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 출판계는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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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전.
한 출판사의 작품들을 홍보해주고 해당 출판사의 작품을 읽으면 캐시를 페이백 받을 수 있거나 할인된 금액에 읽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벤트를 말한다.
“네, 작가님. 지난 한 해 함께 집필해주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고요. 새해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비축분은요? 아…… 새해에는 안 힘들게 하시겠다면서 비축분은 없으시다?”
“작가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네, 결혼 일정이 잡히셔서요. ……예, 그래서 선인세 얼마를…… 아, 작가님! 새해부터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저흰 출판사지 은행이 아니라니까요?!”
웹월드에서 LGA컴퍼니의 판무 레이블 ‘드래곤’과 BS북의 판무 레이블 ‘파이톤’의 통합 브랜드전은 짧은 간격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에르미스 측과 웹월드의 협력이 점점 강화되어가면서 어느덧 2018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가 웹월드와 협력해 지속적인 브랜드전을 진행하는 만큼 소설피아는 에르미스와 웹월드에 더욱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BS북과 LGA컴퍼니에서 소설피아 1차 독점으로 우선 연재했던 작품들을 얼마나 차별 대우하는지, CP 계약 종료 후로는 단 한 번의 대배너나 소배너에도 노출되지 못했다.
독점이 풀리지 않은 작품들도 웹월드에 프로모션을 돌려버렸으니 우리측과 소설피아 측의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졌는데, 우리들의 관계는 개싸움으로까진 변질되지 않았다. 의외의 사건으로 인해서.
“하아……… 무슨 대출 심사 창구도 아니고 새해 인사 보내자마자 곧장 선인세를 달라고 하냐. 새해부터 액땜 지려버리…… 어어? 이거 뭐야?”
“왜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헐…… 아니, S스토리 얘들 ISBN 등록도 안 했던 거였나본데요? 졸지에 더노벨 애들도 뚜드려 맞고 있고요?”
이외의 사건은 1월 초.
다름 아닌 S스토리와 더노벨로부터 시작됐다.
소설피아가 작품 검열을 했다가 걸린 후.
이에 반발한 수많은 20대 초반의 작가들과 독자들이 S스토리로 넘어갔다.
S스토리는 소설피아에서 이탈한 작가와 독자의 마음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비교적 간단했다.
작가들의 경우엔 에르미스나 소설피아 또는 웹월드나 테일랜드처럼 편당 결제 플랫폼에서보다 더 순한 맛의 당근향 가득한 댓글로 따스한 감동을 느꼈고, 독자들의 경우엔 필터와 한계 없는 자극적인 글로 뇌 속이 절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터질 줄 알긴 했는데…… 절묘한 타이밍에 터졌네?’
판무 2팀 자리에서 쑥덕이는 매니저들의 말에 인터넷 기사를 살피자 S스토리와 더노벨 그리고 그곳에서 연재하는 작가들 몇이 형법 제243조와 244조에 의거해 벌금형에 처했다는 기사였다.
형법 제243조는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반포, 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했을 때.
그리고 형법 제244조는 제243조의 행위에 공할 목적으로 음란한 물건을 제조, 소지, 수입 또는 수출했을 시 1년 이하의 징역 도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을 뜻한다.
원래 시간의 흐름대로라면 아직 S스토리는 생기기도 전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터질 일임을 알고 있었기에 타이밍이 놀라웠을 뿐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판무 2팀 매니저들뿐만이 아니라 뉴스 기사를 읽으며 황건일과 조팟도 차례대로 혀를 차며 말했다.
“와……. 아니, ISBN 발급도 안 받고 그냥 연재하는 거였어요?”
“ISBN을 발급받지 않으면 전자출판물이 아니라 음란물이나 폭력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고요. 어쩐지 ISBN 발급 안 받고 뻗댈 때 알아봤더니만. 뭐, 마광수 교수님처럼 징역 유죄 판결은 안 받은 게 다행일지도.”
조팟이 말하는 마광수 교수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의 전 교수로 그가 집필했던 소설 ‘즐거운 사라’가 S스토리와 더노벨이 그랬던 것처럼 형법 제243조 및 244조의 음란물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강의 도중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유죄 판결을 받았었다.
물론 마광수 전 교수님의 예언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때와 장소, 상대방을 가리지 않는 자유로운 성행위를 담았던 그의 글이 음란 문서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결이 되었던 일은 점점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으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마광수 교수님 이후로 소설이 음란물의 대상으로 지정된 건 S스토리와 더노벨이 편당 결제가 아닌 정액제 서비스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기사를 읽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황건일이 조팟에게 물었다.
“그런데 파트장님. S스토리가 일부러 ISBN발급을 안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거세요?”
“당연하죠? 생각을 해봐요. ISBN을 발급받은 간행물만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그리고 청소년보호법에 근거해 유해간행물이나 청소년유해간행물 심의 대상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게 되는 거여서요. 그러니까 S스토리처럼 ISBN을 발급을 안 받으면 전자출판물이 아니라는 거죠.”
조팟의 말에 황건일이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면 애초에 간윤위에게 심의 권한도 없다는 뜻이네요?”
“그렇죠. 근데 여기 기사 나온 것 좀 봐요. S스토리도 그렇고 더노벨도 그렇고 작가들한테 일부러 알리지를 않았다가, 완결 낸 작가들이 단행본 내겠다고 ISBN 등록하니까 그때 난리가 난 거죠. 진작 터질 줄 알았지, 쯧쯧.”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채찍을 맞은 S스토리와 더노벨의 요란했던 1월이 마무리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던가?
2018년 1월 30일.
한 여성 검사의 검찰청 내부 성추문 폭로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불씨가 일명 ‘나도 당했다’라는 뜻을 담은 ‘미투 운동’을 전 대륙에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업계를 불문하고 번져가는 미투운동으로 인해 성범죄에 관련한 이슈는 대한민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시기가 되어버렸다.
2월이 넘어가고 3월이 되었을 무렵.
간행물윤리위원회의 눈 밖에 난 후로 S스토리와 더노벨은 웹소설 시장에서 그동안 쌓아 올린 지위를 급격히 잃기 시작했다.
미투운동과 맞물린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철퇴를 맞은 두 기업의 작가와 독자들은 전례 없는 속도로 빠르게 이탈하기 시작했다.
“단풍 삼촌. 이 정도로 말고 더 없어? 캐시 추첨은 소설피아도 하는 건데. 차별성을 줄 수 있는 거면 좋을 것 같은데.”
“음……. 굳이 큰 차별성을 둘 필요는 없을 것 같긴 한데 우선 캐시 추첨 외에도 신규 독자들에게는…….”
결국 소설피아와 우리 에르미스는 계속해서 치고박고 싸우기보단 집을 잃고 흩어져 나온 작가들과 독자들을 흡수하는 데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서로 말없이 합의된 휴전 상태랄까?
3월이 지나가고 완연한 봄 날씨인 4월이 넘어갔을 무렵 소설피아와 우리는 S스토리와 더노벨의 남은 작가와 독자들을 빼 오는 데 안간힘을 썼다.
소설피아는 지난번 지난 검열 이슈 때 빠져나간 작가들과 독자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각종 캐시 이벤트를 진행하며 그들의 복귀를 환영했고, 우리 에르미스는 최대한 작가와 독자들이 소설피아로 다시 흡수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미움의 강도가 옅어지는 것처럼 소설피아와 에르미스도 그랬다.
소설피아의 임원진 그리고 강경진이 암만 열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회사란 돈을 버는 집단이다.
강경진과 소설피아 임원진이 아무리 에르미스에 악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소설피아는 이제 테일랜드가 대주주가 된 상황.
우리 에르미스를 향해 독자와 작가층이 대거 이탈하는 상황에 계속 유연한 경영이 아닌 감정적인 구시대적 경영을 보여주고 있으니 테일랜드도 결국 칼을 뽑아 들었다.
소설피아의 대주주인 테일랜드의 뜻은 명확했다.
돈 안 되는 기 싸움은 서로 그만하고 S스토리와 더노벨에서 탈출하는 개미 떼나 빠르게 흡수하자는 뜻이었다.
우리 에르미스와 소설피아 그리고 웹월드까지 합세한 작가와 독자 빼오기는 점점 더 거세졌고 뜨거운 무더위가 가득한 8월이 되었을 무렵.
정액제 서비스로 웹소설 판을 바꿔보려 했던 S스토리와 더노벨은 출판계의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나름의 규모가 있던 두 플랫폼의 몰락 후.
한동안 잠자코 있던 소설피아가 다시 에르미스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에르미스에 신작을 많이 출간하는 출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식으로.
누가 보더라도 치졸하다 못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행동을 소설피아가 한 이유는, 2018년 하반기에 접어들수록 에르미스의 성장세가 가파르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강추강 작가의 나 혼자 상하차, 한태산 작가의 대감집 막내손자. 거기다 양파쿵 작가의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웹소설 장르판을 뒤집어엎고 있었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한나 코왈스키 작가의 366일이 넷플렉스 영화화 확정은 물론, 크랭크 인까지 곧바로 돌입하면서 국내외 흥행을 쌍끌이 어선으로 견인하며 웹소설 출판계의 정상에 등극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플랫폼들과 달리 소설피아는 에르미스의 업계 정상 등극을 보면서 경기를 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부동의 업계 탑은 자신들 소설피아라고 내심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띠링—
—권미현 출판본부장: 대표님! ‘네 남자, 좀 하더라?’ 로맨스 최초로 2천만 다운 넘었어요! 이러다가 3천만 다운도 곧 넘길 것 같은데요?
물론 지금 권미현이 보낸 카톡처럼 나는, 아니, 우리 에르미스는 소설피아와 다른 플랫폼의 추격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한국 로맨스판타지의 최고 대작이라 불리는 ‘영묘한달빛’작가의 ‘네 남자, 좀 하더라?’를 계약한 후 이제 판무 쪽만이 아니라 로맨스 장르도 씹어먹기 시작했다.
권미현의 보고를 전달받으면서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확실히 출판계는 바뀌고 있다.
이전과는 점점 달라진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