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마법을 배워보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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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레타 하이네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녀는 프레스티아의 수하로서 늘 플레이어의 앞을 가로막았으며 스스로가 고위 마법사이기도 했다.
게임 중반부 이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마법사 부대의 지휘를 맡기엔 최고의 인재기도 했다.
실제로 게임을 하면서 같은 병력으로 그녀를 이겨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보통 2배 정도의 병력을 데려가야 반반의 승률을 낼 수 있었으니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인재인지는 더 말 할 필요가 없겠지.
다만 플레아로 플레이하는 나는 절대로 그녀를 영입할 수 없었는데 그나마 접촉할 수 있는 아카데미 구간에선 그녀가 남성 공포증을 앓고 있어서 만날 수가 없었고, 남성 공포증이 모두 나은 뒤에도 모든 남성을 증오했기 때문에 남성 캐릭터로 시작하면 그녀를 영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프레스티아와는 어렸을 때부터 친한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아카데미 시점에선 이미 둘 사이에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내가 들어갈 틈이라는 건 없었다.
`남자 공포증? 그런 건 전혀 안 보이는 데?`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모습은 남성 공포증을 앓고 있는 여성이라곤 믿기지 않았다.
끈적한 시선이야 연기였다고 쳐도 머리도 아무렇지 않게 쓰다듬었잖아?
아무리 플레아가 예쁘고 귀여운 편이지만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목소리가 여린 편이긴 해도 여자라는 느낌은 안 드는 목소리기도 하고.
사실 남자 공포증이 아니라 추남 공포증이어서 매력 95 이하의 떨거지만 무서워하기라도 했던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정답을 찾을 순 없었다. 그냥 남녀역전 모드의 변경사항이라고 생각하자.
남녀역전 세계에서 여자가 남자를 무서워하는 것도 어색하니까.
"혹시 여기에 마법반인데 행정반 애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교양 마법을 들으러 온 머저리는 없겠지?"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마법반이면 교양 마법보다 훨씬 더 어려운 마법을 배울 텐데 굳이 교양 마법을 필요가 없으니까.
현대로 치면 일어일문학과에 다니면서 일본어 교양수업을 신청한 느낌일까?
심지어 여긴 학점을 채워야 하는 것도 아니니 더 질이 나쁘다고 볼 수 있겠다.
"다행이 그런 머저리는 없나 보네, 그럼 나는 서클을 만들 수 없는 기사반 학생이지만 잘생긴 남자를 보러 교양 마법을 들으러 왔다 손."
대놓고 라이넬을 저격한 발언이었다.
아무리 라이넬이라도 기분이 상했는지 부들거리면서 손을 들었다.
"솔직한 아이네. 나라면 그냥 입 닫고 있었을 텐데. 어차피 자기가 안 밝히면 모르는 거잖아?"
푸하하하 하고 크게 웃는 모습이, 도저히 게임 속의 하이네스와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하이네스는 늘 로브를 깊게 눌러 쓰고 그녀와 친한 사람 외에는 아예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살가운 사람이 된 걸까?
사실 소설 속 클리셰처럼 죽은 언니의 유지를 잇기 위해 이름을 언니로 바꾸고 활동한 게 아닐까?
지금 눈 앞에 있는 하이네스는 금방 죽고 남성 공포증을 앓고 있는 하이네스가 미레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거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이 세계의 배경이 게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원래 게임이라는 건 재미를 위해서 개연성을 희생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오늘은 첫날이니까 어려운 건 하지 않을 거야. 마법이라는 게 뭔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알려줄게. 혹시 마법의 정의가 뭔지 알고 있는 사람 있어?"
"마나의 흐름으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의 통칭이요."
"그래, 잘 아네. 잘 생겨서 그런가? 아주 똑똑해."
게임의 기본설정이라서 아는 것뿐이다.
마나는 특정한 방법으로 흐를 때 특이한 현상을 발생시키는 데 이런 현상을 통틀어서 마법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마법이라고 하면 지성체가 마나를 인위적으로 마나를 흐르게 해서 강제로 원하는 현상을 발생시키는 것만을 떠올리지만, 마법의 정의에 따르면 자연의 마나가 움직여서 발생하는 현상도 마법의 일종이다.
인위적인 마법과 구분하기 위해 자연 마법이라고 불리며, 일반적인 사람은 평생 10번 이상 경혐 하지 못 하는 것이 보통이다.
"혹시 마법반으로 입학하려고 공부하다가 떨어졌니?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는데?"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라면 다행이고 너는 마력이 약해서 아마 죽을 때까지 수련해도 5서클 까지는 못 갈 거야."
소름돋게 정확했다.
마력 10당 1개의 서클을 만들 수 있는 이 세계에서 마력 잠재력이 43밖에 안 되는 내 몸으론 4서클에도 겨우 도달할 테니까.
아무래도 눈앞의 선배는 내가 아는 미레타 하이네스가 맞는 모양이다. 설마 지금 나이에서 상대방의 잠재력을 보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한 가문에서 두 명이나 나왔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근데, 남성 공포증이 없단 말이지?`
속으로만 미소를 지었다. 기쁨을 밖으로 표현하기엔 지금 내가 웃을 이유가 없었다.
너는 마법 배워봤자 대성 못 해 차라리 행정반으로 가서 다행이네. 라는 비꼼을 듣고 웃는 사람이 어딨어 미친놈도 아니고.
나는 지극히 정상인이니까. 실망한 척을 해야지.
"어차피 너흰 행정반이잖아? 생활에 도움이 되는 마법 정도는 3서클 이내에서 전부 배울 수 있으니까 너무 낙심 하지 마."
"낙심한 적 없거든요."
다행히 내 연기는 통했는지 하이네스의 걱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설명이나 계속해주세요. 저는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애들은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요."
"뭘 더 설명해, 그게 끝인데."
하이네스가 가볍게 손을 튕기자 손 위에서 불이 피워졌다.
"마법은 마나의 흐름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이게 끝이야. 서클을 늘리는 이유는 더 많은 마나를, 더 편하게 조종하기 위해서 늘리는 거고 마탑에서 마법을 연구하는 이유는 모든 흐름에 대한 모든 현상을 알고자 하는 탐구심으로 연구하는 거야."
사람 손이 라이터도 아니고 갑자기 불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놀랍긴 했다.
아마 내가 마법에 대한 동경이 있고 마법사가 되고자 하는 몸이었다면 그 광경에 경외감을 표출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군주가 될 몸이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이라도 한 낯 도구로 치부하는 불쌍한 직업이 장래희망이다 보니 놀라움 외에 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물론 너희가 배울건 이런 원론적인 얘기가 아니라 마법을 발현하는 공식이랑 서클을 늘리는 방법이겠지만 첫날 부터 외우는 공부는 싫잖아? 오늘 수업은 이쯤하고 놀자고. 같이 수업하는 사이인데 어색하게 있는 건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말이야. 다들 책상 밀고 둥글게 모여 앉아."
농담으로 하는 말인가 싶었는데 교탁부터 밀어버리고 바닥에 앉아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정신이 살짝 혼미해졌다.
선배가 시켰다고 책상 밀고 바닥에 앉는 행정반 여학생 세 명의 모습에 이 아카데미엔 정상인이란 없는 건가 싶기도 했고.
"너희도 잘생긴 남자애랑 놀고 싶었구나?"
"그런 거 아니거든요!!"
푸른 머리 여자애가 붉은 얼굴로 소리를 치는 거 보니 어지간히 찔린 모양이다.
다들 노는 분위기인데 `신성한 수업시간이 놀다뇨?! 수업을 해주세요!` 라고 말할 정도로 아싸는 아니었기에 책상을 슬쩍 치우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라이넬도 재빠르게 내 옆에 앉았다.
흠,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가, 생각보다 빨리 넘어올 것 같다. 게임에서는 충성맹세를 받기 까지 못 해도 1년은 걸렸는데 잘하면 반년 안에 충성맹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선배까지 포함해서 6명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나 빼고 다 여자인데다가 다들 어느 정도 이상의 미소녀다 보니 조금 부담이 되긴 했다.
`이럴 땐 프레스티아를 떠올려 보자.`
응, 확실히 다들 꼴뚜기 같아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프레스티아를 옆에 데려다 놓으면 누구라도 해산물 처럼 보일테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사람이 아니라 해산물이라고 생각하자 살짝 남아있던 부담감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일단 자기소개 부터할까?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미레타 하이네스. 마법반 이고 3학년이야, 교수님이 귀차니즘이 좀 심하신 분이라서 과제 같은 건 거의 내가 낼 것 같아. 자, 다음 자기 소개할 사람?"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실을 가득 채우는 어색함.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
30초 정도 정적이 흘렀을 때 나는 깨달았다.
아무래도 교양 마법을 듣는 행정반 학생 4명과 기사반 학생 한 명은 모두 아싸인 모양이다.
물론 나한테도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이 분위기 어떡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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