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89화 (189/201)

189화 ― 3인칭 관찰자 시점.

* * *

3관시, 혹은 삼관시라 불렸던 소설 ‘3인칭 관찰자 시점’.

강추강 작가의 ‘나 혼자 상하차’.

한태산 작가의 ‘대감집 막내손자’와 더불어 가장 많은 웹소설 독자를 보유한 작품 중의 하나였다.

이들 중 어느 웹소설이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냐를 묻는다면 독자들의 취향에 따라 의견이 갈릴 것이다.

하지만 소설피아 최초로 관심작 10만 명을 넘은 작품, 소설피아에서 가장 많은 관심작을 보유한 작품, 누적 판매수 1위인 작품을 뽑자면 그 누구도 이견 없이 단 하나의 작품을 뽑을 테다.

‘삼관시가 왜 지금……. 내년 초는 되어야 나올 작품인데?’

소설피아 연재 창을 훑어보다 내가 놀란 건 지금이 아직 2017년 5월 중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삼관시가 연재를 시작하는 건 내년인 2018년 초.

“팀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아닙니다. 아, 오늘 주간 회의는 일단 미루기로 하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서.”

“아, 네. 알겠습니다.”

내가 무엇에 쫓기는 듯이 급한 모습을 보이자 미어캣처럼 목을 빼내던 조팟놈도 다시 자기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조팟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나는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여 따끈따끈한 5연참이 올라온 삼관시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딸칵— 딸칵—

드르륵— 드륵— 드르륵—

나는 그 어느 글을 읽을 때보다 더욱 집중해서 삼관시를 읽어 나갔다.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며 작가 생활을 하던 주인공이 자신이 10년 넘게 읽던 소설 속 세상이 현실이 된 것을 깨닫고, 아포칼립스같이 변한 세상에서 살아남아 자신이 썼던 소설과 다른 결말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회귀 전.

삼관시의 저자 양파쿵 작가는 첫날 7연참을 했었다.

하지만 거의 반년 이상 빨리 연재를 시작해서일까?

회귀 전의 내용과 토씨 하나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때보다 2화 적은 5연참으로 시작한 게 유일한 차이점일 테다.

드르르륵— 드륵— 드르륵—

숨도 쉬지 않고 삼관시를 읽어 나갔을 무렵.

내 어깨를 슬쩍 치는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죠?”

워낙 집중해서 글을 읽던 상황이어서인지 다소 날 선 반응으로 대꾸했다. 황건일은 머쓱한 표정으로 책상 위를 가리켰다.

“전화가 계속 울리고 있어서요. 팀장님께서 혹시 못 들으신 건 가 해서…….”

황건일이 가리킨 곳을 보니 화면을 뒤집어둔 폰이 진동했다. 삼관시를 너무 집중해서 읽다 보니 전화가 오는 것도 확인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팀장님.”

사죄의 의미를 담아 황건일에게 짧게 고개를 숙인 후. 나는 냉큼 폰을 잡아 소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신자는 권미현이었다.

소회의실로 들어가자마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잔뜩 격양된 권미현의 목소리가 빠르게 흘러 나왔다.

—대표님! 지금 에르미스에서 엄청 괜찮은 작품 봤는데요. 이거 계약금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여쭤봐야 할 것 같아서요.

“에르미스요? 어떤 작품인지 나중에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저도 지금 소설피아에 당장 계약 제안 보내야 하는 작품이 있어서요.”

에르미스에 얼마나 괜찮은 작품이 올라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작품이라도 삼관시보다 파격적인 작품은 없으리란 걸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삼관시는 웹소설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충분한 작품이니까.

내 말에서 빨리 전화를 끊어야겠다는 뉘양스가 풍겨졌기 때문일까? 권미현은 조금은 김 샌 듯한 톤으로 말했다.

—아, 바쁘세요? 이 작품 진짜 괜찮은 것 같은데…….

“네, 지금 소설피아에서 가져와야 할 작품이 상당히 대작이어서요. 에르미스에 올라온 작품 제목만 알려주시면 제가 바로 확인해볼게요.”

—네.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는 제목인데 링크 톡으로 보내드릴….

우뚝.

권미현의 말에 나는 소회의실 밖으로 나가려던 발걸음을 다시 멈춰 세웠다.

“잠시만요. 삼관시? 아니, 양파쿵 작가님이 쓰신 3인칭 관찰자 시점 말하는 거예요? 저도 소설피아에서 보고 컨택해야겠다고 말한 게 같은 글인데?”

다급히 되물은 말에 권미현은 당황스럽다는 말투로 대꾸했다.

—네?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소설피아에도 연재된 거예요? 비독점으로 연재하는 건가 본데요? 에르미스에도 연재 시작하셨거든요.

소용돌이치던 머릿속에 더욱 거센 파도가 휘몰아친다. 나와 권미현 둘 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문이 막혔다. 짧은 침묵 속에서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삼관시가 올라온 것을 보고 놀라서 소설피아에 올라온 글이 독점인지 비독점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권미현의 말처럼 소설피아뿐만이 아니라 에르미스에도 동시에 연재를 한 것이라면 소설피아에도 에르미스에도 분명 비독점으로 연재를 하고 있다는 뜻일 터.

에르미스는 비독점으로 연재를 하더라도 유료화 전까지는 작가에게 아무런 차별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피아에서 연재하는 글의 경우 독점이 아닌 비독점으로 연재를 한다면 모바일에서는 베스트 랭킹 순위에 노출되지 않는 치명적인 제약을 받게 된다.

양파쿵 작가는 이미 전작이 있는 기성 작가.

삼관시 이전에도 소설피아에서 유료 연재를 경험한 양파쿵 작가가 독점과 비독점의 차이를 모를리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소설피아와 에르미스에 동시 연재를 진행한 거라면 에르미스에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미현 본부장님.”

“네, 대표님.”

생각 정리가 끝났다.

이제는 속도전이다.

“양파쿵 작가님께는 제가 따로 연락 드릴게요. 엘가 직원들한테 따로 컨택 하지 말라고 주의 부탁드려요.”

“아, 네! 알겠습니다!”

권미현은 자신이 컨택한 작품이 내 눈에도 들어온 작품이라는 사실이 흡족한 모양이다.

“그럼 먼저 끊겠습니다. 지금 바로 작가님한테 연락 드려야 할 것 같아서.”

판무 담당 매니저의 수만 해도 BS북 그리고 LGA컴퍼니 매니저의 수보다 더 많은 소설피아에서도 이미 컨택이 들어갔을 수가 있다.

이제는 속도전이다.

삼관시를 읽어보고 권미현과 통화를 하느라 이미 시간이 꽤 지난 것을 만회하듯 나는 빠르게 양파쿵 작가에게 보낼 컨택 쪽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타다닥— 타닥— 타다다닥—

양파쿵 작가에게 향한 에르미스에서 연재를 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나는 회귀 전 기억하고 있던 팬심을 살려 한 글자 한 글자를 꾹꾹 담아 컨택 쪽지를 써 내려갔다.

내가 지닌 가장 남다른 장점.

그건 한 번 본 소설을 잊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파쿵 작가에게 보낼 쪽지를 적어 내려가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어쩌면 양파쿵 작가 본인보다 그의 작품이 지닌 막대한 영향력과 장점에 더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타다닥— 타닥— 타다닥—

에르미스 계정으로 쪽지를 보내고 곧이어 BS북 계정으로도 계약 제안 쪽지를 보냈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이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전에 미뤄 뒀던 주간 회의를 끝내고 어느덧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딸칵— 딸칵—

‘……아직 읽지도 않으셨네. 많이 바쁘신가?’

일반적으로 작가들에게 계약 제안 쪽지를 보내면 하루가 더 지나야 답변이 오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초조한 마음에 나는 오후 5시 35분이 된 지금까지도 거의 10분에 한 번꼴로 에르미스 계정 그리고 소설피아에 컨택 쪽지를 보낸 BS북 계정을 번갈아 가며 쪽지를 확인했다.

마치 수능 후 결과 발표를 앞둔 기분.

90도로 올라간 바이킹 위에서 화장실을 급히 가고 싶은 그런 안절부절못하겠는 기분이 계속 반복되는 그때, 책상 위에 올려둔 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작가님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다들 퇴근 준비 잘 하시고 시간 되면 먼저 퇴근하세요.”

조팟과 황건일 매니저에게 그 말만 남겨둔 채 나는 빠르게 소회의실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모르는 번호.

하지만 그게 누구일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짧고 굵은 심호흡을 뱉은 후 경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웹소설, 웹툰 플랫폼 에르미스 그리고 LGA컴퍼니의 편집자 박정우라고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박정우 씨 본인 맞으실까요?”

고상한 여성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온다.

무언가 이상하다. 내가 알기로 양파쿵 작가는 30대 남성일 텐데?

하지만 편견을 버려야 한다.

양파쿵 작가의 목소리가 생각 이상으로 여성스러울 수도 있는 거니까.

“네, 맞습니다. 작가님.”

“반갑습니다. 요즘 실손 하나 없는 분 없으시죠. 하지만 저희 BD 보험에서는—”

“개인 정보 삭제해주세요. 끊습니다.”

뚝—

작가님을 위해 최대한 밝게 건넨 웃음이 보험팔이 광고 전화였다. 내 정보가 어디서 퍼진 건지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서 로또 1등 당첨 번호부터 빌어먹을 광고 전화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쌍욕이 뱉어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고 내게 걸려온 번호를 스팸 번호로 등록하는 그때, 또다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070? 어째 불안한데.’

02도 031도 아닌 인터넷 전화 번호임을 명백히 알려주는 번호 070.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양파쿵 작가님께서 인터넷 전화를 애용하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다시 짧은 심호흡으로 부동심을 되뇐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웹소설, 웹툰 플랫폼 에르미스 그리고 LGA컴퍼니의 편집자 박정우라고합니다.”

“서울 송파 경찰서 사법경찰리 순경 전동식입니다. 점유이탈물횡령 사건 접수가 들어와서 연락 드렸습니다. 우선 본인 확인을 위해 계좌 번호를—”

뚝—

연달아 스팸 전화를 이연타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심지어 자신을 경찰관이라 말하던 새끼의 말투는 누가 듣더라도 한국인이 아닌 대륙에서 살다 온 네이티브 스피커.

“하아……. 단풍 삼촌 시켜서 사기꾼 새끼들 본진을 싹 털어버려?”

오라는 작가에게 연락은 없고 사기꾼들 전화만 들끓는다. 분노로 인해 잠시 불법적인 루트로 전국에서 혹은 글로벌하게 사기를 치는 광고충들과 사기꾼 새끼들을 조져볼까 생각하는 그때,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도 070?’

이번에도 사기꾼이 맞으리란 확률이 200%.

하지만 똥인지 알면서도 된장일 것이라고 자신을 되뇌는 게 바로 작가의 전화를 기다리는 애타는 편집자의 마음일 테다.

070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가 울릴 때마다 짙게 깨문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또다시 똥을 먹어야 하는 순간이었으니까.

이번엔 길고 짙은 심호흡을 연거푸 내뱉은 후 다시 같은 멘트로 인사를 건넸다.

“웹소설, 웹툰 플랫폼 에르미스 그리고 LGA컴퍼니의 편집자 박정우라고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양파쿵이라고 합니다.”

3번 만에 진짜가 연락이 됐다.

작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편집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

그건 바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연락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단순한 인사일뿐인데.

벌써 눈가가 촉촉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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