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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5화 (5/312)

〈 5화 〉 부하 구하기­2

* * *

수업이 모두 끝나자마자 훈련장으로 달려갔다.

기사반이 아니라면 출입이 금지되어 있기엔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지만, 벽돌 같은 거로 담을 쌓아 놓은 것도 아니어서 내부는 충분히 잘 보였다.

아주 바람직한 광경이군.

분명 `난세`의 기사반의 성비는 남자 6: 여자 4였는데 왜 이 세상에선 남자 1: 여자 9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미소녀들이 몸매를 드러내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에 내 분신이 반응할 법도 했지만 플레아의 몸이 된 이후엔 내가 세우고자 생각하지 않으면 안 서더라.

분신은 만족하지 못해도 눈은 즐거웠기에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진 않았다.

훈련장 안에 프레스티아까지 있었다면 완벽했겠지만 안타깝게도 프레스티아는 기사반이 아니라 행정 반이다. 그녀는 기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군주가 될 몸이니까. 지금쯤이면 제도

의 저택에서 책을 읽고 있거나 훈련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다. 이 근처에 있겠구나?`

`프레스티아 보고 싶다.`

지난 일주일간 일부러 그녀와의 만남을 피해왔다.

연약하고 지킴 받아야 하는 남자 보다는 등용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서 그녀에게 인식되고 싶었으니까.

점심시간에 그녀가 운동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봤던 걸 제외하면 그녀를 본 적이 없다.

당연히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가식 가득한 목소리를 듣는다면 오늘 하루의 피로뿐만 아니라 일주일간 쌓여온 피로가 전부 사라져 버릴 텐데, 아직 들을 때가 아니란 게 너무 아쉬웠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엔 관심을 가지지 않는 법.

절대로 쉬운 남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참으로 까다로운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더 공략할 맛이 나는 거지만.

그래도 조금 있으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멍하니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기사반 애들이 나를 흠칫하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래, 너희도 한창때인데 이런 초절정 미소년을 보고도 멀쩡히 훈련에 집중할 수 있으면 너희가 사람이지 짐승이겠니.

심지어 교관들도 나를 몰래 훔쳐보며 침을 꼴깍 삼키는 데 평범한 학생들은 이런 유혹을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워낙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아카데미다 보니 나를 꿋꿋히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난세가 찾아오면 어느 군주 밑에 들어가든 이름을 날릴 기사들, 그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억지로 무시한 채 자신의 훈련에 집중했다.

결국, 저런 사람들을 영입해야겠지만 한낱 평민인 내가 기사 가문 출신인 그녀들을 영입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영입할 수 있는 유일한 여성을 바라봤다.

분명 내 시선을 느끼고 있을 테지만 억지로 무시하고 고개를 돌리는 모습은 꽤 귀여웠다.

기사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그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훈련장의 크기는 꽤 컸고 라이넬은 훈련장의 구석에 있었기 때문에 말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벌게진 얼굴이나 들떠 보이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아마 나랑 무슨 관계냐고 묻고 있는 게 아닐까?

가볍게 손을 흔드니, `꺄아아!`하는 비명이 여기까지 들렸다.

소란이 심해지자 교관이 훈련에 집중하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는 나까지 째려보기에 일단 훈련장에서 살짝 떨어진 건물에 등을 기대고 기다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하얀색 구름들이 떠다녔다.

뭔 문어같이 괴기한 모양을 하고 있는 구름도 있었고 평범하게 동글동글하게 생긴 구름도 있었다.

`평화롭네.`

아카데미 생활을 즐기면서 최애캐도 보고 부하도 영입하려고 뛰어다니고 얼마나 평화로운가.

왼쪽을 살짝 살펴보자, 기사반의 친구라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 많은 무리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기사반의 수업이 끝난 듯 훈련자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우렁차다고는 해도 미소녀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서 곱디곱기 그지없었지만.

입구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라이넬이 가장 먼저 훈련장 밖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지 예쁜 얼굴을 찡그리고는 두리 번 거리던 그녀는 나를 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오오, 박력 봐.`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여성이 꽤 무서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게 무서웠는지 몸은 멋대로 떨렸지만 늘 그렇듯 정신은 멀쩡했다.

라이넬은 찡그린 표정조차 귀여운 미소녀였으니까.

"저한테 왜 그러시는 겁니까."

라이넬이 양팔로 내 뒤의 벽을 짚었다, 소위 벽쿵이라는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에 몸이 미친 듯이 떨렸다.

플레아에게 빙의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지 맘대로 겁먹는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한테 겁박당하면서 웃고 있는 남자를 정상인으로 보지는 않을 테니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남자` 처럼 보인다는 거니까.

"ㄴ…. 네? 제가 왜요?"

잔뜩 겁에 질린 나의 목소리에 주변이 시끌시끌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내 나름대로 짜릿한 긴장감을 느끼는 중이었지만 주변에서 보기엔 기사반 여학생이 미소년을 협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따라 오십쇼."

그녀가 우악스러운 손길로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작은 공간, 일진들이 찐따 데려와서 패기 딱 좋은 공간까지 나를 끌고 와서야 라이넬은 내 손목을 놔줬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시큰거리는 손목을 어루만졌다.

이래 봬도 국보급 신체인데 좀 살살 다뤄주면 안 되나?

"저한테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약간의 울먹임까지 섞여 있는 그녀의 말에 한 번 더 장난을 칠까 싶었지만, 역시 그만하기로 했다.

어차피 장난은 제대로 충성을 받아낸 다음에도 얼마든지 칠 수 있고.

"라이넬님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웃음기를 쫙 뺐다.

매력이라는 능력치는 단순히 미모를 올려주는 능력치가 아니다.

97이라는 높은 매력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라이넬을 지배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울먹거리던 남성의 몸에서 당장이라도 자신이 지배할 듯 강렬한 아우라가 풍기자 당황했던 걸까?

라이넬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남성한테 쫄아서 뒷걸음질 치는 여성이라니, 여성 답지 못 한걸? 겁먹은 모습으로 여성다움을 어필하고 싶으면 우리 세계로 가라고.

"저를…. 말입니까?"

"네, 라이넬님을 말입니다."

"플레아님의 호위기사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제 꿈은 전장에서 적을 꺾고 주군에게 승리를 안겨다 드리는 것이지 연약한 신사분의 호위기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아우라에 짓눌려서 겨우 입을 연 라이넬이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신념이 담겨있었다.

위대한 기사 데안느의 밑에서 평생을 자라면서 가치관 대부분에 기사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라이넬은 그중에서 주군에게 승리를 가져다줘야 한다는 점에 꽂힌 모양이다.

나한테 딱 맞는 인재네.

"호위기사를 부탁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저의 밑에서 적을 꺾는 기사가 되어주십시오."

"플레아님은 남성분이시지 않습니까."

어떤 세계를 가도 남녀차별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남성은 군주하지 말라는 법 있나.

"남성이라고 군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데안느님이 여성군주만 모시고 남성군주는 모시지 말라고 가르치셨나요?"

일종의 패드립이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당장 제 밑으로 들어와 달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카데미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제 자질을 판단하고 라이넬님이 충성을 바칠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 제 밑으로 들어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뵙겠습니다."

라이넬은 도망치듯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너무 힘을 줬나? 제대로 기세를 발현해 본건 처음이라서 아직 조절이 잘 된다.

아무리 그래도 라이넬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갈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천천히 기세를 갈무리했다.

`1…. 2….`

마음속으로 딱 100까지만 세고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골목을 빠져나가자마자 지난 일주일 동안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내 귀에 꽃혔다.

여기까지 직접올 줄은 몰랐는데 운이 좋았다.

"재밌는 짓을 했더군."

입학식 때 봤던 상냥하고 부드러운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화가 났거나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흥미롭고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짓고 나를 바라보는 프레스티아의 모습에 계획이 잘 들어 먹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가식으로 덮인 미소가 아닌 군주로서의 미소.

그 미소를 받아낸 나는 환희로 하늘을 날 것 만같이 기뻤다.

`그래, 그 얼굴을 보고 싶었어.`

"감히 내가 노리던 인재를 채간 그 대담함에 대한 상으로 편안한 죽음을 선사해 줄까 했지만."

그녀가 내 턱을 잡고 이리저리 돌렸다. 내 얼굴을 품평하듯 감상하는 프레스티아의 눈빛은 진짜로 무서웠다.

굳이 겁먹은 척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 진짜 겁먹고 덜덜 떨었으니까.

"이런 귀여운 외모를 가진 남성을 죽여버리는 건 세계적인 손실이겠지."

프레스티아가 나의 턱을 밀었다.

배려 따윈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손길에 무력하게 넘어졌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지. 어차피 너희 둘 다 내 밑으로 들어올 테니까. 그때까지 열심히 발버둥 쳐봐."

쓰러진 나를 버려두고 프레스티아는 떠나갔다.

마치 버림이라도 받은 듯한 모양새였지만 내 입가엔 미소가 크게 걸려있었다.

이젠 그녀가 나를 마냥 연약한 남성으로만 보지 않을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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