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97화 (197/201)

197화 ― 남은 출판계를 집어삼킬 때.

* * *

한 해가 더 지난 2019년.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웹소설 출판계는 다양한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테일랜드에 지분이 넘어간 소설피아는 공모전과 아카데미 커리큘럼을 서로 협력해 진행하는 모습을 보였고, 웹월드는 지난 몇 년간 흥행했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돌 공화국’ 시리즈의 흥행에 발맞춰 아이돌물을 본격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 진짜 아쉽네요. 아이돌 못하면 죽는 병, 이거 에르미스로 가져왔어야 했는데. 이렇게 대박 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니까요?”

“어쩔 수 없죠. 반응 연재 안 하고 웹월드에 바로 심사 넣어서 연재 시작한 작품이니까요. 신인 작가님이어서 우리가 먼저 손 쓸 방법도 없었고요.”

“어쩔 수 없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네요. 아못죽 나온 후로 웹월드에 유사 아이돌물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서 요즘 웹월드 어깨 힘 좀 들어간 모양이더라고요. 에르미스 1차 독점 작품 2차 독점으로 빼는 것도 밀어주는 게 점점 약해지는 모습이고요.”

몇몇 판무팀 매니저들의 수군거림처럼 웹월드는 여러 출판사를 자회사로 흡수하는 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아이돌 못하면 죽는 병’이라는 희대의 역작으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등반하는 중이었다.

‘원래라면 아못죽은 2021년 초에 연재 시작할 글이었는데……. 2년이나 빨리 연재를 시작했단 말이야?’

나의 회귀 이후 웹소설 업계에서는 원래의 미래와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강추강 작가의 ‘나 혼자만 상하차’나 한태산 작가의 ‘대감집 막내손자’ 양파쿵 작가의 ‘3인칭 관찰자 시점’ 그리고 영묘한달빛 작가의 ‘네 남자, 좀 하더라?’같은 대작을 대부분 에르미스로 데려왔다.

하지만 내가 미래에 뜰 대작들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해서 ‘아이돌 못하면 죽는병’같이 에르미스에 연재를 하지 않고, 아예 처음부터 웹월드나 테일랜드에서 연재를 시작하는 작품은 나로써도 손 쓸 방법이 없었다.

그런 메가 히트작을 놓쳤다고 해서 에르미스의 성장이 둔화되지는 않았지만.

“와……. 대감집 막내손자 진짜 대박 아니에요? 소설이나 웹툰으로 볼 때랑 이게 또 완전히 다르네요?”

“김세환이 할아버지 역할 하는 거 보고 진짜 소름……. 솔직히 주인공은 할아버지 같더라고요.”

“그 누구냐, 고명딸 역할 하는 고모 역할 하는 배우 있잖아요. 안미영! 저는 안미영 연기하는 거 보고 놀랐어요. 텍스트로 봤을 때만 해도 짜증 났는데, 드라마로 보니까 그냥 연기인 걸 알면서도 완전 화딱지 남.”

“크흐흐, 그게 명품 연기 아니겠어요?”

웹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OSMU의 원천 IP라는 점.

곧게 자란 사과나무에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듯 그동안 내가 계약했던 작품들은 웹소설을 넘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작년 초였던 2018년 1월.

그동안 BS북과 LGA컴퍼니 그리고 에르미스의 비밀 금고 역할을 했던 가상 화폐 거래소 킵비트를 고점에서 매각했다.

그리고 올해 초였던 2019년 1월.

서울 오피스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강남역 사거리에 킵비트를 매각한 돈으로 BS북과 LGA컴퍼니 그리고 에르미스가 임대사무실에 입주했다.

물론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었다.

처음 킵비트를 매각하자는 말을 할 때만 해도 단풍 삼촌은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사용할지도 모른다면서 황금거위의 배를 왜 가르려고 하냐며 길길이 뛰었다.

거기다 킵비트를 매각한 천문학적인 돈이면 사옥을 인수해도 될 판에 굳이 왜 임대 사무실에 들어왔냐고 따지기도 했고.

하지만 킵비트를 매각한 2018년이 지나고 본격적인 비트코인 암흑기에 빠져든 2019년 12월인 지금, 킵비트를 매각하기 전해만 하더라도 1,331%의 상승률을 보이던 비트코인이 끝없이 하락하는 것을 보며 단풍 삼촌은 내게 점집이라도 차려야 하는 게 아니냐며 혀를 내둘렀다.

‘아쉽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개인 자금은 아직 보관 중이니까. 킵비트 인수하신 분들도 재미는 조금 보셔야지.’

에르미스 32층 대표실 아래로 바쁜 불빛과 차들이 서로를 쫓는 모습을 보며 킵비트를 매각할 당시 단풍 삼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2020년 그리고 2021년이 되어가면서 비트코인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터. 하지만 내가 회귀한 건 10년 전인 2014년. 내가 기억하는 미래도 2024년까지뿐이다.

돈만 생각했다면 2021년 연말에 고점을 찍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파는 게 맞는 거겠지만, 킵비트를 인수한 기업도 어느 정도는 수익을 봤으면 한다. 2021년 이후로는 또다시 불지옥이 시작될 테니까.

이제 본격적인 돈은 오직 출판계를 통해서 승부를 볼 생각이다. 물론 자신감이 있었기에 만든 결정이었다.

그리고 내 자신감은 실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했다.

‘나 혼자만 상하차’에 이어 ‘대감집 막내손자’, ‘3인칭 관찰자 시점’, ‘네 남자, 좀 하더라?’를 성공적으로 웹툰화에 성공했으니까.

‘나 혼자만 상하차’와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언포터블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돌입했고, ‘네 남자, 좀 하더라?’는 민소희를 모델로 내세워 오디오북으로 파격적인 이슈몰이를 하며 가파른 수익을 창출했다.

그리고 스튜디오 해츨링에서 제작을 맡은 ‘대감집 막내손자’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회귀 전 이마를 탁 치게 만들던 용두사미 엔딩으로 끝냈던 것을 원작과 동일하게 진행했기에 얼마 전 종방을 마친 ‘대감집 막내손자’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국민 드라마로 불리게 됐다.

“진짜 다행이라니까. 이번에도 용두사미 완결이 났으면 스튜디오 해츨링 주식 아예 싹 다 처분해 버릴까 했는데.”

2019년 말이 되어가면서, 그동안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에르미스가 이전과 달리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킵비트를 매각한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에르미스는 언포터블 스튜디오와 스튜디오 해츨링의 최대 주주로 등극했고 판교에 위치한 중소규모의 게임 회사를 인수해 에르미스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편입했다.

이제 에르미스는 웹소설과 웹툰뿐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게임까지 아우르는 콘텐츠 대기업으로 우뚝 자리 잡았다.

흔히 건축 현장을 보자면 몇 년 동안 땅만 죽어라 파는 것 같다가 하루아침에 몇십 층의 고층 빌딩이 세워지는 것처럼, BS북과 LGA컴퍼니를 시작으로 그동안 천천히 원천 IP를 끌어모으며 기반을 다진 에르미스는 눈부신 성과를 보였다.

‘이제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난리지.’

‘나 혼자만 상하차’, ‘대감집 막내손자’, ‘3인칭 관찰자 시점’같은 효자 작품들이 국내 매출을 미친 듯이 끌어올리는 와중 해외에서는 한나 코왈스키 작가의 ‘366일’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어른을 위한, 성인을 위한 해리포터’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366일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제는 넷플렉스뿐만이 아니라 ‘GBO Max’같은 미국 최고의 유료 채널에서도 그리고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사에서도 계속해서 에르미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돈을 쓸어 담고 있는 와중에도 내가 사옥을 짓지 않고 임대 오피스를 에르미스의 임시 본사로 사용하는 이유는 오직 단 한 가지.

지금이 2019년 말이었으니까.

똑똑—

오직 나만을 위한 장소인 32층 대표실 안으로 단풍 삼촌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사실 대표실이라고 해도 단풍 삼촌과 오진아, 지연이 그리고 권미현 정도만 내가 이곳에 있는 줄 안다.

즉, 청소 아주머니의 출입을 제외하고는 32층 전체가 나만을 위한 공간이었기에 단풍 삼촌은 편하게 말을 건넸다.

“이야아, 대표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뷰도 그렇고 그냥 궁궐이라니까?”

“나도 삼촌이랑 본부장님들하고 같은 층 썼으면 좋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크다니까.”

“인마, 김동현 팀…… 아니, 본부장도 이사급 층을 같이 쓰는데, 네가 우리랑 어떻게 같은 층을 쓰냐?”

판무 2팀 팀장이었던 김동현은 BS북의 출판 본부장직을 단 이후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불신의 눈초리로 보았던 게 사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증명하듯 김동현은 누구보다 뛰어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었다.

그 사이에 애가 하나 더 생겼으니 소처럼 일하긴 해야겠지.

“그렇긴 해. 여하튼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뉴스 봤지? 중국에서 무슨 감염병이 보고됐다는 거.”

“어, 중국 어디 성에서 생겼다고 언급 된 건 봤는데. 갑자기 그건 왜?”

“직원들 재택으로 돌리려고.”

“응, 재택……. 뭐? 갑자기 얘기가 왜 그렇게 흘러? 중국에서 생긴 전염병이랑 우리 직원들 재택근무랑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야?”

2019년 12월.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 이후로 전 세계의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전염병, 메로나.

정식 명칭은 Malignant Corona Virus Diesase 2019로 귀여운 이름과 달리 치명적인 질병을 담은 바이러스의 이름으로 치명적이라는 뜻과 스페인어로 ‘왕관’을 뜻하는 Corona가 합쳐져 만들어진 질병이다.

“전염병을 미리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거기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엎어지면 코 닿는 나라잖아. 미리 주의해서 나쁠 건 없지. 팬데믹으로 번질 위험이 있으니까 전직원 재택근무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줘.”

“자, 잠시만. 전직원? 우리 전직원을 전원 재택을 시키자고?”

당장이라도 눈이 튀어나올 듯한 살벌한 얼굴로 묻는 단풍 삼촌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지금은 다들 연말이라 바쁠 시기니까 당장 바로 진행하는 건 어렵겠고, 2월부터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해줘. 직원들한테 지급할 업무용 노트북 그리고 집에서 근무할 수 있는 업무 시설, 인터넷이랑 기타 기기 필요한 부분 있는지 체크해주고.”

“아니……. 대표, 아니, 정우야. 내가 너 킵비트 매각한 거 보면서 점집이라도 차리라고 말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진짜 무슨 무당 같은 소리를 해야 되겠냐? 직원들 이번에 사옥으로 다 옮기면서 지금 전원 주 4일 근무하고 있잖아?”

“삼촌, 말은 똑바로 해야지. 월, 화, 목, 금은 출근해서 근무하는 거고 수요일은 집에서 근무하는 거잖아.”

임시 사옥으로 이동하면서 에르미스 그룹의 모든 직원들은 주 4일만 회사에 출근하게 시켰다. 조금이라도 재택근무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이번엔 진짜 이해를 못 하겠네. 대체 무슨 의도야? 직원들 해고라도 하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사옥 사자고 할 때 일부러 임대 오피스로 들어온 거야, 설마?”

“아니라니까. 킵비트 매각한 돈은 영상화랑 게임 쪽 콘텐츠 투자하려고 쓴 거 뻔히 알면서 그래.”

“아니, 그래서 이해가 더 안 간다니까? 지금 점점 몸집 불리면서 체급 올려야 하는 상황에 직원들 사기 빠지게 무슨 재택이야, 재택이!”

열을 올리는 단풍 삼촌의 말에도 나는 단호했다.

“지금까지 주1회 재택근무를 하긴 했어도 인트라넷 사용이랑 영상회의 하는 게 다들 익숙하지는 않을 거야. 에르미스, LGA컴퍼니, BS북 쪽 모든 직원들 무조건 나와서 근무해야 하는 직원들 아니면 모두 재택으로 돌릴 수 있도록 진행해줘. 다음 달인 1월부터는 팀원들끼리 한 주씩 번갈아 가면서 재택 진행하게 해주고 2월부터는 전원 재택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바로 진행해줘.”

단풍 삼촌은 몇 번 더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고 성난 얼굴로 대표실 밖으로 나갔다. 내가 한번 정한 고집은 꺾지 않을 것을 알기에.

지옥문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2020년.

전 세계의 사람들은 긴 고통을 받을 것이다.

회귀 전과 얼마나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역병이 휘몰아치는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변화가 있겠지.

그 변화는 에르미스를 제외한 다른 플랫폼에서도 일어날 테다. 그리고 거대한 용으로 몸집을 불린 에르미스가 남은 출판계를 집어삼킬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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