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 계정을 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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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하던 봄 날씨가 흩어지고 어느덧 찌는 듯한 여름의 막바지인 9월 초가 되었다.
지구 전체가 프라이팬이 된 듯 들끓던 열기는 지난 달보다는 조금 잠잠해 졌지만, 웹소설 출판계는 한 여름 때의 날씨보다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우와아! 과, 관심작 미쳤네. 지금 이거 실화에요?”
“관심작 5만? 와아……. 선작 이거 말이 되는 거에요?”
“소설피아에도 선작 5만 짜리는 몇 없잖아요? 진짜 에르미스 장난 아니네. 진짜 같은 계열사여서 그런 게 아니라 삼관시 때문인지 괜찮은 무료 연재 작품도 타 플랫폼보다 에르미스에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도 요즘엔 소설피아 캐시 충전 안 하잖아요. 예전에는 소설피아가 플랫폼 인터페이스는 구려도 번뜩이는 작품들이 가장 먼저 올라오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진짜 에르미스도 만만치 않은 거 같아요.”
양파쿵 작가와의 계약을 한지도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
나와 계약을 체결한 후, 양파쿵 작가는 소설피아에서 연재하던 글을 내리고 에르미스 독점으로 본격적인 연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BS북 판무 2팀 매니저들의 입에서 나오는 감탄처럼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에르미스에서 경이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직원들한테 캐시 준 것도 한 몫 한 것 같네.’
소설피아와 마찬가지로 에르미스도 ‘에르미스 캐시’라는 가상 화폐를 사용한다. 미리 구매한 가상 화폐를 이용해 결제를 진행하는 형식.
LGA컴퍼니와 BS북이 한 배를 타게 되면서 나는 BS북 임직원들에게도 ‘도서구입비’라는 명복으로 10만 원에 달하는 에르미스 캐시를 매달 지급하고 있다.
에르미스 출시 초창기만 하더라도 직원들은 에르미스 캐시로 웹툰을 보는 데 사용하지 웹소설을 읽을 땐 주로 소설피아를 이용했었다.
하지만 판무 2팀 매니저들이 하는 말처럼 에르미스는 BS북 직원들 사이에서도 업무적으로 작품을 컨택할 때를 제외한 여가시간에도 에르미스를 사용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삼관시가 에르미스에 독점 연재를 시작한 후부터, 삼관시는 거의 매달 대 기록과 함께 에르미스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로 인한 기대감이 판무 2팀 매니저들을 들뜨게 했는지, 오늘 따라 판무 2팀 매니저들은 유독 삼관시에 관한 대화를 길게 이어 나갔다.
단지 판무 2팀 팀장 이창윤 매니저가 잠시 자리를 비워서 일지도 모르지만.
“이거 이러다가 또 인센 받는 거 아니에요?”
“받지 않을까요? 아니, 그보다 우리가 열심히 해야죠. 편집자로서 우리도 삼관시 같은 작품 하나 런칭해야 하지 않겠어요?”
“진짜요. 삼관시 같은 작품 하나 딱 런칭하면 편집자 커리어에 하이라이트 쫙 하고 찍는 건데.”
2년 전만 해도 BS북 매니저들 사이에선 팀을 오가지 않고 부정적인 이야기들만 오갔었다.
그게 업무 관련 이야기던 아니면 단순한 사담이던 간에.
하지만 대형 플랫폼들 사이에서 에르미스가 죽순처럼 우뚝 솟아오른 지금, BS북의 매니저들은 이전처럼 패배의식에 휩싸인 듯한 부정적인 말들을 내뱉지 않았다.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판무 2팀 매니저들의 멘탈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그때.
“관심작품 수가 5만 199명. 와…… 클릭 한 번 할 때마다 관심작이 계속 오르네요.”
우리 1팀의 황건일 매니저 또한 삼관시에 관한 말을 읊조리듯 꺼냈다.
“삼관시가 만약에 한 300화 넘게 연재한다면 관심작 10만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BS북 모두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 아니었다. 우리 판무 1팀엔 조팟놈이 있었으니까.
“어휴,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소설피아에도 관심작 5만 넘은 작품이 몇 개 없잖아요. 양파쿵 작가가 필력도 좋고 내용도 재미있게 쓰지만 솔직히 설정은 이미 이전에 다 나왔던 거 섞은 거라 관심작 수는 지금이 한계일 거에요. 유료화 시작하고서도 관심작이 계속 오르는 게 신기한 노릇이긴 한데, 두고 봐요. 여기서 더 오른다고 해도 관심작 6만 정도가 한계일 테니까.”
“하하, 아무래도 관심작 10만은 무리겠죠?”
“그럼요 코즈일 작가도, 노원지귀 작가도 10만 근처도 못 갔는데.”
그래 고맙다 조팟아.
관심작 10만도 못 찍은 그 작가가 바로 네 옆에 있다.
일머리는 없어도 예민한 감각 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조팟놈이 따끔거리게 쏘아낸 내 레이저 눈빛을 포착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 팀장님? 무슨 하신 말씀이라도?”
역시 이럴 때는 기민한 놈이다.
불안감을 감지한 조팟놈이 물은 말에 나는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리길래요.”
“아, 삼관시 말씀하시는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는 건일 매니저님 말에 동의하거든요.”
“예? 어떤 것을요? 설마 관심작이요?”
“네, 저는 삼관시가 관심작 10만까지는 무난히 가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성적 추이를 봐서는 관심작 15만까지도 갈 거로 생각되고요.”
내 말에 조팟은 말도 안된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팀장님. 관심작 10만은 소설피아에도 없었어요. 아시잖아요? 코즈일 작가도, 노원지귀 작가도, 한태산 작가도 다들 20만은 근처에도 못 갔잖아요. 강추강 작가가 웹월드가 아니라 소설피아에서 연재했더라도 10만은 못 찍었을 걸요?”
이 새끼가?
아니 미래에서 이미 관심작 15만이 찍힌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는데 대체 뭘 믿고 저렇게 우기는 거지?
최근 들어 갱생의 여지가 있나 했더니만, 하여간 매사에 비판적인 조팟놈의 근성이 바뀌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내기 하실래요?”
“내기요? 좋죠? 한 10만 원 거실까요?”
주는 월급 따박따박 받아서 저축할 생각을 해야지, 내기를 하잰다고 냉큼 미끼를 문다.
“에이, 10만 원은 약하죠. 조팟님이 그렇게 확신이 있으면 판돈은 더 키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확신에 찬 내 말에도 조팟은 여전히 자신의 승리를 점치는지 히죽거렸다.
“좋죠. 얼마로 올리실까요? 20만 원? 아니면 통 크게 50만 원?”
조팟놈이 월급 아까운 줄도 모르고 덤벼든다.
하지만 내가 내기 이야기를 굳이 꺼낸 건 푼돈을 벌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거 말고 더 크게 걸죠. 퇴사 걸고 하는 거 어때요? 팀장과 파트장의 진검 승부. 웹소설의 트렌드를 명확하게 알아야 관심작이 어느 정도 찍히는지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조팟님이 내기에서 이기시면 제가 퇴사 하는 걸로.”
“하하……. 무슨 장난을…….”
이라고 말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조팟이었지만 녀석의 눈이 번뜩거렸다. 내가 퇴사를 하면 팀장 자리에 자신이 앉으리란 장미빛 미래까지 그리고 있을 게 뻔한 눈빛이었다.
잠시 음흉한 눈빛을 빛내던 조팟놈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이 달싹이던 입술을 열었다.
“그런데 혹시 제가 지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하하, 어떻게 되긴요. 그때는 조팟님이 짐 싸서 나가셔야죠.”
“하하…….”
“하하하, 조팟님이 한다고 하시면 저는 공증이라도 받을 생각이 있는데. 하실래요?”
조팟놈의 동공이 좌우로 세차게 요동쳤다.
에르미스뿐만이 아니라 아직까진 더 많은 회원 수를 보유하고 있는 소설피아에서도 관심작 10만을 넘긴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말한 것처럼 관심작 15만은 그야말로 마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는…….”
그리고 나는 조팟놈이 무슨 말을 할 지 뻔히 알고 있다. 놈의 성향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나니까.
“안 하겠습니다. 관심작 내기를 하면 어차피 제가 이길 것 같아요. 저희 1팀에는 팀장님이 꼭 필요하신데, 내기를 받으면 괜히 제가 팀장님 자리에 욕심을 내는 것처럼 보일까봐요, 하하.”
역시 내 예상대로 쫄보인 조팟놈은 내기에 응하지 않았다. 허세와 입 터는 건 천하 제일이지만 그보다 자기 안위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놈이었으니까.
“에이, 괜찮다니까요? 자신 있으면 그냥 해요. 난 정말 자신 있어요.”
“아니, 뭐……. 제가 자신이 없다는 게 아니라…….”
“자신 없으면 조용히 하고 일이나 합시다. 괜한 추측만 하지 말고요.”
“……네. 알겠습니다.”
낄 때 안 낄 때 구분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좋으려만, 조팟놈은 괜히 이집 기웃, 저 집 기웃 하면서 구타를 유발한다.
조팟놈의 축 처진 어깨가 불판에 구운 오징어처럼 더욱 말려들어가는 것을 보며 소소한 직장 라이프 중의 힐링이라는 생각을 하는 그때.
드르르륵—
띠링— 띠링—
내 자리엔 전화, 카톡, 메일 등이 재난이라도 일어난 듯이 동시에 밀려 들었다.
‘미현 씨한테 온 전화네? 대체 무슨 일이지?’
전화와 문자가 왔을 때 우선 순위는 항상 전화부터다. 하지만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여기저기서 발신된 연락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권미현의 전화를 받으러 소회의실로 이동하기 전에 빠르게 방금 도착한 카톡과 메일을 훑었다.
딸칵딸칵—
“아…….”
그리고 카톡과 메일로 보내진 내용을 보자 권미현이 무슨 이유로 연락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모두가 같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연락을 보낸 거였으니까.
‘소설피아, 이 양아치 새끼들.’
소설피아가 CP(Contents Provider) 계정을 막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