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98화 (198/201)

198화 ― 작가님들 새 집으로 모셔와야지.

* * *

2020년 1월 20일.

내 기억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이 날, 우리나라엔 첫 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중국에서 넘어온 중국인 여성 확진자였는데, 그녀의 확진 이후로 메로나 안전지대라 불리던 한국은 점점 전염병에 침범 당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여간 30여 명에 불과하던 메로나 확진자는 2월 중순 사이비 교회 신도인 ‘31번째 환자’의 발생 이후 급증하기 시작했고, 단 한 달 만에 대구‧경북 지역의 누적 확진자만 약 8,000 명으로 늘었다.

확진자의 갑작스럽고 기하급수적인 확산으로 한국 사회는 중국에 이어 전 세계 2위의 누적 확진자를 기록하며 패닉에 빠졌고, 그 충격의 여파는 우리 사회 곳곳을 침범했다. 그리고 출판 업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 총 회원 수 7만 명이 넘은 국내 최대의 작가 커뮤니티 정글북의 자유 게시판만 들어가더라도 팬데믹으로 발돋움한 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하……. 테일랜드 본사에서 메로나 환자 발생했다고 심사 기간 더 늘어났다고 함. 대체 얼마나 더 기다리라는 건지. 벌써 2달째인데.

└ 어이없네. 테일랜드 대기업 아님? 직원이 몇 명이길래 메로나 환자 발생했다고 심사 기간이 더 늘어나?

└ 나 친 테일랜드 매니지인데, 매니저 통해서 물어보니 메로나 환자 발생한 것도 문제인데 확산세가 계속 심해지니까 부랴부랴 재택 전환하려고 해서 일정이 계속 꼬인다고 함. 그러니까 심사 넣은 사람들은 다들 비축이나 쌓으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

└ 웹월드는 이 와중에 부장이 안식년 갔단다. 웃기는 건 안식년 가는 1달 동안 심사 일정 올 스탑. 안식년 갔다 와야 심사 다시 진행한다 함. 무슨 ㅅㅂ 직원이 한 명이냐고. 쓰고 보니 화나네.

└ ㅋㅋㅋㅋㅋ 분조장이냐? 좀 전에는 웃기다며.

└ 싸물고 글이나 써라 망생이 새기야.

그나마 출판계에선 대기업인 테일랜드와 웹월드가 발 빠르게 재택근무로 전환을 추진했지만, 두 회사 모두 창립 역사상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이에 관한 준비와 대응은 미흡했고, 그 피해의 여파는 고스란히 작가들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었다.

└ 환장하겠네. 그냥 지금이라도 에르미스나 소설피아로 뺄까? 벽 보고 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기약도 없이 언제까지 기다려?

└ 테일랜드랑 웹월드도 자유 연재 있잖아. 거기는 왜 빼냐? 관계자들 보면 서운하게.

└ 응, 테일랜드나 웹월드 자유 연재는 네가 가라.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인데 거길 누가 가냐?

└ 그냥 말해본 거잖아 ㅅㄱ야.

└ 다들 싸우지 마시고 건필 하십시다. 생텍쥐베리는 감옥 생활을 하면서 어린 왕자라는 희대의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작가라면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작품을 꽃피워야 하는 걸 다들 잊지 맙시다.

└ 응 10선비 꺼지고. 훈계질 할 거면 뭐나 알고 하던가. 무슨 블루베리냐? 생텍쥐 베리가 아니라 페리다 무식한 놈아. 그리고 어린 왕자는 감방에서 쓴 것도 아니고. 뭘 알고나 훈계질 하지.

└ ㄱㅅㄲ야 틀릴 수도 있지.

└ 캬~ 진짜 선비네. 지적질 받으니 바로 발끈하고 ㅋㅋㅋ

└ 겸업 작가는 웁니다… 나도 재택하고 싶다.

└ 겸업들은 재택 시켜주면 일하다 말고 글만 쓰는 거 아니냐? ㅋㅋㅋ 새끼들 벌써 꿀 빨 생각으로 머리가 꽃밭이네

└ 메로나 언제 끝나냐? 점점 심해지니까 멘탈 나가겠네 진짜.

바이러스의 확산이 전국적으로 번지는 양상을 보이자 테일랜드나 웹월드같이 신작 원고 심사를 통과해야만 정식 연재를 진행할 수 있는 플랫폼의 연락을 기대하는 작가들은 계속해서 밀리는 일정 때문에 점점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에르미스는 아니지만.’

테일랜드와 웹월드 역시 신인 작가들이 연재할 수 있는 자유 연재란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나마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자회사들을 불려온 웹월드는 자체 자유 연재 게시판을 통해 데뷔하는 작가들에겐 고료를 지급하는 식으로 조금씩이라도 확장시키고 있었다.

반면 소설피아를 인수한 테일랜드의 자유 연재 게시판은 더 이상 작가들이 갈 필요가 없는 텅 빈 곳간이 되어버렸다.

테일랜드 자유 연재 게시판은 심지어 소설피아와 같은 글을 쓰더라도 담당자 임의로 블라인드 처리를 하고, 그걸 풀려면 메일을 보내서 풀어야 하는 등 아예 테일랜드 자유 게시판에서 글을 쓰지 말라고 고사 지내는 수준이 되어버렸으니까.

드르륵— 드르르르륵—

진땀 꽤나 빼고 있을 테일랜드와 웹월드의 모습을 떠올리는 그때, 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는 단풍 삼촌이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그아하하하! 우리 대표님, 잘 지내십니까? 이거 진짜 점집 차려도 되는 거 아니야?

“하루에 몇 번씩 전화하고 화상 회의도 하는데, 뭘 물어? 괜한 소리 말고 용건이나 말해.”

걸걸한 웃음을 내뱉던 단풍 삼촌이 머쓱한 듯 목청을 다듬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크흠. 뭐, 바이러스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 웃는 건 아니긴 하지. 여하튼 지금 테일랜드 쪽에 난리 났다더라. 정글북 작가 인증 비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인데 봤어?

“아니, 비밀 게시판은 확인 안 해 봤는데. 무슨 일이야? 테일랜드에서 난리가 났다니.”

—테일랜드 새끼들 이 와중에도 검열 하나 보더라고. 먼저 확인해 봐.

“뭐? 검열? 잠시만.”

단풍 삼촌과의 통화를 끊지 않은 채, 나는 마우스를 분주하게 움직여 테일랜드 비밀 게시판에 들어갔다.

비밀 게시판은 자신이 연재 작가인 것을 인증해야만 글을 올리고 볼 수 있는 비밀 게시판. 그마저도 작가들이 글을 올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우기도 일수다.

펑 하고 글이 터지기 전에 나는 빠르게 비밀 게시판을 훑었고, 단풍 삼촌이 말한 것으로 보이는 그 게시물을 쉽사리 확인할 수 있었다.

“삼촌, ‘검열 당해서 진짜 돌아버리겠음’이라고 쓴 거 이거 맞지? 조회수랑 댓글 가장 많은 거.”

—그래, 그거다.

스피커폰으로 흘러나오는 단풍 삼촌의 말에 나는 실시간으로 조회수와 댓글 수가 올라가는 해당 글을 클릭했다.

딸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밀 게시판의 글이 떠올랐고, 그 내용은 쓴웃음을 짓게 했다.

< 검열 당해서 진짜 돌아버리겠음 >

ㅅㅅㅍX에서 1차 독점으로 연재하다 이번에 100화 넘어서 독점 풀리고 2차 독점으로 ㅌㅇㄹX로 넘어감.

내가 글이 국뽕 밀덕 아재픽이긴 해서 ㅇㄹㅁㅅ보단 ㅅㅅㅍX가 나을 것 같아서 ㅅㅅㅍX 스타트 끊은 거니 왜 굳이 ㅅㅅㅍX에서 연재해 놓고 징징거리냔 말은 하지 말길.

비밀 인증 게시판에 쓰인 글처럼 20~30대의 젊은 작가층의 상당수는 이제 소설피아에서 에르미스로 넘어오게 된 상황이다.

딱히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르미스는 내가 귀띔한 소재로 인해 소속 작가들이 다양한 소재로 연재하며 빠르게 트렌드가 변화했고 이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호응을 보인 게 비교적 젊은 작가층이었다.

비록 에르미스를 만든 건 나이지만, 에르미스로 몰려드는 작가들의 성향을 바꿀 권한은 나에게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타 플랫폼들이 그리하듯 특정 장르의 글만 밀어주는 치졸한 방법을 쓰고 싶지도 않았고.

실제로 웹월드와 테일랜드는 글의 작품성을 떠나 트렌드에 맞는 글 위주로 프로모션을 챙겨 주는 행동을 점점 일삼기 시작했는데, 타 플랫폼의 독자층을 끌어오기 위한 행동이었다.

대체역사물 독자가 적은 웹월드에서는 시대 고증도 되지 않은 대역물을 각종 배너에 캐시 이벤트까지 뿌리며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이 참혹한 현상을 예로 들자면.

마치 무협지와도 같은 풍경 속.

주위를 돌아 보아도 내가 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이 대체 몇 년이죠?”

자신을 여불위라 말한 사내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짧게 답했다.

“기원전 246년의 겨울이란다.”

웹월드는 이런 미친 소리가 난무하는 소설도 단지 대체역사 장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빵빵한 프로모션을 챙겨줬었고, 테일랜드는 웹월드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물과 스포츠물에 묻고 따지지도 않고 프로모션을 주는 상황이었다.

국뽕, 밀덕 요소가 강한 아재 픽이라도 에르미스에서 연재를 했다면 좋았으리란 생각을 하며 나는 마우스 휠을 내려 계속 게시글을 읽어나갔다.

ㅌㅇㄹX에 2착 독점으로 들어가면서 연재 시간도 동일하게 맞추고 회차도 맞춰야 하고, 이런 건 어쩔 수 없는 거긴 하지.

그래도 검열은 선 넘는 거 아니냐?

내 글은 회귀물 특성상 시대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데, 연재되는 글 시점이 작년 말이라 고증 살리려고 그대로 시대상 반영해서 썼음.

그런데 ㅌㅇㄹX에서 뭐라고 답변 왔는지 아냐?

내 매니저가 나한테 톡 온 거 봐봐라.

이게 정상인지.

+++++

작가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작가님께서 연재 중이신 ‘xxxx xxx xxx’ ㅌㅇㄹX 검수에 걸려 수정이 필요합니다. 하기 내용 확인 부탁드립니다.

*123~125화 내 ‘구한’, ‘구한 폐렴’, ‘구한발’, ‘구한 괴질’ 등 지역명 수정이 필요합니다.

특정 지역명의 직접적인 명시는 지역감정 이슈가 될 수 있어 관련 단어 수정이 필요합니다.

+++++

아니, ㅅㅂ.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지역명??? 지역명 수정?????

구한이 언제부터 우리나라 지역 이름이었냐?

그 당시에 명백하게 있던 사실인데 뭘 어쩌라는 거야? 아니 내가 돈 못 버는 하꼬 작가여서 이런 취급 받는 거냐? 이걸 수정하는 게 맞는 거냐?

올라온 지 반나절도 되지 않은 글이었지만, 이 게시글의 화력은 엄청났다. 그리고 비슷한 피해를 당한 작가들의 증언 또한 댓글로 이어졌다.

└ 와 ㅋㅋㅋㅋㅋ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네?

나도 회귀 현판물 쓰는데 원글 작가랑 똑같은 상황 생김. 지금 해당 내용 빼버리면 전개 완전히 개박살 나서 못 빼겠다고 하니까 나는 이렇게 답변 옴.

+++++

전달해주신 내용 확인했습니다.

작가님의 요청대로 지역명 없이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다만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고자 ‘구한’ 관련 언급되는 부분마다 각주를 이용해 하기 문구 추가 요청합니다.

*20xx년 xx월 xx일 해당 질병의 정식 명칭은 WHO에 의해 ‘메로나 19 바이러스’로 명명되었습니다.

상기 문구 추가 확인 후 교체 파일 전달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댓글 외에도 자신도 테일랜드에서 비슷한 요청을 받았다는 글이 간증하는 신도처럼 쏟아졌다.

댓글과 대댓글에는 원래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쓴 내용인데 검열에 걸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심력을 낭비하는 게 스트레스받는다는 말.

언제부터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 되었냐는 말.

그리고 테일랜드가 중국 자본에 잡아먹힌 게 아니냐는 말까지 걷잡을 수 없는 화마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이, 대표님. 왜 말이 없어? 읽어 봤어?

“응, 지금 댓글까지 다 읽었어.”

단풍 삼촌의 말에 비릿한 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테일랜드가 이런 뻘짓을 할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도래했으니까.

“우리 출판계를 빛내 주시는 작가님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고생하시게 하면 안 되지. 삼촌, 출판 본부 매니저들한테 연락해줘.”

—뭐라고 전할까?

“뭐라고 하긴? 고생하시는 작가님들 새 집으로 모셔와야지.”

이번 생에는 작가들이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게 하진 않을 생각이다. 그게 에르미스의 존재 이유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