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 모두 데려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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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에 의해 팬데믹으로 규정된 지독한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 일상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지기 시작했고, 환한 웃음과 함께 서로에게 악수를 청하던 손엔 손 소독제를 바르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그리고 평범했던 일상에 눈에 띄는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쯤, 에르미스를 제외한 타 플랫폼에서 연재를 진행 중인 작가들 사이에서는 불꽃 같은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장난 해? 내 글이 확진됐어? 오탈자도 없는 글을 왜 수정하라 말라 하는데?
웹소설 작가들이 가장 분노할 때는 언제일까?
저장 안 하고 쓴 파일이 모두 날라갔을 때?
마감 시간이 임박했는데 글이 안 써질 때?
원고가 완성됐는데 인터넷이 먹통이 됐을 때?
모두 기혈이 뒤틀리고 칠공분혈 하는 일들이 맞긴 하다. 하지만 작가들은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작가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의 창작물이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제한 되었을 때다.
바로 이번 검열 사태처럼.
—멍청한 작가들아. 생각 좀 하고 글 써라. 지역명의 직접적인 명시는 지역 감정 이슈가 될 수 있다는 거 알면서 왜 자꾸 쓰냐?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바빌로니아에서 죽었다고 안 쓰면 되는 거고, 페스트, 천연두, 콜레라, 결핵, 에이즈 다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아예 안 쓰면 되는 거야. 대역 작가들 조심해라. 히틀러 관련해서 쓰면 독일 지역 감정 상하게 하니까 ㅋ
하나 웃긴 점은…….
아니, 이걸 웃기다고 해도 되는 걸까?
똥볼을 차기 시작한 게 테일랜드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테일랜드뿐만이 아니라 웹월드에서도 메로나 바이러스의 원래 명칭이었던 구한 바이러스나, 구한 폐렴 등의 단어를 검열하기 시작했다.
‘작가 입장에선 왜 그딴 짓을 하는지 어처구니 없을 테지만, 나는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물론 나는 테일랜드와 웹월드 같은 플랫폼들이 민심을 뒤흔들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첫째, 두 플랫폼 모두 중국 자본으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투자금을 지원받았고.
둘째, 국내 무협 소설이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중화권에서 인기가 보장된 소설 판권을 사와 번역본으로 올릴 준비를 하고 있던 때였으며.
셋째, 한국 시장을 우습게 본다는 방증이었다.
각 플랫폼들이 한국 시장을 우습게 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안 되니까.
이름 있는 웹소설 작품들이 연매출, 500억, 250억, 100억, 75억, 50억 같은 억소리 나는 매출을 얻는다고 해도 이건 극소수의 작가들의 작품일 뿐.
그리고 웹소설과 웹툰을 모두 아우르는 테일랜드와 웹월드 같은 플랫폼에선, 웹소설보다 웹툰의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해마다 점점 늘어났다.
테일랜드의 공식 보도자료만 보더라도 2년 전 웹툰의 매출 비중이 31%게 올해는 63%로 크게 늘어났으니까.
이런 현상은 비단 테일랜드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닐 게 뻔하다. 웹월드는 당연하고 우리 에르미스 역시 진작부터 웹툰 매출이 웹소설 매출을 아득히 넘어버렸고.
거기다 한국의 인구 수는 고작 5천 만이 조금 넘는 수. 주위로 슬쩍 눈만 돌려 봐도 기본 인구 수가 1억, 3억, 13억 명으로 득실대는 국가가 가득한데 플랫폼 입장에서는 그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을 테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 파리만 날리는 식당에 혼밥 손님이랑 외국인 단체 손님이 오면 누구 눈치를 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
그러니 모든 플랫폼이 앞장서서 메로나 바이러스를 언급하는 작가들을 때려잡기 시작한 것일 테다.
‘물론 우리 에르미스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내가 단풍 삼촌을 통해 출판 본부 매니저들에게 시킨 업무는 단순했다. 불만 있는 작가들에게 접근해 차기작 계약을 제안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작가님. 정글북에 올리신 글 봤습니다.”
“아이고, 작가님! 속이 많이 상하셨겠어요. 검열이라니 말도 안 돼는 일이죠!”
“……메로나 언급이요? 에르미스에서는 메로나든 구한이든 작가님 쓰시고 싶으신 대로 편하게 써 주시면 되십니다. 어휴, 실제 있었던 일을 언급하는 건데 그걸 못하게 하면 검열이죠.”
“저희 에르미스에는 작가님들을 위한 고문 변호사님과 변리사님이 따로 재직 중이십니다. 에르미스에서 독점으로 연재하시는 작가님들께서 평소 생활에서 법적인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도움을 요청하실 수도 있고, 혹시 법조인물을 집필하신다면 그에 관해 도움을 받으실 수도 있죠.”
필요하다면 테일랜드나 소설피아와 난타전을 해서라도 작가를 빼 올 수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소설피아에서 1차 독점, 그리고 테일랜드에서 2차 독점 중인 작품을 빼오는 식으로.
무리를 해가며 치고, 박고 싸울 필요도 없이, 작가들의 가려운 곳을 슬쩍 긁어만 줘도 검열을 당했던 작가들은 차기작부터는 무조건 에르미스에서 독점으로 연재를 진행하겠다며 열변을 토했으니까.
회귀 전처럼 독자들이 연재할 수 있는 플랫폼이 소설피아, 테일랜드, 웹월드밖에 없다면 작가들은 이번 같은 검열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입을 꾹 닫고 있는 것 외에는 분노의 표출조차 쉽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지금은 개싸움이든 진흙탕 싸움이든 상관없다. 회귀 전과 같이 작가들에게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 아니라 에르미스라는 대체재가 든든히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
물론 검열을 진행하지 않은 게 우리 에르미스뿐만은 아니었다. 지난번 표지 검열 이슈로 한 번 호되게 당한 후, 소설피아 역시 소설피아에서 연재 중인 무료 연재 작품 그리고 1차 독점 작품 그 어디에서도 검열을 진행하지 않았다. 비록 소설피아가 테일랜드에 인수가 되었음에도.
‘S스토리에 작가들을 빼앗겼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었었겠지. 그래서 딴지를 걸 수도 없었겠고.’
당시를 반면교사 삼은 듯한 소설피아의 모습에 작가들은 테일랜드와 웹월드의 검열에 관해 강한 적개심을 드러낸 반면, 에르미스와 소설피아에는 긍정적인 여론을 보였다.
하지만 작가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팬데믹이 점점 심화되는 상황 속에 진실에 눈을 뜬 작가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아, 이거 뭐냐? 테일랜드 2차 독점 가기로 해서 원고 넘겼더니 지역명이랑 질병 명 수정 요청 들어왔는데? 이거 실화임?
└ 22222 나도임. 진짜 어이가 없어서 2차 독점 테일랜드에 안 넣겠다고 하니까, 매니저가 이미 다 말해뒀다고 못 뺀다고 함 ㅋㅋ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서 내용 수정해달라는 거 보니 진짜 오만 생각이 다 든다.
└ ㅋㅋㅋ 뉴비 어서 오고. 테일랜드랑 소설피아랑 한통속인 거 몰랐냐?
└ 윗윗댓글 매니지 어디냐? 차기작은 거기로 옮겨야겠다. ㅅㅂ 우리 매니저는 2차 독점으로 테일랜드 들어가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면서 하……. 그냥 에르미스 가야 하는 거였는데.
소설피아가 검열을 진행하지 않은 이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작가들의 엑소더스를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테일랜드와 웹월드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은 소설피아가 가만히 있었던 건, 매출이 나오는 작품들은 어차피 모두 테일랜드에서 2차 독점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굳이 자신들이 직접 손을 쓰지 않더라도 손을 더렵혀 줄 힘 센 뒷배가 있으니 나설 필요가 없었겠지.’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소설피아에서 1차 독점을 끝내고 테일랜드로 넘어온 현판 작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피해 사실이 드러나자 웹소설 작가들의 커뮤니티 정글북은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 올랐다.
—이제 깨어나자 다들. 소설피아가 작은 커뮤일때부터 쓰던 작가이자 독자다.
인터페이스가 구려도, 툭 하면 서버 에러 났어도, 표지 검열 이슈 떠서 젊은 작가들 S스토리로 싹 다 넘어갈 때도 소설피아 떠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유료화 시작해서 처음 작가가 된 것도 모두 소설피아여서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상당한 애정이 있었다. 인풋 한답시고 그동안 소설피아에서 글 읽은 것만 해도 중고차 한 대 값은 나오고.
그런데 이제 그만 할란다.
소설피아는 테일랜드처럼 글 검열은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테일랜드 자회사 된 후로 2차 독점은 무조건 테일랜드로 가는 게 강제잖아?
소설피아 담당 매니저한테 테일랜드 가기 싫다고 하면 지금 매출도 안 나오니까 무조건 가야 한다고 압박하고, 막상 가면 검열 당하고.
이걸 현판 회귀물은 쓰지 말라는 소리로 받아들여야 하냐 아니면 판타지나 무협, 대역만 쓰라는 소리냐?
표지나 다른 이슈 다 떠나서 내용 검열 당해서 전개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사실에 기반한 내용을 쓰는데도 이걸 지역 감정 이슈 같은 소리나 하고 있는데, 여기선 도저히 미래가 안 보인다. 즐거웠고, 이제 소설피아에서 글 쓰는 건 마지막이다. 테일랜드나 웹월드도 마찬가지고.
소설피아 초창기 때부터 소설피아 매니지와 계약해 현판 재벌물, 회사원물 위주로 계속 써 왔던 초기성 작가의 게시글. 정말 작심했는지 아예 필명을 숨기지도 않고 쓴 그의 게시글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강추강 작가나 한태산 작가처럼 큰 매출을 올린 작가는 아니었지만 소설피아 초창기 때부터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 왔던 기성 작가의 말이었기에 그 울림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작가들의 대댓글도 계속해서 이어졌고.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나설 때겠네.’
작가들의 댓글로 정글북이 다시 한번 뜨겁게 달궈지는 모습을 보는 그때, 옆에 있던 단풍 삼촌이 말했다.
“대표님, 이제 기다릴 만큼 기다린 것 같은데? 그동안 에르미스 몸집은 키울 만큼 키운 것 같고, 타이밍도 좋고. 어때? 이번 기회에 싹 다 빼왔으면 하는데.”
작가들을 싹 빼온다는 단풍 삼촌의 말.
이건 단지 소설피아에 국한 된 말이 아니었다.
한때 웹소설계의 3대장이라 불리던 메인 플랫폼들. 테일랜드, 소설피아, 웹월드, 이 모두와 전면전을 벌이자는 말이니까.
“소설피아는 말할 것도 없고, 대놓고 검열하는 테일랜드와 웹월드는 지금 자회사 작품들만 무지성으로 밀어주느라 작가들 사이에서 여론이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무방하지.”
한동안 우리 에르미스는 애니, 드라마, 영화, 게임 등 원천 IP인 웹소설을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집중해 왔고, 웹소설 쪽에선 신인 작가들을 대거 등용해 몸집을 불려왔다.
비록 회귀 전보다는 훨씬 그 속도가 늦춰졌지만, 단풍 삼촌의 말처럼 테일랜드와 웹월드는 점점 자회사를 늘려가며 작가들이 순전히 자신의 글로 인정받기보다 어느 출판사 소속인지에 따라 밀어주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설피아는 말할 것도 없었고.
“그렇다면……. 시작해야 겠네.”
“그으흐흐, 그렇지?”
“이제 신인 작가뿐만이 아니라 기성 작가들도 모두 데려와 보자고. 에르미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