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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90화 (190/201)

190화 ― 너무 작아서 놀란 건데요?

* * *

전화로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는 양파쿵 작가와 미팅 약속을 잡은 강남의 한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이건 진짜 천운이다. 연재 당일에 바로 미팅을 잡다니.’

일반적으로 작가에게 계약 제안을 보내면 연락을 확인하는 데 며칠, 거기다 답변이 오는 덴 추가로 며칠이 더 걸리는 일이 다반사.

하지만 양파쿵 작가는 단번에 내 미팅 제안을 수락했다.

‘작가님이 조금 늦으시긴 하네?’

지금 시간은 오후 8시 25분.

원래 약속 시간은 오후 8시였다.

하지만 30분 전쯤에 미리 이전 일정이 늦어질 것 같다는 양해의 문자를 받았다. 한적한 자리에서 이번 미팅을 어떤 식으로 진행해 나가는 게 좋을지 준비했던 멘트를 계속 되감는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혹시 박정우 편집자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 보니, 대학생처럼 보일 정도로 앳된 모습의 사내가 서 있었다.

내가 알기로 지금 이맘대의 양파쿵 작가는 30대 중반이라고 들었는데, 뽀얀 피부 때문인지 그의 나이가 10년은 더 어려 보일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음료는 어떤 거로 드시겠습니까?”

“아아로 마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커피와 조각 케이크 하나를 산 후 나는 곧장 테이블로 돌아왔다. 케이크를 본 양파쿵 작가가 미안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고, 음료만 사주셔도 되는데. 죄송해서 어쩌죠? 제가 밥을 막 먹고 와서.”

“그러셨군요? 괜찮습니다, 하하. 케이크야 제가 먹으면 되는 거죠.”

양파쿵 작가는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박정우 편집자님을 뵙기 전에 소설피아와 미팅을 진행하고 왔습니다. 미팅 내용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늦어졌네요.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소설피아에서도 작품 보는 눈을 지닌 편집자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소설피아와 미팅을 하고 왔다는 양파쿵의 말에 잠시 표정관리가 안 될뻔했지만, 나도 이제 짬이 찰대로 찬 편집자.

나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보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녁 대접을 저희가 했어야 됐는데, 한 발 늦었네요. 소설피아와 계약을 하신 것만 아니면 좋겠습니다.”

“하하, 아직 계약을 진행하진 않았습니다. 사실 계약 제안은 에르미스에서 먼저 왔지만, 소설피아 계약 조건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어서 먼저 미팅을 하고 오게 됐습니다.”

현명한 판단이다.

나는 양파쿵에게 계약 제안을 보냈을때, 쪽지로 그리고 전화로 계약 조건에 관한 내용을 일일이 다 설명하진 않았다. 대신 다른 출판사의 제안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맞춰 줄 수 있다고 말했지.

“잘하셨습니다, 작가님. 앞서 전화로 설명드렸던 것처럼 저희 에르미스는 작가님께서 원하시는 조건을 가능한 다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원하시는 조건이 어떤 것인지 여쭐 수 있을까요?”

양파쿵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의 망설임 없는 눈빛을 보니 정산비와 선이세 등의 계약 조건을 어떻게 할 지 이미 정한 모양이다.

“우선 제가 소설피아에 처음 제안했던 조건은 정산비 9 대 1이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상당히 오랜 준비를 한 작품이고 실제로 자신도 있었으니까요.”

양파쿵을 모르는 이 시절의 편집자들은 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얼마나 많은 사전 준비를 했고 얼마나 대단한 걸작을 만들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소설피아에서는 놀랍게도 정산비를 10 대 0으로 진행해서도 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9 대 1도 쉽지 않은 비율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양파쿵 작가는 놀랍다는 듯이 말했지만, 사실 이 시기부터 웹소설 1위 플랫폼으로 성장한 소설피아는 자체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진행한 작가들에게 10 대 0으로 정산을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소설피아와 매니지먼트라 불리는 출판사 그리고 작가들의 수익 분배는 결제 수수료 10%를 제외하고 시작한다.

즉 한 편을 100원을 주고 구입하면 결제 수수료 10%를 제외한 90% 중 소설피아는 플랫폼 수수료 30%를 먹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소설피아가 37%를 먹고 남은 63%를 소속 매니지먼트와 작가가 나눠 먹는 구조인데, 양파쿵이 말한 것 같이 소설피아 자체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하고 정산비를 10 대 0으로 진행한다면 작가가 남은 63%를 모두 먹기에 한 편을 팔았을 때 63원을 가져가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선인세는 오천까지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오천만 원이요?”

“하하, 네. 놀라셨나봅니다. 사실 저도 선인세가 필요하긴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넉넉하게 불러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에르미스에서 조건을 최대한 맞춰줄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 조건 이상은 힘드실 것 같아서……. 그래서 아무래도 에르미스와의 계약은―”

“아뇨, 너무 작아서 놀란 건데요?”

“예?”

덤덤하기만 했던 양파쿵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소설피아 자식들. 오천? 양심이 없지. 아니야, 소설피아 입장에서는 그 정도가 최선이었겠지?’

소설피아 자체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하면 매니지먼트 수수료를 따로 받지 않는 장점이 있기에 선인세 또한 작가들에게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선인세 오천만 원은 양파쿵 작가에게 선을 세게 넘은 금액이다.

입은 벌어지고 눈만 끔벅이는 양파쿵을 보며 나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사실 작가님께서 소설피아와 미팅을 먼저 진행하고 오셨다길래 조금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저희 에르미스 역시 소설피아처럼 플랫폼 수수료를 제외하고 매니지먼트 수수료는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정산비 10 대 0에 한 편 팔리면 63원이 작가님께 가는 구조는 동일하죠.”

“아, 예. 그렇군요. 그보다 선인세가 작다는 건……?”

양파쿵 작가에게 선인세 5천이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소설피아에 아무리 유능한 인재가 있다고 해도 나처럼 미래를 볼 수 있는 회귀자는 아닐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삼관시에 5천은 선 넘은 게 아닌가? 눈썰미가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아니, 지금 연재된 삼관시를 제대로 읽기만 했다면 선인세 5천짜리 글이 아닌 걸 뻔히 알 텐데?

곱씹을수록 가소로운 금액에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오려는 걸 간신이 참으며 말했다.

“작가님께서 저희 에르미스와 독점 계약을 진행해 주신다면 저희는 소설피아에서 제안한 선인세의 10배를 선인세로 드릴 수 있습니다.”

“…….”

양파쿵 작가의 입이 벌어진 채로 멈춰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선인세만 지금…… 오억이라고?”

“사실 기본 오억으로 생각했습니다. 작가님께서 3인칭 관찰자 시점에 자부심이 있으신 것처럼 저희 에르미스 또한 큰 기대를 하는 작품입니다. 사실 저희 에르미스에서는 작가님께서 원하신다면 지금 제안드린 금액에 2배를 선인세로 드릴 생각도 있습니다.”

“그게…….”

쉽게 입을 다물지 못하는 양파쿵을 위해 나는 친절한 설명을 이었다.

“예, 선인세로만 10억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아, 혹시 소설피아에서 계약금을 주겠다는 말은 없던가요?”

잠시 동공이 흔들리던 양파쿵이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계약금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저희는 계약금만 1억을 드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체 웹툰 스튜디오를 통해 바로 웹툰을 준비하고…….”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이 있다.

혼란이란 파도가 양파쿵의 머릿속을 헤집는 지금 나는 성난 파도같이 에르미스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쏟아붓듯 설명했다.

한태산 작가에게도 선인세 5억에 계약금 1억을 줬었던 나다. 회사의 규모가 더 커지고 이제 소설피아와 전면전을 펼쳐야 하는 지금 나는 아낌 없이 내가 가진 총알을 쏟아 부을 수 있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양파쿵은 잠시 어지럽다는 듯이 양손으로 머리를 잡았다. 잠시 그 자세로 멈춰있던 양파쿵은 입 한 번 대지 않았던 커피를 식도에 쏟아 붓든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우……. 에르미스에서 조건을 다 맞춰 줄 수 있다고 하시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로 맞춰주시리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별말씀을요. 작가님께서 추가로 원하시는 조건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가능한 선에서 맞춰드리겠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오히려 나다.

소설피아의 빠른 컨택도 예상하지 못했고, 좀스러운 돈으로 양파쿵 작가를 계약하리란 것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회귀하기 전까지 양파쿵 작가는 300억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그것도 원작 매출로만!

웹툰 매출까지 합쳐진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황금 거위인 셈이다.

선인세야 어차피 잠시 빌려주는 무이자 대출이니 돌려받을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계약금으로 건네는 1억 정도야 에르미스에서 벌어들일 돈에 비하면 조금도 아깝지 않다.

“저는…….”

에르미스의 계약 조건을 들은 양파쿵은 잠시 정리가 필요한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다른 조건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계약 바로 진행 가능할까요?”

좋은 글을 쓰시는 작가님이라 그런지 두뇌 회전도 빠르시다. 나는 밝게 미소 지으며 가방에서 서류를 빼내 건넸다.

“계약서는 이미 준비했습니다. 선인세 금액만 직접 적어 주시죠.”

웹소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전설의 작가 양파쿵. 그와 손을 잡은 에르미스는 더는 잠용이라고 불리지 않을 테다.

3인칭 관찰자 시점과 함께 웹소설판을 모두 씹어먹을 준비는 끝났다. 에르미스의 시대가 한 발자국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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