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6화 (6/312)

〈 6화 〉 미친놈

* * *

`개새끼들`

사모아 공녀의 종년들한테 맞은 부위가 아직도 아려 온다.

점심시간이면 밥이나 처먹을 것이지 왜 남한테 화 풀인지.

괜히 옷만 더러워졌다.

다행히 귀족년들이 학교 급식실에서 식사하진 않았기에 점심식사는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턱

개년들이 설마 밥 먹는 것도 건드리려는 걸까? 앞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사납게 고개를 들었지만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사모아 공녀의 종년들이 아니라 신사분이었다.

`미친! 겁나 예뻐.`

그것도 지나치게 잘생긴,

평생을 스승님 밑에서 훈련하느라 많은 남자를 경험해 보진 못했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잘생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빛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남자가 왜 나한테 다가온 거지?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입학식 날 사모아 공녀한테 추파를 당한 남성이 기억났다.

멀어서 잘 안 보이긴 했지만 넓은 강당을 침묵시킬 정도의 미인이 학교에 둘이나 있진 않겠지.

지금 내 앞에 있는 남성과 입학식의 그 남성이 동일인물일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여기 앉아서 먹어도 될까요?"

"ㄴ…. 네 됩니다!!"

그렇다고 남자가 왜 나한테 다가온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럴 땐 여자가 먼저 말을 시작해야 할 텐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눈앞의 남자가 내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하진 않을지 걱정돼서 도저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저는 플레아 아이데스라고 합니다. 기사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아직 주군도 없고 서임도 받지 못한 사람한테 기사라니, 이 도련님은 기사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다. 하긴, 곱게 자란 남자들은 잘 모르는 내용이긴 하지.

"기사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아직 서임도 받지 못한 몸입니다."

그의 말을 정정해 줬지만, 그는 뭔가 불만이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 저렇게 보지?`

내가 뭘 잘 못 했나?

대화를 곰곰히 곱씹어 보니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름은 라이넬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내 이름을 밝히자 그의 표정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알기 쉬운 사람이네.`

"근데 옷이 상당히 더러우신데, 기사반은 제복을 입고 훈련을 하는 건가요?"

`아,`

그제야 내 차림새가 기억났다.

점심을 먹으러 제복으로 갈아입자마자 사모아 파벌에게 린치를 당해서 잔뜩 더러워진 옷, 어차피 나한테 관심 가지는 사람도 없고 밥 먹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으니 그냥 입고 왔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아…. 그게…."

할 말이 없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동기들한테 맞았다? 아무리 다수가 덤벼서 맞은 거긴 하지만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그냥 훈련복을 놓고 와서 제복을 입고 훈련했다고 말해야지.

"혹시 교우 관계가 원만하지 못 하신 건가요?"

아름다운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말이었다.

아마 상대가 여자였다면, 아니 하다 못 해, 평범하게 잘생긴 남자였다면 화나서 두들겨 패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심한 말이었다.

나의 주먹을 막은 건 그의 얼굴이었다.

함부로 때렸다가 상처라도 입히면 신한테 벌을 받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외모였으니까.

잠시 진정하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악의가 보이진 않았다. 마치 대본을 읽는 듯 감정 없는 얼굴이었다.

`사모아 파벌이 시켰나 보구나.`

화를 참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괜히 급식소에서 그를 패기라도 했다간 사모아 파벌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심한 말을 한 플레아씨는 나한테 두들겨 맞고 나는 죄 없는 사람을 때렸다는 죄책감과 함께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을 테니까. 어쩌면 아카데미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

"죄송합니다.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접시엔 아직 음식이 많이 담겨있었지만,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예쁜 남성 분이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들 떠 있던 나한테 자괴감이 들었다.

그는 사모아 파벌의 압력 때문에 나에게 다가왔을 뿐일 텐데….

훈련복으로 환복하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점심도 안 먹어가면서 열심히 훈련하는 사람은 없었는지 훈련장은 텅텅 비어있었다.

상처 가득한 목검을 들고 하염없이 휘둘렀다.

잡념이 조금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하늘을 바라보니 해가 조금씩 져가고 있었다.

아직 노을도 끼지 않은 이르다면 이른 시간이었지만 행정반은 수업이 끝났을 시간이고 기사반도 자율 훈련 시간이 주어지는 시간이었다.

넓은 훈련장이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자리는 입구에서 먼 구석 자리밖에 없었다. 각종 파벌들이 땅따먹기하듯 구역을 나누고 있었고 나처럼 다른 세력에게 찍힌 사람은 구석 외에는 훈련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조용히 검을 휘두르다 보니 훈련장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걸 느꼈다.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려 보니 점심때 만난 플레아씨가 훈련장 입구 쪽에 서 있었다.

`또 사모아 파벌의 짓인가?`

나나 플레아씨나 이상한 사람한테 찍혀서 고생하는구나.

애써 무시하고 훈련을 계속했지만 플레아씨의 시선은 나한테 고정되어 있었는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라고 해도 대단한 인간들은 아니다. 학기 초엔 좀 친하게 지내려다가 내가 사모아 공녀한테 안 좋게 보인다는 말을 듣고 순식간에 떠나간 애들이니까.

"저분이랑 아는 사이야?"

"모른다."

살짝 시선을 돌려 플레아씨를 바라보니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주변의 여자들은 그걸 좋다고 보고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그에 관한 관심이 점점 높아져서 훈련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을 수준이 되어서야 교관님들이 크게 호통을 쳤다.

그리고 플레아씨 까지 쫓아난 이후에야 제대로 훈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솔직히 제대로 훈련을 했는지도 몰랐다. 내 정신은 플레아씨한테 팔려있었으니까.

가장 먼저 훈련장 밖으로 나와서 플레아씨한테 다가갔다.

"저한테 왜 그러시는 겁니까."

많이 흥분한 상태였다. 신사분 한테 해선 안 되는 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플레아씨를 압박했다.

겁을 잔뜩 먹고 떨고 있는 플레아씨를 보고 있자니 죄책감이 몰려왔다.

"ㄴ…. 네? 제가 왜요?"

사모아 파벌이 시켜서요. 단 한 마디면 금방 끝날 일인 텐데,

주변이 시끌시끌해졌다. 기사반애들도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고 있었고 친구를 기다리는 행정반 애들도 몇 명 있었다.

"따라 오십쇼."

그의 손목을 잡고 이동했다. 환복을 위한 건물과 뭐에 쓰는지 알 수 없는 체육관 사이의 작은 공간,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의 손목을 놨다.

흥분해서 너무 세게 잡았던 걸까? 그가 손목을 잡고 아파하는 게 보였다.

"저한테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플레아씨한테 하는 말은 아니었다. 사모아 파벌 개 같은 것들, 왜 나랑 플레아씨를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울분이 뻗쳤다.

"라이넬님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방금 전까지 울먹이고 있던 남자는 어디로 간 걸까?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을 듯한 작은 몸, 그 몸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주황색 눈동자가 나를 꿰뚫었다.

저게 진짜 남자가 내고 있는 눈빛인가?

나를 지배하겠다는 듯이 덮쳐오는 아우라에 무심코 한 발자국 물러나 버렸다.

내가 지금 설마 겁 먹은 건가? 데안느의 제자 라이넬이?

사모아 파벌한테는 머릿수가 밀려서 맞고 다닐 뿐이지 나는 소드 익스퍼트를 목전에 둔 몸이다.

그런 내가 귀엽고 예쁘기만 한 남자한테 겁먹었을리가 없어 없어.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저를…. 말입니까?"

"네, 라이넬님을 말입니다."

서로 사모아한테 찍힌 사이니까 좀 지켜달라는 걸까?

번지수를 잘 못 찾았다. 나는 평화로운 제도에서 남자나 지키며 살 생각은 꿈에도 없다.

자고로 기사라면 전장에 나가서 주군께 승리를 가져다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플레아님의 호위기사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제 꿈은 전장에서 적을 꺾고 주군에게 승리를 안겨다 드리는 것이지 연약한 신사분의 호위기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호위기사를 부탁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저의 밑에서 적을 꺾는 기사가 되어주십시오."

"플레아님은 남성분이시지 않습니까."

설마 지금 남성의 몸으로 군주가 된다는 소리일까? 세상 물정을 모르는 도련님이었다.

"남성이라고 군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데안느님이 여성군주만 모시고 남성군주는 모시지 말라고 가르치셨나요?"

그의 눈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 어떤 부정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나는 무조건 군주로서 살아갈 것을 주장하는 듯했다.

내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욕망도 같이 담겨있는 그 부담스러운 눈빛에 내 스승인 데안느님을 언급한 것조차 신경 쓰지 못 했다.

"지금 당장 제 밑으로 들어와 달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카데미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제 자질을 판단하고 라이넬님이 충성을 바칠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 제 밑으로 들어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뵙겠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왔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알 수 없는 흥분이 몸을 휘감았다.

나를 향한 강력한 탐욕이 당긴 눈이 아직도 기억난다.

누군가가 나를 원한다.

정말 기묘한 감각이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눈빛이었다.

16년 동안 살면서 그렇게 강렬한 눈빛을 바라본 기억이 없었다.

앞으로도 저런 눈빛을 볼 수 있을까? 플레아씨를 제외하고 나를 저토록 필요로 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

지 머리마냥 새빨간 얼굴을 한 여성의 내 옆을 지나쳐갔다.

'괜히 간 보다가 기회를 놓쳐버렸군.'

멍청한 버터년 덕분에 좋은 인재를 꽁으로 얻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괜히 절박한 상황을 만들겠다고 기다리다가 남한테 뺏겨 버렸다.

그렇다고 마음이 상하진 않았다. 라이넬이 귀한 인재긴 했지만 정작 라이넬을 채간 사람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훈련장 앞의 작은 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금발의 남성이 골목을 빠져나왔다.

신기한 놈이었다. 분명 나한테 반한 게 분명하고 자신이 잘생겼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지난 일주일 동안 점심시간에 운동하는 자신을 훔쳐보는 걸 제외하곤 근처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부끄러움이 많다고 치부하고 넘어갔지만, 오늘 놈이 나한테 저지른 잘 못을 생각하면 단순히 부끄러움이 많아서 나를 피해왔던 건 아니겠지.

"재밌는 짓을 했더군."

남자들한테 보여주는 가식은 집어 던졌다. 내 것을 건드린 시점부터 이미 남자라고 봐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내 시선을 받아낼 수 있는 남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 것만 놈은 나의 시선을 어느 정도 견뎌내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라는 것들은 내가 기세를 풍기면 대부분 바닥에 주저 앉아 잘 못했다고 비는 연약한 존재들었지만 놈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어떻게든 서 있었다.

`그냥 미친놈이군.`

가까이 가서 본 놈의 눈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미친놈으로 표현이 가능한 정도가 아닌 듯했지만 정상적인 남자는 확실히 아니리라.

"감히 내가 노리던 인재를 채간 그 대담함에 대한 상으로 편안한 죽음을 선사해 줄까 했지만."

놈의 턱을 잡고 얼굴을 잠식 감상했다.

여자를 홀리는 얼굴이었다. 어디를 봐도 모난 곳 없이 완벽한 얼굴이었다.

'역시 죽이기엔 아까워.'

"이런 귀여운 외모를 가진 남성을 죽여버리는 건 세계적인 손실이겠지."

놈을 가볍게 밀어서 넘어뜨렸다.

어차피 놈은 나를 사랑한다. 굳이 죽일 필요는 없겠지.

결국, 때가 되면 내 밑으로 들어올 것이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지. 어차피 너희 둘 다 내 밑으로 들어올 테니까. 그때까지 열심히 발버둥 쳐봐."

애완동물의 재롱을 구경하는 것도 주인의 몫이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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