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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92화 (192/201)

192화 ― 조금 더 고상하게 움직이죠.

* * *

LGA컴퍼니 3층 회의실.

그곳에선 LGA컴퍼니 임직원들과 오진아가 모두 모였다.

모두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짧은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때, 단풍 삼촌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소설피아가 생각 이상으로 강경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소설피아에서는 차주 월요일인 9월 11일에 BS북과 LGA컴퍼니의 CP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단풍 삼촌의 말에 나는 읊조리듯 답했다.

“일주일 말미라……. 작품 컨택은 당연히 안 될 게 분명하고, 문제는 현재 소설피아에서 독점 연재 중인 작품들인데요. 지금 소설피아에 독점 연재 되고 있는 우리 쪽 작품이 총 몇 개죠?”

내 질문에 권미현이 대신 답했다.

“BS북과 LGA컴퍼니가 소설피아에서 연재하는 총 작품의 수는 135개 그리고 프로모션 진행 중인 작품 수는 71개입니다.”

총 작품의 수가 135개라.

그간 최대한 에르미스와 웹월드, 테일랜드로 다변화를 시도했는데도 여전히 상당히 많은 작품이 작품이 소설피아에 묶여 있다.

비록 에르미스가 타 플랫폼들과 경쟁 구도에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약 작가들에게 선택권을 제한하지는 않았다.

에르미스의 조건이 좋다고 하더라도 구작들이 여전히 소설피아에 묶여있고 기존 팬층도 소설피아에 있다면 소설피아에, 대기업의 백이 있는 테일랜드나 웹월드로 가고 싶다면 그곳으로 가는 것도 막지 않았다.

에르미스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싶다고 해도 작가들의 자유도까지 막아버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CP를 막아버리시겠다?’

좀스러운 소설피아의 행보에 절로 쓴웃음이 지어지는 그때 단풍 삼촌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CP 계약 해지 메일을 받고 즉시 소설피아 측에 연락을 했습니다. 에둘러서 말하긴 했지만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양파쿵 작가님의 3인칭 관찰자 시점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게 배가 아픈 모양이더군요. 베스트 순위에 오르기도 전에 내렸던 글인데 그걸 에르미스로 빼갔다는 걸 빌미로 CP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거였고요.”

회의실로 오기 전.

권미현과 짧은 통화를 하면서 대략적인 상황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단풍 삼촌의 입을 통해 다시 듣는 지금 순간도 어이가 없다는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네요. 양파쿵 작가님은 애초부터 소설피아에서 독점으로 연재하시던 게 아니었잖아요? 소설피아와 에르미스 두 곳에 동시로 무료 연재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그걸 핑계를 댄다?”

단풍 삼촌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지난번 검열 이슈로 상당수의 20대 남성 작가들이 S스토리로 넘어가는 상황에 에르미스도 점점 성장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번에 양파쿵 작가님이 에르미스에서 독점 연재를 하시니 그걸 빌미로 CP를 아예 막기로 결정한 모양입니다.”

지난번 검열 이슈로 20대 남성 작가들이 대거 이탈한 S스토리는 소설피아나 에르미스처럼 편당 결제가 아닌 구독형 정액제 플랫폼.

소설피아는 S스토리로 작가들이 쭉쭉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을 테다.

하지만 에르미스는 소설피아와 마찬가지로 편당 결제로 운영되는 플랫폼이기에 결국 소설피아의 철퇴를 맞는 건 우리 에르미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네요. 양파쿵 작가님 데리고 올 때 컨택한 건 BS북 CP 통해서 컨택한 거였잖아요? LGA컴퍼니 CP로는 연락한 것도 아예 없고요. 그런데 BS북뿐만이 아니라 LGA컴퍼니까지 CP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상황입니까?”

단풍 삼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소설피아 측과 통화 하면서 그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통화 내용이야 사실 말도 안 되는 이런저런 핑계를 데기는 하던데 결국 정리하자면 BS북이나 LGA컴퍼니나 같은 회사나 마찬가지니 한 번에 소설피아에서 다 잘라버리겠다는 뜻이겠죠.”

“그럴 것 같긴 했습니다.”

사실 소설피아의 이런 행보를 어느 정도 예측하기는 했다. 내가 회귀하기 전만 해도 논리보단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던 플랫폼이었으니까.

일반인들이 보기에 기업가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기계처럼 모든 결정을 행한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실상을 파고들면 이렇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특히 출판계에서는.

“일단 BS북과 LGA컴퍼니 CP가 벤 당한 건 이미 일어날 일이니 어쩔 수 없겠고, 우리 작가님들을 위한 대책부터 마련해야겠네요. 미현 본부장님?”

내 부름에 권미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재 소설피아에서 독점으로 연재 중이신 135명의 작가님들 중에 유료화를 앞둔 작가님들이 가장 큰 문제일 겁니다. 17명의 작가님께서 현재 유료화를 앞두고 있는데요, CP가 막히면 프로모션도 자연스럽게 모두 막힐 거라는 게 문제입니다.”

“음…….”

권미현의 말처럼 유료화를 앞둔 작가들의 경우에는 상당히 타격이 심할 테다.

BS북이나 LGA컴퍼니와 계약을 한 작가들의 경우엔 이미 에르미스의 성장과 장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소설피아에서 독점 연재를 하기로 희망한 작가들은 대개 구작이 소설피아에 묶여있는 경우다.

물론 소설피아의 독점은 100화가 넘어가면 풀리기에 이미 완결의 난 구작은 에르미스를 포함한 타 플랫폼에도 올라와 있다.

‘……변화보다는 익숙함을 원하는 작가님들이 대부분인데.’

하지만 그동안 소설피아에서 여러 질을 집필하면서 소설피아 내에 팬층을 확보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이런 작가들은 에르미스에서 독점으로 연재하게 된다면 더 좋은 조건으로 연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소설피아에서의 잔류를 택한 것이다.

“유료화를 앞둔 작품이 총 17개……. 작가님께는 저희 CP 종료되는 거 말씀드리고 에르미스에서 구작까지 추가 프로모션 진행해드리겠다고 연재처 옮기실 생각이 있으신지 여쭤봐주세요, 그래도 소설피아에서 계속 연재를 희망하신다면 계약해지 도와드리고 사죄의 의미로 에르미스에 올라와 있는 구작은 별도 이벤트 들어가겠다고 정해주시고요.”

권미현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계약 해지를 하게 도와드린다고요? 저희가 계약한 작가님들 정도면 계약 해지하는 순간 소설피아 매니지에서 모두 다 데려갈 텐데요? 그걸 냅두시려고요? 차라리 저희가 아는 다른 출판사에 연락 돌려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약을 해지한 작가님들의 선택까지 저희가 좌지우지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우리와 소설피아가 척을 지게 된 상황이라 해도 말이죠.”

“…….”

“졸지에 소설피아 배를 불려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출판 본부장님은 특히 기분이 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피아 매니지먼트든 아니면 다른 출판사이든 작가님들께 더 좋은 조건을 주는 곳이 있다면, 그곳과 계약을 하는 게 작가님들을 위한 일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기분이 나쁘고 속상한 건 출판 본부장인 권미현일 테다.

여타 직종과 달리 출판사 매니저들, 특히 출판 본부에 속한 매니저들은 작가와 긴밀한 소통을 진행한다.

많은 작가들이 단순히 계약 조건만 보면서 작품 계약을 체결하긴 하지만, 계약 조건보다 담당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작가들도 상당수다.

편집자 역할을 하는 출판 본부의 매니저들은 작가가 쓴 글의 흐름, 문체, 문법 등을 체크하고 수정하며, 적절한 제목, 챕터 구성, 표지와 삽화에 관해 제안한다.

하지만 기계처럼 소통하는 것이 아닌 편집자와 작가는 서로의 업무 경험, 지식, 감성 등을 공유하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때로 작가가 자신이 쓴 글에 대한 감정이나 열정 등을 표현하면 편집자는 그에 맞춰 조언을 해주고 이러한 과정에서 편집자와 작가는 서로 인간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긴밀한 교류를 한 인간 관계를 소설피아의 횡포로 갑작스럽게 끊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기에 권미현과 출판 본부의 매니저들은 상당히 분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리를 마친 음식이 남의 입속에 들어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거지.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를…….’

비록 성인군자 같은 말을 내뱉었지만, 사실 자신이 있었다. 이제 소설피아에게 당하고만 있지 않을 자신이.

“미현 본부장님은 유료화를 앞둔 작가님들께는 지금 말씀 드렸던 것처럼 최우선적으로 연락 전해주시고요. 그리고 유료화를 진행 중인 작가님들……. 확정된 프로모션도 없어질 수도, 아니, 확실히 없어질 겁니다.”

회귀 전에도 소설피아는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CP 계약을 해지한 출판사 작품의 추가 프로모션을 없애는 일.

당시에도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 몸소 그 상황을 겪게 되니 치졸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만 가득 든다. 해당 출판사뿐만이 아니라 그 소속작가들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하겠다는 뜻이니까.

“유료화를 진행 중이신 작가님들에겐 소설피아 독점 기간이 끝나고 에르미스에서 2차 독점 진행하면서 추가 프로모션 진행해드리겠다고 전달해주세요.”

권미현이 분노로 이글거리는 듯한 눈빛으로 답했다.

“네, 대표님.”

“이미 에르미스에서 2차 독점 진행 중인 작가님들한테도 추가 프로모션 드릴 수 있도록 진행해주시고요. 무진 본부장님은 캐시 페이백이나 배너 등 기존 프로모션 말고 이번에 보상안으로 작가님들께 제공하려는 프로모션에 관련해서 새로운 안이 있을지 확인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소설피아의 그런 옹졸한 행보가 아니꼽다고 해도 지금 와서 바뀔 일은 없다.

이제 남은 건 내가, 우리 에르미스가 바꿔나가야 하는 순서다.

나는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임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여러분. 이제 저희도 맞불 놓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단풍 삼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맞불이라면……? 에르미스도 소설피아 CP 계약 종료를 통보하라는 말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똥을 뿌린다고 우리도 똥을 뿌릴 수는 없죠. 우리는 조금 더 고상하게 움직이죠.”

BS북과 LGA컴퍼니의 매니저들이 소설피아를 통해 작가 컨택을 진행해왔던 것처럼 소설피아 또한 최근 들어 부쩍 에르미스에서 연재 중인 작가들에게 컨택을 해왔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소설피아 CP 계정을 막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똑같이 추잡한 방식으로 승부를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직까지는 다른 대안이 있으니까.

“웹월드 측에 연락 넣어 주세요. 미팅 자리 갖자고.”

“웹월드요? 웹월드는 어떤 이유료……?”

테일랜드라는 호랑이의 등에 탄 소설피아가 겁 없이 설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웹소설 출판계라는 거대한 산에는 또 다른 산군이 존재한다. 테일랜드와 마찬가지로 대기업을 등에 업고 있는 웹월드라는 산군이.

“2차 독점 관해서 이야기 나눠볼 때가 된 것 같네요.”

또 다른 적과 손을 잡을 때가 되었다.

눈앞의 더 큰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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