 흐르고 다리가 떨려왔다.
"그게 아니라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프레스티아가 내 몸을 잡고 내 자세를 교정해 주는 데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 망할 몸뚱아리는 겁만 많은 게 아니라 너무 약했다.
억지로 버텨 보려 해도 자꾸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몸이 비틀비틀 거렸다.
고작 기마자세 1분 만에 이렇게 떨고 있으면 어떡하잔 거야?
"플레아씨, 지금이라도 그만 두시겠습니까? 제가 판단한 바로는 플레아씨는 근골이 너무 약하셔서,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수련에만 매진하셔도 원하는 정도의 몸을 가지실 수 있을지 확신을 할 수 없습니다."
지휘관이나 마법사 캐릭터가 유의미한 무력을 가지는 수치는 30, 나의 무력 잠재력은 32밖에 안 된다. 아마 평생을 노력해야 30을 찍을까 말까겠지. 프레스티아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운동해야, 프레스티아랑 더 붙어있을 수 있는 걸."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이제 와서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노선을 변경해 버리면 이런 신체접촉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가벼운 운동만 할 거다.
그건 안 될 일이다. 어떻게 온 건데 뽕은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문들 프레스티아의 스텟이 궁금해졌다. 아마 크게 달라진 점은 없겠지만, 무력 잠재력 100정도로는 바뀌었겠지.
프레스티아 헬링
나이:16
무력:56/104
통솔:48/99
마력: 51/99
지력:49/99
매력:94/99
정치:56/99
상태창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 였다.
무력잠재력이 104라고? 어떻게 잠재력이 100을 넘어가?
매력 잠재력이 102인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선을 강하게 넘은 거 아닌가?
게다가 현 시점에서의 무력도 50을 넘겨있었다.
원래 이 시점이면 소드익스퍼트의 벽에 막혀 있어야 할 프레스티아가 벽을 가볍게 뚫어버렸다.
`이러면 세워둔 계획이 많이 어그러지는데?`
잠재력이 100을 넘는다는 건,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상대적으로 인재가 적은 북부세력이 그랜마스터 단 한 명으로 세력의 균형을 맞췄다는 걸 생각하면 프레스티아의 세력에 그랜드 마스터 한 명이 추가됨으로 인해 생기는 파급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원래 져야 하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승리할 전투에서는 더욱 크게 승리한다.
내가 프레스티아를 막을 수 있을까? 스스로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프레스티아가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고 해도 나에게 고개를 숙일까?
그냥 너 죽고 나 죽자며 덤벼들지 않을까?
"플레아님... 플레아님!!!"
"ㄴ... 네?"
딴 생각을 하다보니 집중을 못 하고 있었네.
일단 프레스티아에 대한 생각은 나중으로 미루고 내가 처한 상황을 파악했다.
언제 넘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땅바닥에 앉아있는 나. 가식을 풀지는 않았지만 화가 잔뜩 나서 나를 내려보고 있는 프레스티아...
아무래도 좆된거 같은데?
"운동 중에 다른 생각을 하시다니 팔자도 편하시군요? 1분간 불러도 아무 말도 없으시길래 눈 뜬 채로 기절한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단 빌자. 빠르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프레스티아라도 남자애가 이렇게 까지 비는 데 더 화내겠어?
"저는 분명 남자라고 봐 드리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몸이 미친듯이 떨려왔다.
내 정신이 거짓으로 화내고 있는 프레스티아에게 쫄았을리 없으니 아마 몸이 겁을 먹은 것 같은데, 정신까지 공포에 전염될 정도로 엄청나게 떨리고 있었다.
"제 부하가 저랑 같이 운동하는 도중에 딴 생각을 했다면 아마 어디 한 군데가 박살날 때 까지 때려 줬겠지만..."
프레스티아가 내 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굳은살이 박혀있었지만 부드럽다면 부드러운 감촉이 내 목을 감쌌다.
"플레아씨는 제 부하도 아니고, 남성분이라 몸이 약하시기도 하니까 딱 한 대만 때리도록 하겠습니다."
프레스티아가 반대쪽 손을 들었다.
아니지? 진짜 때리는 거 아니지?
남자 때리는 거 개 에바야, 제대로 맞으면 며칠은 얼굴이 퉁퉁 부을 텐데, 진짜 때린다고?
육체가 멋대로 눈물을 흘렸다.
"ㅈ... 죄송해요."
아무리 프레스티아라도 진짜 때리진 않을 거야. 잘 못 맞으면 죽는다고, 압도적인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하이네스에게 납치당할 때보다 극심한 공포였다.
차라리 진짜로 화를 내는 거라면 내가 간절히 비는 걸로 조금 누그러 들지도 몰랐지만 프레스티아는 진짜 화가 난게 아니다. 고작 이정도로 화를 낼 정도로 가벼운 사람이 아니니까.
지금 하고 있는 건 그냥 연기다. 지금까지 쌓아온 가식대로라면 화를 내야하니까. 그리고 어쩌면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겁을 먹는 나를 보고 싶어서.
"갑니다."
쐐액!
어떻게 사람 손에서 저딴 소리가 나는 걸까. 눈을 질끈 감고 충격을 기다렸지만, 얼굴에 가해지는 충격은 아무것도 없었다.
"야, 남자애 한테 무슨 짓이냐? 우는 남자 때리는 짓은 우리 엄마도 안 해 임마."
익숙한 목소리에 슬쩍 눈을 떠보니, 하이네스가 프레스티아의 손을 막고 있었다.
"네가 너무 예뻐서 잠시 넋이라도 나갔나 보지. 너는 고작 그런 거로 남자를 때리려고 하냐."
"자기 몸을 지키려고 하는 운동인데 남자 여자 구분이 어딨습니까?"
"얘는 오늘이 처음이잖아. 그리고 칠 거면 살살 치든가, 마나만 안 썼지 힘 빡주고 때리려더만, 잘 못 맞으면 죽을 뻔했어."
프레스티아가 할 말이 없었는 지 내 목을 잡은 손을 놓았다.
실이 끊긴 인형처럼 땅에 쓰러졌다.
"흐끅.... 흑..."
멈추려고 해도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짝
뭐지? 둘이서 싸우기라도 했나?
근데 뭔가 이상했다. 손과 뺨이 만나서 내는 소리보단 손과 손이 만나서 내는 소리에 가까운 것 같은데...
"플레아씨,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제가 지금은 흥분한 상태라서 제대로 된 사과를 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 오늘은 이만 돌아가, 많이 무서웠을 텐데."
하이네스의 손길에 강제로 일어났다. 망할 몸뚱아리,
이미 상황은 끝났는 데 왜 아직도 울고 있어.
심장도 쿵쿵 대며 뛰었고, 눈물도 그칠 줄을 몰랐다.
정신은 멀쩡하잖아! 멋대로 울지 말라고!!
"가자. 가면 쓰고."
하이네스가 강제로 가면을 씌운 바람에 흘러내리는 눈물조차 닦지 못 하게 됐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훌쩍훌쩍 울면서 기숙사로 와서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든 것 같긴 한데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