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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4화 (4/312)

〈 4화 〉 부하 구하기­1

* * *

아카데미는 어떤 곳인가? 배움의 장터? 청춘들이 제국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신성한 공간?

부정하진 않겠다. 실제로 아카데미는 배움의 장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으니까.

제국 제일의 아카데미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게 아카데미의 교육은 훌륭했다. 교수들의 수준도 높았고 지원도 충분했다.

지난 일주일간 배웠던 지식들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현대의 대학보다도 교육체계가 훌륭하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배움의 장터라는 아카데미의 설립 의도는 지나치게 잘 수행하고 있었다.

­촤아악!

"아, 미안해."

그리고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학교의 역할도 잘 수행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니 한 여학생이 물통을 들고 키득대고 있었다. 사모아 파벌인 것 같진 않고, 그냥 사모아 공녀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물을 뿌린 모양이다.

잘 걸어가고 있다가 물벼락을 맞은 셈이었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지난 일주일간 나에게 가해진 괴롭힘에 이미 이골이 날 정도로 적응이 되어있었으니까.

이 정도 괴롭힘에 일일이 반응했다간 나만 피곤해질 뿐이었다.

`그래도 찝찝하긴 하네.`

온몸이 축축하게 젖었다. 이런 상태로 수업을 들었다간 아마 하나도 집중하지 못하겠지.

머리를 가볍게 털며 화장실로 향했다.

제복의 외투를 벗어서 물을 짜냈다. 와이셔츠도 조금 젖긴 했지만 굳이 벗지는 않았다.

슬슬 이쪽 세상에서 남자라는 성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기도 했고 외투가 꽤 두꺼운 탓에 와이셔츠는 그렇게 많이 젖지 않아서 굳이 벗기도 귀찮았다.

`이 정도면 됐나.`

어느 정도 물기가 빠진 외투를 입고 정면을 바라보니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미소년이 거울에 비춰 보이고 있었다.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련해 보이는 모습에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가 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지.`

지금이야 당장 쓸 데가 없지만, 본격적으로 난세가 찾아오면 어디를 가든 큰 무기가 되리라.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급식실로 향했다.

고위 귀족들은 따로 요리사를 고용하거나 제도의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고 오는 모양이지만 나 같은 평민들이나 돈을 아끼길 원하는 귀족들을 위한 급식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확실히 귀족들을 위한 공간이 아닌 만큼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20명 정도 돼 보이는 학생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들을 조금씩 담았다.

이전 세계의 나였다면 접시가 꽉 차게 담았을 텐데 플레아의 몸은 위가 작아서 그렇게 많이 먹을 순 없었다.

음식을 다 담은 후 고개를 돌려보니 내가 찾던 사람이 보였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

­턱

내가 접시를 내려놓는 소리에 사나운 표정으로 고개를 올린 여학생은 곧 내가 남성이라는 걸 알고 얼굴을 풀었다.

이유 없이 남성을 째려보는 건 여성으로 옳지 못한 행동이니까.

"여기 앉아서 먹어도 될까요?"

"ㄴ…. 네 됩니다!!"

여학생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긴, 넓은 건물에 비해서 이용하는 사람은 적어서 자리가 넘쳐 나는 데 이 정도 미인이 굳이 자기 자리 앞까지 찾아왔으니 긴장할 만하지.

어디 가서 밟히기라도 했는지 흙 먼지가 잔뜩 묻어있는 제복, 아무리 특이한 머리 색과 눈동자가 난무하는 게임이라고 해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빨간색 머리카락에 보랏빛 눈동자라는 언 밸런스한 조합.

내가 찾던 그 사람이 맞다.

"저는 플레아 아이데스라고 합니다. 기사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기사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아직 서임도 받지 못한 몸입니다."

당연히 서임 받으면 안 되지 내 기사가 돼야 하는데.

내가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자 아! 하더니 내 질문에 답을 해줬다.

"이름은 라이넬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딱딱하게 굳어서 말하는 게 나 남자랑 대화 해 본 적 없어요. 라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그녀의 스승인 데안느는 여자아이만 제자로 받아서 키웠으니까.

마치 남중 남고 공대 테크를 탔던 사람이 여자를 대하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여자끼리만 지내왔던 라이넬이 나를 어색해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다.

`확실히 `난세`의 라이넬과는 느낌이 다르네.`

`난세`에선 엄청 경계하면서 노려보던데, 지금은 긴장해서 굳어있는 거 말고는 딱히 경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내 밑으로 들여야 해.`

라이넬은 플레아로 시작했을 때 가장 얻기 쉬운 기사다. 82이라는 높은 무력과 잠재력과 함께 통솔과 마력 잠재력도 높은 뛰어난 인재지만 평민이라는 신분과 사모아 공녀와의 마찰 때문에 초반엔 누구도 노리지 않았다.

얻기 쉬운데 능력치도 높다. 플레아로 시작하면, 아니 제국 아카데미에서 시작했다면 무조건 영입하고 시작해야 하는 인재였다. 거기에 외모도 상당히 귀여운 편이라서 플레이하다 보면 마음이 흐뭇해지곤 했다.

`그리고 프레스티아와의 연결 고리도 만들 수 있지.`

슬슬 그녀도 라이넬을 노리기 시작할 테니까. 뛰어난 인재가 평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방치되고 있는 걸 가만히 놔둘 사람이 아니니까.

입학식 첫날에 바로 작업을 쳐도 됐지만, 굳이 지금 작업을 시작한 건 그녀가 관심을 가지던 인재를 내가 체감으로서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데 옷이 상당히 더러우신데, 기사반은 제복을 입고 훈련을 하는 건가요?"

"아... 그게..."

라이넬이 말을 흐렸다.

사모아 파벌한테 밟혀서 생긴 자국이라고 말하기엔 여자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하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 교우 관계가 원만하지 못 하신건가요?"

게임에서 선택지 중 하나로 주어지는 대사를 그대로 읽었다.

직설적이고 센 문장이긴 했지만, 일주일 내내 사모아 파벌에 시달렸던 라이넬은 이 한 문장에 눈물을 살짝 흘리게 되고 그걸 위로해 주면서 친해질 수 있다.

"죄송합니다.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 이게 아닌데?`

라이넬은 접시엔 아직 음식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미련 없이 음식들을 버리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이런 세세한 면에서도 변화가 있는 건가?`

아무래도 세상이 바뀌었다 보니 게임 속 지식을 그대로 써먹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여자가 남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게 많이 부끄럽긴 했겠지.

라이넬은 떠나갔지만 괜찮았다. 그녀를 공략하는 건 프레스티아를 공략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고 기회도 많았으니까.

차근차근 다가가면 결국 나의 기사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접시에 담아 온 음식을 다 먹고 식기를 정리한 후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사반이 수련하는 수련장과는 다르게 일반 학생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는 운동장엔 수많은 여학생들이 몸을 움직이며 끓어 오르는 피를 식히고 있었다.

외투와 와이셔츠는 벗어둔 채 얇은 반팔 하나만 입고 운동을 하고 있는 여학생들을 구경하는 것도 물론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있었다.

운동장 구석으로 시선을 돌리니 자신의 부하에게 외투와 와이셔츠를 맡긴 채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프레스티아가 보였다.

멀어서 잘 안 보이긴 했지만, 그녀의 풍만한 가슴은 멀찍이에 앉아있어도 출렁이는 게 잘 느껴졌고 제복을 입고 있을 땐 가려졌던 몸매가 더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다.

과하지 않게 적당히 자리 잡은 근육, 땀이 맺혀 매끈하게 빛나는 피부가 내 시선을 끌었다.

`저런 모습을 보고 어떻게 안 빠져?.`

그녀가 점심시간마다 운동장 구석에서 운동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일주일 아카데미 생활 중 최고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남녀역전 세상이 아니었다면 프레스티아가 운동장에서 운동을 할 일도 없을 테고 했다 하더라도 저렇게 개방적이진 않았을 테니 남녀역전은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넋을 놓고 프레스티아를 구경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나갔다. 그녀가 자신의 부하에게 맡겨 놨던 외투를 입는 모습을 보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앉아 있다 보니 옷도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교실로 걸어가 문을 열어젖히니 나이대에 맞게 시끄럽게 놀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내가 교실로 들어오자 순간적인 정적이 교실을 지배했지만 이미 사모아 파벌에게 찍힌 나와 가까이 있고 싶지 않은 일반 학생들은 나를 억지로 무시하고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교실을 지나 각종 낙서와 쓰레기들로 표시가 되어있는 내 자리로 향했다.

오래 학교에 안 나오면 자기 자리를 잊어버리기도 하는데 친절한 친구들 덕분에 내 자리를 잊어버릴 걱정은 없을 것 같다.

쓰레기들을 주워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리고 다시 자리에 앉으니 딱 맞게 수업이 시작됐다.

점심시간에 봤던 프레스티아의 아름다운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았지만, 간신히 잊고 수업에 집중했다.

결국 그녀를 차지하려면 내 세력을 키워야 했고 세력을 키우고 유지하기 위한 지식을 배우기 위해선 수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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