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200화 (200/201)

200화 ― 박정우라고 합니다.

* * *

[ 신인 작가들을 위한 아카데미 개최! ]

[ 북미 온라인 웹소설 아카데미 오픈! ]

[ 종갓집 무협! 에르미스에서 중국/타이완/홍콩 작가를 대상으로 한 무협 공모전을 시작한다! ]

[ 에르미스 기성 작가들만 모여라! 기성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최대 규모의 상금! 대상에는 웹툰과 드라마화 확정을 한…. ]

콰앙!

“이런 개 같은…….”

에르미스의 관련 기사를 읽으며 강경진은 치솟는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에르미스의 ‘에’자만 보더라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욱씬거렸기에 기사를 검색하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하지만 에르미스에선 거진 주에 하나 꼴로 폭탄 같은 이벤트를 만들어 내고 있었기에, 강경진은 자해하는 심경으로 원하지 않는 검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소설피아, 테일랜드, 웹월드.

강경진은 웹소설 삼대장이라 불리던 곳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피아에 침투했다. 그리고 자신의 M&A 능력을 살려 50%에 가까운 소설피아의 지분을 테일랜드로 넘기는 것까지 성공시켰다.

비록 예상하지 못한 친척 동생 오진아의 반란으로 BS북에선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했지만, 머슴 짓을 해도 대갑집에서 하라는 말을 떠올리며 소설피아 마케팅본부 부장으로 오게 된 거였다.

“이 새끼들. 대체 한 해에 공모전만 몇 번을 하는 거야?”

하지만 호기롭게 국내 최대 웹소설 플랫폼으로 불리던 소설피아로 이직한 뒤, 출판계의 상황은 급변했다.

꿈틀거리는 뱀 새끼 정도로 여겼던 에르미스는 무서울 정도로 내놓는 작품을 족족 대박을 터트리며 기염을 토했고, 어느새 삼대장을 모두 제치고 웹소설, 웹툰 플랫폼 1위 자리에까지 우뚝 올라섰다.

강경진의 입가에 싸늘한 조소가 떠올랐다.

“삼대장은 커녕, 이제 다 합쳐도 되는지 모르겠네. 멍청한 새끼들이 일을 고작 이따구로 밖에 못 하나?”

삼대장이라 불리던 플랫폼들을 고작 몇 년 사이 에르미스의 뒤꽁무니나 뒤쫓는 꼴이 되어버렸다.

특히 3년 전이었던 2020년.

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창궐하던 당시 테일랜드와 웹월드에서 발생했던 검열 논란으로 인해 테일랜드와 엮여 있던 소설피아까지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강경진은 그때만 떠올려도 목덜미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멍청한 새끼들이, 주제도 모르고. 테일랜드에 2차 독점으로도 못 갈 작품 넣어준다는데도 그깟 똥글이 타플 풀린다고 얼마 번다고! 감히!!”

강경진의 분노는 매번 한 박자 늦게, 그것도 느려터진 일처리를 하는 테일랜드와 소설피아의 임원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강경진이 일컫는 멍청한 새끼들이란.

그가 늘 개돼지라 말하는 독자들을 가리키는 말.

그렇기에 강경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보는 독자들도 몇 없고, 하루 매출로 치킨 값도 벌 수 없는 버러지라 여기는 작가들이 고작 자기 글에서 지역명 조금 수정한다고 항의를 하고 난리를 치는 상황을.

3년 전 검열 사건이 터진 후.

강경진은 소설피아를 대표해 몇 번이나 사과 공지문을 추가로 올렸지만, 강경진은 그 사과문에 적힌 내용이 진심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매출이 나오는 작가는 돈 버는 기계.

매출이 나오지 않는 작가는 개, 돼지로만 여겼으니까.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하더니만. 업계 1위에서 어떻게 이따위로—”

“부, 부장님!”

강경진이 턱 근육이 불거지도록 분노에 가득 찬 생각에 가득 매몰되어 있던 그때. 부하 직원 직원 하나가 급히 부르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강경진은 분노에 가득 차 있던 표정을 빠르게 갈무리했다.

“뭔데 이 소란입니까?”

그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자신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운영본부 팀장인 것을 확인한 강경진은 잠시 씌웠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사나운 눈빛으로 답했다.

강경진의 별일 아니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말에도 운영본부 팀장은 떨리는 눈빛을 피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S, SPA(주식 매매 계약)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SPA? 어디가 지분 거래 한다는 겁니까? 요즘 에르미스 때문에 플랫폼들 다 죽 쑤고 있으니 돈 있는 회사가 망해가는 회사 잡아먹는 건 딱히 특이한 일도 아니죠.”

“그, 그게…… 테일랜드가…….”

운영본부 팀장의 말에 강경진은 등받이에 기대며 피식 웃었다.

“테일랜드가 출판사들 사들이는 거 하루 이틀입니까? 대체 어디길래 유난입니까?”

“지, 지분 거래 대상이…… 에, 에르미스라고 합니다.”

“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에르미스가 테일랜드에 팔린다고?”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앓던 이가 시원하게 빠지는 기분을 느끼며 강경진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운영본부 팀장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말 똑바로 안 합니까?”

“소, 소설피아 지분을 에르미스에 넘긴다고 합니다.”

“그게 뭔 개소리야!”

운영본부 팀장은 잔뜩 움츠러든 어깨를 더욱 좁히며 말했다.

“저,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테일랜드 쪽에 일하는 친구가 오늘 이사들 미팅하는 거 들었다고 해서 저도 지금 막 급히 부장님께—”

“씨발!”

강경진은 팀장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앓던 이가 빠진 게 아니라 순식간에 썩어들어가는 기분이었으니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강경진은 곧장 김완섭 대표가 있는 대표실로 향했다. 하지만 강경진이 대표실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복도 데스크에 앉아있던 비서가 먼저 말을 꺼냈다.

“대표님 지금 자리 비우셨습니다.”

“어디? 어디 계십니까? 대표님?”

“그게……. 대표님께서 말씀 전하지 말라고…….”

자신의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내뱉는 비서의 말에 강경진은 눈에 불을 켠 채로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누구? 나한테? 아니면 회사 사람 전부한테?”

“그게…….”

강경진은 비서가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보며 대표가 행적을 알리지 말라고 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김미소 씨라고 했죠? 내가 지금 당신하고 말장난하려는 건 줄 알아?! 급한 일이니까 대표님 어디 있는지 당장 말하라고!”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은 대회의실에 계십니다. 하, 하지만 중요한 미팅 중의니 절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강경진은 비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성큼성큼 대회의실이 있는 층으로 뛰다시피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계단으로 뛰는 와중에도 강경진은 좀처럼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들어오고 테일랜드에 지분을 넘겨 이제 이제 소설피아의 다음 대표가 되기 위해 밑바탕을 다 해놨는데, 이걸 에르미스에 넘긴다니?

도무지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대표가 전화도 받지 않고 자리에도 없자 진위 확인을 위해 직접 대표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건 또?’

대표가 있다는 대회의실 앞으로 다가서자 그곳엔 다른 비서들이 문 앞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부장님, 안에선 회의 중이어서 지금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대표님 안에 계시죠?”

“죄송합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안에선 지금 회의 중이기에…… 부장님! 들어가시면—”

강경진은 자신을 막는 비서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대회의실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러자 문 앞의 상석에 앉아 있던 김완섭이 강경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강부장? 지금 회의 중인데, 여긴 어쩐 일이지?”

“실례합니다, 대표님. 지금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

말을 내뱉으며 들어온 시야각에 보이는 익숙한 얼굴들. 소설피아의 지분을 소유한 핵심 이사진들, 테일랜드의 대표 그리고 그의 시선이 에르미스의 사람들에게까지 도달하자 강경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입을 가득 벌린 채 돌처럼 굳어버린 강경진의 모습을 보며 김완섭이 나직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강부장, 지금 중요한 자리니 비켜줬으면 하는데. 이비서 한테 일정 전달하면 그때—”

“대표님! 소설피아 지분을 에르미스에 넘긴다는 게 사실입니까? 어떻게 일언반구도 없이 이러실 수가 있는 겁니까!”

“강부장! 지금 중요한 자리니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고 하지 않았나!”

“회사를 팔아 치운다는 데 이걸 어떻게 눈 뜨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냔 말입니다!”

“이 사람이!”

늘 선한 목자 같은 인상을 보이던 강경진이 버럭 내지르는 고함에 대회의실 밖에 서 있던 비서들은 입을 틀어막으며 놀란 소리를 삼켰고, 대회의실 안의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리거나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강부장님. 아니, 강경진 씨. 김완섭 전 대표님이 좋게좋게 말씀하시는데, 이거 예의가 너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모두가 여럿 모인 자리에서요.”

자신을 향해 건네는 목소리.

어딘가 친숙한 그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 강경진의 얼굴이 당혹스럽게 구겨졌다.

“……?!”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강경진이 슬쩍 고개를 돌렸을 때 봤었던 에르미스의 임원들은 자신의 친척 동생인 오진아와 이무진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강경진을 향해 말을 건네는 건 아까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얼굴.

그리고 자신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박정우 팀장…… 당신이 왜 여기에?”

강경진은 박정우가 BS북의 판무 1팀 팀장인 것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소설피아의 주식 매매 계약이 이뤄지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도 자신도 빼고 이뤄지는 비밀스러운 이 자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박정우가 낄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에르미스의 대표인 양 느긋한 모습을 보이며 내뱉는 박정우의 행동을 보니 강경진은 지울 수 없는 괴리감을 느꼈다.

“뭐, 그걸 초대받지 않은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강경진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피식 웃은 박정우가 말을 이었다.

“김완섭 대표님, 그리고 다른 이사님들. 괜찮으시다면 강경진 부장님도 회의실로 들어오게 해주시죠. 나가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 데 계속 서 있는 것도 보기 민망해서요.”

“지, 지금 무슨……?!”

조소가 가득 담긴 박정우의 말에 강경진은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밀려오는 분노보다 더욱 그를 당황스럽게 만든 건, 회의실 내의 사람들이 박정우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박정우의 말에 김완섭 대표는 비서에게 따로 의자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혼돈이 휘몰아치는 짧은 정적 속.

의자를 들여온 비서가 문을 닫고 나갔고, 강경진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 강경진을 보며 박정우가 혀를 차며 미소 지었다.

“이거 참. 강경진 씨한테는 따로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여하튼 이렇게 뵙는 것도 인연이니 인사는 드려야겠네요.”

등받이에 몸을 기댄 박정우는 팔짱을 낀 채 말을 이었다.

“처음으로, 그리고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에르미스 그룹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박정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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