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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9화 (9/312)

〈 9화 〉 마법을 배워보자­3

* * *

이 공간에 있는 유일한 인싸인 하이네스를 빤히 바라봤다.

하이네스가 입을 열지 않으면 이곳은 평생 침묵에 휩싸인 공간이 될 것이 분명했다.

설마 아무도 나서지 않을 줄은 몰랐는지 하이네스는 이 찐따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표정으로 미간을 짚고 있었다.

"너희들 아카데미에 공부만 하러 왔어? 청춘을 즐길 생각이 없어? 왜 판을 깔아줘도 말을 못해? 내가 어려운 거 시켰어? 자기소개도 못 해?"

묵직한 팩트가 가슴에 들이박혔다.

"플레아는 남자애니까 그렇다 치자. 정신이 살짝 나간 것 같은 애긴 한데, 자기 빼고 여자들밖에 없는 곳이니까 부담을 느낄 수도 있고 겁을 먹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너희는 뭐야? 여자답지 못하게 가만히 있을 거야?"

화살은 라이넬에게로 향했다.

"너는 얘 보려고 교양 마법 신청했다면서? 이왕 만난 거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기사반이라는 애가 남들 앞에서 말도 못 하고 벌벌 떠는 모습을 보면 얘가 뭐라고 생각하겠어?"

`독설 참 맛깔나네.`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라이넬을 살짝 훑어 보니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보였다.

성격이 여린 편이니까 울음을 참고 있는 게 아닐까?

"너 찐따야?"

"아닙니다!"

살짝의 울음기는 느껴질 줄 알았는데 조금 분해 보이는 걸 말고는 떨리지도 않고 멀쩡한 목소리였다.

하긴, 여자가 돼서 질질 짜는 것도 웃기긴 하지.

여자가 질질짜는 게 웃기다고 생각하다니, 슬슬 나도 이세계에 동화되어 가는 걸까 두려워졌다.

"그러면 말을 해, 나는 누구다. 앞으로 잘 지네 보자.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분위기가 점점 뜨거워졌다.

하이네스가 말한 것처럼 라이넬이 자기소개를 한다면 금방 식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괜히 지고 들어가는 게 싫었는지 라이넬은 하이네스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이럴 땐 남자인 내가 분위기를 풀어줘야겠지?

"나는 플레아 아이데스다. 앞으로 잘 지네 보자. 이렇게 하면 되죠?"

화사한 목소리에 분위기가 확 풀렸다.

일단 싸우고 있던 둘이 내 쪽으로 시선을 꺾었으니까, 역시 싸움을 말리는 데에는 외부에 시선을 돌리는 게 최고지.

"사모아 공녀님께 찍힌 몸이라서 아마 친해지는 게 불편한 애들도 있을 텐데, 그러면 말해줘. 앞으론 절대 말 안 걸 테니까."

"ㅇ…. 아니야! 말 걸어도 돼!"

아까의 푸른 머리의 여자애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얼굴이 새빨간 게 역시 내 얼굴이 잘생기긴 했구나 싶었다.

내 목소리 하나로 분위기가 풀려버리자 더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라이넬이 입을 열었다.

"저는 라이넬입니다. 플레아씨가 제 주군으로 적합한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교양마법을 신청했습니다."

얼른 다른 애들의 눈치를 살폈다. 아직 기반도 없는 상태인데 괜히 `남자 주제에 군주가 되고 싶어하는 머저리` 같은 평가를 받았다가는 앞으로 내가 할 일에 엄청난 방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내가 군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건 최대한 비밀로 하는 게 좋으니까. 괜한 견제는 받고 싶지 않다.

다른 애들이 잘생긴 남자의 호위기사가 하고 싶나 보구나, 하는 표정으로 라이넬을 바라보는 걸 보고 한 시름 놓았지만 하이네스만은 나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프레스티아의 수하인만큼 그녀의 귀에 이 얘기가 들어가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잠시 지나갔지만,

`오히려 좋지.`

그만큼 그녀의 관심을 끌 수 있게 될테니까.

그리고 프레스티아는 이미 내가 라이넬에게 영입 제안을 한 걸 알고 있다.

게다가 나랑 라이넬을 한번에 먹어치우겠다고 선고까지 한 마당이니 더더욱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내가 아무리 나대도 결국 자기 손에 들어올 테니 방해는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저는 시에린 마디안이라고 해요!"

마디안이라, 완전히 처음 보는 성은 아니지만, 익숙하지도 않은 성이었다. 아마 게임을 진행하면서 가끔 한 두 번씩 조연의 이름으로 스쳐 지나간 적이 있는 모양이다.

내 기억에 남지 않았다는 건 그리 강한 세력이라는 아니라는 뜻,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저는 헤르엔이라고 합니다. 시에린 친구고요. 얘가 플레아님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져버려서 응원하려고 들어왔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란머리의 여학생, 그러까 마디안의 얼굴이 빨개졌다.

나에게 관심이 많아 보이긴 했는데 아예 나를 보려고 이 수업을 신청한 건가?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는 건 친구끼리 하는 장난에 불과하겠지. 설령 진짜 한눈에 반했다고 해도 얼굴만 보고 사랑에 빠지는 사람한텐 관심 없었다.

마디안을 바라보니 얼굴이 빨개진 채로 시선을 피했다.

외모는 수준급이었다. 애초에 원작이 게임이니까. 저런 엑스트라도 이쁜 건 당연했다.

`그리고 일단 제국 아카데미 학생이지.`

제국에서 가장 잘난 인재들만 모이는 곳,

이곳에 입학했다면 최소한 중상위 권 정도 되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제국 아카데미는 이게 좋았다. 아무리 엑스트라라도 어느 정도의 능력치는 보장되어있다는 거.

나중에 한 번 영입 제안을 해보자. 인재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아마 귀족일 것 같긴 한데, 말은 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감히 평민 따위가 귀족한테 못 하는 말이 없다고 길길이 날뛰면 비명 한 번 질러주면 되지.

얼추 자기소개가 끝난 것 같아서 하이네스를 바라보는 데 뭔가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러지?

"선배? 어디 아프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너희, 마법 배우려고 온 애는 한 명도 없어?"

일단 손을 들었다. 약한 마력이긴 해도 내 몸을 지킬 최소한의 무력을 챙기기 위해 교양 마법을 신청한 거니까.

하이네스는 손을 드는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는 걸 확인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마법을 배우고 싶은 잘 생긴 남자애 하나랑 그 남자애를 보러 온 여자애 4명이 교양 마법을 배우러 온 학생들의 전부라는 거지?"

암울하면서도 어두운 목소리였다.

왜 어두운 이라는 의미를 두번 이나 사용할 정도로 축 처지는 목소리에 라이넬을 제외한 여자애들 3명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아니에요! 플레아님도 겸사겸사 보고 마법도 배우고 싶어서 신청한 거에요!"

"맞아요!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아냐, 위로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괜찮은 걸, 처음 맞게 된 조교직이어서 엄청 기대했고, 즐겁게 마법을 가르치려고 준비도 많이 했는데, 정작 학생들이 마법을 배우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지만, 나는 괜찮아."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 어투거든요? 하이네스의 힘없는 목소리에 내 몸에 있던 기운까지 같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하이네스가 마법을 가르치는 것에 그렇게 진심일 줄은 몰랐는데? 진심으로 실망했다는 기분이 팍팍 느껴졌다.

다른 애들은 음침한 하이네스의 분위기에 위로도 못해주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기들때문에 하이네스가 저렇게 저기력이 돼 있는 거니까, 괜히 말을 걸기도 힘들겠지.

"걱정할 거 없지 않으세요? 다른 애들이 마법에 관심이 없으면 오히려 저 같은 미소년한테만 집중할 수 있는 거니까, 오히려 좋은 거라고요."

스스로를 미소년이라고 칭하다니,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이쪽 세계의 여성들한테는 어느 정도 먹히는 대사가 아닐까?

실제로 하이네스의 눈빛이 다시 되돌아 오는 것 같기도 했고.

"그리고 저는 마법에 관심이 많아서요. 질문도 엄청 많이 할거거든요? 저 같은 애가 다섯 명이면 아마 엄청 힘드실 테니까 오히려 좋은 거라고요."

"너 같은 애가 다섯 명이면 천국이지 어떻게 힘드냐."

하이네스가 기력을 회복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자한테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기분은 상당히 미묘했지만, 뿌리쳤다간 또 분위기가 어색해 질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기특한데? 누나 기운 없다고 위로도 해주고, 그런데 누나는 멀쩡하거든? 연기 좀 해본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우울하게 있어놓고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지 않을래?` 라고 말해봤자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겉으로는 잊어주는 척 하겠지만 나중에 엄청 놀려 줄테다.

"연기라니 다행이네요. 아까 여자애들한테 찐따 머저리라고 했던 선배가 고작 이 정도에 기죽어 있는 사람이었으면 실망할 뻔 했거든요."

"야? 내가 언제 찐따라 그랬냐?"

가해자가 되면 기억력이 떨어지는 건 어느 세계를 가도 고통인 모양이다. 말한지 10분도 안 돼서 까먹다니, 이게 선택적 기억이라는 걸까?

"아무튼, 기력을 회복하셔서 기뻐요. 이제 자기소개도 다 끝났으니 놀아야 하는 데 선배가 축 늘어져 있으면 후배들은 눈치만 보이잖아요."

"아, 그래 놀아야지."

하이네스가 내 뒤로 와서 나를 가볍게 안아들었다.

마법반이어도 여자는 여자라는 건지 인형처럼 가볍게 들어올렸는 데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다.

"선배? 뭐 하세요?"

"아무래도 교양 마법을 들으러 온 학생은 너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서 말이지. 나는 수업을 들을 학생이랑 놀고 싶은 거거든?"

그러고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잘 있어라 얘들아! 오늘은 나랑 얘랑 둘 이서 놀 테니까. 너희는 집에가든 기숙사에 가든 알아서 해라!!"

하이네스한테 들려서 뒤가 보이진 않았지만 얼척 없다는 표정으로 하이네스를 바라보고 있을 학생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 했다.

내 얼굴을 내가 못 봐서 그렇지 내 표정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하이네스한테 들려서 이동하고 있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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